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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세상, 어떻게 보여줄까?

    [공학의 결정적 순간: 세상을 바꿀 질문들] 디스플레이

    ▲GIB

     

    편집자 주
    과학동아는 이번 호를 시작으로 한국공학한림원의 회원들을 인터뷰해 세상을 바꾼 공학의 질문들을 살펴봅니다. 한국공학한림원은 기술 발전에 공을 세운 공학기술인을 발굴해 우대하고, 학술 연구와 지원사업을 통해 창조적인 공학기술 개발과 발전에 기여하는 공학 싱크탱크입니다.

     

     

    ‘브라운관’이란 단어가 TV 방송 전체를 대표하던 시대가 있었다. 2000년대 초까지 정육면체에 가까울 정도로 두껍고 큰 디스플레이 ‘브라운관’은 영상 매체를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창구로 꼽혔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는 실제 세상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선명하고 얇은 디스플레이를 한 손으로 쥐고 다닌다. 스마트폰이다. 여전히 공학자들은 차세대 디스플레이를 꿈꾸며 치열하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세상을 보여줄 미래의 디스플레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GIB
    브라운관 TV는 21세기 초반까지 영상 매체를 보여주는 대표적 기기로 꼽혔다. 패널 뒤에 전자총이 자리잡아 박스 형태로 두껍고 무겁다.

     

    이 기사는 해동과학문화재단의 후원으로 한국공학한림원이 기획·지원하여 제작됐습니다.

     

    20년 전까지 디스플레이의 주류는 브라운관이었다. 브라운관은 전자총으로 음극선 발광 스크린에 전자 빔을 쏴, 이미지가 맺히도록 하는 기기다. 전자총의 부피가 커서 무겁고 두껍다는 단점이 있었다. 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꺼내 보는 현재의 디스플레이를 상상도 할 수 없는 크기였다. 더 얇고, 더 가벼운 디스플레이를 만들 순 없을까. 공학자들의 질문은 액정 디스플레이(LCD)의 시대를 열었다.


    액정은 분자가 자유롭게 배열돼 있는 액체와,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는 고체의 중간 상태 물질이라고 볼 수 있다. 액정에 전압을 가하면, 전압의 크기에 따라 분자의 배열이 달라진다. LCD는 이 특성을 이용한다. 액정 패널 뒤에서 빛을 쏘면, 전압에 따라 배열이 달라진 액정이 빛의 통과량을 조절한다. 액정을 지난 빛은 컬러 필터를 지나 화면 속 이미지의 색과 형태를 이룬다. 이때 광원은 냉음극 형광램프(CCFL)를 사용한다. CCFL은 전자총보다 더 얇고 가볍다는 장점이 있다. CCFL 덕에 LCD는 브라운관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었다. 


    LCD TV의 본격적인 보급은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대형 LCD 패널의 대량생산 기술을 갖춘 2000년대 초부터 급격히 확대됐다. 그러나 디스플레이의 진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남윤중
    장은주 성균관대 첨단디스플레이공학과 교수와 공동연구를 수행중인 송장근 성균관대 교수 연구실에서 개발한 양자점 샘플이다. 빛을 받아 붉은색, 초록색, 푸른색(RGB) 3색을 발광한다.

     

    RGB 자발광 양자점
    양자점(Quantum Dot)은 반도체 나노 입자다. 입자의 크기에 따라 다양한 색을 내는 특성이 있다. 빛의 삼원색에는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RGB)이 있다. 이론적으로 이 세 색의 빛을 구현할 수 있다면 모든 색을 구현할 수 있다. 양자점으로 빛의 삼원색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카드뮴을 쓰지 않는 인듐인(InP)을 중심으로 다양한 화학물질층을 추가한다.

     

    양자점 디스플레이의 진화
    ▲동아사이언스
    현재의 광발광(PL) 양자점 디스플레이
    ▲동아사이언스
    연구 진행 중인 자발광(EL) 양자점 디스플레이
    현재 상용화된 양자점 디스플레이는 양자점 필름이 액정 패널의 역할을 대신해 색을 표현하는 광발광 양자점 방식이다. 장은주 교수는 미래에는 양자점 자체에서 다양한 색의 빛을 방출하는 자발광 양자점 디스플레이가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렇게 되면 별도의 광원인 LED가 불필요해 더 얇은 디스플레이를 만들 수 있다.

