안녕, 친구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힘이 세고 사악한 닥터 그랜마야. 으하하, 이제 지구를 정복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생겼어. 내가 지구 정복을 눈앞에 두고 엄청난 고민에 빠져 버렸지 뭐야? 친구들도 내 고민을 한번 들어볼래? 지구를 정복하려면 사람을 먼저 공격해야 할까, 동식물을 먼저 공격해야 할까? 사람을 먼저 공격해야 한다면 남자를 먼저, 여자를 먼저, 아니면 어른을 먼저, 어린이를 먼저…? 에잇, 모르겠다. 어머나, 저기 날고 있는 초파리는 앉을 데를 못 찾고 빙빙 돌고 있네. 혹시 나처럼 고민에 빠져버린 건 아닐까?
초파리야, 왜 주변을 빙빙 돌고만 있니? 앉을 데가 없는 거니?
우리도 사람처럼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심사숙고를 하기 때문이에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게로 미센뵉 박사 연구팀이 실험을 통해 알아낸 연구 결과랍니다. 우리가 특정한 냄새를 피하도록 훈련을 시킨 다음, 그 냄새가 나는 수조에 넣었어요. 첫 번째 실험에서는 수조의 한쪽 끝에 냄새를 진하게 묻혀두고, 두 번째 실험에서는 양쪽 모두 냄새가 똑같이 나도록 했어요. 그 결과 우리는 첫 번째 실험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는 곳으로 재빨리 날아갔지만, 두 번째 실험에서는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며 고민했답니다.
사람도 아닌 곤충이, 게다가 너희처럼 작은 초파리가 고민을 하고 결정한다고?
사람이 결정을 할 때에는 뇌 속에서 충분한 정보를 모아 선택해요. 말을 하거나 어떤 것을 결정하는 행동에는 ‘FoxP’라는 유전자가 관련이 있지요. 연구팀은 이와 마찬가지로 초파리에게도 뇌가 무언가를 결정하게 만드는 FoxP 유전자가 관련돼 있다고 설명했어요. 사람이 아닌 곤충도 비슷한 원리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힌 실험이었지요.
과일만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너희도 꽤 똑똑하구나!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곤충인데요. 초파리가 없었다면 사람도 지금처럼 훌륭한 연구 결과를 얻지 못했을 거예요. 특히 과학자들은 우리를 이용해 유전과 관련된 연구를 많이 하거든요. 그 이유는 주변에 흔하게 있고 키우기가 쉽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알을 한번에 100개 이상씩 낳고 성장 기간이 짧아요. 알에서 새끼가 태어나 어른으로 자라는 데 열흘밖에 걸리지 않거든요. 염색체수가 적고 눈의 색깔이나 다리의 모양처럼 유전적인 특징이 뚜렷한 것, 돌연변이가 자주 나타나는 것도 장점이에요.
우와, 대단하다. 그렇다면 너희를 이용해 지구 정복이 가능한지 실험해 봐야겠어!
좋아요, 닥터 그랜마! 저희도 성심성의껏 도와드릴게요. 잠깐! 킁킁~!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나요. 아마 30m쯤 떨어진 곳에 누가 달콤한 사과와 시큼한 포도를 까먹고 껍질을 아무데나 버렸나 봐요. 과학자들이 우리를 이용해 실험하는 이유가 흔해서라고 했죠? 우리는 과일을 잠시만 놔둬도 멀리에서부터 찾아 날아가요. 그러니까 저는 일단 맛난 식사를 하러 갈게요. 나중에 만나요, 닥터 그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