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세상에 없던 단백질을 만들어 신약을 개발하고자 하는 화학자가 있다. 한국 인공지능(AI) 기반 신약 개발 분야의 선구자, 석차옥 서울대 화학과 교수다. 석 교수는 6년 전, 갤럭스란 회사를 설립했다. 교수이자 대표인 그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갈지, 6월 17일을 따라가 봤다.
[05:30 AM] 이르게 시작하는 바쁜 하루
회사 대표로서 업무 점검
“일이 많은 날에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해요.” 6월 17일, 석차옥 서울대 화학과 교수는 새벽 5시 30분에 알람을 맞췄다. 눈을 뜨자마자 오전에 예정된 갤럭스 상장주관사 실사 발표 자료를 살핀다. 갤럭스는 석 교수가 2020년, 화학과 제자들과 함께 설립한 인공지능(AI) 기반 신약개발 기업이다.
석 교수는 계산화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산화학이란 분자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컴퓨터 계산으로 이해하고 예측하는 화학 분야다. 석 교수는 “당시엔 이론화학이라 불렀는데 현재는 계산화학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론과 계산을 통해 분자가 어떤 힘을 받고, 어떻게 움직이며, 어떤 구조를 만들고,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 학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의 근본적 원리를 찾는 데 관심을 가졌던 석 교수의 호기심과 어울리는 분야였다. 석 교수는 박사 학위 취득 후 생체 분자 연구를 시작했다. 생체 분자를 이해하면 분자의 기능을 이해할 수 있고, 분자의 기능을 이해하면 생명 현상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능이 잘못됐을 때 생기는 질병과 치료까지 연구가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다. “단백질 같은 생체 분자는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는 동시에 수십억 년의 진화를 거쳐 만들어진 결과물이에요. 생명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리화학적 접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어요.”
이에 석 교수는 지난 20년 여 동안 물리화학 기반 방법과 생물정보학 기법을 융합하는 연구를 해왔다. 생체 분자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다시 생체 분자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그가 이끈 연구실은 GALAXY(갤럭시)란 이름의 생체분자 구조 및 상호작용 예측 모델을 개발했다. 갤럭시는 단백질의 입체구조를 예측하는 데서 출발한다. 원자 수준으로 구조를 다듬고 단백질과 약물, 단백질과 단백질의 결합을 계산해 새로운 단백질까지 설계하는 프로그램이다.
석 교수는 화학계 AI 연구의 선구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단백질처럼 거대하고 복잡한 생체 분자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선택한 도구가 AI였다. 갤럭스 설립 이후 AI를 통해 직접 신약 분자를 설계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계산화학에서 출발해, 분자와 생명 현상을 깊이 이해하려는 ‘방향 설정’이 결국에는 신약 개발 연구로 이어진 것이다.
[07:30 AM] 정기 조찬회의
국가AI전략위 과학분과회의
석 교수는 국가AI전략위원회의 과학분과를 이끌고 있다. 과학분과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정기 조찬회의를 진행한다. 모두가 바쁘다 보니 함께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아침 일찍 회의가 시작된다. 석 교수는 서울역 인근 서울스퀘어 회의실로 향한다.
“오늘은 과학기술 연구에 그래픽처리장치(GPU)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건지, 또 기초과학 연구에는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에 관해 논의했어요.” GPU는 AI 연구에 필수적인 자원이다. 석 교수는 매주 분과회의 안건이 달라지며, 안건의 유형 및 종류에 따라 어느 부처와 함께 하는지도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이날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 관계자들이 온·오프라인으로 함께 했다. 한국 AI 선구자 중 한 명으로 AI 과학정책에 참여하는 것이다.
회의가 끝난 뒤 석 교수는 제자인 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와 함께 이동했다. 두 교수는 생체 분자 연구나 바이오 분야에서 어떤 AI 모델이 필요할지부터 최근 거대언어모델(LLM)이 발전하는 양상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LLM은 기본적으로 추론 모델인데, 이 추론 모델이 에이전틱 AI(사용자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AI) 개발에 쓰이고 있어요. 앞으로 과학 연구의 많은 부분에서 에이전틱 AI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오늘날 AI는 과학기술 연구자들에게 가장 뜨거운 화두다.
