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을 ‘단(丹)’에 푸를 ‘청(靑)’. 단청은 목조건축에 붉은색, 푸른색 등 다채로운 색을 칠하는 건축미술을 말한다. 조선시대 단청은 기둥이나 문 등에는 붉은색, 처마나 천장 등에는 초록색을 칠한 특징이 있다. 빨강과 초록, 그리고 노랑, 파랑 등 다양한 색으로 화려한 무늬를 그렸지만, 멀리서 봤을 때 복잡하지 않고 단아하다. 단청만이 주는 매력이다.
단청의 단아함은 미묘한 색채에서 나온다. 명도와 채도가 낮아 보색관계인 붉은색과 초록색 두 색이 만나도 충돌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여기에 핵심이 되는 안료에는 붉은색 ‘주토’와 초록색 ‘동록’이 있다.
요즘이야 정확한 종류와 양의 화학물질을 대량으로 반응시켜 균일한 색을 내는 안료를 만들 수 있지만, 과거에는 아니었다. 조선시대에 장인들이 재료를 수급한 뒤, 이를 가지고 실제 안료를 만든 과정은 무척 복잡했다. 통상 1800년대 중반 이전에 한국에서 쓰였던 안료는 전통 안료, 이후 서양에서부터 들여와 사용하게 된 안료를 현대 안료라고 부른다.
전통 안료보다야 현대 안료가 더 구하기 쉽다. 그래서 근대 이후에는 같은 색이라도 전통 안료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 현대 안료를 이용해 칠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과정에서 동록은 재료와 제조기술이 단절되고 말았다.
최근 20년 사이에 옛 방식 그대로 동록을 만들어야겠다는 수요가 생겼지만, 동록에 대해 다루는 역사적 자료가 많지 않아 복원이 어려웠다. 그런데 2022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서 동록을 전통 제작 방식으로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는 희소식을 전해왔다.
2025년 10월에는 복원한 동록으로 춘천 청평사 회전문을 다시 칠했다. 조선의 푸른색이 100여 년 만에 돌아온 첫 사례였다. 이어 2026년에는 전북 전주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경기전 정전에도 동록이 칠해진다. 8월 7일, 동록을 복원한 보존과학자들을 만나러 대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으로 향했다.
동록만이 보여줄 수 있는
반질반질하지 않고 깊이 있는 색
“여기 보이는 단청에서 윗부분은 현대 안료로 칠했고, 아래는 전통 안료로 칠했습니다. 전통 안료로 칠한 부분에서 입체감이 느껴지죠. 전통 안료인 동록은 안료 입자의 크기가 크고 형태가 균일하지 않아 그렇습니다.”
이선명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복원기술연구실 학예연구사가 복도 벽에 걸린 단청을 보며 말했다. 실제로 보니 전통 안료와 현대 안료의 색은 같았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 났다. 현대 안료로 칠한 부분은 반질반질 윤기가 난다. 한편, 동록으로 칠한 부분은 고운 모래를 얹은 듯 입체감이 느껴졌다. 안료 속 결정들이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전통 안료와 현대 안료의 차이는 재료에서 나온다. 동록은 돌을 갈아 만든 안료, ‘석채’다. 이렇게 무기물을 이용해 만든 안료를 ‘무기안료’라고도 부른다. 이 학예연구사는 “현대 안료는 1µm(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크기의 작은 입자로 합성되지만, 전통 안료는 입자의 크기와 형태가 다양하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굵은 입자들이 표면에 발리니, 전통 안료를 바른 곳은 크고 작은 입자에 의해 빛이 난반사돼, 미세하게 반짝거리게 된다. 반질반질한 광이 나는 현대 안료로는 전통 안료의 진정한 빛깔을 똑같이 재현할 수 없다.
이 학예연구사를 비롯한 복원기술연구실의 연구자들은 2014년부터 전통 무기안료와 유기안료 복원과 보존 연구를 이어왔다. 유기안료는 연지벌레나 쪽 등 유기물을 이용해 만든 안료를 말한다. 이 학예연구사는 “다른 전통 안료는 국내외에서 제조기술이 이어지고 있는데, 동록의 경우엔 현장에서 많이 보이는 안료임에도 만드는 방법이 단절된 상태였다”고 했다.
