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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공학의 결정적 순간: 세상을 바꿀 질문들 | 스스로 배우는 로봇 현실에서 어디까지 통할까?

 

 편집자 주

과학동아는 한국공학한림원의 회원들을 인터뷰해 세상을 바꾼 공학의 질문들을 살펴봅니다. 한국공학한림원은 기술 발전에 공을 세운 공학기술인을 발굴해 우대하고, 학술 연구와 지원사업을 통해 창조적인 공학기술 개발과 발전에 기여하는 공학 싱크탱크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로봇이 걷는다는 것’은 곧 사람이 물리 법칙에 기반한 제어 모델을 설계하고, 그 동작을 하나하나 코드로 짜 넣었다는 뜻이었다. 그 방대한 코드를 사람이 하나씩 입력할 수 있는 인력과 자본을 갖춘 곳은 전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 여러 곳의 연구실에서 ‘스스로 걷는 법을 배우는’ 로봇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던 로봇이,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쳐 판단하는 로봇으로 급격히 바뀌는 배경에는 ‘피지컬 AI’가 있다.

 

Hyundai Motor Group

2026년 1월 5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CES 2026 현대자동차그룹 미디어데이에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사족보행 로봇 ‘스팟(Spot)’이 팔을 장착한 채 무대 위에서 군무를 선보이고 있다. 이 공연은 현대차그룹이 신형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처음 실물로 공개하기 직전 오프닝 무대로 진행됐다.

 

개발 챗GPT나 제미나이 같은 생성 인공지능(AI)은 텍스트와 이미지라는 매개체로 디지털 세계 안에서만 작동하는 ‘병 속의 뇌’다. 이에 반해 ‘피지컬 AI’는 몸을 갖고, 실제 물리 세계에서 행동하고, 그 결과를 다시 감지해 다음 행동을 결정하는 AI다.

지금의 피지컬 AI는 카메라와 라이다, 관성측정센서(IMU) 같은 센서로 주변을 인지하고, 판단을 내린 뒤, 로봇 팔이나 다리로 실제 행동을 수행한다. 이 개념은 1980년대 후반에도 있었다. 로봇공학자 로드니 브룩스는 로봇이 완벽한 지도 없이도 몸으로 환경과 부딪히며 반응하는 것만으로 똑똑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임베디드 AI’ 개념을 제시했다. 지금은 그때와 무엇이 달라졌을까?

달라진 건 그 판단을 누가, 어떻게 만들어내느냐다. 과거에는 사람이 로봇에게 일어날 상황을 예측해 움직임을 코드로 짜 넣었다면, 이제는 로봇이 시뮬레이션 속에서 수백만 번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판단 능력을 학습한다. 물론 이 분야가 완성된 건 아니다. 시뮬레이션에서 잘 학습해도 실제 로봇에 옮기면 성능이 떨어지는 ‘시뮬레이션-현실 격차’, 실제 세계의 방대한 데이터를 모으기 어렵다는 문제, 하나의 로봇과 작업에 맞춘 능력을 다른 환경에도 통하게 만드는 ‘일반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세 과제가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현장이 다리로 걷는 로봇이다. 두 다리, 네 다리 로봇은 경험하게 될 지형과 균형이라는 변수가 끝없이 달라져, 시뮬레이션과 현실의 간극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황보제민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는 오랫동안 이 문제와 정면으로 씨름해왔다.  

 

 

“시뮬레이션에서 배운 움직임을 진짜 로봇에서 쓸 수 있을까”

학습한 제어기를 현실로 옮긴 결정적 도전

 

해변가를 뛰어가는 로봇의 영상이 화제가 된 적 있다. 모래밭을 주인과 함께 신나게 질주하는 그 로봇의 이름은 ‘라이보(RaiBo)’. 황보제민 교수가 이끄는 KAIST 기계공학과 연구팀이 만든 로봇이다. 9월 4일 강남 라이온로보틱스 연구실에서 만난 황보 교수는 “사람이 아무리 정교하게 규칙을 짜도 현실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끝없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변수를 짜 넣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가 눈을 돌린 건 강화학습이었다. 강화학습은 로봇이 혼자 행동하고 결과에 따라 보상을 받으며 더 나은 판단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첫 성공 대상은 다리 로봇이 아니라 드론이었다. 약 10년 전, 황보 교수팀은 하늘에서 뒤집어 던져도 스스로 자세를 바로잡는 드론을 두 달 만에 만들었다. 이 실험이 다리 로봇 연구의 전환점이 됐다.

