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의 캐릭터는 매우 명확하다. ‘교활한 여우’와 ‘멍청한 토끼’라는 고정관념을 비튼 애니메이션 ‘주토피아’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으니 말 다 했다. 한국에서 여우는 사람을 홀려 간을 빼먹는 요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2025년 11월 26일 소백산에서 만난 여우는 우리의 고정관념에 갇힌 존재가 아니었다. 인간과 삶터를 공유하는 생태계의 구성원이자,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는 복합적인 생물이었다. 요물이 아니라 이웃이 된 여우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 주

가을과 겨울 사이에 선 2025년 11월 26일, 경북 영주의 국립공원공단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중부보전센터로 향했다. 영주와 경북 봉화, 충북 단양에 걸쳐 있는 소백산은 한국의 다른 산에 비해 다정한 느낌을 준다. 연화봉 외에는 그리 높지 않은 구릉이 겹겹이 쌓여 만든 풍광이 포근하다. 소백산의 치마폭에 싸여 한참 가다 보니 도로 옆에 ‘여우 로드킬 주의’라고 쓰인 표지판이 100m마다 한 개 꼴로 걸려 있었다. 이 산 어디엔가 여우가 깃들어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중부보전센터에 도착하자, 센터 뒷산에서 붉은 색 덩어리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언뜻 보였다. 여우다. “추울 때 오시면 더 좋지요.” 취재 일정을 잡을 때 관계자가 넌지시 한 말이었다. 이유를 묻자 “겨울철에 여우들이 ‘털 찐’ 상태가 돼서 귀엽거든요”란 말이 돌아왔다. 기대했던 대로 멀리서 본 여우들이 유독 보송보송했다.
국립공원공단에서 여우 복원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1년이었다. 그 후로 14년, 현재까지 중부보전센터에서는 259마리의 여우를 야생에 방사했고, 방사할 때 부착한 발신기에서 나오는 신호와 목격정보 등을 분석했을 때 전국 각지에서 야생활동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개체는 총 106마리다. 소백산에 사는 여우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우선 중부보전센터에서 방사했거나, 야생에서 번식한 결과 태어난 개체들이 있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여우들이다. 그리고 중부보전센터에서 별도로 관리하고 있는 여우들이 약 90여 마리 있다. 방사됐다가 올무에 걸려 다리가 잘렸거나, 나이가 많아 야생에서 살기 어려운 개체, 또는 방사를 기다리는 어린 개체들이다.
기자가 본 붉은 색 덩어리들은 중부보전센터에서 관리 중인 여우들이었다. 이들을 돌보는 수의사인 이숙진 팀장은 “영구적 장애가 있거나, 나이가 많아 야생에서 살아갈 수 없는 영구계류개체들은 성격까지 다 파악해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장수가 토종 여우 복원을 도왔다?
여우가 등장하는 표현이나 사자성어,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어렵지 않게 한두 개씩은 머릿속을 스칠 것이다. ‘여우같다’라는 표현은 교활하고 영악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호가호위(狐假虎威),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다는 말도 있다. 산을 넘어가다 만난 여우에게 홀린 사람들 이야기나, ‘여우 누이’처럼 딸로 태어난 여우가 집에서 키우는 가축의 간을 빼먹는다는 류의 공포스러운 설화도 있다. 늘어놓고 보니, 여우의 이미지가 분명 좋지는 않다.
