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읽었던 우주 만화를 현실로 만드는 이가 있다. 민간 기업이 우주 개발을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의 선봉장 역할을 맡아 세계에 인공위성을 수출하는 엔지니어로 활동 중인 함선정 텔레픽스 상무다. 6월 25일에는 함 상무의 하루를 따라갔다.
[09:00 AM] 제안서 최종 검토 회의
위성 자율 운용 과제 수주를 노리다
함선정 텔레픽스 상무의 하루는 오전 9시, 과제 제안서 회의로 시작됐다. 텔레픽스는 위성을 직접 개발하고, 위성이 촬영한 지구 이미지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다양한 산업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로 만드는 우주 스타트업 기업이다. “텔레픽스는 5개 대학, 4개의 민간 기업과 함께 위성 자율 운용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어요.” 함 상무가 말했다.
함 상무는 2020년부터 텔레픽스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그의 경력은 독특하다. 함 상무는 천문우주학을 공부하고 관측 기기를 만드는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천체물리학 석박사통합과정을 밟고자 2010년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우주 망원경의 탑재체를 만드는 연구를 했다. 탑재체란 인공위성, 로켓 등의 장비가 특정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싣는 핵심 장치다.
그런데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로 인해 비자 발급에 문제가 생기며 석사학위만 취득하고 귀국해야 했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 천문우주학과 천체물리학, 석사학위만 2개를 갖고 갈 수 있는 곳이 없더라고요. 그래도 우선 일은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들어갔던 게 안과에서 사용하는 치료용 레이저를 만드는 회사였어요.” 전공과는 상관없던 일이었지만 익숙해지고 재미를 느끼던 때 텔레픽스를 창업한 대학 동기에게서 연락이 왔다.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었다. “이 기회가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시 할 기회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함 상무는 먼 길을 돌아 다시 우주·광학기기 분야로 돌아왔다.
[12:00 PM] 점심 식사
회사 내 구성원들과의 소통 시간
정오부터는 점심시간이다. “가끔은 주니어 엔지니어들과 함께 식사해요.” 때문에 함 상무는 이 시간이 단순한 식사 시간이 아니라,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설명하고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는 자리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함 상무는 현재 텔레픽스에서 광학 탑재체 자체를 시험하고 검증하는 일을 하고 있다. “탑재체가 우주에서도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도록 관측 특성을 측정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성능까지 분석해 위성 영상을 정확하게 보정하는 데 필요한 기준 데이터를 만드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짧은 점심 시간은 함 상무가 회사가 돌아가는 전체적인 상황을 주니어 엔지니어에게 설명해 주고, 반대로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듣는 기회가 된다.
[13:30 PM] 계약 문서 검토
해외 납품 계약을 앞둔 마지막 점검
오후 1시 30분, 함 상무는 해외 납품 계약 기술 문서 검토에 들어갔다. 텔레픽스가 헝가리 정부의 국가 지구관측 위성 프로그램(HULEO·Hungarian Low Earth Orbit)에 국토위성급 고해상도 전자광학 카메라 시스템을 공급하는 본계약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국토위성급 카메라는 상공에서 50cm 크기의 물체까지 구별할 수 있는 광학 장비를 뜻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2015년부터 민간 주도 위성 양산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자체개발한 고해상도 전자광학 카메라 기술 일부를 텔레픽스에 이전했다. 이후 텔레픽스는 기술 상용화에 성공했고, 다수의 글로벌 기업이 참여한 국제 입찰을 거쳐 헝가리 정부와의 계약을 따냈다. 이는 정부 우주개발 기술이 민간 기업의 수출 실적으로 이어진 첫 번째 사례였다. 과거 국가 주도로 우주 개발이 이뤄지던 ‘올드스페이스’가 지나고, 민간 기업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뉴스페이스’ 시대의 주요 성과다.함 상무는 고객사가 요구한 성능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지, 어렵다면 어떤 이유로 어려운지,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본 계약에 사인하면 거기에 명시돼 있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책임져야 하죠.” 함 상무가 설명했다.
