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고 감동한 적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모든 예술 중에서도 음악은 우리의 마음 깊이 훅 들어오는 힘이 있다. 비트가 강한 음악을 들으면 무의식 중에 어깨를 들썩이고, 어떤 노래의 첫 소절부터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다. ‘뮤지코필리아’는 음악과 인간의 이 특별한 관계를 의학, 뇌과학의 관점에서 살펴본 책이다.
편집자 주
음악에 대한 사람의 기억력은 매우 끈질기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곡의 음색, 음높이, 빠르기를 충실히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어릴 때 놀이로 배운 선율, 가사를 바꿔서 외운 역사적 사건의 순서 등은 성인이 된 후에도 뇌리에 남는다. 이런 현상을 종합하면, 인체의 감각 기관은 ‘음악’과 아주 예민하게 공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음악이 인간 존재에 이처럼 깊은 영향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뮤지코필리아’는 이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뮤지코필리아는 음악(뮤직)과 사랑(필리아)의 합성어이며 의학적으로는 ‘음악에 대한 비정상적 집착이나 과몰입상태’를 뜻한다. 음악-인간 상호작용은 스펙트럼이 넓다. 이 책의 저자 올리버 색스는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신경과 의사이자 뇌과학자로, 그가 만난 환자들 중에는 음악적 강박에 고통받는 이도, 음악이 난치병을 완화시켜준 이도 있었다. 이 책은 그들에 대한 과학적·음악적 기록이기도 하다.
뮤지코필리아가이드맵
올리버 색스 지음|장호연 옮김|김종성 감수|알마|574쪽|2만 8000원
추천 KAIST 독서문화위원회 추천도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신경장애 환자를 진료한 색스의 오랜 경험이 담긴 과학 에세이입니다. 과학적 지식과 문학적 감동을 아우르는 색스의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난 책입니다.
‘음악, 밀당의 기술’, 이미경 : ‘음악을 들으면 왜 어깨를 들썩이는지’ ‘떼창을 하면 왜 기분이 좋아지는지’ 살펴본 책입니다. 인간의 리듬 행동이 진화하고 음악 문화로 심화된 과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귀벌레가 갑자기 많아진 이유?
이 책의 앞부분에는 ‘음악적 강박 증세’로 보이는 여러 사례가 나온다. 그중 ‘귀벌레(Earworm)’ 현상도 있다. 특정 선율이 머릿속에서 무한반복되며 일상을 방해하는 현상이다. 귓속에 벌레가 들어간 것처럼 같은 선율이 몇 날 며칠 들리면 그 누구라도 괴로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선율을 멈추려 깡충깡충 뛰기도, 1부터 숫자를 세기도 한다. 그러다 이 선율이 거짓말처럼 갑자기 사라지기도 한다.
이런 이상 현상들은 왜 나타날까? 우리의 감각이 과잉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루 종일 뇌파 검사지를 보고 나면 한동안 벽이나 천장도 온통 꾸불꾸불하게 보인다. 과도한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은 후에, 이미 사라진 것이 계속 보이거나 지금 있는 것을 못 느끼는 감각 이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뇌에서도 이런 이상 증세가 일어날 수 있고, 귀벌레도 그 하나다. 음악, 뇌파 자극, 강박적 사고와 같은 원인이 뇌를 과도하게 자극해서 뇌 활성화가 멈추지 않는 사례들이다. 이런 이상 현상이 음악적 강박으로 나타나는 이유로서, 인간의 뇌가 음악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계속 울리는 음악들에 포위됐다. 스트리밍 서비스에 접속해 온종일 음악을 듣는다. 광고음악의 곡조는 짜증이 날 정도로 귀에 달라붙는다. 그래서 저자는 귀벌레가 어느 정도는 현대적인 현상이거나, 적어도 과거보다 훨씬 빈번해진 현상이라고 본다. 그러니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이라도 이어폰 볼륨을 너무 크게 듣지는 말아야겠다. 혹은 아무 소리도 듣지 않고 잠시 귀를 쉬는 시간을 둬도 좋겠다. 자극에 극도로 예민한 우리 뇌가 없는 소리를 들었다고 착각하는 청각 강박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얼어붙은 뇌도 녹이는 리듬
신체가 손상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재활을 시도하면, 어떻게 서고 걷는지 몸이 기억해 내지 못할 수 있다. 손상된 근육, 신경 그리고 척수의 억제 작용이 신체 매핑을 방해하는 것이다. 뇌에서도 신체 매핑이 억제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음악치료가 아주 중요하다. 음악의 강한 리듬이 뇌의 움직임 중추를 자극해, 신체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동작하도록 일종의 ‘움직임 가이드’ 역할을 한다.
음악치료는 특히 파킨슨병 환자들에게 많이 활용된다. 파킨슨병의 가장 괴로운 증상은 어떤 동작도 자발적으로 시작하지 못하는 것이다. 환자들은 항상 ‘옴짝달싹 못 하거나’ ‘얼어붙어’ 있다. 또는 환자 자신은 자각하지 못하지만, 이미 시작된 동작이 너무 빠르거나 느린 경우도 많다. 이럴 때에 음악은 파킨슨병 환자들의 몸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춤도 추게 한다. 그러나 음악이 멈추면 환자들은 다시 얼어붙는다. 음악은 어떻게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일까?
