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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SF소설] 강제 집행

     

     편집자 주 
    과학동아 2022년 9월호, 2025년 7월호, 9월호에 이어서 고도로 발달한 인간의 기계화 의체가 널리 퍼진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과 기계를 좀 더 인간적으로 조율하려는 인형사 지망생 케이의 모험을 다룬 ‘강제 집행’을 게재합니다.

     

    “라보, 너는 누가 만들었는지 기억해?”
    튜닝숍 사장이 경매에서 건져 온 앤티크 오토마타는 케이(K)의 질문에 대답했다.
    “모른다.”
    “라보, 너는 왜 만들어졌는지 알아?”
    “모른다.”
    케이는 앤티크 오토마타를 섹터 3의 튜닝숍 메이에서 처음 보았다. 오토마타는 다른 섹터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치안이 좋지 않은 곳에 두 대씩 짝을 지어 다니거나, 섹터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가드로 썼다. 케이에게 오토마타는 섹터의 총알이었다.
    재즈바 플라시보에서 앤티크 오토마타를 직접 보고, 케이는 오토마타와 앤티크 오토마타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오토마타는 로봇이고, 앤티크 오토마타는 인형이었다. 로봇은 망가지더라도 프로그래밍 된 목적을 수행한다. 하지만 앤티크 오토마타는 악기 연주를 할 수 있어도, 하지 않아도 된다. 전쟁 이전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앤티크 오토마타들은 인간의 의지가 있어야 움직였다. 어떤 앤티크 오토마타는 그 자리에 있기만 해도 아름답기 때문에 존재를 허락받았다. 라보가 그러하듯.
    “라보, 전쟁 이전 세상은 어땠어?”
    “모른다.”
    “그건 왜 몰라?”
    “사장님이 말했다. 라보의 코어는 최근에 교체된 흔적이 있다고 했다. 사장님은 교체된 코어도 쾨르퍼사 제품인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최근에 또 코어를 바꿨다.”
    튜닝숍 메이의 사장은 인형사였다. 케이처럼 형상을 추구하는 인형사는 아니었다. 그는 인형의 마음을 만들어 내려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형태 없는 것을 좇는 사람이라기에는, 손재주가 좋았다. 당장 케이와 대화하는 라보의 코어도, 사장이 며칠 동안 재료를 모아 조립한 작품이었다.
    “케이, 뭐하냐?”
    “아르바이트요.”
    나른한 튜닝숍의 시간을 깬 사람은 다름 아닌 케이의 스승인 제이(J)였다. 제이는 서늘해진 계절에 맞춰 오래된 코트를 입었다. 날이 서늘해질수록 제이의 의수는 두껍고 긴 소매 속으로 숨었다. “사장은?”
    “식재료 사야 한다고 마트 가셨어요.”
    “마트? 길거리 시장이 아니라 마트를 다닐 정도로 돈을 잘 번다고?”
    사장님이 돈을 잘 버는 게 아니라 스승님이 돈을 못 버는 거겠죠. 케이는 불쑥 튀어나올 뻔한 말을 겨우 넘기며 이미 몇 번이고 닦은 카운터를 닦았다.
    “케이, 우리도 튜닝 사업에 뛰어들까?”
    케이는 말없이 튜닝숍에 진열된 두꺼운 카탈로그를 스승에게 건넸다. 곧 그는 안경을 벗고 눈을 질끈 감았다.
    “쾨르퍼사 이놈들은 온 섹터에서 비오-아우토로 돈을 쓸어 담으면서 왜 디자인에는 돈을 안 쓰지? 이딴 미감으로 어떻게 전 세계 기계화 의체 시장을 독점하냔 말이야?”
    “심지어 튜닝 이외 목적으로 변형을 가하면, 바로 쾨르퍼사에서 단속 나와요.”
    “역시 입실론(Υ). 인형의 마음만 추구하니 형태는 보이지 않는 거야.”

    “제이, 다 들립니다.”
    사장이 장바구니를 양손에 들고 튜닝숍 안으로 들어왔다. 손님이 튜닝 받는 의자에 앉아 있던 제이는 입실론보다도 그의 장바구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무리 영양 젤리를 간식처럼 먹는 스승이어도 장바구니에 가득 찬 푸릇푸릇한 채소와 과일의 유혹은 이길 수 없는 모양이었다.