이후 강화학습을 사족보행 로봇에 적용하려니 문제가 하나 있었다. 다리 로봇은 관절의 힘, 무게중심, 지면 반발력 등이 얽힌 복잡한 동역학 속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황보 교수팀은 이 움직임을 사람이 일일이 설계하는 대신, 시뮬레이션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안정적인 행동 정책을 학습하도록 했다. 하지만 당시엔 이 방대한 계산을 빠르게 반복해 줄 괜찮은 시뮬레이터가 세상에 없었다.

그때 그가 찾은 방법은 ‘직접 만드는 것’이었다. “10년 전은 로봇 연구에 AI가 사용되기 시작한 때여서 참고할 만한 선행 연구나 검증된 도구가 많이 없었어요. 하지만 없으면 직접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의 말이다. 2018년, 이렇게 탄생한 것이 지금은 로봇공학계에서 표준 도구 중 하나가 된 시뮬레이터 ‘라이심(RaiSim)’이다. 라이심은 로봇의 움직임을 가상 공간에서 미리 계산해 실제 로봇이 수백만 번씩 시행착오를 겪지 않아도 강화학습을 진행할 수 있는 해주는 물리 시뮬레이터다.

라이심의 저력은 2019년 1월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발표된 연구에서 드러났다. 라이심을 활용하면 로봇 관절의 회전력 예측 오차를 기존의 ‘이상적 모델(명령한 힘이 지연이나 오차 없이 그대로 나온다고 가정하는 모델)’ 방식보다 80% 가량 줄일 수 있었다. 실제 로봇의 움직임에서는 더 큰 차이를 보였다. 이상적 모델로 학습시킨 로봇은 단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넘어졌지만, 라이심을 활용해 학습한 로봇은 최고 속도 1.5m/s로 걸었다. 당시 최고 기록을 25% 경신한 속도였다. 또 완전히 뒤집힌 자세를 포함한 9가지 낙상 자세 모두에서 3초 안에 100% 성공률로 스스로 일어났다. 이 연구는 창업으로 이어졌다. 황보 교수는 2023년 11월 라이온로보틱스를 세우고, 라이보를 상용 로봇으로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모래사장을 신나게 뛰어다니는 네 발 로봇은 강화학습을 로봇이라는 물리적 실체에 구현한다는 생각의 결실인 것이다. 라이온로보틱스는 현재 후속 모델 ‘라이보3’와 15kg급 소형 로봇을 함께 개발하고 있다. 안산에서 생산되는 중형 로봇은 방위산업 분야를 겨냥해 국방부와 실증(PoC)을 마쳤고, 올해 50대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거리 순찰, 보안, 공장 무단침입 감시 등이 그가 꼽는 활용처다. 라이온로보틱스가 만든 순찰 로봇은 SK인천석유화학 공장에 투입되는 실증 사업도 진행 중이다.

 

사람이 시키던 로봇에서, 스스로 배우는 로봇으로

 

강화학습 

스스로 해보며 배운다

강화학습은 로봇이 직접 행동해 보고, 그 결과로 받는 보상을 통해 스스로 방법을 터득하는 학습 방식이다. 시도와 실패를 수없이 반복한 끝에, 로봇은 마침내 스스로 걷는 법을 익히게 된다. 원래 바둑이나 게임처럼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에서 주로 쓰이던 이 방식은 이제 로봇이 몸으로 움직이는 법을 익히는 피지컬 AI에도 적용되고 있다.