복원기술,
문화유산을 치료하는 의술
끊긴 동록의 명맥을 잇는 일은 보존과학에서도 복원기술이란 분야에 속한다. 보존과학이란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기술과 과학을 아우르는 말이다. 이 학예연구사는 “복원기술은 문화유산이 훼손되기 전 상태를 회복하기 위한 과학적 기술”이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 복원기술 연구자들은 다친 문화유산을 치료하는 의사들인 셈이다.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할 때 여러 분야의 의사들이 협진하듯, 동록을 복원하는 과정에서도 화학, 물리학, 지질학 등 온갖 분야의 지식이 동원됐다. 동록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기 위해선, 먼저 문화유산 속 동록의 화학적 조성과 물리적 특성을 알아야 했다. 이를 위해서 연구자들은 안료 입자의 모양을 살피는 현미경과 색상 정보를 알아내는 색차계, 원소의 종류와 농도를 분석하는 X선 형광분석기(XRF) 등 장비를 이고 지고 현장으로 향한다. 이 학예연구사는 “동록 복원을 위해 전국 문화유산 44여 곳의 단청을 현장 조사했다”고 했다.
단청 시료를 실험실로 들고 와 더 정밀한 분석 방법을 동원해 실내 조사도 시행했다. 그 결과 단청의 동록은 ‘아타카마이트’라고 불리는 광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타카마이트의 화학적 이름은 염기성 염화구리 화합물이다. 천연 상태의 아타카마이트는 주로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에서 채굴된다. 그 외 지역에서도 채굴됐다는 기록은 있지만, 순도가 낮은 편이고 가격이 비싸다.
연구팀은 조선시대 장인들이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천연 아타카마이트를 갈아서 건축물에 호쾌하게 칠했을 가능성은 적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서 조사한 바로는, 한국의 단청에서 천연 아타카마이트를 사용한 사례가 발견된 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인공 아타카마이트로 시선을 돌려야 했다. 아타카마이트는 구리가 부식돼 생기며, 녹슨 구리에서 흔히 발견된다. 그렇다면 과거 사람들은 어떻게 구리를 녹슬게 해 신비한 초록빛 안료로 만들었을까.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동록에 대해 다루는 고문헌 사이에서 동록 제조법에 대한 설명이 엇갈렸던 것이다.
산부식법 vs. 염부식법
오래된 흔적 더듬어 동록을 복원하다
구리를 부식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염부식과 산부식이다. 둘 다 전자를 빼앗아 구리를 산화시키는 화학반응이다. 산부식법은 식초에 든 아세트산과 같은 산성 물질을 이용해 구리를 부식시킨다. 고문헌에 가장 많이 나오는 구리 부식법이 바로 이 방식이다. 산부식법에서 구리는 산화돼 구리 이온(Cu2+)이 되고, 이게 아세트산 이온(CH3COO-)과 결합한다.
“산부식법을 통해 생성된 건 아세트산구리, 물질명으로는 호가나이트였어요. 그런데 현장의 단청에서는 아타카마이트가 발견됐죠. 성분이 달랐던 거예요. 게다가 호가나이트를 아교와 섞어 물감을 만들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색이 새까맣게 변해버렸어요. 건축물에 쓰이는 안료는 내구성이 강해야 해요. 이렇게 쉽게 변질되는 안료가 동록일 수는 없었죠. ‘실험 망했다.’ 크게 당황했어요.”
연구팀은 고문헌을 다시 뒤져봤다. 이들은 중국의 의서인 ‘신수본초’에서 새로운 단서를 찾았다. 신수본초에는 청동, 황동 등 구리 합금 분말에 광명염(염화소듐·NaCl)과 요사(염화암모늄·NH4Cl)을 섞어 동록을 만든다고 쓰여 있다. 이 반응을 통해선 염화소듐과 염화암모늄에서 나온 염소 이온(Cl-)이 구리 이온과 결합해 염기성 염화구리, 즉 아타카마이트가 생긴다. 염을 이용해 구리를 산화하는 정석적인 염부식법에서 아타카마이트가 만들어진 것이다.
염부식법으로 실험 방향을 바꿨다. 연구팀은 고문헌과 국내의 선행 연구 사례를 분석하는 한편, 실험실에선 염화소듐과 염화암모늄, 그리고 구리 합금 분말을 가지고 실제 동록을 만들기 위한 실험을 이어갔다.
물론, 염화소듐과 염화암모늄, 그리고 구리 합금 분말을 섞는다고 해서 곧장 동록이 되는 건 아니었다. 염화암모늄의 비율이 높을수록 안료는 푸른빛을 띄고, 염화나트륨을 더 많이 넣을수록 초록빛을 띄었다. 두 화학물질의 비율과 산화 시간 등에 따라 결과물의 색이 달랐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록을 찾기 위해서 연구팀은 산성우 실험기(산성비가 내리는 환경을 구현해 광물이나 암석의 부식을 살펴보는 실험장치)를 붙들고 세월을 보냈다. 이 학예연구사는 “1:3, 9:1 등 비율을 바꿔가며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고 말했다. 화학물질을 섞고, 산성우 실험기에 넣어서 부식되길 기다렸다가, 결과물을 곱게 갈아, 물에 개어 물감을 만든다. 이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서야 단청에서 발견된 동록과 성분도 같고, 색깔도 같은 안료를 만들 수 있었다.

