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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반 위의 과학! 피겨스케이팅

“이상하네. 분명 여기가 맞는 것 같은데….”


며칠 전, 과학자인 나에게 어떤 대회의 과학 심사를 해 달라는 초대장이 날아왔어. 초대장에는 무슨 대회인지 소개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지만, 너무나 정중하게 부탁하기에 거절하기가 힘들었지. 그런데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 분명 정해진 날짜에 초대장에 그려진 약도대로 찾아왔는데, 과학 대회는 어디서도 하고 있지 않잖아! 대신 내 눈 앞에 펼쳐진 건 바로…, 2009 세계피겨스케이팅선수권 대회!
 


피겨 잘하는 몸, 따로있다?

“과학자인 내가 피겨스케이팅 대회에서 뭘 하라고…?”


뭔가 일이 잘못된 게 틀림없는데…, 내 눈은 이미 빙판 위를 향하고 있어. 피겨 선수의 우아하고 가벼운 몸놀림은 마치 깃털 같아서 눈을 뗄 수 없군. 몇 바퀴나 회전했다가 다시 빙판을 가르는 모습을 볼 때면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는 다람쥐와도 같지. 그런데 듣자하니 2분 30초에서 4분밖에 되지 않는 피겨 경기가 마라톤만큼 체력을 많이 필요로 한대. 혹시 피겨 선수의 몸에는 굉장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자료에 따르면 피겨 선수들의 체지방률은 굉장히 낮아. 체지방률은 몸에서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로, 체지방률이 낮을수록 지방이 적다는 말이야. 보통 19~24세에 속하는 여자의 정상 체지방률은 23%, 여자 운동선수의 체지방률은 14~20%인데, 2007년 우리나라 국가대표 여자 피겨 선수 5명의 평균 체지방률은 13.6%밖에 되지 않아. 지방이 적을수록 몸이 가벼워서 점프나 회전 동작을 할 때 무척 유리하지.


피겨 선수들은 체지방률이 낮아 말라 보여도, 약하지는 않아. 운동선수들은 보통 자기 몸무게의 2배의 힘을 내는데, 피겨 선수는 다리를 위로 올리거나, 허리를 지탱할 때에 각각 2.5배, 3배나 되는 힘을 내거든.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폭발적인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야.

 


피겨 선수들을 보면 인종에 상관없이 대부분이 날씬하고 마른 체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빙판 위를 멋지게 가르는 김연아 선수를 보니 또 궁금증이 생겨. 혹시 피겨에 적합한 체형이 따로 있는 건 아닌지 말이야.


사람의 체형은 크게 비만형, 일반적인 체형인 투사형, 키가 크고 마른체형인 세장형으로 나눌 수 있어. 이 중에 운동선수로 적합한 체형은 투사형과 세장형이야. 하체보다 상체가 발달되어 있는 한국인은 대부분 투사형이지. 역대 올림픽에서 투기종목의 메달획득이 가장 많은 것도 투기종목이 우리나라 체형에 알맞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피겨스케이팅에는 투사형보다 세장형이 더 알맞아.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 피겨스케이팅의 동작을 쉽게 소화하고, 동작의 선도 훨씬 아름답거든.


특히 김연아 선수는 피겨스케이팅에 유리한 체형을 두루 갖췄어. 키가 너무 작으면 회전력이 약해지고 너무 크면 체력의소모가 심하고 무게 중심을 잡기 힘든데, 김연아 선수는 164㎝라는 적당한 키를 가졌거든. 또한 긴 팔다리 또한 피겨스케이팅에 유리해. 다리가 길면 높게 점프할 수 있어서 공중에 오래 머물 수 있고, 그 결과 회전을 더 많이 할 수 있지. 긴 팔은 같은 동작을 해도 더욱 우아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어.

 


레슬링의 심권호와 피겨의 김연아가 각각 투사형과 세장형의 가장 전형적인 체형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동양인은 신체 비율이 좋지 않아 피겨스케이팅에서는 성공할 수 없을 거라고 말했던 것이 불과 10년 전이다.

1980년이후 한국인의 키는 남녀 모두 7㎝ 더 커졌고, 팔다리 역시 6~8㎝ 더 길어졌다.



피겨동작을보면 과학 법칙이보인다?

피겨스케이팅을 얼음 위의 예술이라고들 하잖아. 그래서 나도 마냥 아름다운 스포츠라고만 생각했어. 그런데 피겨스케이팅 동작 하나하나를 자세히 분석해 보니 정말 입이 떠억~하고 벌어졌어.


선수들이 공중에서 회전하는 동작을 잘 살펴봐. 회전을 하기 전에는 위로 뛰어오르는 힘을 얻기 위해 빙판 위를 엄청나게 빠르게 달려. 그런 다음, 팔과 다리를 몸 바깥쪽으로 최대한 뻗어서 공중으로 뛰어올라. 그리고는 팔과 다리를 재빨리 몸에 붙이면서 회전하지.


회전력은 머리와 발끝을 잇는 신체회전축에서부터 회전할 때 힘을 발휘하는 곳까지의 거리가 길수록 커져. 즉 팔을 몸 바깥쪽으로 길게 뻗으면 뻗을수록 회전하는 힘이 커지는 거지. 또한 회전할 때 팔과 다리를 몸에 재빨리 밀착시키는 것은 회전속도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야. 회전하는 물체는 회전하는 반경이 커질수록 회전속도가 줄어들고, 반대로 반경이 작아질수록 속도는 빨라지거든.


 

 


양팔을 완전히 벌렸을 때는 양팔을 완전히 오므렸을 때보다 3배나 더 큰 힘으로, 다리까지 넓게 벌렸을 때는 6 배나 더 큰 힘으로 회전을 시작할 수 있다.