그러나 뚜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건 거꾸로 여우가 그만큼 사람과 가까이 살아가던 생물이란 뜻도 된다. 오죽하면 여우가 둔갑해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했을까. 20세기 이전 한반도에서 여우는 산과 들,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는 마을 근처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동물이었다. 그러다 20세기 들어 모피용 사냥과 1970년대 벌어진 쥐잡기 운동의 결과로 여우의 개체수가 크게 줄었다. 쥐를 잡으려고 쓴 약이, 쥐를 먹은 여우도 함께 죽인 것이다. 그 결과 20세기 말에는 한반도에서 여우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현재 환경부는 여우를 멸종위기야생생물 I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그러던 2004년, 희망의 씨앗이 보였다. 강원도 양구에서 야생 여우 사체가 발견됐다. 한반도의 야생에서도 여우가 살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2006년부터 여우 복원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 국립공원공단을 중심으로 여우 복원팀을 발족하면서 여우 복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이 하나 있다. 세간에 여우 복원에 개장수(?)가 큰 도움이 됐다는 뜬소문이 돌았다. 개장수가 여우를 러시아에서 밀수입해 키우다 우연히 여우 인공번식 노하우를 알게 됐고, 이를 연구진에게 전수해 줬다는 내용이 골자다. 인공번식 노하우란, 여우 두 마리가 간신히 들어갈 만한 사과박스를 마련해 여우가 좁은 공간에서 안심하고 번식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현재 여우 증식은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따라 완전히 다른 체계로 운영되고 있어요. 외부에서 어떠한 기술 전수를 받은 사실이 없습니다.” 안진석 중부보전센터 주임이 잘라말했다. “저희는 100m2(제곱미터) 정도 되는 넓은 공간에 암수 한 쌍을 선별해 넣고, 간섭하지 않는 방식으로 인공번식을 합니다. 이 방법이 성공적이었어요. 여우는 예민한 동물이라 좁은 공간처럼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서는 원래 번식을 하지 않습니다. 러시아에서 데려온 여우를 기반으로 여우 복원을 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중국, 서울대공원, 그리고 경북 영양 등 지자체에서 보유하고 있던 개체로 복원을 했습니다.”
야생동물은 사람에게 아양 떨지 않는다
여우가 사람을 홀린다는 인식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여우는 물론 매혹적인 생명체다. 하지만 여우가 주체적으로 사람을 홀릴 이유는 없다. 여우, 그리고 야생동물은 원래 사람을 피하는 동물이다. 그래야 야생에서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다. 안 주임은 “야생에서 여우는 사람을 보면 도망간다”면서 “사람이 여우 가까이에 가서 해코지 하지 않는 이상 여우와 접촉할 일은 없다”고 했다.
중부보전센터의 여우생태관찰원을 돌며 계류장에 있는 여우들을 살펴봤다. 아직은 따사로운 늦가을 볕을 쬐며 낮잠을 자는 개체, 올무에 다리를 잘려 절뚝거리는 개체, 사람 목소리가 들리자 슬쩍 다가오는 개체. 성격도, 모습도 다른 여우들이 저마다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햇빛 아래 반질반질해 보이는 털빛이 가을 들판과 닮았다.
여우생태관찰원에 있는 개체들은 방사하지 않고 영구적으로 사람이 돌보는 개체들이다. 방사할 개체들은 뒤편에 따로 둔다. 이 팀장은 “자연에 방사할 개체를 키울 때는 최대한 사람과 친해지지 않도록 접촉을 최소화한다”고 말했다. 사람에 익숙한 상태로 자란 개체가 방사 이후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여우에게도, 사람에게도 안전한 공존을 위해선 둘은 가급적 친해지지 않아야 좋다.
여우는 같은 여우에게 아양을 떤다. 1~2월은 여우의 번식기다. 여우는 암수 한 쌍이 함께 새끼를 키운다. 여우 부부의 애정 행각은 종종 관찰된다는 게 이 팀장의 설명이다. 이 팀장은 “번식쌍을 지어 주고, 카메라를 설치해 여우 부부의 육아 과정을 본다”고 설명했다. “엄마 여우가 굴 속에서 새끼를 키우고, 아빠 여우는 그 근처를 지키고 서 있어요. 아빠 여우가 먹이를 잡아다 굴 앞에 갖다 주기도 하죠. 아빠 여우가 굴에 잠시 돌아올 때 엄마 여우가 애교를 부리는 모습이 관찰됩니다. 새끼를 키우는 여우 부부의 모습이 무척 헌신적이예요.”
간혹 ‘동네 할아버지 여우’가 부부의 양육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늙은 수컷이 옆집에서 아기를 낳았다 하면 먹이를 문(굴) 앞에 갖다 놔주는 모습도 관찰됐어요. 혈연관계가 아닌데도 그런 행동을 보이는 수컷들이 있더라고요. 아빠 여우보다도 옆집 할아버지 여우가 더 새끼를 열심히 지켜서, 사람이 접근하면 새끼를 물어다가 다른 곳에 숨겨주는 모습도 보이고요.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이 아닌데도, 서로 새끼를 지켜주는 모습이 신기하죠. 저희도 여우를 관리하면서 새롭게 배우는 모습이 굉장히 많습니다.”