    “입실론 님, 저도 여기서 일하면 안 되겠습니까?”
    “스승님, 나가!”
    채소의 최면에서 겨우 벗어난 제이가 고개를 마구 저었다. “아니, 아니. 내가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온 건 아니지. 입실론,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제게요?”
    “재즈바 플라시보에서 있던 일 알지?”
    “예, 알고 있습니다. 귀한 앤티크 오토마타를 박살 내서 곤란해지셨죠.” 튜닝숍 사장인 입실론은 제이를 스쳐 지나갔다. 그는 가게 안쪽 냉장고에 장 봐 온 것들을 넣었다.
    “그래서 내가 그 오토마타를 새로 만들어야 하거든?” 그 말을 던지는 스승은 꽤 즐거워 보였다. 반드시 움직여야 하는 기계화 의체와는 달리, 앤티크 오토마타는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데 예쁘게 만들어야 한다. 스승이라면 돈을 주고서라도 하겠다고 나설 의뢰이긴 했다.
    “무급으로 만드는 겁니까?”
    “응. 무급으로 만드는 건 큰 문제가 아닌데 의논하고 싶은 문제가 있어. 네 도움이 필요해.”
    입실론은 냉장고 문을 닫고 매장으로 나왔다. “마르스 건으로 빚을 졌으니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드리겠지만…. 제이, 당신이 쉬운 부탁을 할 것 같지는 않군요.”
    “일단 재즈바에서 가져온 오토마타를 내 기술로 복원하려면 부품하고 공구를 전부 새로 만들어야 해. 그렇게 만들어 내도 설계도가 없으니까 꽤 걸릴 거야. 언제 완성될지 예측도 안 돼.”
    “그 말을 재즈바 사장에게 전해주면 되는 겁니까?”
    “아니!”
    스승은 라보를 가리켰다. “네 앤티크 오토마타 한 번만 분해하게 해 줘! 한 번만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거든?”
    “나가세요, 제이.”
    “스승님, 나가.”
    “케이! 너는 내 편을 들어야지!”
    “나가요, 스승님.”

    제이는 평소답지 않게 한숨을 푹 쉬며 튜닝숍 메이를 나갔다. 나가는 순간 섬광처럼 달려온 오토바이가 제이를 들이받았다. 케이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케이는 벌써 몇 미터 날아간 스승을 향해 달렸다. 그 침묵을 깨고 라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이―데이―.”
    입실론은 케이 옆으로 왔지만 라보를 납치한 오토바이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케이, 제이는 괜찮아?”
    “으…. 오른팔이라서 살았다. 왼쪽이었으면 죽었어….” 엎어졌던 스승이 흙먼지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팔은 괜찮아요?”
    “말했지? 내 스승님은 나를 너무 걱정해서 절대 안 망가지는 기계화 의체를 만들어줬다고. 오토바이 충돌 따위에 구겨질…. 인마, 스승이 오토바이에 치였는데 팔부터 걱정하냐?”
    “사장님, 우리 스승님 좀 부탁해요. 라보는 제가 데리고 올게요.”
    입실론이 바람 쐬러 갈 때 쓰는 자전거에 케이가 올라탔다. 입실론은 라보의 의자 밑에 붙어 있던 장치를 건넸다.
    “라보는 귀한 앤티크 오토마타라 코어 안쪽에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기능을 넣어 놨어. 여기에 표시되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
    “네.”
    “이 대낮에 부두에서 앤티크 오토마타를 가지고 있으면 분명히 누군가는 기억할 거다. 그러니까 부두에서 멈추면 안 된다. 부두보다 더 먼 곳으로 가야 해.”
    “알았어요. 사장님.”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제이도 한마디 거들었다. “위험할 것 같으면 바로 돌아와. 인형은 새로 사면 그만이지만 제자는 다시 키우려면 막막하단 말이야!”
    ‘오토바이에 치인 사람 맞아?’ 케이는 자전거 페달을 빨리 밟으며 제이의 스승, 아이(I)의 기술에 새삼 놀랐다.
    ‘오토바이에 치이고도 팔이 멀쩡하다니… 그런데 차라리 부러지고 날아가는 게 덜 다치지 않나? 팔이 안 부서졌으니 그 충격을 전부 몸으로 받아냈을 텐데….’ 케이는 생각을 바꿨다. 아이 영감님의 기술보다 제이의 정신력이 더 대단할지도 모르겠다고.
