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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에너지와 정보 저장의 보고 박막


엄청난 양의 트랜지스터와 캐패시터가 엄지손가락만한 반도체에 숨을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미래 사회를 그리려는 미술가들은 박막의 존재부터 파악해야 한다. 박막 덕분에 볼펜 크기의 휴대폰, 암세포를 죽이는 마이크로 머신이 현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에 의해 세계 최초로 256메가 디램(Mb DRAM)이 생산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신문이나 TV에서 본 적 있다. 여기서 말하는 256Mb는 기억 용량을 의미한다. 한글을 기준으로 하면 3천2백만 글자를 기억할 수 있는 양이다. 이것은 보통 사용하는 2백자 원고지 16만장에 해당되는 매우 큰 양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만들 수 있는 DRAM(Dynamic Random Access Memory)의 최대 용량은 신문 8천장, 단행본 1백 60권, 60분 짜리 테이프 16개 분량의 정보를 기억할 수 있는 1Gb까지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렇게 많은 정보를 담고있는 DRAM은 엄지손가락 만한 크기의 플라스틱에 불과하다. 금속 발을 달고있는 납작한 벌레 모양의 플라스틱, 어디에 3천 2백만 글자가 숨어 있을까.

엄지손가락에 숨은 운동장

PNP형 또는 NPN형으로 구분되는 트랜지스터라는 것이 있다. D램에 2비트의 정보가 저장되기 위해서는 1개의 트랜지스터와 1개의 캐패시터(축전기)가 필요하다. 캐패시터는 실제로 정보를 저장하고 트랜지스터는 각각의 캐패시터에 전기적 신호를 주는 역할을 한다. 즉 캐패시터의 전하량이 (+)와 ( - )로 변함에 따라서 (+) 상태를 0, ( - ) 상태를 1로 인식한다.

트랜지스터와 캐패시터를 각각 5백12개 넣어 만든 1kb 용량의 반도체가 시장에 나온 것은 1971년이다. 그 후 27년만에 우리나라에서 25만6천배나 용량이 큰 256Mb 메모리 칩이 생산됐다. 그렇다면 256Mb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몇 개의 트랜지스터와 캐패시터가 필요할까. 답은 1억 2천 8백만 개다. 일반적인 트랜지스터와 캐패시터는 아무리 작다고 해도 두개를 합친 크기가 1cm²는 될 테니까 1만2천8백m²의 면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것은 대략 가로 1백m, 세로 1백m인 운동장만한 크기다. 이렇듯 엄청난 양의 트랜지스터와 캐패시터가 엄지손가락 만한 플라스틱 안에 숨어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열쇠는 박막(thin film)에 있다.

1개의 두께는 겨우 0.1μm

캐패시터와 트랜지스터를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얇은 막으로 만든다면 혹시 가능한 일이 아닐까. 캐패시터는 양쪽에 전극이 있고 중간에 유전체라는 물질이 들어있다. 유전체는 전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캐패시터를 박막으로 만들 때는 실리콘 웨이퍼 위에 전극물질을 박막으로 형성한다. 일반적으로 백금이나 알루미늄, 구리 등 전기 전도도가 높은 금속을 많이 사용한다. 그 위에 유전체에 해당하는 물질을 입히고 그 위에 다시 전극물질을 형성한다. 이 세 층의 두께는 1μ m(1μ m=${10}^{-6}$m)가 되지 않는다. 세 층의 면적을 아주 작게 잘라도 캐패시터는 그 역할을 다한다.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과정은 좀 더 복잡하다. 트랜지스터는 P형 반도체와 N형 반도체를 PNP 또는 NPN 형태로 붙여서 만든다. 그리고 각각에 3개의 전극이 필요하다. D램에서는 P형의 반도체 층과 N형의 반도체 층을 박막의 형태로 만들고, 각 층의 전극도 박막 형태로 만든다. 이렇게 만든 박막트랜지스터는 얇은 막으로 돼 있기 때문에 높은 전압에서는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D램의 경우에는 큰 문제가 아니다.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전원, 즉 박막트랜지스터에 공급되는 전원은 불과 3.3V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D램에서 용량을 결정하는 것은 박막 캐패시터와 박막 트랜지스터가 얼마나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즉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것들을 집어넣어야 할 공간의 크기가 한정돼 있다는 사실이다.


