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참교육’ 열풍이 6월 한 달 동안 국내외를 휩쓸었습니다. 가상의 정부 기관 ‘교권보호국’에서 파견된 감독관들이 무너진 교권을 회복하기 위해 학교에서 펼치는 활약을 보여주는 드라마입니다. 필요하면 체벌도 불사하는 주인공 일행의 거침없는 행보에 사람들은 “속 시원하다”며 환호했죠. 한편으로는 답답함을 느끼는 현재 우리 교실의 모습에 대해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과학동아 독자들과 함께 교권보호국이 생긴 교실을 상상해 봤습니다.


“교권보호국 감독관에게는 한 가지 특수한 권한이 있습니다. ‘교육 방식에 그 어떠한 제한도 없다.’ 쉽게 설명드리면, 말로 해서 듣는 놈은 말로, 때려서 듣는 놈은 때려서라도 가르칩니다. 자, 그럼 대한민국 교권보호국은 오늘부로 이 학교를 참교육하겠습니다.”
_ 드라마 ‘참교육’ 중에서
우리가 사이다를 찾는 건, 앞서 먹은 고구마가 그만큼 속을 답답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6월 공개된 드라마 ‘참교육’ 이야기입니다. 1회부터 시원시원합니다. 국회의원인 아버지를 믿고 교사보다 더 위에 서서 학교를 지배하던 학교폭력 가해자가 학교에 파견된 교권보호국 감독관에 의해 흠씬 얻어맞고 제압되는 내용입니다. 교권보호국은 드라마 속 가상 정부기관입니다. 교권 침해 현장을 감독하고 계도하는 역할을 맡죠.
‘참교육’이란 거울에 비춘 현재 공교육의 모습을 보고자, 과학동아는 7월 1일부터 6일까지 6일간 독자들을 모집했습니다. 교사, 중학생, 학부모 등 다양한 계층의 독자 16명이 인터뷰에 참여했습니다. 이들 중 5명이 드라마가 실제 교육 현장을 ‘매우 잘 반영했다’고 답했습니다. 이어 ‘잘 반영했다’고 답한 독자들은 10명이었습니다.
[Lesson 1]
체벌은 정말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드라마가 화제를 모으면서, 7월 1일부터 막 임기를 시작한 전국 16개 시·도 교육감들이 “교권보호국을 만들겠다”며 나섰습니다. 특히나 안민석 경기도교육감은 당선 이후인 6월 16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교권과 학습권까지 보호할 수 있는 교육활동보호국을 만들겠다”고 말하기도 했죠.
교권보호국이 실제로 생긴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상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주인공 나화진의 모토 “때려서라도 가르친다”를 살펴보겠습니다. 과학동아와 이야기를 나눈 16명은 체벌에 대한 질문에서 정확히 반으로 나뉘었습니다. “드라마처럼 현실 속에서도 학생을 교육하기 위한 폭력이 용인돼야 한다고 보시나요?”란 질문에 8명이 ‘예’, 8명이 ‘아니오’란 답을 남겼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일상 속에서도 체벌을 옹호하는 의견은 체벌에 반대하는 의견만큼이나 심심찮게 보입니다.
하지만 교육심리학 분야의 주류 학설은 “체벌은 효과가 없다”는 겁니다. 엘리자베스 거쇼프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 인간발달 및 가족과학과 교수와 앤드루 그로건-케일러 미국 미시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2016년 발표한 논문을 살펴보죠. 연구팀은 2세 미만 영유아부터 15세 청소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논문 75편을 모아 어린이 16만 927명으로 구성된 거대한 모집단을 만들었습니다. doi: 10.1037/fam0000191
기자의 학창 시절엔 ‘손바닥 맞기’ 정도가 선생님께 받는 체벌의 표준이었습니다. 20년쯤 전 이야기인데요, 이때도 손바닥 맞기보다 더 강한 수준의 폭력은 ‘학대’로 여기고 지양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학대처럼 보이지 않는 가벼운 체벌은 교육적 효과가 있을지 궁금해지는 지점입니다. 그래서 연구팀은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때리는 행위처럼 가벼운 체벌의 영향만 골라 분석했죠.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엉덩이를 때리는 행위가 아이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바꾼다는 증거를 전혀 찾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맞으면 말을 듣잖아?”라고 속으로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연구팀은 이 의문도 반박합니다. 체벌을 받은 아이가 ‘즉각적인 순응’을 보였다는 유의미한 연관성은 발견됐습니다. 하지만 논문에서는 “체벌을 받은 뒤 아이들은 ‘도덕성 함양’을 보이진 않았다”고 말합니다. 맞은 아이가 그 자리에선 행동을 교정할지 몰라도, 체벌을 받은 이유를 마음 깊이 되새기지는 않는다는 거죠.