파킨슨병의 원인은 뇌 속 기저핵(뇌 중심부의 깊은 지점에 위치한 신경세포 집합체)의 한 부위인 ‘흑질’에서 도파민을 생성하는 신경세포 손상으로 알려져 있다. 정상적인 성인의 뇌에서 기저핵은 신체 움직임을 정교하게 조절하는 관제탑 역할을 한다. 파킨슨병은 기저핵의 조절 기능 손상이 원인이므로 환자가 움직이고 싶어도 억제 신호가 강해서 움직여지지 않고, 움직이지 않을 때는 억제 신호가 약해서 불필요한 경련이 일어난다.
음악의 비트는 이 기저핵 경로를 우회해, 소뇌와 전운동피질을 거쳐서 근육에 동작을 명령한다. 평소에 걷기도 힘든 파킨슨병 환자가 리듬감 있는 음악을 들으면 훨씬 부드럽게 발을 뗄 수 있는 것은, 비트의 명령이 이 우회 경로로 전해져서다. 저자가 이 책을 쓴 2007년경에는 파킨슨병의 원인만 알았고, 음악이 이 환자들을 동작시키는 정확한 메커니즘은 몰랐다. 최근의 임상 사례들에서 음악이 파킨슨병 환자를 움직이게 한다고 확신한 과학자들이 이 원리를 밝혀냈다.
가장 깊은 기억 속, 사랑과 음악
'뮤지코필리아’의 뒷부분에는 헤르페스뇌염(헤르페스바이러스가 뇌 조직에 침투해 염증을 일으킨 질환)에 걸린 한 음악학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과거 기억을 모두 잃은 데다가 영화 ‘메멘토’로 널리 알려진 그 병, 단기 기억상실증(선행성 기억상실증)도 함께 걸렸다. 이 음악학자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새로 태어났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늘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 마주쳤다. 그런 그가 오직 자신의 부인만 정확히 알아봤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면 달려갔고, 그녀를 필사적으로 안았다.
그런데 이 음악학자에게 아내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그녀의 얼굴도, 이름도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가 나타나면 자신에게 특별한 사람이라고 그냥 알았을 뿐이다. 그 느낌의 이유는 설명 못한 채로 말이다. 저자인 색스는 이 사례를 거쳐서, 인간의 기억에 관해 설명한다. 기억은 여러 종류가 있고, 그중 정서적 기억이 가장 심층에 있다는 것이다. 정서적 기억의 메커니즘은 현대 과학에서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다. 음악학자의 심한 기억상실증도 아내에 대한 그의 각별한 느낌은 지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음악학자는 기억 하나가 더 남아 있었다. 악보를 보고 노래하는 능력이다. 그는 합창단을 능숙하게 지휘하기도 했다. 이 음악 기억은 대체 어디에 저장됐을까?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기억을 잃을 정도로 알츠하이머병이 진행된 환자에게도, 음악에 반응하는 능력이 남아 있다고 알려졌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음악치료는 단순한 청각 자극을 넘어서 환자의 감정, 인지력, 기억, 남은 ‘자아’를 자극해 그의 인지 전면에 불러내는 것이다. 다른 모든 기억이 사라진 뒤에도 환자가 음악을 지각·감각하는 힘, 음악이 환자에게 남긴 정서와 기억은 한동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마음을 경청한 의사의 울림
저자인 올리버 색스는 음악 애호가 가정에서 성장한 덕분에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그러던 그가 음악의 놀라운 치유력을 확신한 계기는 1966년 미국 뉴욕의 베스에이브러햄 병원에서 신경과 전문의로 진료한 경험이다. 색스가 접한 환자들은 대부분 만성 혹은 중증의 신경장애 환자였다. 그런데 그는 이 병원에서 근무한 한 음악치료사의 헌신으로 환자들이 서서히 무기력 상태를 벗어나, 얼어붙었던 팔과 다리를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과정을 목격했다.
색스는 이때부터 음악이 어떻게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우울증, 자폐증 등을 치유·완화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관련 사례를 수집해 ‘뮤지코필리아’까지 저술했다. 현재 이 책은 ‘음악치료’가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데도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는다.
의사이자 과학자인 올리버 색스는 이 책에서도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모든 증상과 사례를 환자의 입장에서 관찰, 서술했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환자와 실험 참가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경험한 것을 상상하며 그 경험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을 통합하려고 노력했다.” 색스는 환자의 병명, 뇌 진단 영상에 드러난 환자와 정상인 뇌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의사가 환자를 직접 만나는 구식 관찰법을 실천했다. ‘뮤지코필리아’를 비롯해 그의 많은 저서는 인간의 뇌와 심리에서 현대 의학의 첨단 기기가 놓친 지점들을 보여준다. 이 책이 분석한 음악과 마음의 과학이 따뜻한 울림까지 남기는 이유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음악이 인간의 매우 깊은 무의식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서서히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대체 음악이 인간에게 뭐길래,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도 경이로운, 몸과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가?” 이 질문의 답을 찾는 사이에, 항상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도 조금씩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독자 여러분도 색스처럼 지금 이 음악이 어떻게 내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지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용어 설명
개인이 자신의 신체 형태, 크기, 공간에서의 위치를 인식하고 주관적으로 감각하는 현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