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에서 우주로
향하는 한국의 여정을 소개하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만나 뵙게 돼 반갑습니다. 대전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발사체기술협력동 건물 로비, ‘누리호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정환 한국형발사체고도화사업단 책임연구원이 SF 미래스케치 워크숍에 참석한 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SF 미래스케치 워크숍은 과학동아가 연구 기관과 함께 주최하는 SF 행사로, 참가자들은 과학기술 연구 현장을 둘러보고, 전문가의 강연을 들은 뒤 SF 스토리를 창작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 워크숍은 ‘우주 운송 기술’을 주제로 대전 항우연 본원에서 개최됐다.
고 책임연구원 뒤로는 총 5개의 로켓 모형과 함께 2개의 실물 엔진이 놓여 있었다. “로켓은 실제 사이즈의 10분의 1로 축소한 모형이에요. 맨 오른쪽부터 ‘한국형 과학로켓(KSR) 1, 2, 3기, 나로호, 그리고 누리호예요. 누리호 옆의 자리는 현재 항우연이 개발하고 있는 차세대 발사체를 위해 비워뒀죠.”
고 책임연구원은 항우연이 지구를 떠나 우주로 가는 운송수단을 어떻게 개발했는지, 36여 년의 여정을 소개했다. 항우연은 1993년, 1단형 고체추진 과학로켓인 KSR-I을 발사했다. 이는 한국이 우주로 가기 위한 운송수단 연구 개발의 첫 발자국이었다. “1998년에는 2단형 고체추진 중형과학로켓인 KSR-II을 발사했어요. 여기까지 고체로켓으로 개발한 건 당시 한국에서는 고체로켓으로 개발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유리했기 때문이에요.” 고체로켓은 연료와 산화제를 고무와 비슷한 결합제에 섞어 굳힌 고체 추진제를 모터 내부에 미리 채워 넣는 구조다. 부품이 적고 설계가 단순한 고체로켓에 비해 액체로켓은 연료와 산화제를 서로 다른 탱크에 넣어, 복잡한 장비가 필요하다. 항우연이 한국 최초로 액체 추진 로켓을 개발한 것은 2002년 시험 발사된 KSR-III에 이르러서였다.
2002년은 한국의 우주발사체 개발에서 기념비적인 해였다. 나로호 개발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과학로켓과 우주발사체는 하늘과 땅 차이예요. 일정, 한국 기술 수준, 사업 위험도 등을 고려했을 때 국제 협력이 필요했죠. 하지만 미국, 일본, 유럽 등 우주발사체 기술을 확보하고 있던 나라가 있었지만, 협력에 응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당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던 러시아만 제안에 수락했어요.” 나로호를 위해 러시아와 맺은 계약은 우주발사체 개발 기술을 한국에 이전한다는 계약이 아니었다. 러시아가 발사체의 1단을, 한국이 2단을 개발하는 것으로 업무를 나눴다. “처음에 러시아 연구원들과 소통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어요. 러시아 보드카, 한국의 소주를 들고 일과가 끝난 저녁마다 술을 마시면서 조금씩 친해졌죠.” 고 책임연구원이 웃으며 회상했다.
“2011년에는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개발에 착수했어요.” 당시는 나로호가 1, 2차 발사에서 모두 실패한 때였다. “이제는 우리가 직접 1단 엔진과 2단 엔진을 모두 만들어야 했죠. 지금 여러분이 보시는 게 바로 누리호의 실물 엔진입니다.” 고 책임연구원이 75t(톤)급을 가리키며 말했다. 높이 4m에 달하는 75t급 엔진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연상케 하는 생김새였다. 지표면을 떠나는 데 쓰이는 1단에는 75t 엔진 4개가, 고고도에서 속도를 더 높여주는 2단에는 1개가 들어가 있다. 고 책임연구원은 “엔진 주요 부품 중 하나인 연소기 제작에만 약 4개월여가 소요된다”며 “하나의 엔진을 조립하는 데만 2개월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엔진 개발 및 조립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1단형 과학로켓을 개발하기 시작한 후 36년 동안 하나씩 기술을 확보해 여기까지 온 거죠.” 고 책임연구원의 목소리에는 뿌듯함이 서려 있었다.
우주에서 지구로,
위성이 조립되는 현장을 보다
한국의 우주발사체 개발 역사를 뒤로하고 SF 미래스케치 참여자들은 위성총조립시험센터로 향했다. “여기서부터는 사진 촬영이 안 됩니다. 사진촬영금지 구역이에요.” 항우연 홍보실의 송민진 행정원이 마이크를 들고 참여자들에게 거듭 주의했다. 조만간 우주로 날아가 지구를 내려다볼 실제 위성이 조립되는 곳이라 경비가 삼엄했다.
