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그노벨상 콤비가 던진 유쾌한 파격
7월 25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글로벌공학교육센터 대강당은 오전부터 소란했습니다. 이날 대강당에서 ‘호기심 사이언스 페스티벌’이 열리면서, 행사 시작 30분 전부터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350여 명의 참가자들로 북적였던 까닭이죠. 참가자들은 특별 굿즈가 든 웰컴 키트를 수령한 후, 설레는 마음으로 행사를 기다렸습니다.
행사의 문을 연 순서는 ‘이그노벨상’ 수상자 2인의 키노트 강연입니다. 이그노벨상은 과학·공학·사회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들을 웃기는 한편, 생각하게 만드는 연구나 업적에 수여하는 상이죠. 첫 연사로 무대에 오른 패트리샤 양 대만 국립칭화대 교수는 화면 가득 낯선 사진 한 장을 띄우며 강연을 열었습니다.
“이건 초콜릿이 아니라, 웜뱃이 배설한 주사위 모양 똥입니다.” 얼핏 초콜릿처럼 보이는 정육면체 모양의 물체. 양 교수의 당당한 소개에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죠. 그는 2019년 이 연구로 이그노벨상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왜 하필 웜뱃의 배설물이 정육면체 모양을 하고 있는지를 추적한 이 연구는, 얼핏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질문 하나가 동물의 장 구조와 물리학적 원리를 잇는 진지한 탐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이어 무대에 오른 박승민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는 ‘스마트 변기’를 소개하며 좌중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가 개발한 이 변기는 간단한 센서만으로 소변과 대변의 상태를 숙련된 의료 전문가 수준의 정확도로 판별해 내거든요. 실제 배변 장면을 녹화한 분석 영상이 화면에 재생되자 객석에서는 탄성과 웃음이 뒤섞였습니다. 박 교수는 이 연구로 2023년 이그노벨상 공공보건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가장 사소하고 때로는 지저분하다고 여겨지는 곳에 가장 중요한 답이 숨어있을 수 있다”며 고정관념을 깨는 호기심의 가치를 재차 강조했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에는 좌중의 이목을 휘어잡은 두 연구자의 대담이 이어졌습니다. 여기서 이그노벨상 수상 뒤에 가려진 뒷이야기가 공개됐죠. 이그노벨상 부상인 상금을 묻는 말에 박 교수는 “짐바브웨 달러로 10조 달러를 받았다”며 좌중을 놀라게 한 뒤, “슈퍼 인플레이션 탓에 휴지와 다름없는 돈이었지만 상 자체는 돈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였다”고 답했습니다.
양 교수는 수상 당시를 떠올리며 “똥오줌 연구를 한다고 주변에서 처음엔 많이 놀렸다”면서도 “유명해진 덕분에 오히려 좋은 일자리 제안을 여럿 받을 수 있었다”고 웃어 보였습니다. 남들이 우습게 여기는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인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후 이어질 호기심 연사들의 강연을 관통하는 하나의 서곡이 됐습니다.
2 박승민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가 자신의 스마트 변기를 소개하는 모습. 강연장 밖에 설치된 다양한 과학 참가 부스와 설치물에도 청중의 관심이 쏠렸다.
3 호기심 사이언스 페스티벌 참가자들이 살아있는 흡혈 곤충을 관찰하며 김주현 서울대 의대 교수의 설명을 듣고 있다.
로켓에서 미라까지, 시공간의 경계 넘나든 호기심의 향연
2부의 문은 스페셜 멘토로 나선 유재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열었습니다. 그가 던진 질문은 다소 엉뚱했습니다. “내 발바닥 넓이는 어떻게 잴까?” 유 교수의 질문에 청중들은 “모눈종이”나 “미적분” 등의 다양한 접근 방법을 던졌고, 그럴 때마다 그는 가혹하게 “C학점”을 선사하며 호기심을 북돋았죠.