[Lesson 2]
교권보호국 대신 어떤 시스템이 필요할까
체벌이 제대로 된 교육 방법이 아니라면, 교권보호국을 넘어서 어떤 시스템이 필요할지 고민해 볼 차례입니다. 초월적 권한을 가진 기관이 등장해 ‘사이다’를 주는 해결책은 얼핏 보면 손쉽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교권보호국 감독관들이 교육 현장의 모든 문제를 잡아낼 수 없을 거고요, 이들이 주는 해결책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도 못할 겁니다. 결국 문제는 교육 현장 속 사람들이 이루는 복잡한 시스템을 조망해야 풀어낼 수 있습니다.
이 고민에 좋은 참고가 될 연구가 있습니다. 영국과 이탈리아 국제 공동연구팀은 협력을 통해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행위자들의 묶음을 시스템으로 보고 분석한 연구 결과를 2021년 국제학술지 ‘영국 왕립학회 회보 B(Philosophical Transactions B)’에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는 사회 구성원들이 협력 관계를 유지하려면 어떤 시스템이 필요할지 보여줍니다. doi: 10.1098/rstb.2020.0293
연구팀은 가상의 인물들로 구성된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이 그룹 속에는 4명 이상의 인물이 들어 있는데요, 각각의 인물은 ‘협력자’ ‘배신자’ ‘방관자’라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들은 함께 게임을 수행해, 성공 포인트를 받아야 합니다. ‘마피아 게임’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협력자는 자신의 포인트를 비용으로서 지불하고 게임의 성공에 기여하는 인물입니다. 배신자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게임에 참여하기만 합니다. 날로 먹는 거죠. 게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이들은 방관자가 됩니다. 이들은 방관자에게만 주어지는 보상 포인트를 가져갑니다. 방관자의 보상 포인트는 협력자와 배신자가 게임에 성공했을 때 얻는 수익보다는 적습니다. 배신자와 방관자 모두 함께 조별 과제를 하고 싶은 사람들은 아니네요.
연구팀은 이 시스템에 평판과 처벌이라는 요소를 더했습니다. 처벌은 자신의 게임 포인트를 소모하면서, 다른 인물의 포인트를 크게 빼앗는 방식입니다. 게임이 끝난 후, 협력을 저해한 구성원이 처벌받죠. ‘참교육’에 나온 처벌도 이와 비슷하다 볼 수 있겠습니다.
평판은 각 인물에 부여되는 평판 점수로 계산됩니다. ‘배신자는 나쁘다’는 공통의 인식이 주어진 시스템에선 배신자에게 -1점을 부여합니다. 방관자에겐 0점, 협력자에겐 1점이 부여됩니다. ‘방관자는 나쁘다’의 경우엔 방관자가 -1점, 배신자는 0점, 협력자는 1점을 받죠. ‘둘 다 별로다’의 경우엔 방관자와 배신자에게 -1점, ‘둘 다 좋지는 않다’라는 인식이 있는 시스템에선 방관자와 배신자에게 0점을 부여하죠. 각 그룹에서 평판 점수가 낮은 인물들은 다른 인물들로부터 소외됩니다. 평판 점수가 낮은 인물과 협력하려는 인물은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평판이 낮은 인물들은 협력적인 환경에서 배제돼 도태되고 맙니다.
연구팀은 평판과 처벌을 게임에 도입했을 때, 어떤 시스템에서 인물들이 가장 잘 협력할 수 있을지 실험했습니다. 평판만 도입했을 땐, 평판을 의식해 협력하거나, 평판이 나쁜 사람을 피하는 조건부 전략이 형성됐습니다. 협력이 증가했어요. 처벌만 있었을 때는 ‘나쁜 사람’을 벌하는 처벌도 생기지만, 배신자가 협력자를 처벌하는 사례도 함께 나타나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생겼습니다.
연구팀은 평판과 처벌을 결합한 시스템이 가장 높은 협력 수준을 유지했다고 결론내렸어요. “평판과 처벌을 결합한 시스템에서 협력자들은 긍정적인 평판을 얻어서 향후 더 많은 협력이 가능해졌다.” 평판과 처벌이 동시에 존재하는 시스템에선 협력하지 않은 이들의 평판을 낮추면 자연스럽게 이들이 시스템에서 배제되니 안심하고 협력할 수 있게 됩니다. 처벌은 협력하지 않는 이들에게 ‘협박’하는 요인으로만 작용하고, 실제로 이루어지진 않습니다.
