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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평화를 위한 화학 | 2. 암 병동에 남은 뜻밖의 화학적 유산, 머스터드 가스

▲milly, Bundesarchiv(W)

 

편집자 주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은 요즘,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위한 과학의 역할을 고민하게 됩니다. 전 육군사관학교 교수이자 한국 육군 장교로서 국가 안보를 위해 연구해온 정근홍 서강대 화학과 교수가 치열하게 평화를 준비하는 군사 분야 화학의 세계를 소개합니다.

 

 

겨자 냄새에 숨겨진 치명적 고통

 

1917년, 1차 대전 중 특히 치열했던 이프르 전선의 영국군 진지에 떨어진 독일군 포탄은 뭔가 이상했다. 굉음과 함께 떨어져 화염을 일으키며 터지는 일반적인 고폭탄과 달리 아무것도 보이거나 들리지 않았다. 포탄이 터지며 독한 겨자 냄새 같은 역한 가스가 참호 안팎에 퍼졌을 뿐이다. 하지만 수 시간이 지나자 이 가스에 노출된 영국군 병사들은 눈이 부어올라서 앞을 볼 수 없게 됐고, 피부 전체에 큰 수포도 솟았다. 가스에 노출된 피부는 2도 화상처럼 벗겨졌고, 흡입한 병사들은 기관지 점막이 벗겨지며 극심한 기침과 호흡 곤란을 일으켰다. 


독일군이 투하한 이 역한 냄새의 화학무기가 바로 머스터드 가스, 화학명은 ‘비스(2-클로로에틸) 설파이드’이다. 겨자 냄새에서 이름을 따 머스터드 가스, 또는 포탄에 그려진 노란 십자 표식에서 옐로크로스라고도 불렸다. 이 1917년 7월 12일 밤의 전투에서 영국군 병사 약 2500명이 부상을 입고 87명 이상이 사망했다. 


머스터드 가스가 1차 대전 최초의 화학무기는 아니었다. 약 2년 전인 1915년부터 포스겐, 염소 가스가 전선 각지에서 쓰였다. 사망률은 더 빨리 퍼지고 폐를 직접 공격하는 이 화학무기들이 더 높았다. 하지만 부상자들의 고통은 머스터드 가스가 압도적이었다. 가스에 노출돼 시력을 잃고 눈을 가린 병사들은 앞 사람을 잡고 줄지어 병원에 갔다. 이때 영국 정부의 전쟁 기록화 의뢰를 받은 화가 존 싱어 사전트는 이 참혹한 광경을 ‘가스 공격(Gassed)’라는 작품으로 남겼다.


그런데 이 잔혹한 화학무기의 이야기는 1차 대전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독극물은 30여 년 후, 뜻밖에도 인류 최초의 항암제 개발로 이어졌다. 이제 머스터드 가스가 전쟁터의 공포에서 현대 항암 화학요법의 서곡으로 변신하는 경이롭고 역설적인 여정을 따라가 보자.

 

▲John Warwick Brooke (,W)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 프랑스 솜의 전선에서 기관총을 정비 중인 영국군. 독일군의 염소 가스 공격을 피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있다.

 

DNA 이중나선을 옭아매는 머스터드 가스

 

머스터드 가스는 순수한 상태에서 무색의 유성 액체이며, 상온에서 서서히 증발한다. 가스라는 단어가 붙었지만 액체나 미세한 가루를 액화 가스의 압력으로 분사하는 에어로졸에 가깝고, 여기에 불순물이 섞이면 겨자색을 띠며 겨자 냄새가 난다. 


머스터드 가스와 기존 화학무기의 근본적 차이점은 지연 효과다. 이 가스는 인체에 노출되고 수 시간 후에 증상이 나타난다. 흡입 즉시 질식시키는 염소 가스나 독가스의 원료인 포스겐과 머스터드 가스의 가장 큰 차이다. 따라서 이 가스에 오염된 사람들도 이 사실을 모른 채 활동하며 가스를 확산시킬 수 있고, 인체가 돌이킬 수 없는 상태까지 손상되고서야 자신이 오염된 사실을 알게 된다. 머스터드 가스가 1차 대전 동안 가장 조용하고 두려운 화학작용제로 악명을 떨친 이유가 바로 이 지연 효과다. 따라서 머스터드 가스는 방독면만으로는 방어할 수 없다. 지속력도 강해서 살포된 토양이나 구조물에 수일~수주간 잔류한다. 