 

 

모방학습

사람을 보고 배운다

모방학습은 사람이 직접 조작한 시범 데이터를 모아, 로봇이 그 데이터를 그대로 따라 하도록 학습시키는 방식이다. 사람이 직접 시범을 보이면 로봇은 이 데이터를 반복 학습해, 같은 순서로 동일한 작업을 수행하게 된다. 자율주행차나 로봇 팔의 정밀 조작 등 이전부터 피지컬 AI 학습에 주로 쓰인 방법이다.

학습 모델이 해결할 과제

동아사이언스,라이온로보틱스

 

황보제민

2024년 11월 17일 경북 상주시민운동장의 상주곶감마라톤 결승점에서, 황보제민 교수 연구팀이 사족보행 로봇 ‘라이보2’와 함께 완주를 자축하고 있다. 라이보2는 이날 보행 로봇 최초로 42.195km 풀코스를 완주했다.

남윤중

황보제민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라이온로보틱스 대표)는 강화학습을 통해 4족 보행 로봇 ‘라이보’ 상업화에 도전하고 있다.

 

 

 

“AI가 정답 없는 현실에서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정보를 다루던 AI가 현실에서 일하는 AI로

 

로봇이 실시간으로 바뀌는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경우는 걷기 말고도 많다. 그중 가장 복잡한 일로 꼽히는 게 ‘농사’다. 사람이 직접 운전하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이는 트랙터, 모를 심는 이앙기, 쌀을 수확하는 콤바인을 상상해 보라.

“농사를 AI로 지을 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레시피를 1분 1초 단위로 따르는 손종원 셰프가 아니라, 아이의 상황에 따라 맞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오은영 박사입니다. 음성인식과 자연어 처리를 다루던 제겐 너무나 생소했죠.”

9월 7일 서초구 대동에이아이랩 본사에서 만난 최준기 대동에이아이랩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KT에서 18년간 AI 음성인식과 자연어처리를 다루며 생성 AI 사업을 총괄했던 인물이다. 2024년 9월, 그는 텍스트와 음성의 정돈된 세계를 떠나 대동에이아이랩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겨 농기계의 AI화를 맡으면서 새 연구 인생을 시작했다.

농사 현장은 공장과 달리 지역, 계절, 토양, 날씨에 따라 조건이 달라져 매뉴얼화가 어렵다. 농민들의 경험과 직감을 데이터로 옮기는 일 또한 난제였다. “사람의 일을 해준다는 말에는 많은 조건이 담겨있어요. 우선 사람의 임금보다 로봇을 쓰는 비용이 더 적어야 하고, 사람만큼 좋은 퀄리티로 일을 해내야 합니다.” 최 대표는 자율작업을 구현하기 위해 농기계의 자율주행부터 달성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려면 우선 농기계 전동화부터 먼저 진행해야 했어요. 전동화된 농기계는 기존 내연기관 방식보다 정밀하게 움직일 수 있어 AI 접목에도 유리했죠.” 이 하드웨어 위에, 최 대표의 연구팀은 자율주행이 가능한 피지컬 AI를 심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율주행 자체도 쉽지 않았다. 그동안 농기계 자율주행 업계는 GPS에 의존해왔는데, 신호가 흔들리거나 지형에 가려지면 GPS 위치가 틀어졌다. 앞에 나타난 장애물에 대응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이 문제 앞에서 최 대표가 택한 돌파구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인식 방식이다. 기존 위치정보에만 의존하지 않고, 카메라와 AI를 활용해 경작지 경계와 장애물, 작업기 상태까지 함께 인식하도록 했다. 둘째는 학습 방식이다.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기계에는 안정성이 확인된 강화학습을 택했다. 앞으로 새로운 형태로 만들 농작업 휴머노이드 등에는 모방학습을 우선 적용할 계획이다. 모방학습이란 숙련된 농부의 조작이나 기존 기계의 검증된 작업 패턴을 그대로 따라 하도록 학습시키는 방식이다. 정답을 찾아가는 강화학습과 달리, 모방학습은 이미 검증된 동작을 재현해 위험한 시행착오 없이도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이 중 이동 AI 분야에서 성과가 먼저 가시적으로 나타났다. 대동은 2026년 4월 500만 장이 넘는 농업 현장 데이터를 학습시킨 AI 트랙터 ‘HX1400-AI’를 출시했다. HX1400-AI는 6대의 카메라로 주변 360도를 인식해 경작지 경계 장애물을 판단한다.

