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사랑하는 내 딸 윤재에게
이 편지가 너에게 전송되었다는 건 내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지루하고 고된 장례 절차도 모두 끝났다는 뜻이겠지. 먼저, 너에게 미안해.
살면서 누군가의 장례를 치러본 경험은 많지 않지만, 그 모든 과정이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 하는지는 엄마도 알고 있거든. 형제자매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은 네가, 번거로운 일들과 그 일들 때문에 생기는 번거로운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네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죽었다는 전화를 덜컥 받고 느꼈을 당혹스러움을 상상해 보면, 엄마는 너무 미안해져.
더군다나 우리는 남들과 조금 다른 모녀였잖아. 아마 너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를 별로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야. 나는 사회의 일반적 기준과 상식이 요구하는 ‘엄마 노릇’을 전혀 하지 않았어. 엄마라면 마땅히 해야 할, 남들이 다 하는 일에 몹시 소홀했지. 그래 놓고 갑자기 죽어버려서는, 남들이 다 하는 일이라며 뻔뻔스럽게 장례식을 부탁한 내 주검 앞에서 넌 얼마나 끔찍하게 피로했을지.
그렇지만 아주 사소한 너그러움이 허락된다면, 이 편지를 보고 나에 대한 원망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렸으면 해. 원래 장례식이란 죽은 자를 위한 의례가 아니라 남은 자가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한 의례잖니. 그렇지?
그리고 엄마는 이 편지로, 네 마음속에 단단히 뿌리박혀 있을지도 모를 오해들을 바로잡고 싶어. 일단 가장 중요한 사실. 엄마는 너를 많이 사랑했단다. 물론 너도 마음속으로는 엄마를 많이 사랑했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는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바라지도 않아.
하지만 엄마는 너를 많이 사랑했어. 그래서 네가 대학교를 졸업한 여름에, 한반도 역사상 가장 더웠던 그 8월에, 엄마와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마주치는 것이 껄끄럽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에어컨도 없는 옥탑방으로 홀연히 떠나버렸을 때, 며칠을 밤낮없이 울었어. 에어컨도 켜지 못했어. 피부에 닿는 찬 공기가 싫어서. 그 차가운 감각이 어머니로서 실패한 내 삶을 벌주는 것 같아서.
마지막 편지에서 굳이 이런 말을 하는 건 네 동정을 얻기 위함도, 나를 변호하기 위함도 아니란다. 다만 네게 끝끝내 표현하지 못했던 내 진심을 ‘죽음 후의 편지’라는 형식으로 전하고 싶은 거야. 물론 너는 이 편지를 읽으면서도 나를 비웃을 수 있겠지. 불신할 수도 있고. 나는 죽기 전까지 내가 너를 염려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네게 거의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네가 보는 내 두 눈은 꽁꽁 닫힌 철문 같았겠지. 그러나 ‘죽은 뒤에도 거짓말하는 인간은 없다’라는 격언도 있잖니. 이제 와서야 겨우 진심을 전하는 엄마를, 조금은 믿어주길 바란다.
모든 말이 변명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는 생각과 감정을 말과 행동으로 타인에게 표현하는 일이 어려웠단다.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으로 어려웠어. 그런 행위가 겸연쩍어서, 혹은 나 자신을 방어하려는 심리가 있어서도 아니었어. 나도 기쁨과 슬픔, 조바심과 두려움을 느끼는 보통의 인간이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게 몹시 서툴렀던 거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거야. 할머니와 할아버지 역시 내게서 그런 문제를 감지했지만,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어. 그분들은 내가 성인이 되고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방식으로 부딪히는 경험을 하면 그 문제가 쉽게 해결되리라 생각하셨던 거지. 물론 부모님 말고도 내게 존재한 문제를 간파했거나 목격했던 사람들은 있었어. 하지만 그 사람들은 이 문제를 간헐적으로 언급하기만 할 뿐,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거나 조언을 제공해 주지는 않았어. 사실 너무 당연한 거지. 우리에겐 타인의 곤경을 들여다볼 의무도, 그것에 대해 언급할 권리도 없으니까 말야.