    자전거 페달을 전력으로 밟으며 케이에겐 두 가지 어긋난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섹터 3에서 멀끔한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입실론이, 어째서 자전거만큼은 박물관에 있을 법한 구형을 타고 다니는 걸까. 전기 자전거라면 오르막도 쉽게 오르고, 이미 보이지도 않는 오토바이 추적도 쉽게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떠오르는 다른 생각은 만약 전기 자전거였더라면 헬멧도 쓰지 않고, 자동차 면허도 없는 케이는 부두에 들어서기도 전에 오토마타의 총알에 맞았을 거라는 현실적인 예측이었다.

    위치 추적기는 벌써 부두 밖을 가리켰다. 케이는 부두에 언덕이 없음을 감사히 여기며 자전거 속력을 좀 더 올렸다. 라보의 이동은 멈췄고 케이는 라보에게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섹터 3은 단순히 제이와 케이가 사는 도시의 외곽부와 입실론이 가게를 운영하는 도심으로 나누어져 있지 않다. 섹터는 하나의 대륙이고 서로 다른 세계였다. 그들은 섹터 3, 그중에서도 쾨르퍼사 본사가 있는 21구역에 둥지를 틀었을 뿐이다.
    처음 섹터 3의 21구역에 도착했을 때, 하수도 밑에도 도시가 있다는 소문을 확인하겠다면서 매일 밤 수로를 뒤지기도 했다. 도시는 없었고, 개조된 튜닝 부품을 파는 암시장이 있었을 뿐이다. 스승은 그중에서 유난히 예쁜 부품을 하나 사서 케이에게 설계도를 그리라고 했었다.
    섹터 3의 사람들도 다른 섹터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인형사와 조율사를 헷갈려 했다. 어쩌다 제대로 구별하는 사람은 인형사를 로봇과 인공지능이 얽힌 사건의 해결사로 이해했다. 인형사는 로봇과 개념이 다른 오브젝트를 만드는 거라며 스승은 투덜거렸다. 그러나 돈을 벌기에는 해결사 일 만한 것도 없어서 도시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다 보니 제이는 어느새 해결사로 통하기 시작했다.
    케이는 21구역에서 출입이 까탈스러운 부두도 들어가 보았다. 부두 사건은 케이도 무슨 문제가 있었고,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스승은 부두의 노동자들이 모은 돈을 받는 대신 문제를 일으킨 로봇의 다리 하나를 요구했다. 그 사람들의 지갑 사정을 걱정해서 다리를 가져온 게 아니었다. 제이는 그 다리에서 무엇인가 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구멍 난 가계부를 어떻게 메꿀지 막막하기만 했는데, 스승이 멋대로 행동한 덕에 케이는 부두 노동자들에게 ‘해결사 옆을 따라다니던 꼬맹이’란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덕분에 대낮에 부두를 가로질러도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도리어 부두 노동자들은 오토바이가 간 방향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라보 납치범은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폐쇄되었다는 화력발전소 쪽으로 향했다고.
    화력발전소로 가는 길은 기나긴 언덕이었다. 오랜 시간 보수하지 않은 아스팔트 도로는 지뢰가 터진 것처럼 깨져 있다. 그 위로는 오토바이가 남긴 검은색 바퀴 자국이 남아 있다. 케이는 자전거에서 내렸다. 돌아올 때, 자전거에 타고 이만한 내리막을 내달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케이는 앤티크 오토마타 라보를 데리고 와야 했다. 실수로 라보가 자전거 안장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너무 무서운 상상이 시작되어 케이는 오르막을 오르는 감각에 집중했다.
    갈림길이 종종 보였지만 사실상 외길이나 다름없었다. 오토바이의 타이어 자국이 눌어붙은 길을 따라갈수록 화력발전소가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곳이 가까워질수록 도시에서는 보지 못했던 그림들이 보였다. 케이는 잠시 목적을 잊고 벽을 가득 채운 그림 앞에 멈춰 섰다. 하수도에서도 보지 못한 화려한 그라피티였다.