실리콘 웨이퍼 위에 만들어진 반도체


기억력을 높이려면

근래 들어 D램의 기억용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용량이 증가하면 트랜지스터와 캐패시터의 양도 늘어나야한다. 256 Mb에서 1Gb로 증가하게 되면 트랜지스터와 캐패시터는 4배나 더 필요하다. 그렇다고 1 Gb 칩을 256 Mb보다 4배 크게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각 셀(1개의 캐패시터와 1개의 트랜지스터로 구성되는 하나의 단위)의 크기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려면 캐패시터와 트랜지스터가 차지하는 면적을 줄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트랜지스터는 면적을 줄여도 큰 문제가 없지만 캐패시터는 이것을 거쳐 나오는 신호의 세기가 감소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따라서 신호의 세기를 일정하게 보상해주기 위해서는 단위면적당 전하밀도를 높여야 한다. 그러므로 D램에서 용량 증가는 결국 어떤 종류의 캐패시터 박막을 어떤 방식으로 만드느냐의 문제로 좁혀진다.

1Mb 용량까지는 캐패시터의 유전체를 질화규소와 산화규소(Si₃N₄-SiO₂)의 화합물로 사용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용량에서 평면 캐패시터로는 더 이상 면적을 줄일 수 없게 됐다. 따라서 캐패시터를 여러 층으로 쌓는 방식 등을 사용해 겉보기 면적은 줄이고 실제 캐패시터의 면적은 늘이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256Mb이상에서는 이러한 해결방법이 한계에 부딪히게 됐다. 즉 기하학적 구조 변경으로는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전세계의 연구진들은 보다 큰 고용량의 D램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방법들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까지 대두된 해결책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기존 재료를 사용하는 경우는 캐패시터의 넓이를 줄이는 만큼 두께를 줄이는 방법이 거론되고 있다. 용량은 면적이 넓을수록, 두께가 얇을수록 증가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기존의 유전체 물질보다 작은 면적에서도 용량이 큰 새로운 물질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기존 재료의 두께를 더욱 줄여 유전상수를 증가시킬 경우, 박막이 너무 얇아져 전류가 예상치 못한 곳으로 새어나가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높은 유전상수를 갖는 물질을 찾는 것이 보다 궁극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재 개발 완료된 1Gb 용량의 D램의 경우가 바로 높은 유전상수를 갖는 새로운 재료를 사용한 것이다.

왜 박막인가?

램 뿐만 아니라 반도체라고 부르는 것들은 모두 박막으로 구성됐다고 생각해도 된다. 그렇다면 왜 재료를 박막화하는 것일까. 첫째 소자의 복합화와 집적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재료만으로는 특수한 기능의 소자를 만들 수 없다. 즉 여러 가지 재료를 복합화해야만 가능하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근래에는 전자제품이 경량화, 소형화되는 추세다. 따라서 전자소자 자체도 집적화 돼야만 상품적 가치가 있다. 따라서 전자소자의 집적화는 재료의 박막화 공정이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둘째 가공이 어렵거나 합성이 힘든 재료를 쉽게 가공할 수 있다. 융점이 높아 재료합성이 어려운 고융점 재료나 경도가 높아 정밀가공이 힘든 고경도 재료는 박막화함으로써 정밀 가공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 칼을 만든다고 하자. 이 경우 직접 다이아몬드 결정을 만들어 붙이거나 박막으로 제조해 입히는 방법이 있다. 다이아몬드를 인공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원재료가 되는 탄소를 높은 압력과 높은 온도에서 가공해야 한다. 하지만 박막화 작업은 높은 압력과 온도가 필요치 않은 비교적 단순한 공정이다. 훨씬 간단하고 경제적이다.

셋째 2차원적인 박막을 아주 얇은 초박막으로 제조해서 특별한 특성을 얻을 수 있다. 전자가 박막 내부에서 이동할 때 박막 내부에서 부딪히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의미하는 전자의 평균운동거리는 상온에서 수백 Å정도다. 만일 박막의 두께가 이것보다 작아지면 전하의 전달 특성이 크게 달라진다. 이것은 박막이 원재료와는 다른 새로운 전기적 특성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전기 저항이 매우 높은 물질의 저항을 낮출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암세포를 죽이는 마이크로 머신의 전제조건은 전지를 비롯한 모든 부품을 박막으로 만드는 것이다.


암세포 죽이는 마이크로 머신

재료가 박막화된 세계에서는 많은 일들이 새롭게 연출된다. 암세포를 죽이려고 몸 속을 침투해 활약하는 마이크로 머신, 카드 하나로 은행거래, 상품 구입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활동이 가능한 스마트 카드 등의 출현이 그 예다. 이러한 것을 가능케하는 핵심적인 것이 바로 전원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전원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를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박막 전지다.