소백산에 깃든 여우와 공존하는 법
여우를 복원할 장소로 소백산을 선택한 이유는 많다. 멸종위기야생생물 복원의 최종 목표는 그 생물이 멸종위기에 처하기 전, 원래 살아가던 그 자리에 되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여우가 백두대간을 따라 한반도 전역에 퍼지기 유리한 위치를 잡아야 했다. 백두대간의 중심에 있는 소백산이 적당했다. 더하여 소백산에는 여우의 주먹이원인 설치류가 많았고, 마을과 산지가 만나는 지점도 많았다.
여우는 깊은 산속에서 살지 않는다. 자연의 영역과 사람의 영역이 모호하게 겹친 곳이 여우의 서식지다. 야생에 방사한 여우가 사람과 만나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해결 과제였다. 여우는 가축화되지 않았으면서 민가 근처에서 쥐를 잡는 등, 사람과 떨어져 있으면서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산다.
안 주임은 “밖에서 폐사한 여우들을 부검해보면, 농약 중독으로 죽은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로드킬 당한 개체나, 불법으로 설치된 올무 등에 의해 피해를 입은 개체들도 많다. 다리를 저는 영구계류개체들은 대부분 사람이 놓은 덫에 의해 피해를 입은 개체들이다.
중부보전센터 직원들은 주기적으로 인근 산을 돌아다니며 불법 엽구(사냥 도구)를 수거한다. 이런 엽구는 대부분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설치된다. 농지에 울타리를 두르기엔 경제적 부담이 많다 보니 올무를 둬, 야생동물이 피해 다니도록 만들겠다는 논리다. 그러나 야생동물들은 엽구를 피해 다닐 줄을 모른다. 엽구의 존재와 위험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야생동물을 막기 위해 엽구를 설치했다는 논리에 허점이 있는 이유다.
‘소백산 여우가 숨겨놓고 먹는 복숭아’란 브랜드가 있다. 여우 서식지 내 주민들이 여우와 이웃해 살면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런 혜택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중요하다. 여우와 공존하면 이득이 되기 때문에 여우와 공존한다고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야생동물은 원래 인간과 공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생태계의 주체 중 하나다. 함께 살아가는 것은 원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여우와 공존했더니, 부차적인 이득이 생겼다는 순서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안 주임은 “여우가 밭에 땅을 팠다고 제보전화를 주시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여우가 슬리퍼를 물고 갔다는 제보도 있더라고요. 복원 초기부터 여우가 민가에 피해를 불러올 거라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이런 우려를 경감하기 위해 주민지원사업과 피해보상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여우를 너그러이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어요. 공존하는 문화가 확산되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야생에 방사한 259마리 중에서 실제로 야생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우는 106마리다. 남은 153마리가 어떻게 됐을지 생각해본다. 인간의 모니터링을 벗어나거나 나이가 들어 자연에서 죽은 개체들도 있겠지만, 로드킬을 당하거나, 맹독성 쥐약에 중독됐거나, 불법 엽구에 당했을 수도 있다. 사라진 여우는 원래 우리 곁에 남아 있어야 했던 이웃이다. 할아버지 여우가 이웃집 아기 여우를 돌보듯, 우리도 이웃에 사는 여우를 돌보아야 할 때다.
공존을 위한 TIP!
2. 이웃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듯, 야생생물에게도 곁을 내 주세요. 불법 엽구를 설치하지 말아야 합니다. 맹독성이라 사용 금지된 농약은 살포하면 안 돼요. 야생동물 출현이 잦은 곳에서는 감속운전을 해야 합니다.

한반도의 여우가 더이상 옛날 이야기에만 등장하는 존재가 아닐 수 있는 날,
우리가 여우를 관념에 갇힌 납작한 이미지가 아닌 입체적인 면모를 가진 생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