[16:30 PM] 업무 기술서 작성
미국 수출, 꾸준한 노력의 결실
오후 4시 30분, 함 상무는 또 다른 수출 계약을 위한 업무 기술서 작성에 들어갔다. 업무 기술서는 텔레픽스가 고객사에 어떤 장비를, 어떤 일정으로, 어디까지 책임지고 납품할지를 정리한 문서다. 이번 문서는 미국 우주 소프트웨어 기업 안타리스에 공급할 위성 탑재체와 관련된 것이었다. “업무 기술서에는 고객사에 넘겨줄 장비의 범위, 납품 일정, 작업 단계가 모두 담겨요.”
위성 산업에서는 탑재체를 위성 본체에 조립하고, 정렬하고, 통합 시험을 거쳐 발사하기까지 여러 회사와 기관의 작업이 맞물린다. 함 상무는 “그래서 우주 분야에서는 기술력만큼이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하다”며, “내가 가진 기술을 다른 분야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 반대로 다른 분야의 의견을 이해하면서 하나의 방향으로 조율하는 능력이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18:30 PM] 다시 과제 제안서 작성
영화 에이리언 속 '마더'를 꿈꾸다
저녁 식사를 마친 함 상무는 오전에 작성하던 컨소시엄 제안서 앞으로 돌아왔다. 텔레픽스가 그리는 미래의 위성은 단순히 지상에서 명령을 기다리는 장비가 아니다. 우주에서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필요한 데이터를 처리하며, 임무를 조정하는 시스템이다. 함 상무는 영화 ‘에이리언’을 떠올렸다. 영화 주인공은 우주선에서 ‘마더’라는 시스템과 대화한다. 마더는 우주선 상태를 파악하고, 승무원에게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며, 우주선 운용을 돕는 AI 시스템이다. 함 상무는 마더처럼 앞으로 위성도 스스로 판단하고, 대화하며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 예상한다. 그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의 제안서 작성은 그런 미래를 현실의 과제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우주망원경으로 은하를 들여다본다 | 이보미 한국천문연 연구원
이보미 한국천문연구원 은하진화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컴퓨터 앞에서 우주의 지도를 만드는 천문학자다. 7월 8일, NASA의 우주망원경 스피어엑스 미션 등 우주망원경 천문학의 최전선에서 연구하는 이 연구원의 하루를 좇았다.
[06:30 AM] 이른 아침 화상회의
우주망원경 보며 암흑물질 논의하다
7월 8일 이보미 한국천문연구원(이하 천문연) 은하진화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의 하루는 램가 차리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지구·행성·우주과학과 교수와 카일 피너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 과학 및 데이터센터(IPAC) 연구원과의 정기 화상 회의로 시작됐다. 이 연구원은 은하의 형성과 진화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다. 우주가 어떻게 태어나고 변해 왔는지 은하를 통해 분석할 수 있다. 그의 관측 도구는 우주 궤도에 떠 있는 다양한 우주망원경이다.
“박사후연구원으로 IPAC에서 유럽 우주망원경 유클리드에 관해 연구했어요. 유클리드가 우주로 발사되기 전이었기에 허블 우주망원경 자료를 유클리드가 관측할 데이터처럼 가공해 사용했죠. 이를 바탕으로 유클리드가 관측할 은하들의 형태와 암흑물질 분포를 예측했죠. 지금도 이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JWST)의 관측 제안서를 제출한 것이 채택돼 2025년에 관측이 이루어졌어요. 현재는 JWST 자료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미팅을 통해 분석 결과에 관해 논의하죠.”
[09:00 AM] 연구원 출근
커피와 함께 밤사이 쌓인 연락 확인
12살, 그리고 31개월인 두 자녀의 엄마이기도 한 이 연구원은 아들과 딸을 각각 학교 및 어린이집으로 데려다준 뒤 천문연으로 출근한다. “9시에 연구실에 도착하면 커피를 내린 뒤 컴퓨터를 켜는데 이때가 하루 중에 가장 마음이 편한 시간이에요.” 이 연구원이 웃으며 말했다. 어린아이들과 함께하는 아침 시간이 얼마나 바쁘고 정신없이 흘러가는지 짐작게 하는 말이었다.
컴퓨터를 켜면 밤사이 도착한 e메일이 많다. 또한 스피어엑스 메신저에 많은 글이 올라와 있다. “스피어엑스 관측 자료가 계속 나오고 있어, 메신저에서 활발히 논의가 오가요.”