5월에는 전남 신안의 한 농가에서 활약했다. 5ha(헥타르) 대파·양파 밭에서 HX1400-AI는 두둑과 고랑을 만들었다. 이때 작업 수행률이 95~99% 수준으로, 사람이 직접 작업할 때 생기는 미작업 영역(약 10%)을 크게 줄였다. 또한 기존 하루 넘게 걸리던 로터리 작업(파종, 이식 전 밭갈이 작업)은 이전 세대 자율작업 키트 대비로도 작업 시간이 약 10% 더 단축됐다. 최 대표가 말한 ‘일하는 AI’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남윤중

최준기 대동에이아이랩 대표가 농작물을 인식해 수확하는 로봇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동은 레인보우로보틱스와 함께 농업용 로봇 ‘애그로이드’를 개발 중이다.

 

로봇에게 판단을 맡기다

 

걷는 로봇과 농사짓는 기계. 모습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두 사람이 마주한 문제에는 공통점이 있다. 현실에서 벌어질 모든 상황을 사람이 미리 규칙으로 정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황보 교수는 이 문제를 움직임의 학습에서 풀었고, 최 대표는 날씨·토양·작물·지형이 계속 달라지는 농업 현장에서 AI가 환경을 인식하고 적절한 행동을 선택하게 하는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없으면 직접 만들면 된다”는 태도도 닮았다. 참고할 시뮬레이터가 없자 황보 교수는 라이심을 직접 만들었고, 최 대표는 GPS 대신 AI와 카메라를 결합한 새로운 인식 체계를 새로 짰다.

두 사람의 시선은 이미 다음을 향해 있다. 황보 교수는 “5년, 10년 뒤에도 여전히 자율보행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해진 도로만 달리는 자율주행차와 달리, 다리 달린 로봇은 어디서든 지형의 위험을 스스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한국의 식량안보는 이제 양이 아니라 가격과 품질의 문제”라며 “농업 전체의 압축성장이 목표”라고 말했다.

10년 전만 해도 무릎의 각도부터 지면 반발력까지, 사람이 한 줄 한 줄 코드로 짜 넣어야 로봇은 겨우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황보 교수팀의 사족보행 로봇 ‘라이보2’는 2024년 11월, 상주 곶감 마라톤 42.195km를 배터리 교체 없이 4시간 19분 52초 만에 완주했다. 최 대표의 AI 트랙터는 사람 없이 전남 신안의 밭을 갈고 있다. 황보 교수는 라이보2의 200대 양산에 나서고 있고, 최 대표는 레인보우로보틱스와 농업용 휴머노이드 로봇 ‘애그로이드(AGROID)’의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로봇이 학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제 여러 현장에서 증명됐다. 하지만 이미 배운 환경에서 잘 움직이는 것과, 처음 보는 환경과 작업에서도 스스로 적응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황보 교수가 연구하는 자율보행의 다음 단계와 최 대표가 그리는 ‘일하는 AI’가 만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앞으로의 질문은 한 단계 달라진다. ‘로봇은 낯선 현실에서도 안전하게 판단하고, 처음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로봇이 마침내 사람의 손을 벗어나 스스로 학습할 때, 피지컬 AI라는 공학자들의 꿈도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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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에이아이랩

1 대동에이아이랩이 개발 중인 로봇팔이 온실에서 잘 익은 딸기를 골라 수확하고 있다.  2 트랙터 ‘HX1400-AI’가 밭에서 로터리 작업을 하며 두둑과 고랑을 만들고 있다.  3 3D 카메라, 라이다로 자율주행할 수 있는 운반로봇이 과수원에서 수확한 작물을 싣고 이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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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김미래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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