그래서 18살 겨울에 내가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10시간의 수술을 거쳐서 이름이 엄청나게 긴 장치를 심장에 겨우 삽입하더라도 언제 어디서 심장박동이 정지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엄마는 별로 놀라지 않았단다. 왜냐하면 그때 내가 일반적인 사람과 다르다고–그것도 아주 부정적인 형태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 생각은 꽤나 오래, 제법 심각하게 진행 중이었어.
내 가슴속 가장 깊숙한 곳에 죽음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는 비극적인 미래가, 그때의 내게는 나쁘지 않게 다가왔단다. 어쨌든 그건 내가 다른 사람과 명백히 다른 존재라고 선명하게 증명하는 징표였으니까. 더군다나 심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문제쯤은 별것 아니니까.
더불어 나는 그런 엉뚱한 상상도 했단다. 내가 감정과 행동의 메커니즘에 이토록 무능한 것이, 심장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내 이 모든 결함이 심장의 문제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물론 의학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이치에 전혀 맞지 않는 사고였지만 엄마는 한동안 그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어. 그건 꽤나 매력적인 가설이었거든.
그래도 다행히 엄마가 성인이 된 후에는 나름대로 꾸준히, 피나게 노력한 덕분에 사정이 좀 나아졌어. 엄마는 타인의 말과 행동, 눈빛, 표정, 동작, 웃음, 불쾌, 조소, 경멸, 질투, 집착, 애정을 집요하게 관찰했어. 끈질기게 학습했고, 셀 수 없이 복기했지. 엄마는 그 지겨운 반복 학습과 암기로 말미암아 내가 속한 집단 내에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일으키지 않는 사람으로 살 수 있었어.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몇 명의 친구를 사귈 수 있었고, 평범한 연애도 두어 번 할 수 있었지.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엄마는 공부를 아주 잘했단다. 내가 내 치명적인 장애를 타인에게 곤란한 형태로 발각당하거나 해부당하지 않고 무사히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건, 내 높은 지능 덕분에 겨우 가능했어. 이렇게 보면 타인에게 질투와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건 그리 나쁜 일이 아닐지도 몰라. 내게서 그 외의 다른 인상을 모두 앗아가 버리니까. 나는 그런 학습 과정에서 끊임없이 내 삶 전체를 되돌아보았지만, 불행히도 내 결함의 뚜렷한 원인을 찾을 수 없었어. 유복한 가정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신체적·정신적 학대라고 할 만한 상황에 놓인 적은 결코 없었거든. 누군가를 심각하게 미워하거나 증오할 만한 일도 없었어.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이 결함은 장애 혹은 질병이라는 단어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거야.
어쨌든 엄마는 그렇게 나름대로 사회에 적응해 갔지만, 앞서 말했듯 결코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을 껴안고 분투하고 있었어. 그 질문이란 대충 요약하면 ‘나는 왜 이러한 장애를 지닌 채로 태어났는가?’가 되겠지. 농담과 진담이 절묘하게 섞인 말투로 “넌 로봇 같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웃는 걸 처음 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넌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과 지겹도록 마주할 때, 다시금 자기혐오의 견고한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웅크리곤 했어. 기독교와 불교, 정신과 진료, 심리치료 및 상담, 소모임, 독서, 명상, 소통에 관한 강연, 자기암시, 사이코패스 테스트, 엄격한 채식주의, 여행, 끝없는 잠, 지속적이고 반복적이고 도전적인 연애, 격렬한 운동, 괴상한 취미. 엄마가 서른이 될 때까지, 이 중 어느 것도 엄마의 질병을 치유해 주지 못했단다.
그래서 너를 낳은 건 내게 일종의 기적이었어. 희한하게도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순탄한 일이었지. 같은 연구소에서 일하던 네 아빠를 만나 물 흐르듯 연애하고, 별 탈 없이 결혼하고, 덜컥 너를 임신해 버린 일은 신의 장난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어. 감정과 행동을 연결하는 회로가 존재하지 않는 나, 죽음을 잉태한 심장으로 겨우 연명하는 나와 결혼을 망설이지 않는 남자가 실존한다니. 게다가 모성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생명을 품게 되다니. 쉰 다섯 살이 된 지금 돌이켜봐도, 너를 만난건 정말 미스터리한 일이었단다. 그리고 한편으로 너의 탄생은 생애 가장 거대한 공포와 맞닥뜨리는 일이기도 했어. 네게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주어야 하는 나는, 정작 사랑을 어떻게 주는지 모르는 한심한 인간이었으니 말이야.
