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과학 기자·저술가인 제임스 글릭이 ‘인포메이션’을 쓰던 2010년은 인터넷 사회가 성숙기를 맞이한 때였다. 이때부터 초고속 인터넷과 검색 엔진 기반의 포털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사용자 생산 콘텐츠(UCC)가 미디어의 큰 축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2010년대부터 인터넷이 비로소 2026년의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이자 공간으로서의 모양새를 갖춘 것이다. 책 ‘인포메이션’은 이 정보 홍수의 시대와 함께 등장했다.
편집자 주
‘인포메이션’은 정보가 공기처럼 일상적 존재가 되기 시작한 2011년, “대체 정보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 책이다. 이 질문에 답하는 저자의 과학적 추적은 인공지능(AI)이 보편화되어 가는 2026년에도 유효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인포메이션’은 정보를 수집, 저장, 처리, 전달하는 전체 기술을 아우르는 정보과학기술(ICT)과, 정보과학의 가치가 구축되는 거대한 맥락을 따라간다. 이 맥락의 중심은 ‘정보 전달(메시지와 의미의 전이)’이란 행위의 인류사적 역할이다. 책의 초반부에서는 정보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저자의 큰 그림을 놓치기 쉽다. 따라서 이 책은 반드시 독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정보가 어떻게 문명의 중심으로 자신의 지위를 확보해 나가는지”를 반문하며 읽어야 한다. 지금부터 다룰 내용은 이 반문을 도울 이정표들이다.
인포메이션ㅡ가이드맵
의의 이 책은 북소리와 문자, 컴퓨터, 엔트로피, 유전자, 인터넷을 한 흐름으로 엮어 정보가 인간의 소통과 사고에 끼친 영향을 보여줍니다. 정보 과잉 시대에 정보를 현명하게 활용할 통찰력을 키워주는 책입니다.
추천 POSTECH 권장도서 100선
난이도 매우 어려움 정보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분석하는 1~6장을 끈기 있게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 부분에서 정보의 의미와 역할을 능동적으로 질문하며 읽으면, 정보와 정보이론이 과학과 어떻게 결합해 인류의 시야를 확장하는지를 통찰한 이 책의 본질을 스스로 이해하며 완독할 수 있습니다.
더 읽기 ‘이노베이터’, 월터 아이작슨: 정보 기술의 발달사를 에이다 러브레이스, 앨런 튜링, 빌 게이츠, 스티브 워즈니악,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과 이들 간의 협업의 역사로 구성한 책입니다.
‘생명 설계도, 게놈’, 매트 리들리: 유전자를 생물의 몸을 만드는 정보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인포메이션’의 중요한 축인 생명 정보 개념을 보다 깊이 읽을 수 있습니다.
제임스 글릭 지음|김태훈, 박래선 옮김|김상욱 감수|동아시아|656쪽|2만 5000원
의미와 결별한 정보
정보란 무엇일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보란, 활용 가치가 있는 ‘지식’, 혹은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의 ‘의미’다. 그러나 20세기 미국의 수학자이자 정보이론의 창시자로 불리는 클로드 섀넌은 정보의 개념에서 과감하게 ‘의미’를 제거했다. 정보란 어떤 구체적 내용이 아니라, “신호가 도달하기 전, 수신자가 직면한 불확실성의 수치” 또는 “예측 불가능성의 정도”라는 것이다. 그의 정보이론은 어떤 현상이 일어날 확률이 낮을수록, 즉 의외의 정보일수록 그것이 전달하는 정보량이 커진다는 통찰을 담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의 6~7장, 9장에 담긴 책 전체의 핵심이다.
결국 “정보는 (그것이 내포한) 의미와 완전히 무관하다”는 섀넌의 이 정의는 ICT 역사에서 가장 미묘한 발견이다. 섀넌의 파격적 접근은 당대의 수많은 학자들에게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그는 논문과 강연에서 계속 이 발견의 의미를 강조해야만 했다.
이런 정보의 정의는 두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먼저 정보량은 정보를 접하는 사람의 사전 지식이나 상태와 밀접하고, 정보 내용과는 무관하다. 즉 용의자 A, B, C 중 범인 둘을 찾는 경우에, “A는 범인이 아니다”라는 사전 지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산출하는 정보량은 다르다. 각자 인지한 사실에 따라 불확실성의 수치가 달라서다. 두 번째로 계의 정보량은 계의 물리적 상태를 기술하는 수준에 따라 다르게 나온다. 예를 들어 주어진 기체의 정보량을 산출할 때 분자, 원자, 쿼크 중 어느 수준에서 기체를 다룰지에 따라 정보량이 달라진다.