     

    ▲남윤중
    8월 5일 경기 수원 성균관대에서 디스플레이의 현재를 만들어낸 장은주 교수와 미래를 만들어 갈 성균관대 첨단디스플레이공학과 공학도들을 만났다. 장 교수는 한국공학한림원의 회원으로서 미래 공학도들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더 선명하고 친환경적인 디스플레이는 없을까?” 
    시대의 흐름 읽어 미래를 연 질문


    8월 5일 경기 수원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장은주 첨단디스플레이공학과 교수를 만났다. 그는 성균관대로 소속을 옮기기 전까지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의 중심, 삼성전자에서 나노 소재를 연구했다. 장 교수는 “평면 디스플레이가 중심이 된 2000년대 초반,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변화하는 트렌드 속에서 기업의 경쟁력이 될 새로운 기술을 찾으려는 고민이 생겼다”고 말했다.


    가장 화두가 됐던 해결 과제는 LCD에 활용되는 CCFL이 환경오염을 초래한다는 문제였다. CCFL에는 소량의 수은 가스가 들어 있어, 수은중독의 위험을 늘 안고 있었다. 2003년부터 유럽연합(EU)이 수은을 전자제품에 사용을 제한하는 유해물질로 지정하면서 규제도 강화됐다. 이에 수은을 사용하지 않는 광원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산업계의 관심은 발광 다이오드(LED)로 쏠렸다. LED는 수은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소비전력을 줄이고 디스플레이를 얇게 만들 수 있는 광원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LED는 빛의 세기가 CCFL보다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장 교수를 비롯한 삼성전자의 연구원들은 LED에 양자점(Quantum Dot)을 접목하는 방식을 떠올렸다. CCFL 대신 LED가 빛을 내고, 액정 대신 양자점이 이미지를 표현하는 기술의 출발점이었다. 


    양자점은 수 나노미터(nm·10억분의 1m) 크기의 아주 작은 반도체 입자다. 전압이나 열, 빛 등을 가하면 빛을 발하는 특성이 있는데, 양자점의 크기에 따라 방출하는 빛의 색이 다양하게 바뀐다. 양자점의 발견과 합성에 기여한 루이스 브루스 미국 컬럼비아대 명예교수, 알렉세이 아키모프 전 나노크리스탈테크놀로지(NCT) 선임연구원과 모운지 바웬디 미국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 교수는 2023년 노벨 화학상을 받기도 했다. 


    “양자점은 더 낮은 에너지를 받고도 빛을 잘 방출한다는 장점이 있다는 건 기존 연구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양자점을 이용하면 더 선명한 디스플레이를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있었어요. 하지만 LED와 양자점을 접목해 제품을 만드는 일은 그간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도전이었습니다. 이런 새로운 도전을 한국이 최초로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양자점 디스플레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연구는 2015년 세계 최초 무 카드뮴(Cd) 퀀텀닷 TV 출시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장 교수는 양자점 디스플레이가 진정한 ‘친환경 디스플레이’가 되도록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연구 시작 당시 양자점 소재로는 황화 카드뮴(CdS)이나 셀레늄화 카드뮴(CdSe) 등이 거론됐다. 그런데 이들 물질에 들어간 중금속 카드뮴 또한 독성을 가졌다. “환경 친화적인 디스플레이를 만들겠다고 양자점 디스플레이 연구를 시작했는데, 수은 대신 카드뮴을 쓴다는 건 사회와 시장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장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카드뮴 없이도 빛을 내는 인듐인(InP) 기반 양자점을 개발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쉽게 산화되는 인듐인 양자점을 공장에서도 안정적으로 대규모 생산할 수 있도록 이끈 것이 장 교수의 역할이었다. 이제는 양자점 디스플레이가 안방까지 들어왔다. 노벨상을 수상한 연구가 공학자의 손을 통해 생활까지 연결된 것이다. 


    장 교수는 지금 양자점 디스플레이의 다음 단계를 꿈꾸고 있다. 그는 “액정 패널도, LED도 사용하지 않고, 양자점이 전기를 받아 직접 발광하는 디스플레이 개발이 현재의 과제”라고 말했다. 이렇게 하면 디스플레이를 더 얇고 가볍게 만들 뿐 아니라, 선명한 색을 나타내는 양자점의 특성을 그대로 활용해 더 풍부한 색을 표현할 수 있다. 공학은 시대의 흐름을 읽고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발전한다. 장 교수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2025년 발표한 양자점 디스플레이 ‘Neo QLED’는 색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양자점의 장점을 십분 살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디스플레이를 실처럼 엮을 수 있을까?” 
    아무도 던진 적 없는 창의적인 질문

     

    최경철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는 8월 6일 e메일 인터뷰에서 “이미 성숙한 기술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관점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해지면 다시 한번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술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디스플레이 연구는 이 말을 그대로 보여준다. 최 교수는 현재 “형태의 제약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형상의 디스플레이를 어떻게 만들까?”란 질문의 답을 찾고 있다.


    최 교수는 플렉서블·웨어러블 디스플레이 연구의 대가다. 플렉서블·웨어러블 디스플레이는 자유자재로 구부리고 늘릴 수 있는 디스플레이, 나아가 옷처럼 입을 수 있는 디스플레이다. 그는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플렉서블·웨어러블 디스플레이 개발에 뛰어들었다.