    벽에 이걸 어떻게 그렸지? 케이는 강렬한 색감이 불타오르는 그라피티를 바라보았다. 이만큼을 한 호흡에 완성했을까, 밑그림을 그려서 완성했을까? 이것을 칠한 재료는 뭐지? 페인트나 물감은 아닌 것 같은데. 저기에는 페인트로 한 것도 있네. 이런 곳에 틀어박혀서 벽화를 그리는 인간들이 왜 갑자기 스승님을 치고 라보를 납치해야 했을까?
    케이는 곰곰이 생각하며 벽화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으로 걸어갔다.
    스승님은 그냥 운이 나빠서 그 순간에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야. 범인한테 스승님은 예상 못 한 요소에 불과했어. 목표는 명확했지. 오토바이 탄 사람은 가게의 전면 유리를 깨고 들어와서 바로 라보를 납치했어. 하지만 라보는 사장님이 경매를 통해서 정당하게 얻은 인형인데….
    오히려 정당하게 얻었으니까 라보를 누가 사 갔는지 특정할 수 있었던 거야. 경매장에 매일 같이 올라오는 앤티크 오토마타 중에서 왜 하필 라보였을까? 아니면 왜 하필 튜닝숍 메이의 사장님이었을까?
    익살맞은 손 그림은 화력발전소 입구를 가리킨다. 그 앞에는 범인이 있었다. 그는 정신을 잃은 듯 케이가 빤히 바라보아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스승을 들이받은 오토바이의 앞부분은 종이처럼 구겨졌고 바퀴도 축이 틀어졌다.
    “이 정도로 충돌했는데 팔이 안 고장 났다고?”
    케이는 감탄했다. 그 소리를 듣고도 운전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라보를 납치할 때 보여준 드리프트 실력은 어디로 갔는지 후문 울타리를 들이받고 기절한 꼴이라니. 아마도 이 폭주족은 여기에 그라피티를 그린 사람들과 같은 무리일 거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입실론이 입찰한 라보를 이들이 훔쳐 갈 이유는 없었다.
    인형사로서 입실론은 차가운 분노를 마음에 품은 사람이지만 튜닝숍 메이의 사장 유리는 튜닝 부품을 안전하게 떼어 주는 믿음직한 기술자였다. 그 사람은 입실론으로서든, 유리로서든 이 사람들의 비오-아우토 튜닝 부품에 문제가 생기면 마땅히 고쳐 줄 사람이다. 케이가 아는 그 사람은 특별히 이 사람들과 사이가 나쁠 이유가 없었다.
    어쨌거나 이유를 알려면 화력발전소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케이는 발전소 안으로 들어가 공구 상자부터 뒤졌다. 멍키스패너와 장도리, 고무망치가 있었다. 멍키스패너는 확실한 파괴를 보장하지만 무겁다. 아직 뼈대밖에 없는 이 의수로 들고 다니다간 조율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고무망치는 가벼운 대신 필요한 순간에 의지하기는 어려운 공구다. 결국 케이는 녹슨 장도리를 오른손에 쥐고 화력발전소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기이할 정도로 조용했다. 하지만 분명히 이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아무 공간으로 들어가든 낡은 옷과 눕는 모습대로 모습이 잡힌 매트리스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케이는 아직 마시지 못하는 술병이 굴러다녔다. 꽁초로 기이한 탑을 쌓은 재떨이도 보였다. 케이는 묵직하고 화려한 문을 열어 보았다. 강당이었다. 쓸쓸하게 한 줄기 켜진 무대조명이 비추는 곳에는 낡은 악기들이 모여 있었다. 칠이 거칠게 벗겨지긴 했지만 분명 누군가 연주하는 악기였다.
    케이는 연단 뒤의 강당 대기실에 쪼그려 앉아 긴장 섞인 숨을 내쉬었다. 입실론이 쥐여 준 위치 추적기는 아주 정밀해 같은 건물 안에서 라보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이곳에 분명히 사람이 있다. 라보를 이 안으로 데려간 사람들이 있어. 그런데 왜 안 보이지? 내가 그 사람들을 쫓는 걸까, 그 사람들이 나를 함정에 빠뜨리는 걸까? 하지만 왜?
    이 사람들이 꽤 거친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안다. 케이는 술과 담배 외에도 신체에 주사를 찔러 넣어 생체칩의 감도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약물까지 보았다. 알아본 약물은 그것뿐이었다. 케이가 알지 못하는 약통이 더 많이 굴러다녔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라보를 납치한 상황이 말이 되느냐면, 케이의 논리로는 성립하지 않았다.