머스터드 가스를 분자 수준에서 살펴보면, 이 가스의 독성은 알킬화 반응의 결과인 DNA와 교차 결합이다. 알킬화 반응은 분자 구조에 알킬기, 즉 탄소 구조체가 붙는 반응이다. 인체에 머스터드 가스가 들어오면 아주 반응성이 높은 중간 물질을 형성해, DNA의 구아닌 염기 분자 속 질소를 알킬화한다. 결정적으로, 이 알킬화 DNA가 다른 DNA와 교차 결합을 일으킨다. 이 교차 결합이 DNA 복제를 물리적으로 차단해 세포 분열이 멈추고, 세포 사멸을 유도한다. 머스터드 가스가 DNA를 직접 공격하는 발암물질인 것이다. 피부의 기저층, 골수, 각막처럼 빠르게 분열하는 부위의 세포가 이 가스에 특히 취약하다. 1차 대전에서 관찰된 수포, 각막 손상, 백혈구 감소가 모두 이 메커니즘으로 설명된다.

 

▲Imperial War Museum(W)
미국의 화가 존 싱어 사전트는 영국 등 유럽에서 주로 활동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 정부의 전쟁 기록화 의뢰를 받고 유럽 전선을 방문한 사전트는 자신이 본 화학 무기의 참상을 ‘가스 공격(Gassed)’이라는 작품에 담았다.

 

세포의 독에서 찾아낸 암 환자의 약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화학무기의 사상자는 약 130만 명(사망자 약 9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프르 전투 후로는 화학무기 사상자 중 머스터드 가스가 약 70~80%를 차지할 정도로 머스터드 가스가 널리 사용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프르 인근의 베르빅에서 영국군의 머스터드 가스 공격에 노출돼 일시적 실명을 겪은 독일군 중에는 당시 상병이었던 아돌프 히틀러도 있었다. 자신의 책에서 이 경험을 상세히 쓴 히틀러는 많은 끔찍한 악행을 저질렀음에도,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럽 전장에서 화학무기의 전술적 사용을 명령하지 않았다. 


1차 대전 후에도 머스터드 가스 연구는 멈추지 않았다. 1925년에 발효된 제네바 의정서는 화학무기, 생물학무기의 전시 사용을 금지했으나 연구와 비축은 금지하지 않았다. 이 의정서에 서명한 일본은 중국에서,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에서 화학무기를 실전에 사용했다.
머스터드 가스의 반전은 1939년의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에 찾아왔다. 1942년에 미국 과학연구개발국은 이 가스의 유사 물질인 질소 머스터드의 생물학적 효과에 대한 기밀 연구를 미국 예일대 의대에 의뢰했다. 이 은밀한 연구가 인류에게 항암 화학요법의 문을 열었다. 


