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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되다 | 침팬지 전쟁, 무엇이 그들의 평화를 깨뜨렸나

    ▲Rod Waddington(W)

     

    인간의 역사에서 한때 하나였던 공동체가 둘 혹은 그 이상의 집단으로 갈라지고, 그 분열이 결국 폭력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일은 낯설지 않다. 우리는 흔히 이런 갈등의 원인을 민족, 종교, 언어, 이념 같은 문화적 차이로 설명한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침팬지 전쟁’ 행동 연구는 갈등의 기원에 관해 문화적 차이를 넘어 생각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영장류 연구자인 이세인 스위스 취리히대 박사후연구원이 이 연구를 소개한다.

     

    ▲Shutterstock
    털고르기 중인 침팬지. 털고르기는 친밀한 관계의 침팬지끼리 보여주는 대표적인 행동으로, 이런 행동 관찰을 통해 침팬지의 사회 연결망을 추측할 수 있다.

     

    함께 살고, 협력하고, 같은 질서 안에서 관계를 맺던 구성원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와 그들로 나눠지는 걸까? 최근 발표된 한 연구가 인간 사회가 아닌 야생 침팬지 사회를 통해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 4월 9일 애런 샌델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교수가 이끈 국제 공동연구팀은 침팬지 집단이 갈라져 서로 공격하는 과정을 분석한 연구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doi: 10.1126/science.adz4944


    연구팀은 우간다 키발레국립공원 응고고 지역의 야생 침팬지 집단을 1995년부터 2024년까지 약 30년 동안 추적했다. 연구팀은 매년 2~3개월씩 수컷 침팬지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이 어떤 개체들과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지, 누구의 털을 골라주는지 기록했다. 수컷 침팬지를 위주로 추적한 이유는 수컷 침팬지가 주로 영토를 지키기 위한 순찰과 공격 등의 행동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GPS 정보를 통해 각 침팬지 개체와 친한 다른 침팬지 무리가 어떤 영역에서 지내고, 활동 범위가 얼마나 겹치는지 확인했다. 그렇게 수컷과 암컷 침팬지 219마리의 사회 연결망을 그려냈다. 


    분석 결과 이들은 초기 20여 년 동안 하나의 집단으로 행동했다. 물론 내부에 더 자주 어울리는 하위 무리가 있긴 했지만, 갈라졌다가도 다시 섞이는 ‘분열-융합’ 행동을 보였다. 219마리는 함께 먹이를 찾고, 털을 골라주고, 영토 순찰을 하며, 번식 관계도 맺었다. 


    그런데 2015년 6월 24일, 이 거대한 공동체에 처음으로 분열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부와 중부에 지내던 침팬지 하위 무리가 서로 마주쳤을 때 이전처럼 다시 섞이지 않고, 서부 집단 침팬지들이 도망쳤다. 중부 집단 침팬지들은 이들을 추격했다. 2016~2017년이 되자 서부 침팬지들과 중부 침팬지들이 각자의 영역을 지키는 순찰 행위를 시작했다. 서로를 경계하면서 나오는 행동이었다. 두 집단 사이에서는 더 이상 번식도 일어나지 않았다. 2015년 3월 이후로는 중부와 서부, 각각 같은 집단 안에서만 새끼가 태어났다. 


    2018년에 이르러서는 두 집단이 사회적, 공간적으로 완전히 분리됐다. 그리고 이후 7년 동안 두 집단 사이에 최소 24회의 치명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그 결과 2018년부터 2024년까지 응고고 지역에서 침팬지 성체 수컷 7마리와 미성숙 개체 17마리가 사망했다. 새끼를 죽이다니, 한때 함께 어울려 친밀하게 지내던 집단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잔혹 행위가 벌어진 것이다.