    거칠게 오토바이에 타고, 시끄럽게 연주하고, 술과 담배도 좋아하고, 이상한 약을 먹으면서, 시멘트벽을 화려하게 칠하는 사람들은 이곳에 모인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튜닝숍 메이의 앤티크 오토마타를 납치할 이유는 없다. 섹터 3에는 앤티크 오토마타가 많으니까. 반드시 라보여야 할 이유가 없다.
    “라보여야만 했거나, 튜닝숍 메이여야만 했거나.”

    어두운 공간에서 숨을 고르는 동안에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케이는 심장 박동이 어느 정도 차분해진 후에 강당을 나갔다. 건너편의 무거운 문을 열자마자 사람의 기척을 느꼈다. 층계참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인형…. 연구…. 가져왔…. 용서를 빕….”
    라보는 바로 저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 있었다. 케이는 의수에 쥔 장도리를 놓치지 않게 힘을 주었다.
    ‘휘두를 수 있다면 딱 한 번 뿐이야. 한 번 휘두르면 끝이야. 성공이든 실패든 무조건 도망가야 해.
    다음은 없어. 두 번째 시도는 무조건 잡힌다고 생각해.’
    발소리를 죽이고 목소리를 따라갔다. 그곳은 ‘중앙제어실’이라고 적혀있었다. 문이 조금 열려 있어, 케이는 바로 들어가는 대신 열린 문의 사각지대에 섰다. 슬쩍 보고 싶었지만 목소리만 들어야 했다. 여러 명의 불안정한 숨소리로 중앙제어실 바깥 공기까지 떨렸다. 아마도 그 안에는 이 화력발전소에 사는 모든 사람이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나이아 님께서 찾으신 오토마타를 가져왔습니다. 부디 강제 집행을 멈춰 주십시오.”
    나이아, 케이는 그 이름을 기억한다. 재즈바 플라시보의 인형의 코어에서 나온 수십 장의 서류에 적혀있던 그 이름. 케이는 빚과 상환, 연체라는 개념을 명확히 알지 못하지만 재즈바의 인형과는 분명히 다른 분위기를 인지했다.
    스승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그 인형을 만든 인형사는 분노했다. 빚 문서를 몇십 장이고 인쇄해서 오토마타의 코어에 쑤셔 넣을 정도로. 이 사람들은 다르다. 이 사람들은 나이아에게 반드시 갚아야만 하는 빚이 있다. 혹은 반드시 벌받아야 하는 범죄를 저질렀거나.
    “저는 여러분이 약이든 술이든 무엇인가에 취해 심신미약 상태이었든지, 맑은 정신으로든지, 왜 그 사고를 저질렀는지는 관심 없습니다. 남은 사실은 오로지 하나, 앤티크 오토마타 창고에 불을 질러 실제로 쾨르퍼사에 돌이킬 수 없는 경제적 피해를 입힌 것입니다.”
    “요, 요청하신 대로 튜닝숍 메, 메이의 앤티크 오토마, 마타입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케이까지 마음 한구석이 냉기를 느낄 정도로, 그 남자가 느끼는 두려움이 전해졌다.
    “부, 부디 이제 가, 강제 집행을 멈춰주십….”
    “메이―데이―.”
    “이 인형은 제가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 가게를 운영하는 인형사가 연구한 자료를 요구했습니다.”
    ‘나이아는 사장님이 인형사인 걸 알고 있었구나. 도심에서 보란 듯이 튜닝숍을 운영하면서 당당하게 경매까지 참여해 라보를 데리고 오면 아무래도 인형사가 아닌 척하기도 힘들지. 딱히 다른 사람에게 숨기지도 않았고.
    이 사람들은 인형사를 모르는 채로 라보가 가게 안에 있으니까, 인형사가 영혼을 끌어모아서 만들어 낸 인형인 줄 알고 납치한 거고.
    사실은 영혼을 끌어모아서 사 온 건데….’
    “의뢰는 실패했으니 강제 집행은 예고한 대로 진행합니다.”
    “나이아 님, 나이아 님…!”
    “뭐, 뭐야! 아니야, 녹스! 이건 내 의지가….”