그래도 나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있었단다. 내가 어머니가 된다면, 내 스스로 선택한 고통으로 빚은 네가 태어난다면, 네 따스하고 부드러운 살결에 얼굴을 부비고 네 심장 소리를 듣는다면, 나 역시 네가 태어남과 동시에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하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벅찬 감정이 물밀듯 들어오면, 오래된 댐이 수압을 못 견디고 무너지듯, 철옹성처럼 견고한 내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자연스레 네게 사랑을 속삭이고, 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울고 웃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그건 섣부른 오만이었어. 엄마는 네 존재를 통해 인간의 마음에 관한 중요한 진실 몇 가지를 깨우쳤단다. 감정이란 그 크기가 크고 깊이가 깊을수록 더욱 표현하기 힘들다는 것. 인간은 상대와 거리가 가까울수록 더 머뭇거린다는 것. 엄마는 네게 따스한 어머니가 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지만, 매일이 좌절의 연속이었어. 네 반응과 행동은 늘 내 예측을 벗어났고, 나는 너를 대할 때 줄곧 오답만 골랐다는 자괴감에 매일 밤잠을 설쳤어. 차라리 내 치마폭에 너를 가두어 놓고 네가 질식할 정도로 옭아맸다면, 혹은 네가 내 예상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마다 너를 다그치고 꾸짖었다면 조금이라도 상황이 나아졌을까? 나는 네가 커갈수록 오답을 택하는 것이 두려워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래서 너는 나를 엄마보다는 어려운 학교 선생님처럼 대했던 것 같아.
그렇기 때문에 너는 나보다 네 아빠와 더 친했고, 아빠를 더 사랑했지. 난 그것에 대해 결코 서운하게 생각하진 않는단다. 다만 어느 시점부터 우리 둘 사이에 똬리를 틀고 내려앉아 네가 집을 나갈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던, 그 둔중하고 차가운 침묵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그 사실을 언급할 뿐이야. 네가 열한 살이었고 네 아빠가 불현듯 다른 여성과의 삶을 선택했을 때, 나는 감지할 수밖에 없었단다. 네가 네 아빠를 원망하는 만큼이나 나를 원망한다는 사실을. 네가 네 아빠를 ‘그렇게’ 만든 나를 은밀히, 또 격렬히 미워하고 있음을. 나는 그날 이후로 좁은 집안에서 너와 마주칠 때마다 네 미묘한 눈빛과 불규칙한 호흡을 온몸으로 감각하며, 나와 네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으로 향하고 있음을 직감했어. 그리고 나는 그 직감 앞에서 철저히 무기력했단다.
그렇게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선 우리는 자그마치 12년이나 함께 살았고, 그 시간 동안 우리 사이엔 뾰족한 갈등도, 얼굴 붉힌 다툼도 없었지. 물론 일반적인 부모와 자식 사이라면 있었을 법한 각별한 사랑도 없었지만 말야. 네가 스물네 살 여름에 엄마를 떠난 것을, 엄마는 손톱만큼도 원망하지 않아. 엄마는 네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인이 되어 홀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질 때까지 널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을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해. 그 기나긴 시간 동안 내 심장이 한 번도 멈추지 않은 것 역시 기적이라고 보아도 되겠지.
만약 네가 엄마의 편지를 여기까지 읽고 있다면, 황당하고 우습겠다 싶어. 죽은 후에야 보잘것없는 몇 줄의 편지로 절절한 사랑 고백을 하는 꼴이라니.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너를 조금 더 황당하게 만들어보고 싶네. 머리가 기막히게 좋은 네 엄마는 너에 대해 많은 것을 기억한단다. 네가 머물렀던, 반짝거리는 별들과도 같았던 장면들을 아직도 더듬고 있단다.