이렇게 서울대에서 십수 년간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강의를 해온 유 교수는 질문에 대한 정답이 아닌 풀이 과정 자체에 주목하라고 일렀습니다. 그는 “가장 높은 학점은 질문 자체에 의문을 던진 학생에게 갔다”며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나만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진짜 과학”이라고, 엉뚱한 질문을 주저 없이 던지는 학생들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보냈습니다.
이어진 호기심 피플 세션의 첫 순서는 ‘흡혈 곤충 덕후’로 불리는 김주현 서울대 의대 열대의학교실 교수의 몫이었습니다. 그가 무대에서 직접 기른 모기가 담긴 케이스를 꺼내 들자 객석에서는 탄성과 비명이 동시에 터져 나왔죠. 그는 “남들이 피하는 존재에 매료돼 2시간마다 제 피를 먹여가며 연구했다”는 기담(?)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집요한 호기심이 결국 열대 질환으로부터 인류를 구하는 의학적 가치로 승화된다”며 개인의 독특한 취향이 어떻게 사회적 기여로 이어지는지를 직접 증명해 보였습니다.
뒤이어 무대에 오른 홍종하 경희대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교수는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고고학의 매력을 전했습니다. ‘생물고고학’을 연구하는 그는 인골과 미라에서 유기물을 채취해 분석함으로써 과거 인간의 삶을 되짚습니다. 홍 교수는 “미라는 수백 년 전 사람들의 삶과 죽음, 심지어 그들이 먹었던 음식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는 타임캡슐”이라고 정의하며, “역사 속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의 미라를 통해 그 시대에 대해 알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이 저를 고고학의 세계로 이끌었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민간 우주 개발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신동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대표가 무대를 채웠습니다. 그는 로켓 개발 과정에서 겪은 수많은 실패와 도전을 담담히 풀어냈습니다. “헤맨 만큼 내 세상이 된다는 말처럼,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는 개척자의 정신이 결국 우리를 우주로 이끈다.” 그의 마지막 한마디에, 객석에 앉은 관중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졌습니다.
“엉뚱한 과학자가 되고 싶어졌어요”…객석을 채운 뜨거운 반응
강연 사이사이 마련된 질의응답 시간에는 참가자들의 날카롭고도 엉뚱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스마트 변기의 출고가는 얼마쯤 될까요?” “모기가 사라지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요?” 같은 질문에 연사들은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답변으로 화답했고, 그때마다 객석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번갈아 터졌습니다.
참가자들은 행사 내내 과학과 호기심이 만나는 접점을 느꼈다고 전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정재범(14) 군은 “평소에 과학은 어렵고 딱딱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오늘 강연을 듣고 나니 제 주변의 모든 것이 다 궁금해졌다”며 눈을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그는 “특히 웜뱃 똥 이야기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며 “학원을 빠지고 올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고 웃어 보였죠. 세 자녀와 함께 행사를 찾은 학부모 강건일(45) 씨도 소감을 전했습니다. 그는“아이가 과학자의 삶을 직접 듣고 눈을 반짝이는 걸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정답만 강요했던 저를 반성하게 된 시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40년의 기록, 새로운 호기심의 시작
이번 페스티벌은 교과서 속 지식을 암기하는 자리가 아니라, 엉뚱한 질문을 위대한 발견으로 바꾼 과학자들의 육성을 듣는 ‘질문의 축제’였습니다. 이그노벨상 수상자 2인의 키노트 강연을 시작으로, 스페셜 멘토의 창의력 자극 세션,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호기심 연사 3인의 강연과 대담까지 총 4시간에 걸친 대장정이 이어졌죠. 강연과 대담이 이어지는 동안, 무대 위 다섯 명의 과학자와 한 명의 멘토는 저마다 다른 언어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소해 보이는 질문 하나를 끝까지 놓지 않는 태도가 결국 발견과 혁신, 그리고 사회에 대한 기여로 이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날 축사를 전한 장경애 동아사이언스 대표는 “지난 40년 동안 과학동아가 추구해 온 가치는 결국 호기심이었다”며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청소년들이 미래의 과학자가 돼 또 다른 엉뚱한 질문을 던지길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