착지하는 동작까지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


“피겨 선수들은 혹시 물리 천재가 아닐까?”


 

 


피겨 선수는 공중에서 회전을 하고 난 뒤에 착지를 할때는 왼쪽 다리는 최대한 몸 바깥쪽으로 뻗고, 오른쪽 다리는 무릎을 굽혀. 몸이 넘어지지 않도록 몸의 무게 중심을 낮추는 거지. 사람 몸의 무게 중심은 배꼽 근처인데, 무게 중심이 높은 경우 몸이 수직선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쉽게 넘어지거든. 역삼각형보다 정삼각형이 더 안정적인 것과 같은 원리지. 또한 착지를 할 때 회전할 때 오므렸던 팔을 다시 넓게 펴는 건 회전하는 반경을 길게 만들어 몸의 회전속도를 늦추기 위해서야
.
 

 


아사다 마오의 싯스핀. 자세가 정삼각형을 이루면 무게 중심이 안정적이라, 회전을 빠르게 해도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마음을 다스려야 빙판 위도 다스린다!

대회는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었어. 이제는 빙판 주변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선수들도 내 눈에 들어왔지. 엇~, 그런데 저 선수는 이 중요한 순간에 노래를 듣고 있잖아? 그런가 하면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 선수도 있네.


아…, 그래! 저 선수들은 긴장을 풀기 위해 저러고 있는 거야! 놀랍게도 마음이 긴장을 하면 몸의 근육도 긴장을 해. 그러면 연습할 때의 근육 상태와 다르기 때문에, 연습 때는 쉽게 했던 동작이 경기에서는 잘 안 될 수가 있어. 또한 긴장을 하면 주의력이 낮아지고, 시야도 좁아져서 실수하기 쉬워져. 그래서 선수들은 경기 전에 긴장을 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가장 많이 쓰는 방법 중의 하나는 심상훈련! 눈을 감고 실제로 경기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는 거야. 실제 경기가 4분이라면 이 심상훈련도 똑같이 4분으로 진행되고, 심하게 몰입하는 경우에는 정말 경기를 하고 난 것처럼 땀을 흘리고 숨을 헉헉대기도 해.


노래를 듣는 것도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돼. 노래는 그 노래를 들었던 때의 마음 상태를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거든. 그래서 기분이 좋았을 때 들었던 노래를 경기 전에 들으면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있단다. 보통 집중이 필요한 양궁 선수들은 차분한 음악을, 각성이 필요한 역도 선수는 록이나 헤비메탈같은 음악을 듣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지만 선수마다 각자 다르단다.

 

 

 


지나친 긴장은 실수로 이어지지만 너무 긴장을 안 하는 것도 문제다. 적당한 긴장은 집중력과 주의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어려운 기술이나 심적 부담이 덜한 갈라쇼에서 선수들은 실수를 많이 한다.

 

 

 


관중도 선수의 심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연습 때와 달리, 갑자기 큰 환호나 야유가 들리면 압박감을 가져 실수를 하기 쉽다. 그래서 관중은 성숙한 관람 문화를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피겨상식-앗, 이런원리가!

아이스링크장은 너무 추워 보여. 옷도 얇게 입은 선수들이 감기에 걸릴까 봐 걱정이야.


보통 아이스링크장의 빙판 아래에는 냉각 파이프가 깔려 있어. 그래서 밸브만 조절하면 빙판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지. 피겨스케이팅의 경우 선수들이 점프를 뛰기 때문에 영하 3℃에서 영하 4℃ 정도로 빙판이 무른 편이야. 참고로 쇼트트랙과 아이스하키는 빙판이 무르면 얼음이 파일 위험이 있기 때문에 영하 7℃에서 영하 8℃로 온도를 조절해 빙판을 딱딱하게 만든다고 해.


빙판의 온도가 영하인 만큼, 빙판 위의 공기는 아주 차고 건조해. 그런 공기 속에서 격렬하게 경기를 펼치는 피겨 선수들은 차가운 공기를 깊고 오래 마시게 돼. 그래서 피겨 선수들은 감기에 쉽게 걸려서 늘 휴지를 달고 살지.

 


스케이트 부츠의 날은 굉장히 얇아 보이는데, 어떻게 얼음 위를 그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까?

스케이트 부츠 날의 두께는 보통 3~4㎜야. 선수들은 이 얇은 날로 땅 위에서보다 훨씬 더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이지. 그건 바로 얼음과 스케이트 날이 만나는 부분의 마찰력이 아주 작기 때문이야. 또한 스케이트 날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얼음과 닿는 부분을 일시적으로 녹여서 물로 만들기 때문에, 스케이트 날이 쉽게 미끄러질 수 있단다.
 

 

 


드디어 대회가 끝났어. 과학자인 나를 왜 피겨스케이팅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초대했는지 이젠 알 것 같아. 열심히 심사한 결과를 다른 심사위원들에게도 보여 줘야지! ………….


아이쿠! 이런 망신이? 내가 초대받은 곳은‘2009 세계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가 아니라, 바로 옆에서 열리고 있는‘2009 이그노벨상을 노리는 과학자들의 모임’이었지 뭐야!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싶었어!


그래도 김연아 선수도 보고, 피겨스케이팅에 숨어 있는 과학 원리도 찾았으니 오히려 더 잘된 게 아닐까? 그리고 혹시 알아? 내가 찾은 피겨스케이팅 속의 과학을 좀 더 연구하다 보면 이그노벨상이 아니라 노벨상까지 받을 수 있을지?

 

2009년 06호 어린이과학동아 정보

  • 김맑아 기자
  • 도움

    박세정 연구원
  • 도움

    송주호 연구원
  • 도움

    신정택 연구원
  • 도움

    유경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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