    누군가의 숨통을 강제로 막으면 섬뜩한 소리가 난다. 케이는 그 소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자기도 모르게 문을 벌컥 열었다. 왼손이 비오-아우토인 여자가 남자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살려…줘!”
    “누가 좀…!”
    이 장도리를 휘두를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이 한 번을 쓰고 나서, 무조건 라보를 데리고 도망가야 한다. 그 한 번이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는 데 안심하며 케이는 여자의 비오-아우토를 관절 접합부를 온 힘을 다해 내리쳤다.
    인형사의 생체칩은 기계화 의체가 사용자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한다. 케이의 목뒤에 자리 잡은 생체칩은 뇌의 신호를 번역해 기계화 의체에 보낼 뿐이다. 하지만 쾨르퍼사의 생체칩은 비오-아우토를 몸으로 만든다. 그래서 비오-아우토를 부러뜨리면 사용자는 고통을 느낀다.
    케이에게는 누가 얼마나 큰 고통을 느낄지 생각할 여유 따위 없었다. 모니터 너머에서 지켜보는 나이아는 부술 수 없고, 남자는 숨을 못 쉬고 있고, 여자는 울면서 자기 왼팔을 어떻게든 정지시키려 한다. 그러니 단 한 번, 장도리를 휘두른다면 사람을 살려야 했다.
    “비오-아우토 수리는 튜닝숍 메이에서 부탁드립니다!”
    케이는 라보를 업고 중앙 통제실을 후다닥 벗어났다. 라보는 나가는 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라보, 너 걸을 수 있어?”
    “못 걷는다.”
    “아이씨!”
    케이는 후문 쪽 수풀에 숨어 라보를 내려놓고 숨을 몰아쉬었다. ‘자전거 가지고 올걸….’
    다행히 케이가 숨을 돌리는 동안 쫓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오토바이 운전자도 여전히 기절한 채 길바닥에 나동그라진 채,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까 안쪽 상황도 그렇고, 이 사람도 여전히 뻗어 있는 거, 구급차를 불러야 할 것 같은데. 그런데 섹터 3은 당사자가 직접 전화한 거 아니면 안 오고, 괜히 불렀다가 병원비라도 엄청나게 나오면 그걸로 소송도 걸린다던데….’ 케이는 찜찜한 생각에 사로잡혔지만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 생각은 말끔히 사라졌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르바이트하는 곳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서 여기까지 라보 찾으러 오게 했고, 스승님까지 크게 다칠 뻔했는데 뺑소니한 인간들을 왜 걱정한담?’ 오른손은 아직도 장도리를 들고 있다. 그 난장판에서 도망치면서 그대로 들고 온 모양이었다.
    “라보, 사람이 죽을 뻔했는데, 오토바이 하나 정도는 털어도 괜찮지?”
    “도둑질하자!”
    오토바이는 직접 탈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하지만 오토바이의 블랙박스와 엔진룸의 코어까지 상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스승하고 부딪혀서 구겨지고, 여기 울타리에 박아서 박살 난 덕에 조금만 손써도 꺼낼 수 있었다.
    “아, 이것도 가지고 가자.” 케이는 기절한 오토바이 운전자의 목 뒤쪽을 보았다. 생체칩이 깜박이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다섯 번 두드리고, 10초간 누르니 생체칩과 오토바이 운전자의 비오-아우토의 연동이 끊겼다. 쾨르퍼사의 생체칩이 툭 튀어나오며 케이의 손에 들어왔다.
    “라보, 저 사람도 손님으로 오면 받아줄 거야?”
    “라보는 인형이다. 손님으로 받을지 말지는 사장님이 결정한다.”
    “아까는 도둑질하자며?”
    “라보는 코어를 좋아한다.”
    이 녀석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똑똑해졌담? 케이는 화력발전소 주변 창고를 뒤져 라보와 전리품을 함께 넣을 만한 플라스틱 상자와 그 상자를 나를 수 있는 핸드 캐리어를 찾았다.
    케이가 천천히 내려가며 노을에 물든다. 언덕에 접어드는 곳에서 제이와 입실론이 케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현아
    2019년 브릿G 작가 프로젝트로 데뷔했다. 소설 ‘확장윤회양분세계’ '밥줄광대놀음’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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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7월 과학동아 정보

    • 조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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