    침팬지의 폭력성이 관찰된 사례는 이번 연구가 처음이 아니다. 침팬지는 원래도 자신의 집단 밖 낯선 개체를 공격하거나 죽이는 행동을 종종 보인다. 1970년대 탄자니아에서도 침팬지 집단 사이의 전쟁을 영국 동물학자 제인 구달이 목격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갈등이 일어난 침팬지들이 한때 함께 살던 집단이었기 때문에 특별하다. 이들은 한때 공유하던 집단 소속감을 버리고, 새로운 집단을 만들어 강력한 소속감을 만들었으며, 그 경계를 기준으로 치명적 폭력을 행사했다. 이는 인간 사회에서 집단 갈등을 이해할 때 문화적 표지에만 집중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인간과 침팬지 사회를 동일시할 수는 없다. 인간 사회는 제도와 언어, 기록, 이념, 경제 구조를 통해 더 복잡하게 작동한다. 그러나 공동체에 균열이 쌓이고, 그것이 새로운 집단에 대한 소속감으로 굳어지며, 결국 충돌로 이어진다는 큰 흐름은 비교해 볼 만하다.

     

    응고고 침팬지가 갈라지는 모습을 목격하다
    애런 샌델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교수팀은 GPS와 관찰 추적으로 응고고 침팬지들의 개체간 관계망을 그렸다. 그리고 중부 지역 침팬지와 서부 지역 침팬지의 활동 범위를 나타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 집단이었던 두 지역 침팬지 그룹의 관계가 멀어지고 활동 범위도 분리됐다.
    ▲Science
    침팬지들이 이웃 침팬지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서로 놀라지 않게 포옹하면서 안심시켜 주고 있다. 한 집단으로서의 결속력이 보인다.
    ▲Science
    위쪽 사진에서 포옹하던 침팬지들이 서부와 중부 지역 집단으로 갈라섰다. 사진에서는 중부 침팬지들이 서부 침팬지(가운데)를 공격하고 있다.

     

    남보다 돌아선 내 편이 더 무섭다


    연구팀은 응고고 침팬지 집단의 분열 요인을 3가지로 추렸다. 우선 집단이 지나치게 큰 점이다. 219마리였던 응고고 집단은 침팬지 사회로서 예외적으로 큰 규모였고, 모든 개체가 긴밀한 사회적 유대를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로 먹이와 번식 기회를 둘러싼 경쟁이 침팬지 관계의 긴장감을 높였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집단 내 중요한 개체들의 죽음, 가장 높은 서열로 무리를 통제하던 알파 수컷의 교체, 질병 유행 등이 사회적 균형을 흔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위 집단들을 연결하던 핵심 개체들이 사라지면서 집단 전체를 느슨하게나마 묶던 사회적 다리가 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응고고 침팬지 사례는 집단 구성원들과의 친밀함과 집단 소속감이 같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응고고 침팬지들은 과거 친숙했던 개체를 공격했다. 다시 말해 나는 너를 잘 안다는 사실보다, 너는 이제 우리 편이 아니라는 판단이 더 강력해질 수 있다.


    이 점은 인간 갈등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다. 내전이나 정치적 폭력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같은 마을, 같은 도시, 같은 국가 안에서도 빈번히 일어난다. 서로 이름을 알고, 가족사를 알고, 같은 관습과 의례, 그리고 평범한 일상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서로를 위협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변화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작은 경쟁, 반복되는 불신, 화해의 실패, 중재자의 부재, 자원과 기회 불균형, 그리고 저들은 더 이상 우리와 같지 않다는 이야기들이 구전되고 쌓일 때 집단은 서서히 갈라진다. 한국전쟁과 유고슬라비아 내전도 한 국가와 동네에 살던 사람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난 경우다. 관계가 깊다는 건 협력의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뜻하지만, 동시에 손실과 배신의 가능성도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까운 관계는 더 강한 적대감으로 바뀔 수 있다.


    응고고 침팬지 연구는 숫자만으로 권력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집단 간 갈등에선 더 큰 집단이 유리하다고 예상한다. 그런데 응고고에서는 수적으로 더 작은 서부 침팬지 집단이 공격을 주도해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었다. 집단 크기보다 내부 결속과 협력의 깊이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회적 유대와 함께 행동하는 능력, 공격 시점과 대상을 조율하는 응집성이 수적 열세를 보완했을 가능성이 있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큰 집단이 항상 더 강한 것은 아니다. 강하게 결속된 소수 집단이 되레 명확한 목표를 공유하고 내부 신뢰를 더욱 튼튼히 쌓아간다면 ‘작은 고추가 맵다’는 의미를 실현할 수 있다.

