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과학적인 글자라고 한다. 그것은 문법으로나, 음성학적으로 그렇다고 사람들이 말했다. 그러나 세종대왕 창제 당시를 제외한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한글꼴은 타자기 글자나 일부 컴퓨터 용 글자를 제외하고는 비과학적이었다. 문법적으로나 음성학적으로 한글이 과학적인 것만큼 꼴도 과학적일 수 있다. 그것이 과학적이라 함은 여러가지 조건에 맞아야 한다.
글자란 우선 가독성이 좋아야 한다. 가독성이란 쉽고 빨리 읽혀야 한다는 조건을 말하며, 그러한 가독성에는 생리적인 면과 심리적이 면이 있다.
생리적인 면은 눈으로 빨리 익히고 식별이 용이해야 한다는 점이다. 역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못 생기고 울퉁불퉁한 사람은 식별과 기억에 용이하다. 즉 글자의 변별점이 확실해지면 그만큼 생리적인 가독성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과학동아' 로고타입은 한마디로 말해 못생겼다. 이유나 논리없이 못생긴 것과 못 생겼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학'자의 기역 받침이 오른쪽으로 삐죽하게 나간 것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극도의 변별력을 가진다. 변별력은 과학적 글자의 필수기능이다. 만일 이 글자가 '과학동아'의 로고타입으로서도 그렇지만 고속도로 표지판으로 사용이 된다면 그 결과는 더 좋을 듯 싶다.
과학적인 글자란 또 만들기가 쉬워야 한다. 제작이 쉬워야 함은 두가지 면에서 그렇다. 하나는 노력이 덜 들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시간이 덜들어야 한다. '과학동아' 로고타입은 그 제작에있어 시간과 노력은 줄일 수 있다. 그러므로 싼 글자를 얻게 된다. 영문자 역시 싼 글자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자는 비싼 글자이다. 이에비해 울퉁불퉁한 '과학동아' 로고타입은 시간과 노력이 덜 들고 제작이 수월하니 얼마나 과학적인가? 견강부회적인 생각이지만 싼 글자란 곧 민주적인 글자가 아닐까?
그동안 한글은 네모틀 글자였다. 한자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네모틀이란 제한 때문에 활자 한 벌을 만들려면 2천5백 여자의 글자를 그려내야 한다. 이에 비해 영문은 26자, 대문자, 소문자 합해야 52자면 족하다. 한글은 스물네자라고 하지만 그것이 네모틀에 맞추다 보니 그 많은 글자가 필요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네모틀 글자에 무의식적으로 중독(?) 되어 왔다.
한글을 쓰는 이가 남북한 합쳐 7천만, 로마자를 쓰는 이가 약 7억이라 치자. 7천만이 2천5백자의 꼴을 골똘히 생각하는 것하고, 약7억이 52자 가지고 죽자사자 하는 것은 게임이 안된다. 그러나 '과학동아' 로고타입은 자소가 24자 뿐이다. 이렇게 하려면 모양이 네모틀 글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밉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알파베트의 반, 그렇지 않아도 그들에비해 한참뒤떨어져 있는데, 이렇게라도 해야 글을 통해서 흡수해야할 정보량이 넘쳐흐르는 현대 사회에서 서양인들을 빨리 뒤쫓을 것 아닌가.
'과학동아' 로고타입이 갖는 특징 중의 하나는 곡선이 꺼끌꺼끌하다. 즉 디지탈 글자의 특징을 나타낸 것이다. 글자에는 아날로그글자와 디지탈글자가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디지탈 글자는 점으로 된 글자라고 할 수 있고, 아날로그 글자는 선으로 된 글자이다. 이 시대에 와서 컴퓨터는 디지탈 개념으로 그조화를 부린다. '과학동아'라는 잡지에 맞게 현대적 느낌을 부여해야 한다는 로고타입 속성에 대한 고민의 소치였다.
'과학동아' 로고타입 글자는 모두 모듈로서의 질서를 가지고 있다. 24자의 자소만을 만들면 그것이 상하좌우로 정해진 질서에 의해 만나 서로 다른 1만자의 한글꼴을 만들어 낸다.
나는 이 작업을 16비트 짜리 컴퓨터로 해냈다. 처음엔 김모 박사가 만들어준 소프트웨어로 시도했다가, 나중에는 기성 제품 CAD프로그램을 이용하였다. 컴퓨터와 인연을 맺은지 4년만의 첫 결과였다. 귀퉁이를 파낸 것은 글자의 비디오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것이 브라운관에 재현시키면 깨끗해 보인다. 미국 CBS 방송국의 뉴스 헤드라인 용 활자 원형은 다 이렇게 디자인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재작년 홍익미대 산업디자인과 스터디그룹의 직접 실험 결과로도 국내에서 증명된 바 있다.
단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가독성의 또 하나의 측면, 즉 심리적인 면에 있다. 사람들이 늘상 대해 왔던 한글의 꼴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습관이란 반복에 기인한다. 생리적으로 우수한 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반복되면, 그렇지 못한 것의 반복 결과보다 시간의 단축은 뻔할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그렇게되리라는 것을 확신하다. 그리고 '과학동아' 로고타입 형태가 한글꼴의 미래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