스피어엑스는 수억 개의 은하를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적외선 영역에서 관측하는 우주망원경이다. 2025년 3월 발사됐다. 스피어엑스는 102개의 고유한 적외선 파장 대역을 포착해 천체의 빛을 102가지 색깔로 자세하게 관측한다. 천문연은 스피어엑스 개발에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참여한 국제 협력 기관이다. 이 연구원은 수십억 개 은하의 적색이동을 측정하는 파이프라인 개발을 이끌었다.
[10:00 AM] AI와 논문 탐색
먼지에 가려진 은하 찾는 방법 고민
“요즘은 스피어엑스 자료에서 먼지에 가려진 은하를 찾을 수 있을지 살펴보고 있어요.” 이 연구원이 말했다. 은하에서 나온 빛이 우주 공간의 먼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적외선 파장대는 이런 먼지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먼지에 가려진 은하가 더 잘 드러날 수 있다. 이때 이 연구원의 동료는 인공지능(AI)이다. “클로드에게 제가 가진 자료와 연구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어떤 기준과 알고리즘으로 은하를 찾아볼지 이야기했어요. 클로드가 답을 내놓으면 다시 제가 설명을 보태고 방향을 수정하는 식이죠.”
클로드가 작업을 이어가는 동안 이 연구원은 아카이브(arXiv)에 접속했다. 아카이브는 정식 학술지 심사를 거치기 전의 연구 논문을 공유하는 온라인 저장소다. “매일 천문학 논문을 확인해요. 하루에 50~60개 정도의 논문이 올라오는 것 같아요. 모든 논문 제목과 초록을 살피며 연구 동향을 확인하고, 관심 있는 주제의 논문은 따로 저장해두죠.”
[13:00 PM] 파견 간 동료와 화상회의
이른 오후 화상회의가 시작됐다. 화면 너머엔 미국에 파견 중인 양유진 천문연 책임연구원이 있었다. 별과 은하를 어떻게 구분할지에 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스피어엑스의 관측 대상은 전체 하늘이기 때문에 은하뿐 아니라 우리은하 내에 있는 별도 함께 촬영된다. 별이 은하로 잘못 분류되면 적색이동 측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별과 은하를 가장 확실하게 구분하는 방법은 분광 관측이지만 스피어엑스가 다루는 모든 천체에 대해 이런 분광 관측 자료를 구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때문에 별과 은하를 구분하는 다른 방법을 고안해야 했죠.” 이 연구원은 천체의 색깔 정보와 형태 정보에 초점을 맞춘 방법을 고안한 뒤, 양 본부장에게 의견을 들었다. “양 연구원은 이 분류 결과가 결국 천문연의 우주론 연구팀에서 사용하는 자료인 만큼, 우주론 팀이 쓰는 은하 샘플의 특징을 더 반영하면 좋겠다고 조언했어요.” 이 연구원은 조언을 바탕으로 별과 은하를 구분하는 방법을 다시 보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16:00 PM] 천문연 정기 컬로퀴엄
다른 이의 연구에 귀 기울이다
오후 4시, 이 연구원은 천문연에서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컬로퀴엄에 참석했다. 컬로퀴엄은 전문가나 연구자들이 모여 특정 주제에 대해 대화하고 토론하는 학술 행사다. 주로 천문학 분야 연구자가 연사로 초청되지만 때로는 AI 연구자나 기기 개발 등 공학 연구자들이 초청되기도 한다. “우주가 넓은 만큼 천문학 분야는 워낙 다양한데, 연구자들이 본인이 속한 연구실, 연구기관에서 접할 수 있는 연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요. 컬로퀴엄은 교류가 중요한 천문학에서 연구자와 연구자를 이어주는 중요한 공간이에요.”
이 연구원은 하루는 오후 11시쯤 마무리된다. “아이들을 재우면 밤 10시쯤 돼요. 이때부터 1시간 정도는 e메일 확인을 하고 지도하는 학생 연구원들의 메일에 답을 한 뒤 11시쯤 잠자리에 들어요.”
이 연구원은 천문연 입사 후 연구 목표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개인 연구 성과를 내는데 관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큰 우주 미션을 기획하고 개발한 뒤 운용하는 일이 가치 있게 느껴져요.” 이 연구원은 한국을 넘어 국제 협력을 통해 우주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