“첫 번째로 이곳은 발사환경실험실이에요.” 건물 2층으로 올라간 참가자들은 블라인드가 올라간 창문을 통해 센터 내 실험 및 조립 공간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우와!” 영화 같은 매체에서나 보던 공간이 눈앞에 펼쳐지자, 자연스레 탄성이 터졌다. 발사환경실험실은 위성 발사 상황을 모사하는 곳으로, 진동을 가하는 대형 시험 장비인 ‘가진기’가 눈에 띄었다. 위성이 우주로 가는 동안 거친 진동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위성 및 부품을 올리고 흔들며 충분히 튼튼한지를 확인한다. 김 행정원의 설명을 들으며 최대한 가까이서 실험실 및 시험 장비를 보기 위해 참여자들이 창문으로 붙어 섰다.
발사환경시험실 옆엔 비슷한 규모의 궤도환경시험실이 있었다. 이곳 역시 창문을 통해 내려다볼 수 있었다. “저기 둥근 열진공챔버는 우주 환경을 구현하는 장비예요.” 인공위성이 우주에서 겪는 진공과 극심한 온도 변화를 지상에서 동시에 재현하는 대형 밀폐 시험 장비다. 10억분의 1기압 이하의 고진공과 100℃ 이상의 고온, 영하 180℃ 이하의 극저온 환경을 모사할 수 있다. “시험은 한두 번 진행되는 게 아니라 몇 달 내내 이어지죠.”
마지막으로 공개된 대형위성조립실은 워크숍 참가자들에게 주어진 깜짝 선물 같은 공간이었다. “대형위성조립실은 원래 공개가 안되는 공간이지만, 이번 행사를 위해 특별히 협조를 구한 곳이에요.” 송 행정원의 설명에 참여자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조립실에는 말로만 듣던 한국의 인공위성이 조립되는 모습이 생생히 보였다. “창문 가까이에 있는 건 아리랑 6호예요. 현재 단열재로 포장돼 있죠. 완성은 몇 년 전에 됐고, 당초 2020년 발사될 예정이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발사 일정이 많이 미뤄졌어요. 2027년 2분기 우주로 가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아리랑 6호 너머로는 조립 중인 아리랑 7A호와 천리안 3호의 모습이 보였다.
“위성우주탐사시험센터 내 모든 시험실 및 조립실에 태극기가 있는 것 보셨나요? 항우연뿐만 아니라 민간 우주개발기업의 시험 및 조립실도 마찬가집니다. 한국은 미국이나 러시아 등과 비교했을 때 우주 개발의 역사가 40년이나 늦지만 현재는 세계 6~7위 수준으로 도약했어요. 그에 대한 자부심을 잊지 않고자 태극기를 걸어두죠.” 송 행정원의 설명에 모두의 시선이 조립실 벽에 그려진 거대한 태극기로 향했다.
오늘에서 미래로,
지구와 우주를 잇는 이야기를 상상하다
항우연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마친 참가자들은 연구 1동 국제회의실에 앉았다. 앞서 참가자들을 맞이한 고 책임연구원이 다시 이들 앞에 섰다. 고 책임연구원은 우주발사체의 핵심 기술과 항우연이 앞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발사체에 관해 강연했다. 이어 이지용 SF 평론가가 SF가 무엇인지, SF 창작자는 무엇에 유의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 나갈지에 관한 강연을 진행했다. 강연을 들은 참가자들은 3~4명씩 조로 나누어 SF 시놉시스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SF 시놉시스의 주 소재는 항우연을 탐방하며 보고 들은 우주 운송 기술이었다. 창작자들은 뜨거운 논의를 거치며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저희는 화성의 지적 생명체가 지구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봤어요.” 두 시간의 창작 후 참가자들은 조별로 나와 자신들이 만든 SF 시놉시스를 발표했다. 먼저 김이슬, 유지민, 이강현 참가자로 구성된 3조는 화성인이 우주발사체를 만드는 상황을 중심으로 화성의 생명체가 지구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서로 다른 두 문명이 교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랑데뷰’에 관해 발표했다.
김규림, 김준우, 신연우 참가자의 1조 역시 지구와 화성에 관한 SF를 상상했다. “지구와 화성 사이 통신에 22분의 시차가 발생하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에요. 권력층이 초광속 수송선을 이용해 중요한 정보를 먼저 확보하고 이를 통해 ‘현재’를 독점하는 세계죠.” 1조의 ‘22분’은 초광속 수송선을 개발한 주인공이 자신이 만든 기술이 화성 주민을 속이는 데 이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고뇌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지용 평론가는 “정보의 시차가 불평등으로 이어진다는 설정이 흥미롭다”고 평했다.
강한 중력이 시간을 느리게 흐르게 만든다는 점에 착안한 시나리오와 쌍성계의 공전을 중력보조기술로 상상한 이들도 있었다. 과학적 상상을 뜻하는 SF에 딱 맞는 이야기들이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포스트휴머니즘적 문제의식과 연결되는 작품,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 속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그리는 장르인 생태 SF도 소개됐다.
워크숍에 참여한 김규림 참가자는 “한국 로켓의 역사를 한 번에 조망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장차 발사될 위성의 제조 과정을 눈으로 담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며 “SF 창작을 꿈꾸는 좋은 동료들을 만나게 돼 기뻤고, 앞으로 더 발전해야겠다 다짐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