섀넌의 정보이론이 정보에서 의미를 제거함으로써 도달한, 정보의 깊은 함의는 이 책 곳곳에 배경처럼 스며 있다. 정보의 본질은 의미가 아니라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기호들을 처리, 연산하는 ‘메타 구조’이자 ‘메타 인지’라는 것이다. 2026년의 시점에서 이 통찰은 다음의 질문을 제기한다. AI는 인간의 사유를 흉내 내는 장치로 한정될 수 있을까?
정보이론의 관점에서 AI의 본질은 모든 ‘사고 형태’를 담을 수 있는 보편적 계산 장치에 가깝다. 만약 인간 감정을 정보라는 메타 인지로서 모델링, 인코딩하는 체계가 발명된다면, AI는 감정마저 완벽히 구현할 것이다. 그때는 우리 인간의 본질은 개별성이 아니라, 그런 개별성을 저장, 전송하는 보편적 장치라고 인식하게 될 수도 있다.
의미를 벗어나, AI로 향하는 정보
의미를 단순화하는 정보 변환, 기호로 고정되는 문자 정보가 이 과정의 핵심이다. 정보를 연산 가능한 숫자로 추상화하는 수학의 잠재력은 해석기관을 거쳐, 이 정보를 자유자재로 조작, 연산하는 인공지능(AI)로 입증되고 있다.

기호부터 연산까지, 정보의 여정
이 책의 전반부는 정보가 무엇인지에 집중한다. 특히 의미와 붙어 있던 ‘정보의 뼈대’를 추상화하고 수학적으로 다루게 된 인류의 여정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그 전형적 예가 1장에 나오는 아프리카의 ‘말하는 북’과 ‘모스 부호’다. 아프리카 부족이 사용한 말하는 북은 고음, 저음 같은 단순한 성조로 복잡한 언어적 의미를 전달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언어 구조에 엄청난 ‘잉여성’과 보완을 더했다. 예를 들어 ‘달’ 대신 ‘땅을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긴 표현을 써서 소리의 왜곡과 소음을 극복한다. 이것은 ‘말하는 북’에 이미 현대 정보이론의 핵심 응용 분야인 오류 정정 코드의 발상, 그리고 정보 압축의 가능성이 내재했음을 보여준다.
2장은 소리 정보에서 문자 정보로의 이행을 다룬다. 말하는 순간에 휘발되는 소리를 기호로 고정하는 문자가 발명되자, 인류는 자신의 생각을 객관적 대상으로 바라보고 생각 자체를 생각하게 됐다. 사물을 범주화하고, 이 범주화 자체를 연구하는 정교한 추상적 작업의 핵심 수단이 문자다. 수학의 발전도 이 추상화 과정과 궤를 같이한다. 의미에 단단히 묶여 있던 정보가, 문자라는 매개체를 거쳐 독립하는 과정이야말로 인류가 의미를 넘어 메타 인지를 다루는 문명으로 나아간 여정이다.
문자와 수학은 정보의 추상화를 가능하게 했고, 컴퓨터는 이 추상화된 정보의 처리 방식을 혁신했다. 4장은 찰스 배비지의 차분기관과 해석기관, 그리고 최초의 프로그래머인 에이다 러브레이스를 통해 “인간의 지적 행위를 수학적 코드로 포착할 방법”을 살펴본다. 배비지의 해석기관을 접한 러브레이스는 음악이나 대수학 논리를 기호로 다룰 수 있다면, 메타화된 이 작업을 기계가 스스로 처리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인간의 복잡한 행위나 퍼즐 풀이를 ‘정보의 틀’로 파악하고, 그 틀 속의 콘텐츠를 기계로 조작하는 메타적 연산의 시대까지 내다본 것이다.
6장은 여기서 더 나아가 명제를 숫자로 표현하는 버트런드 러셀의 기호논리학을 다룬다. 명제도 숫자로 표현된다면 연산 가능하며, 따라서 이 명제를 컴퓨터가 실행할 수 있다. 이것은 인공신경망 등장 이전에 제안된 AI이다. 글릭은 정보가 기호논리학, 수학의 완결성 문제로 이어지는 이 과정을 매우 매끄럽게 풀어낸다. 이처럼 명제가 숫자로 표현 가능하다는 사실은, 이 책에서 ‘정보’의 정의 다음으로 증요한 통찰이다.