미국 예일대 약리학과의 루이스 S. 굿맨, 앨프리드 길먼은 질소 머스터드의 독성 연구에서 놀라운 현상을 관찰했다. 토끼의 전신에 질소 머스터드를 투여하자 림프 조직의 면적과 백혈구 수가 현저히 축소된 것이다. “질소 머스터드가 림프 조직, 백혈구같이 분열 속도가 빠른 세포를 선택적으로 파괴한다면, 이와 같은 원리로 암 세포도 공격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과학적 가설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굿맨과 길먼은 같은 대학 해부학과의 토마스 도허티와 협력해, 암 종양을 이식한 생쥐에 질소 머스터드를 투여했고 단 두 차례 투여로 종양이 크게 축소된 것을 확인했다. 이 연구팀은 예일대 의대 외과의 구스타프 린드스코그와 함께 항암 화학요법 최초의 인체 임상시험도 계획했다. 1942년 8월 27일에 실시한 이 임상시험의 첫 피험자는 미국 코네티컷주 출신의 47세 공장 노동자였다. 그는 백혈구의 일종인 림프구 세포가 악성으로 바뀌는 혈액암인 악성 림프종 환자로, 머리를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방사선 치료도 실패한 후였다. 군사 기밀이어서 ‘물질 X’라고만 기재된 질소 머스터드는 이 환자의 정맥에 10일간 투여됐고, 놀랍게도 거대했던 종양은 만져지지 않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사상 최초로 인체의 암을 화학물질로 치료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암 세포가 내성을 얻으며 종양이 다시 성장해, 입원 96일 만에 피험자는 사망했다. 이 한 명의 환자에게서 관찰한 질소 머스터드의 종양 치료 및 암 세포의 내성 출현 과정은, 이후 수십 년간 항암 화학요법의 중요한 초기 정보가 됐다. 전시 기밀로 분류된 이 연구는 전쟁이 끝난 1946년에야 기밀이 해제되면서 ‘미국의사협회지(JAMA)’에 발표됐고, 질소 머스터드를 직접 계승한 물질인 무스틴은 정맥 주사형 항암제 최초로 1949년에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American Chemical Society
노비촉을 포함한 신경 작용제의 독성과 주요 특성을 인공지능(AI)과 양자화학 계산으로 예측한 필자의 연구가 표지 논문으로 게재된 미국 화학회의 학술지 ‘독성학 화학 연구(Chemical Research in Toxicology)’의 표지. 더 안전한 사회를 위한 화학 연구가 정반대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필자는 항상 경계하고 있다.

 

독과 약의 딜레마를 넘어설 화학적 여정

 

머스터드 가스에서 파생된 질소 머스터드, 질소 머스터드에서 이어진 무스틴 이후로 클로람부실, 멜팔란, 사이클로포스파마이드 등 다양한 항암 유도체가 개발됐고, 현재까지 복합 항암요법의 핵심 요소를 맡고 있다. 이 일련의 연구·치료 과정의 근본적 역설은, 전쟁 무기인 머스터드 가스와 치료 수단인 질소 머스터드의 화학적 원리가 서로 같다는 점이다. 이 둘의 차이는 용량과 표적뿐이다. “독과 약의 경계는 용량이 결정한다”는 16세기 독일의 의사이자 연금술사 파라켈수스의 원리가 가장 극적으로 실현된 사례인 셈이다.


머스터드 가스는 화학의 본질적 양면성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같은 분자가 인류를 고통에 빠뜨릴 수도, 암 환자를 살릴 수도 있는 이 양면성은 화학 전체에 적용된다.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는 하버-보슈 공정으로 합성 비료를 발명해 191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지만, 독일의 1915년 이프르 염소 가스 공격과 머스터드 가스 생산 등을 주도하기도 했다. 독일 최초의 여성 화학 박사인 그의 아내 클라라 이머바르는 남편의 화학무기 연구를 반대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화학의 이 양면성은 현재도 다르지 않다. 필자의 연구 분야인 인공지능(AI) 기반의 화학물질 예측과 양자화학 계산이 그 중심에 있다. 필자의 연구팀이 개발한 화학물질의 독성을 예측하는 AI 기술, 금속-유기 골격체(MOF) 기반의 화학작용제 분해 물질은 모두 현대 사회의 안전과 방호에 필수적인 과학이지만, 이 연구가 정반대의 목적에 악용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OPCW 과학기술자문위원으로서 과학기술의 올바른 사용을 역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10여 년 전 벨기에 이프르의 참호에 퍼진 겨자 냄새는 오늘날 전 세계의 암·종양 병동에서 전혀 다른 유산을 남기고 있다. 코네티컷 출신의 이름없는 공장 노동자께서는 최초의 항암 화학요법 피험자로서 현대 종양학의 문을 열었다. 결국 종양이 재발해 그는 96일 만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몸이 독은 약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면서 지금까지 무수한 암 환자가 더 나은 치료의 희망을 찾게 됐다. 독에서 약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머스터드 가스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근홍
서강대 화학과 교수,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과학자문위원회(SAB) 자문위원. 육군사관학교 물리화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인공지능(AI)과 양자기술을 활용한 화학무기 후보 물질의 예측 및 분석 연구로 더 안전한 사회를 위한 화학 연구에 힘쓰고 있다. doas1mind@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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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과학동아 정보

  • 정근홍 서강대 화학과 교수
  • 에디터

    라헌
  • 디자인

    박주현,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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