     

    응고고 침팬지의 분열 과정
    ❶ 응고고 지역 219마리 침팬지는 한 집단으로서 서로 털을 골라주고 함께 먹이를 찾으러 다녔다.
    ❷ 2015년부터 사회 관계를 이어주던 중요 개체가 죽으며 침팬지가 서부 지역 침팬지와 중부 지역 침팬지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❸ 2016~2017년부터 두 지역의 침팬지들의 긴장도가 높아졌다. 서로의 영역을 지키는 순찰 행위를 시작하더니 2018년이 되자 사회적, 공간적으로 활동 범위가 완전히 분리됐다.
    ❹ 2018~2024년 두 집단 사이에 최소 24회의 치명적인 공격이 이어졌고, 성체 수컷 7마리와 미성숙 개체 17마리가 사망했다.

     

    우리가 침팬지 연구로 배워야 할 점


    인류는 침팬지 전쟁 사례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첫째, 갈등의 조짐은 겉으로 드러난 폭력보다 훨씬 이전에 시작된다. 응고고 침팬지들도 2018년의 완전한 분열과 이후의 치명적 공격만 본다면 갑작스러운 사건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서로 공격하기 3~4년 전부터 사회적 교류가 줄고, 하위 집단이 굳어지고, 함께하던 행동이 줄었다. 인간 사회에서도 폭력은 최후로 드러나는 하나의 장면일 뿐, 혐오 표현, 정치적 양극화, 지역 간 불신, 제도에 대한 불만, 중재자의 약화, 일상적 관계의 단절이 먼저 나타난다. 


    둘째, 평화는 추상적 구호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첫 번째 교훈을 역으로 생각하면, 평화는 거대한 국제회의나 조약이 아니라, 일상적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서로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계속 만나고, 협력하고, 갈등 후에 관계를 회복하며, 중간에서 다리를 놓는 사람들이 존재할 때 집단 경계는 절대적인 선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그러한 일상적 연결이 끊기면, 사람들은 상대 집단을 구체적인 개인이 아니라 위협적인 덩어리로 보기 시작한다.


    셋째, 학문적 차원에서 야생 영장류의 장기 연구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응고고 침팬지를 관찰한 30년에 가까운 자료가 있었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원래 하나였던 집단이 어떻게 서서히 갈라졌는지를 추적할 수 있었다. 필자가 박사과정을 밟은 이화여대 행동생태연구실의 영장류 연구팀 또한 2007년부터 약 20년 가까이 인도네시아 야생 긴팔원숭이를 연구해 왔다. 가족 중심으로 살아가는 유인원들이 열대우림 속에서 어떻게 짝을 이루고, 새끼를 키우며, 관계를 유지하고,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이다. 이러한 연구가 앞으로 더 널리 주목받고, 야생 영장류의 삶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기를 바란다.


    집단의 분열은 뜬금없고 거창한 선언으로 시작되지 않을 때가 많다. 함께 앉는 시간이 줄어들고, 서로를 피하는 일이 잦아지고, 중간에서 연결하던 이들이 사라지고, 작은 오해가 화해되지 않은 채 남을 때 균열은 깊어진다. 침팬지 사회를 뚝심 있게 들여다본 장기 연구가 보여준 것은 바로 그 미세한 변화의 축적이다. 인간 사회가 이 연구에서 읽어야 할 메시지도 여기에 있다. 전쟁의 조짐은 국경선 위 혹은 국가에서 지자체를 나누는 국토 경계선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일상 관계 속에서, 우리가 누구를 ‘우리’로 남겨두고 누구를 ‘그들’로 밀어내는지 작은 선택들 속에서 이미 시작될 수 있다. 

     

    ▲동아DB
    인간 사회에서도 같은 공동체 안에서 갈등이 더욱 빈번히 일어난다. 더 많은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지는 않을지, 침팬지 사회를 보면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2024년 12월, 여의도에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시위 현장(왼쪽)과 2025년 4월, 한남동에서 열린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현장(오른쪽).

     

     

    이세인
    스위스 취리히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어린이부터 성인까지의 인간과 비인간 영장류인 침팬지의 사회적 인지 능력을 연구하고 있다. 이화여대 박사과정을 밟을 때는 인도네시아 야생 긴팔원숭이 세 가족의 행동을 연구했다. seinlee20@gmail.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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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6월 과학동아 정보

    • 이세인 스위스 취리히대 박사후연구원
    • 에디터

      장효빈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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