널 처음 목욕시켰을 때 통통한 애벌레처럼 꼬물거리던 손가락과 발가락, 네가 처음 달렸던 공원에서 네가 지나간 후 힘없이 누워 있던 푸른 잔디 위의 미묘한 흔적, 네가 네 몸보다 큰 가방을 메고 처음 초등학교에 등교할 때 위태롭게 찰랑이던 가방끈, 수줍게 내밀던 스케치북의 그림(그때 너는 엄마의 눈을 그리지 않고 안경만 그렸지), 조심스럽게 고양이를 쓰다듬던 너의 손(사실 나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었어), 처음 교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섰을 때 자신의 모습이 만족스럽지 않아 아무도 모르게 샐쭉해졌던 입술, 정말 우연치 않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둘이서 간 영화관에서 최대한 조용히 울기 위해 얼굴을 살짝 왼쪽으로 돌리던 네 모습,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남자친구와 둘이서 여행을 가기 위해 후배들 MT에 따라간다고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할 때 네 그 떨리던 눈빛, 엄마가 밤늦게 퇴근할 때마다 네가 어두운 거실을 밝혀 놓았던 부엌의 전등(이건 내 착각일 수도 있어), 네가 엄마와 따로 살기 위해 집에서 나가던 날, 그래도 못내 무언가 마음에 걸렸는지 머뭇거리던 너의 흰 운동화.
나는 보통의 인간처럼 너를 사랑했고, 매 순간 네가 그리웠단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의 인간이 될 수 없었던 나 자신을 매 순간 증오했어. 너는 앞으로 나를 미워할 수도 있고, 나에 대해 아무런 것도 떠올리지 않을 수도 있고, 때로 나를 그리워할 수도 있겠지. 이 편지를 읽은 너에게 엄마가 바라는 건 이해도, 사랑도 아닌, 용서야. 용서가 그리 간단치는 않은 일이지만, 살면서 문득 이 편지를 떠올릴 때마다 엄마를 아주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용서할 수 있다면, 엄마는 그것밖에 더 바라는 건 없어.
아, 그리고, 편지를 마치기 전에 네게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어. 내가 머물던 아파트의 침실 옷장 맨 밑 서랍을 열어 보면, 내가 뜨개질한 털실 꽃다발이 있을 거야. 그 꽃다발을 고(故) 탁윤아 학생의 부모님께 전해주면 좋겠어. 그리고 전달하면서 내가 사죄의 뜻으로 그걸 준비했다는 걸 탁윤아 학생의 부모님께 말씀드려주면 좋겠구나. 아주 어려운 부탁이지만, 엄마의 마지막 소원이니 꼭 좀 들어주었으면 해. 염치없지만 이렇게 부탁할게.
사랑하는 내 딸 윤재야, 편지를 끝까지 읽어줘서 고마워.
엄마는 이제 너를 위해 조용히 기도할게.
2032년 10월 27일
From 정은선 / eunjn@ve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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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모니터에 생뚱맞게 띄워진 엄마의 편지를 읽고서 그만 웃고 말았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그 웃음은 엄마를 향한 조소도, 편지가 우스워서 나온 웃음도 아니었다. 거의 유언에 가까운, 딸에게 쓰는 유일한 편지조차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남긴다는 발상이 너무나 엄마답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터져 나온 웃음이었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난생처음으로 엄마가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웃음에는 AI의 기능적 우수성에 대한 감탄도 섞여 있었던 것 같다. AI가 이토록 감정적이고 가슴 절절하고 문학적인 편지도 쓸 수 있다니. 편지에도 쓰여 있지만, 아마 내가 스물네 살에 집을 나온 후 홀로 남은 엄마는 외로움에 몸서리쳤을 것이다. 엄마는 외로움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마음 맞는 동료나 절친한 친구가 없을뿐더러 가까이 지내는 친지도 없는 엄마는 자연히 AI와 대화하기–VIREN은 현재 범용화된 AI 중 가장 대화에 특화된 모델이다–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VIREN이라는 AI의 뛰어난 성능과 감수성에서 편지 남기기의 가능성을 발견했을 것이다.