    “당시 플렉서블·웨어러블 디스플레이가 미래의 중요한 기술이 될 거라는 인식은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는 당시 상황에서 기업들은 단기적인 사업성과 시장성을 우선시했기에, 관련 기술을 본격적으로 개발하려는 의지는 크지 않았습니다. 저는 미래 디스플레이 기술은 학계가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할 연구 분야라고 생각했죠.”


    최 교수는 21세기 초 디스플레이 시장의 또다른 대세였던 OLED에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의 미래를 봤다. OLED는 유기화합물로 이뤄진 소자 하나하나가 스스로 빛을 내는 방식이다. LCD처럼 별도의 발광 장치가 필요하지 않아,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꾸기 좋다는 특성이 있다. 다만, OLED의 유기화합물 소자가 수분과 산소에 취약하다는 한계점이 있었다. 그래서 유기화합물을 봉투로 포장하는 ‘인캡슐레이션’ 기술이 필수적이었다. OLED를 구부린다는 것은 인캡슐레이션층까지 통째로 구부린다는 의미다. 최 교수는 “인캡슐레이션층은 산소와 수분의 침투를 잘 차단하는 무기질 재료를 이용해 만들어야 하는데, 무기질 재료는 기계적 변형에 취약하다”고 했다.


    돌파구는 발상의 전환에서 찾았다. 최 교수는 유연한 인캡슐레이션 층을 만들기 위해 층 내부에 나노미터 크기의 결함이나 미세공극을 의도적으로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결함이나 공극이 있으면 수분과 산소가 쉽게 침투해 인캡슐레이션 성능이 저하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최 교수는 통념을 뒤집고 결함과 공극을 더 큰 균열이 생기지 않도록 막는 요소로 활용했다. 인캡슐레이션 층에서 균열이 발생해 깨지기 시작하더라도, 균열의 끝단이 미리 만들어 둔 결함이나 공극과 만나면 균열의 진행 경로가 막히거나 분산된다. 이 구조를 여러 층 쌓으면 수분과 산소가 쉽게 통과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다.


    나아가 최 교수는 섬유 소재를 웨어러블 디스플레이의 기판으로 활용하기 위해 거칠고 불균일한 섬유 표면에 평탄화 재료를 살짝 흡수시켜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었다. 이러면 직물 본래의 유연성을 유지하면서도, 그 위에 올라간 OLED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최 교수가 개발한 디스플레이의 모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가 개발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는 물에 노출돼도 상관없고, 구부리거나, 접거나, 심지어는 잡아당겨도 작동한다. 심지어 투명하다. 웨어러블 디스플레이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세탁해도 성능을 유지한다. 최 교수는 웨어러블 디스플레이가 바꿀 미래 사회의 모습을 이렇게 예측했다. “미래 사회에서는 개인의 취향과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의류형 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생체신호와 건강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신체 상태를 진단하거나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융복합 웨어러블 디스플레이 기술도 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웨어러블 디스플레이 연구의 현주소
    ▲최경철
    1 최경철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는 2020년 흰색 OLED를 섬유 위에 구현해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 표지(아래 첫번째 이미지)를 장식했다. 2 최 교수는 2018년 머리카락보다 얇은 90µm(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두께의 섬유에 OLED를 구현했다. 
    3 OLED 섬유로 KAIST란 글자를 수놓은 모습이다.

     

    시대를 만드는 질문을 던질 공학도들에게

     

    장 교수와 최 교수는 시대를 따라가지 않았다. 이들은 다음 시대를 만들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최 교수는 “공학 분야에서는 하나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기존 기술의 한계를 넘어 전혀 새로운 산업과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전했다. “디스플레이 기술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미래 사회를 변화시키는 기술로 더 발전할 겁니다. 디스플레이는 빛, 소재, 소자, 회로, 기계, 인공지능(AI), 바이오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가 융합된다는 점에서 어느 분야보다도 창의적인 연구 아이디어가 풍부하게 탄생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장 교수는 “다양한 분야가 융합되는 디스플레이 기술을 더욱 발전시킬 저력이 한국에는 있다”고 강조했다. “저희가 양자점 기술을 개발할 때처럼,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려면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자 연구 분야에서 쌓아온 지식을 연결해야 합니다. 아직 배우는 단계인 공학도들이 처음부터 미래의 기술을 내다보기는 어려울 겁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기에, 오늘의 트렌드가 얼마나 길게 이어질지 상상하는 건 쉽지 않죠. 지금은 기반 학문을 닦으며 깊이 생각하는 연습을 하는 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좋은 질문을 하는 데 자양분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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