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이 과연 미용말고 피부에 어떤 이로운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박가분(朴家粉), 비록 1930년대에 '납독파문'을 일으켜 된서리를 맞긴 했으나 1915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화장품의 이름이다. 그로부터 77년이 흐른 지금 우리의 화장품제조기술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특히 로션 스킨 크림 등 기초화장품 분야의 기술에 있어서는 세계수준과 어깨를 견주게 되었다. 그러나 파우더 립스틱 파운데이션 아이새도 등 메이크업 분야와 향수분야는 아직 상당히 뒤져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또 천연물질에서 화장품의 원료를 추출해내는 기술은 거의 전무한 상태다.
점점 라이프 사이클 짧아져
아무튼 요즘 국내의 화장품시장을 돌아보면 어지러울 정도로 수많은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무엇이든 금방 식상해 하는 세태를 반영이나 하듯이 제품의 수명도 계속해서 짧아지고 있다. 이제는 시장에 처음 나온 뒤 2년만 버텨도 장수제품 즉 히트화장품으로 꼽을 정도.
따라서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에게 알맞는 화장품을 선택하기란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다. 결국 각 화장품회사들이 광고하는 내용을 훑어보고 제품을 고를 수 밖에 없는데, 교묘한 선전문구의 함정(?)에 빠지기 일쑤다.
태평양화학이 1987년부터 제조하기 시작한 '에버그린'이라는 화장품이 이른바 자연원료화장품의 국내1호다. 자연원료화장품이란 알로에 난초 녹차잎 은행잎 금잔화 마로니에 해바라기 살구씨 복숭아씨 해조류 콩 자몽 등 식물추출물이나 녹용 인삼 감초 당귀 영지 천궁 율무 등 한방원료를 몇가지 함유하고 있는 화장품을 말한다. 이밖에 동물의 추출물인 스쿠알란 키토산(갑각류에서 얻는다) 콜라겐 엘라스틴 등이 화장품의 자연원료로 활용되기도 한다.
자연물질에 대한 일반인의 막연한 선호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만큼 자연원료화장품의 제품수명은 앞으로도 꽤 연장될 것으로 추측된다. '피부건강을 지켜준다'는 것이 자연원료화장품의 첫번째 슬로건인데, 업계에서는 동의보감 생약주객집 등 고전의서를 동원해 그 효능을 선전하고 있다.
"오랫동안 식용 또는 약용으로 써왔던 물질들이므로 피부에 특별한 이상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제품이 만들어지면 4단계에 걸쳐 피부독성실험을 실시하고 있다. 실험동물(쥐 토끼 기니피그 등)에 적용하는 1차자극시험, 10번까지 반복해서 실험동물의 피부에 바르는 누적자극실험, 액체화장품인 경우 실험동물의 눈에 떨어뜨린 뒤 그 상태를 관찰하는 안점막자극실험, 실제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실험 등을 거친다"고 태평양화학연구소의 이옥섭 기초제품연구실장은 밝힌다.
이에 대해 고려대부속 구로병원 피부과 문기찬박사는 "임상실험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피부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그 정체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자연성분 생약성분일수록 부작용이 많다는 것은 대체로 인정되고 있는 사실. 예를 들어 인삼의 경우만 해도 미확인성분이 1백~2백종이나 되는데 이들중 어떤 성분이 피부에 부작용을 일으킬 지는 알 수 없다.
자연화장품이 더 위험할 수도
연세대 피부과 박윤기교수는 "생약성분이 포함된 화장품을 바른 뒤 얼굴에 작은 물집이 생기고, 심하게 가려워 하는 환자를 발견해 학회에 보고한 바 있다"고 밝힌 뒤 "자연성분이라고 해서 무조건 선호하는 자세는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아무튼 자연원료화장품은 일반화장품보다 가격이 2,3배 가량 비싸다. 이렇게 고가전략을 펴고 있는 업계에서 주장하는 자연화장품의 효능은 다소 '추상적'이다. 피부의 노화를 방지하고 자극을 줄이며 재생력과 저항력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피부과 의사들이 업계의 효능 설명에 동의하지 않는다. 피부과 전문의 박세훈씨는 "만일 자연원료화장품이 피부노화를 방지하고 양분과 생약성분을 공급한다면 이는 피부의 구조를 바꾼 것으로 이미 화장품의 영역을 벗어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 화장품은 절대 피부의 형태나 구조를 변경시켜서는 안된다"고 얘기한다.
피부과 학계에서는 자연원료화장품이라는 용어자체가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적도 있다. 화학물질이 명백히 포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원료화장품이라고 부르는 것은 소비자에게 혼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것.
아무튼 자연물질 한방성분 비타민 생체활성물질 등을 화장품에 첨가하는 사례가 날로 늘고있으나 그 효능에 대한 과학적이고 구체적인 입증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업계측도 자연원료화장품의 효능을 증명하는 구체적인 데이터를 별로 갖고 있지 않다. 과거부터 몸에 좋은 물질로 알려져 있는 것들을 피부에 바른다고 해서 특별히 나쁠 리는 없다는 점만 되뇌일 뿐이다. 피부과 의사들은 특정 자연성분이 피부에 어떤 좋은 기능을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과연 피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 피부의 본기능이 외부의 이물질로부터 우리 몸을 방어하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화장품의 자연성분도 피부에게는 분명한 이물질이라는 것이다. 또 아무리 화장품의 입자를 작게 만든다 할지라도 피부의 진피층을 뚫을 수 없으므로 화장품에 함유된 자연물질의 효능을 기대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일축한다.