아마도 엄마는 자신의 심장이 언제 멈출지 모른다는 생각에, 매년 AI로 편지를 써왔던 것 같다. 수년간 매일 같이 엄마가 AI와 나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엄마가 사용한 AI에는 차츰 무서운 속도로 데이터가 축적되었으리라. 그 과정에서 엄마와 VIREN이 공동으로 작업한 편지는 형식적으로는 점점 정교해지고, 내용 면에서는 문학적 표현력과 감수성을 갖추며 발전해나갔을 것이다. VIREN은 딸에게 어떤 감정과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엄마를 친절하게 이끌어주었을 것이다.
엄마의 편지를 읽고 눈물이 나오지 않은 건, 엄마의 진심을 의심해서가 아니었다. 편지의 내용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해서도 아니었다. 사실 나는 엄마가 우려하는 것과 달리,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엄마의 기질과 결함, 삶의 궤적에 대해 내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었던 나는 (편지의 표현에 따르자면) 엄마의 ‘장애’를 원망한 적은 없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엄마와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와 버린 것은 엄마가 편지에서도 언급했듯 사실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아버지의 상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조숙했던 나는 엄마가 나를 몹시 어렵게 대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인지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서 기묘한 거리감을 느꼈고, 그래서 엄마와 나 사이에는 유대감이 부족했다. 때문에 그 유대감을 자상하고 다정한 아버지로부터 겨우 벌충하고 있던 나는 아버지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에 좌절했다. 위태롭지만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가정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던 우리 집은, 아버지가 집을 떠난 후로 엄마와 나 사이에 놓인 침묵과 공백을 안고 조금씩 가라앉아 갔던 것이다.
엄마와 나는 아주 오랫동안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과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껴안은 채, 망연히 서로를 바라보기만 하며 살아왔다. 엄마가 내게 남긴 이 유일한 편지는 그 기나긴 시간 동안 우리 사이에서 수없이 메아리쳤을 질문들에 대한, 엄마 나름의 해답이었다. 그래서 나는 편지를 읽는 내내 후련했다. 슬픔을 느끼거나 감동하기보다는 안도했다. 스스로를 거듭 다그치며 끊임없이 자책하던 엄마의 시간들이, 이 편지로 인해 불완전하게나마 매듭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나는 어떤 대목에서 갑작스레 멈춰 서고 말았다. 선로에 뛰어든 산짐승 때문에 열차가 갑작스레 멈춰 서듯, 나는 편지의 마지막 단락을 읽고는 일종의 이물감 혹은 단절감을 느끼며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아 그리고, 편지를 마치기 전에 네게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어. 내가 머물던 아파트의 침실 옷장 맨 밑 서랍을 열어 보면, 내가 뜨개질한 털실 꽃다발이 있을 거야. 그 꽃다발을 고(故) 탁윤아 학생의 부모님께 전해주면 좋겠어. 그리고 전달하면서 내가 사죄의 뜻으로 그걸 준비했다는 걸 탁윤아 학생의 부모님께 말씀드려주면 좋겠구나. 아주 어려운 부탁이지만, 엄마의 마지막 소원이니 꼭 좀 들어주었으면 해. 염치없지만 이렇게 부탁할게.”
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부탁인가. 자신의 딸에게 어떻게 이런 일을 내맡길 수 있을까. 편지의 마지막을 장식한 이 단락을 읽고 극심한 당혹감이 들었다. 게다가 엄마의 편지는 이 마지막 단락 이후 매우 급하게 마무리되었다. 마치 편지 앞부분의 그 감상적인 내용들이, 모두 이 마지막 단락을 삽입하려고 마련해 두었던 근사한 제물인 것처럼. 이 당황스러운 부탁을 위한 미사여구에 불과한 것처럼. 엄마는 심장이 정지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내게 무언가를 부탁한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다음 호에 계속)
필자 소개
영화를 전공했고, 영화 시나리오와 소설을 오가며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2025 SF스토리 공모전 수상을 계기로 SF의 세계관과 인물 서사에 관심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