실험실에서 현장까지
문화유산에 가닿은 설렘
현재 동록 제조방법은 특허로 등록돼, 국내 전통 안료 생산 업체 두 곳에 기술이 이전된 상태다. 이 학예연구사는 복원한 동록이 처음으로 국립문화유산 수리 현장에 도입된 2025년 11월을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꼽았다.
“연구만으로 끝나지 않고, 동록이 현장에 실제로 칠해지는 그 순간이 가장 보람됐습니다. 저희 연구팀도 너무 신나서, 동록을 칠한 춘천 청평사로 워크샵을 떠났을 정도였죠. 사실 복원한 안료가 수리 현장의 화공들에게 선택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잖아요. 그래서 동록을 복원하면서도 단청을 칠하는 장인들과 협업해서 사용성을 높였습니다. 연구실에서 나온 동록의 품질을 생산 업체에서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공정을 명확히 정리해 넘겼죠.”
10여 년의 노력 덕에 다시 찾은 조선의 푸른빛은 실험실에 머물지 않고, 전국의 문화유산으로 널리 퍼질 수 있었다.
동록은 안료의 이름이고, 이 안료가 나타내는 색의 이름은 하엽(荷葉), 즉 ‘연잎’이다. 이 학예연구사는 “동록의 색 변화가 연잎의 생애주기를 빼닮았다”고 말한다. 동록을 처음 바르면 파란색에 가까운 초록빛이 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노란빛이 올라온다.
“연잎을 직접 본 적이 있는데, 그제서야 왜 동록의 색을 하엽이라고 부르는지 알겠더라고요. 더운 여름에는 청록색이었다가, 가을에는 황빛이 돌면서 저무는 세월의 변화를 그대로 재현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성공이었죠. 옛날 사람들이 봤던 갓 칠한 동록의 색을 우리도 이제 알게 됐습니다.”
합금의 비율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연잎이 나고 또 지듯이
세월의 흐름을 담은 새로운 옛것
이 학예연구사는 “저희는 남들은 신소재를 연구할 때 거꾸로 가는 팀”이라며 웃었다.
인공지능(AI)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하며 사람을 대체하는 새 기술 이야기로 세상이 시끄럽다. 이때 보존과학은 사람이 쌓은 세월에서 나온 가치를 좇는다. 첨단기술을 동원해 옛 안료를 복원했더라도, 현장에서 수십 년을 보낸 장인의 손에 익지 않는다면 소용없게 된다. 같은 안료라도 현장의 온도와 습도에 따라 물을 섞고 색칠하는 방법을 미묘하게 바꾸는, 기민한 손이다.
반질반질하고 정확한 색을 내는 안료가 수두룩하지만, 굳이 고문헌을 뒤져가며 옛 방법 그대로의 빛깔을 찾는다. 이것은 보존과학의 원칙이다. “문화유산 보존은 단순 수리가 아니니까요. 라디오를 고치는 것처럼 기능을 복원하는 게 아니라 원형을 회복하는 차원입니다. 그래서 몇백 년 된 문화유산을 복원할 때도 가능한 당시 기술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 학예연구사의 말대로 단청에는 시대상, 과학기술사, 미술사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단청은 장식 기능 외에도 보호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단청 아래 있는 나무는 날씨와 세월, 그리고 흰개미 등 생물에 의해 쉽게 손상된다. 그런데 단청에 사용되는 무기 안료는 항균성을 가진 경우가 많다.
동록도 그렇다. 게다가 나무 위에 무기 안료를 바르는 건 말하자면 목재를 석재로 코팅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보인다. 나무가 잘 타지 않도록 돕는다. 현대 안료로 단청을 덧그리는 일은 이런 옛사람의 고민이 담긴 귀한 자료를 훼손하는 일과 같다.
“문화유산은 모든 시대에나 있었지만, 이걸 보고 느끼는 바는 시대에 따라 다를 겁니다. 저는 연구를 하며 나의 근본인 옛사람들은 이 정도로 똑똑했구나, 녹슨 금속을 안료로 쓸 만큼 낭만 있는 사람이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문화유산을 보며 과거 사람들에 대해 이해해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보존과학입니다.”
불교에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즉 세상의 모든 존재와 사물은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한다는 가르침이 있다. 세상은 변한다. 문화유산도 시간이 흐르면 스러진다. 보존과학은 이 가르침을 역행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며 문화유산의 모습이 바래고, 그 속의 가치가 다른 의미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변화가 옛 사람들의 의도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도록 돕는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복원기술연구실은 앞으로 패각(조개껍질) 분말에 쪽 염료를 입히는 ‘니람’ 등 유기 안료를 재현하고자 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다. 박제가 아닌, 우아하게 늙어가는 문화유산의 세월을 존중하는 과학이 조심스럽게, 역동적으로 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