백승기 부경대 과학컴퓨팅학과 교수는 이런 평판 시스템을 연구하는 이론 물리학자입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넓게 보면 사람들이 ‘참교육’에 열광하는 모습을 처벌 시스템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처벌 외에도 평판 시스템을 적용해 자율적인 협력을 이끌어낼 여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가급적이면 초월적 힘을 가진 교권 보호국같은 외부적인 권위에 기대지 말고, 학교 안에서 학생들 간의 자발적 협력을 이끌어 나가는 방법을 연구하고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당근 vs. 채찍? 처벌은 공동체의 부작용을 불러온다
영국과 이탈리아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협력을 통해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행위자들을 가상으로 구현해 이들의 행동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세 가지 시스템을 적용했다. ‘평판 시스템’에서는 각각의 인물이 협력을 도왔던 다른 이에게 좋은 평판을 준다. ‘처벌 시스템’에서는 협력을 저해한 구성원의 게임 포인트를 빼앗아 벌을 준다. ‘평판+처벌 시스템’에서는 평판 시스템과 처벌 시스템을 동시에 적용했다. 그 결과 평판+처벌 시스템이 가장 강한 협력관계를 이끌어냈다.
평판 시스템
협력 강화
평판이 나쁜 사람을 배제하거나 평판이 좋은 사람과 협력하려는 경향이 생겨, 구성원이 협력을 유지하도록 강제하는 동기가 됨.
처벌 시스템
협력 약화
협력에 반하는 이들이 협력자를 처벌하는 부작용이 발생함. 처벌에 비용이 필요하므로, 시스템 유지 비용이 듦.
평판+처벌 시스템
가장 강한 협력
평판이 처벌을 대체해 공동체의 협력을 이끌어 냄. 이에 따라 처벌에 필요한 비용이 줄고, 협력 수준이 극대화됨.
[lesson 3]
진정한 참교육의 의미를 되새기며
설문조사 기간이 끝나고, 기자에게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설문조사에 참가한 독자 김태림 씨가 보낸 메일입니다. 그는 현재 고등학생 대상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고 본인을 소개했습니다. 김 씨의 메일은 ‘참교육’이라는 속 시원한 해결책을 추구하는 지금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을 짚어줬습니다.
“소위 말하는 ‘참교육’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회 제도가 잘못됐고, 그 제도 아래서 범죄 행위가 제대로 처벌되지 못하기 때문에 있어야 합니다. 참교육이 유행하는 지금, 본질적인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는 어디에 있나요? 변화는 언제나 본질적인 잘못의 개선에서 옵니다. 어쩌면 ‘참교육 감성’이 오히려 근본적인 논의를 수면 아래로 담가 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참교육’이란 단어는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창립되면서 거짓된 교육에 맞서 진실한 교육을 하겠다는 의미에서 만든 말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참교육이 실현되기 위해선 속 시원한 복수의 이야기를 넘어 학교 현장에서 진실된 교육이 이뤄지도록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이상적인 교실은 주먹을 날리는 감독관이 학교로 찾아오는 사회가 아니라, 평판과 사회적 규범 덕분에 처벌이 필요 없어진 사회가 아닐까요. 물론 수치 모델이 현실의 애로사항을 모두 반영하진 못할 겁니다. 현실은 더 어렵습니다. 연구 속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아래와 같은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평판에 따른 이익과 불이익이 명확히 주어져야 합니다. 처벌은 최소한으로, 협력을 이끌어낼 수단으로만 활용돼야 합니다. 이런 룰은 흔들림 없이 적용돼야 합니다. 그래야 게임의 성공, 그러니까 교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이 편안하게 상호작용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형성됩니다. 진짜 참교육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겠지요.
과학동아 독자들의 ‘참교육’ 후기
드라마 ‘참교육’을 본 독자들의 솔직한 후기를 듣기 위해 과학동아는 7월 1일부터 6일까지 독자들의 의견을 수집했습니다.
자신을 초등교사라고 밝힌 독자는 과학동아에 “폭력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는 부분은 학생들에게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걱정된다”는 의견을 전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참교육을 보며 우리 현실에도 드라마 속 교권보호국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교육현장의 답답함을 시원하게 뻥 뚫어주는 사이다 같으면서도, 이렇게 대리만족으로만 그쳐야 하는 우리의 교육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교권보호국이 진짜 생겼으면 좋겠다.”
“교권과 학교의 붕괴된 일상을 회복하는 내용의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무너진 대한민국 교육 현장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다.”
“교권보호국은 뭐든지 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나에겐 없기 때문에… 방송에서라도 고구마가 아닌 사이다를 마신 기분이 참 시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