과학이 밝힌 정보, 정보가 넓힌 과학
이 책 중반부터 정보과학과 접하는 과학의 핵심은 물리학이다. 글릭은 추상적 정보와 열역학적 물리량이 연결되는 맥스웰의 도깨비, 클라우지우스의 열역학 법칙 등을 살펴보며 정보과학과 물리학의 밀접한 관계를 빠르게 구축해 낸다. 9장에서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엔트로피의 정의를 플러스(+) 부호로 제안했다가, 루돌프 클라우지우스가 제안한 마이너스(-) 부호로 의견을 바꾼다. 이것은 역학적 일로 전환 가능한 열의 유용성보다 ‘무용성’에 주목한 상징적 장면이다. 이 엔트로피 정의는 계의 ‘무질서 정도’, 더 나아가 정보가 함축하는 ‘의외성’과 이어진다.
현대 물리학의 지배적 관점에 따르면 섀넌의 정보 엔트로피와 통계물리학의 열역학 엔트로피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컴퓨터 메모리에서 1비트의 정보를 완전히 지울 때, 물질세계에서는 반드시 최소한의 미미한 열이 방출돼 외부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는 란다우어 원리가 이 동일성을 가장 명확히 보여준다. 따라서 추상적인 정보 조작은 물질세계의 에너지 흐름과 맞물려 있다. 한편 이 책은 정보과학이 물리학에 통합되는 흐름을 강조하기 위해, 2011년 무렵의 기술적 상황에서 양자정보, 양자 순간이동 등도 단편적이나마 언급한다.
10장은 DNA 염기 서열이 규명된 과정을 다룬다. 물리학과 결합한 정보과학이 생명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글릭은 유전 형질의 존재가 학계에 수용되며 생명과 정보과학이 만나는 과정을 정보전달과 인코딩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그 대표적인 예가, DNA의 4가지 구성 염기 A, T, G, C로 20가지 아미노산을 표현하려면 3개의 염기 배열이 필요하다는 ‘트리플랫 코돈’ 개념이다. 유전과 발현이라는 생명 현상의 핵심 과정을 정보과학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다. 이처럼 과학은 정보의 본질과 역할을 선명히 했고, 정보는 과학의 관점과 영역을 확장했다.
정보과학의 시대를 만든 공학적 노력
이 책의 후반부인 12~15장, 에필로그는 전반부에서 재평가한 정보과학의 과학적 위상과 가치를 근거로 정보과학을 사회과학, 인문과학의 맥락까지 연결한다. 12장은 정보에 내포된 패턴, 복잡성, 무작위성을 돌아봄으로써 정보의 ‘의미’가 어떻게 출현해서 정보과학의 영역에 편입될지 간접적으로 모색한다. 정보이론의 정의에서 결별했던 정보의 ’의미’를 다시 탐색하는 것이다. 14장부터는 정보 과잉의 현대 사회를 살펴보고 정보의 편집·검색·선별에 관한 대중의 정보 주권의 문제까지 논의하며 정보화 시대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한다.
정보이론의 수학적·개념적 측면에 비해 정보가 현실 세계에서 구현, 전달되는 공학적 측면은 이 책에서 가볍게 다룬 편이다. 따라서 전신기의 진화, 무선 통신의 태동, 현대 컴퓨터의 메커니즘, 인터넷을 포함한 현대 통신기술의 발전 과정과 주요 기술을 이 책과 함께 살펴보면 정보과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보과학에서 기술과 이론은 분리될 수 없어서다.
하나의 체계에서 다른 체계로 정보를 변환, 해석하는 인코딩과 디코딩은 단순한 공학적 문제가 결코 아니다. 서로 다른 물리적 특성들 간의 차이와 제약, 그리고 정보가 이 특성들을 오갈 때에 반드시 일어나는 ‘오류’ ‘누락’ ‘잡음’을 극복하기 위한 수학적·물리학적 사투가 이 문제에서 펼쳐진다. 즉, 정보이론은 정보기술이 구현되는 단계마다 관여한다.
이 책의 가치는 정보의 본질을 축으로 자연과학의 경계를 넘어 인문과학, 사회과학까지 관통하는 통찰을 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이 책을 읽은 독자는 의미의 바깥에서 의미를 직조해내는 정보의 가치와 역할을 포착하고,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목표를 찾고 이루는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AI와 함께 문명의 문법이 통째로 바뀌는 이 길목에서, ‘인포메이션’을 나침반 삼아 정보의 실체를 파악하고 정보과학이 바꿀 우리의 미래 경로를 그려보길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