[09:30 AM] 회사 상장주관사 회의
단백질 설계 AI, 신약으로 이어질까
오전 9시 30분, 갤럭스 관악 본사 회의실에 상장 주관사 관계자들이 모여 있었다. 갤럭스는 AI로 신약 후보 물질을 설계·발굴하고, 그것이 실제 치료제 후보가 될 수 있는지 실험으로 검증하는 회사다. 석 교수는 “단순히 기존 AI 도구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생체 분자를 더 잘 이해하는 AI 모델을 만들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원하는 기능의 단백질 및 분자를 설계한다”고 설명했다.
단백질 설계란 세상에 없는 단백질을 만드는 일이다. 단백질은 아미노산 분자가 한 줄로 이어진 1차원 서열 구조로 만들어지는데, 실제 몸속에서는 이 서열이 수백 번 접혀 3차원 덩어리 모습으로 존재한다. 2024년 구글 딥마인드 연구팀은 3차원의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알파폴드’ AI를 개발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단백질 설계는 단백질 구조 예측과 맞닿아 있어요. 1차원 서열이 어떻게 3차원 구조가 되는지 이해하는 게 구조 예측이라면, 원하는 3차원 구조와 기능을 먼저 정한 뒤 그것을 만들 수 있는 1차원 서열을 찾아내는 게 구조 설계죠.” 즉 특정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인식하거나, 특정 면역반응만 조절하는 새로운 단백질 아미노산 서열을 설계해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갤럭스에는 화학자, 컴퓨터과학자 외에도 생물학자, 약학 연구자, 구조생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모였다.
갤럭스는 현재 상장을 앞두고 있다. 회사를 증권시장에 공개하기 전에, 회사의 기술력과 상태가 어떤지 꼼꼼하게 거치는 과정이 필요하다. “관계자들이 기술적인 질문을 많이 했어요. 예를 들어 회사가 가진 AI 분자 기술이 실제 성공적인 치료제 개발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새로운 분자를 설계한다면 어떤 조건을 만족해야 신약 개발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매우 구체적으로 묻고 대답했어요.”
[02:30 PM] 연속 연구 회의 시작
바이오AI부터 백신 연구까지
오후 일찍 석 교수는 서울대로 이동했다. 석 교수는 2022년 설립된 서울대 바이오AI연구단의 부단장을 맡고 있다. “현재 연구단 내에서 화학과, 생명과학부 그리고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이 함께 공동연구를 하고 있어요. 면역세포가 변화하는데 미치는 유전자를 살펴보고 있죠.” 석 교수는 오후 2시 화학과와 생명과학부 연구원들과 함께 연구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저는 생명과학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이해한 개념이나 용어가 생명과학자의 관점에서도 맞는지 확인해야 해요.” 석 교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하는 공동연구일수록 생각을 나누고 정리하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돌아보면 아주 간단한 내용이더라도 서로 다른 분야의 언어를 연결하는 일은 쉽지 않아요. 매번 회의를 할 때마다 꼼꼼히 메모하죠.”
4시에는 연구실 학생들과 갤럭시몰(GalaxyMol) 프로젝트 회의가 있었다. 갤럭시몰은 석 교수 연구팀이 개발하고 있는 생체 분자 AI 파운데이션 모델이다. 석 교수는 “2023년 알파폴드3가 발표된 뒤, 알파폴드의 한계를 극복하는 모델을 직접 개발해 보고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갤럭시몰 프로젝트는 최근 과기부에서 GPU 지원 과제에 선정돼 연구의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이후 5시 30분에는 백신 항원 설계 전략에 관한 논의가 이어졌다.
[07:30 PM] 컴퓨터 앞에서 저녁 식사
끝없이 생각하고 질문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컵밥과 바나나로 저녁 식사를 해결한 석 교수의 업무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여름방학에 학부생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라 관련해 준비도 필요했고, 제자들에게 부탁받은 추천서도 썼어요. 또 예정된 강연이 있어 발표 자료를 준비해야 했죠.” 이른 아침 시작된 하루의 일과가 마무리된 시각은 밤 10시. 유독 길었던 하루였다.
“사실 하루 동안 아무리 바빠도 ‘생각’하는 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요. 어떻게 하면 단백질 설계 AI를 더 발전시킬 수 있을지, 또 어떻게 하면 신약 개발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지,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인재와 자원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에 관한 생각이죠. 이 질문들은 잠들기 전까지 이어졌고 또 내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계속 이어 나갈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