몸 속에 암세포나 병균이 있다면? 아마 약을 먹거나 수술을 하는 방법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 단위의 극히 작은 기계를 혈관 속으로 집어넣어 암세포나 병균을 죽이는 방법은 어떨까? 여기서 말하는 기계가 마징가 제트만큼 크다면 어림없는 얘기다.

그러나 운동장 넓이의 트랜지스터를 엄지 손가락만한 D램안에 집적시킨 인류의 기술을 고려하면 마이크로 머신이 결코 꿈은 아니다. 마이크로 머신의 모든 부품을 박막으로 만들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것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공급해 주어야 한다.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으면 마이크로 머신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박막전지. 그러면 이 작은 마이크로 머신에 박막전지를 어떻게 연결할까. 장난감 로봇처럼 배 부근에 덮개를 열고 집어넣을까. 물론 아니다. 박막 전지는 단 세 층만 입히면 성능을 발휘한다. 세 층의 두께는 모두 합쳐서 0.001 mm 이하다. 따라서 로봇의 발이나 머리, 아니면 배 부근에다 세 층만 입혀주면 전지로서의 훌륭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박막전지는 분명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통상적으로 전지는 양극/전해질/음극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각의 부분에 적합한 재료를 연결해 놓으면 전지가 된다. 박막 전지는 이 세 층을 각각 아주 얇은 막으로 만든 것이다. 박막전지는 현재 가장 발달돼 있는 반도체 제작 분야에서 사용하는 동일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제조상 특별한 어려움은 없다. 또한 층의 두께를 최소화함으로써 전해질의 내부저항을 감소시켜 전지의 효율을 증대시킬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현재 사용되는 박막 전지가 모두 1차전지(한번 사용하고 버리는 전지)라는 단점이 있지만 앞으로 2차전지(계속 충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전지)가 개발되면 환상적인 마이크로 머신의 세계가 열릴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세계

현재 사용하고 있는 각종 카드들은 정보를 자기 테이프에 저장한다. 여기에는 2.5cm에 6천2백50 글자밖에 저장할 수 없고, 자석 옆에서는 정보가 지워지며, 정보를 읽는 속도 또한 매우 느리다. 공중전화 카드 같이 저장해야 할 정보가 작은 경우는 상관없지만 은행카드나 신용카드처럼 많은 정보를 저장하기에는 불편하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1974년에 발명가 롤랜드 모렘이라는 사람이 스마트 카드(Smart Card)를 개발했다.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10억 개의 스마트 카드가 생산됐다. 2000년까지는 세계적으로 30억 개의 스마트 카드가 이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로 현재 세계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신용카드의 수는 9억 개 정도다.

쉽게 말해서 스마트 카드는 중앙연산장치와 저장장치가 내장된 카드다. 일반카드가 공중전화 카드처럼 지정된 작동만을 수행하는데 비해, 중앙연상장치가 들어 있는 스마트 카드는 정보를 삭제하거나 입력하는 등의 조작이 가능하다. 스마트 카드들은 저장장치로 기존의 자기 테이프 대신에 박막형태의 SRAM(Static Random Acess Memory)을 사용한다. S램은 일반적으로 네 개의 트랜지스터로 회로를 구성해 정보를 캐패시터 내의 유전체에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회로적으로 보상하는 방법을 취한다. 즉 회로 내에 두 곳의 정보 저장소를 만들어서 1 과 0을 표시하는 것이다. 회로 내에 갇힌 정보는 다른 신호가 들어올 때까지는 정보를 계속 유지하기 때문에 전원이 없어도 정보의 저장이 가능하다. 단지 D램 보다 트랜지스터의 수가 세 개 더 많기 때문에 공정이 복잡해 값이 비싸고 기억 용량이 작다는 문제가 있다.

왜 스마트 카드에 D램을 사용하지 못할까. 그것은 단지 전원이 없기 때문이다. D램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전원 공급이 필요하다. 만약 스마트 카드에 박막전지를 입혀 계속적인 전원의 공급이 가능하면 중앙연산장치들도 특별한 기기 없이 작동할 수 있다. 고용량이면서 값이 싼 D램을 사용해 보다 강력한 첨단기능의 스마트 카드로의 변신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카드 하나로 문을 열고, 물건을 사고, 은행거래를 하게 될 것이다.

또 노트북의 화면으로 사용하는 액정 화면을 제작하기 위해서도 모든 재료를 박막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외에도 열거할 수 없이 많은 것들이 박막화된 재료를 이용해 만들어지고 있다. 박막의 세계는 우리가 눈으로 쉽게 볼 수는 없는 세계지만 이미 우리의 눈앞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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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박종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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