화장품의 특정성분이 피부의 어디까지 뚫고 들어갈 수 있는가는 사실상 오랫동안 화장품업계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요즘은 특정 성분을 공처럼 감싼 미세소구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입자의 크기경쟁이 점차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소구체의 크기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크롱(${10}^{-6}$) 수준이었는데 최근에는 나노(nano, ${10}^{-9}$)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1nm의 입자라고 하면 피부속 꽤 깊숙이 침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한국화장품연구소 소광수선임연구원은 주장한다.
그러나 "설령 한방화장품 속에 들어있다는 한방엑기스를 피부를 통해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것이 극소량이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다. 한약을 달여서 먹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적다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비타민C가 다량 함유돼 있다는 레몬화장품을 바르는 것보다는 레몬을 직접 먹는 것이 낫다"고 박세훈씨는 무용론을 편다.
일반화장품을 바를 경우 피부가 빨개지거나 가려움증을 일으키는 등의 민감성 피부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소위 저자극성화장품도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3년전에 시장에 나온 태평양화학의 '순정'이 국내 최초의 저자극성화장품인데, '아모레(태평양화학을 뜻함)는 독하다'는 일반의 인식을 깨뜨리기 위해 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극성화장품의 허와 실
흔히 저자극성화장품이라고 하면 '무향 무색 무알코올'을 연상하지만 실제로는 색소와 향료를 일부 제품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알코올(에탄올)도 5%이내로 쓰고 있다.
"화장품의 원료로 쓰일 수 있는 물질은 3천~4천종이나 된다. 이중에서 일반화장품은 30~50종의 원료를 사용하고 저자극성화장품은 20종 이내를 쓴다"고 말한 이옥섭실장은 "일반화장품이 전체 화장인구의 0.05~0.1%의 사람에게 알레르기 등 부작용을 일으킨다면 저자극성화장품은 이 수치를 0.02% 이하로 떨어뜨리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다.
피부에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는 성분을 제외시킨 저자극성화장품은 다른 민족보다(세계평균 1% 미만) 유난히 많은 것으로 알려진 국내의 민감성 피부를 가진 사람들 (1~5%)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나 방부제 성분의 절대량 부족으로 인해 장기간 보관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로 남아 있다.
스스로를 민감성 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린이나 주니어화장품을 바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성인의 피부와 어린이 청소년의 피부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성인의 피부는 각질층이 두꺼워 물리적 보호에 적합하다. 그러나 수분함량이 적고 재생기능도 불량한 편이다. 따라서 성인의 화장품 속에는 유분과 각종 첨가물이 다량 함유돼 있다. 반면 어린이의 피부는 촉촉하고 재생기능과 자체보호기능이 왕성하다. 그러나 각질층은 얇고 연해 기저귀 등 마찰에 의한 피부손상이 빈번한 편이어서 어린이용 화장품의 경우 유분이 적고 첨가물도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국 존슨앤드존슨사의 이경숙대리는 들려준다.
10대들의 피부도 수분이 많고 탄력성이 좋다. 호르몬의 영향으로 피지분비도 왕성해진다. 따라서 이 시기엔 유성보다 수성화장품이 적합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권유다. 환절기나 피부가 건조할 때 보습효과를 주기 위해 수성화장품을 바르는 것은 상관없으나 청소년기에는 구태여 화장품을 사용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성인이 되면 화장품도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나뉜다. 실제로 남성의 피부와 화장습관은 여성의 그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우선 남성의 피부는 두껍고 강하다. 남성들은 주로 면도 후에 화장을 하며 메이크업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따라서 화장품의 종류도 스킨 로션 등으로 한정돼 있다. 화장의 주목적도 면도 후에 청량한 느낌을 받고 살균효과를 얻는 데 있으므로 자연 알코올의 함량이 높다. 여성화장품의 알코올함량이 많아야 16,17%인데 비해 남성화장품의 알코올함량은 30~70%에 이를 정도다. 향도 남성화장품이 훨씬 강하다. 여성화장품의 향성분비율이 0.1~O.2%이라면 남성화장품은 1%에 육박한다. 반대로 유분함량은 여성화장품(20~70%)이 더 많은데 피지분비가 왕성한 남성에게는 유분이 그다지 요구되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남성화장품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피부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남성화장품의 주성분이 알코올이므로 피부에 묻은 알코올이 휘발되면서 전해지는 산뜻한 느낌 외에는 뾰족한 효과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 그들 주장의 근거다.
요즘에는 화장품도 계절을 탄다. 여름용 겨울용 화장품이 있는가 하면 4계절화장품도 나와 있다.
여름철에는 피부에서 땀이 많이 나고 피지 분비가왕성하다. 또 자외선을 겨울철보다 두배 가량 더 받는다. 따라서 여름화장품에는 탄닌유도체나 알코올 등 휘발성 물질이 주성분을 이룬다. 여기에 자외선 차단물질도 흔히 첨가된다. 국내에서는 3년전만해도 파바(PABA)계통의 자외선차단제를 주로 첨가했으나 이것이 피부알레르기현상을 종종 일으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제는 비(非)파바계통의 차단제가 널리 쓰이고 있다.
여름철 해변가에서 직사광선을 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도 햇빛에 민감한 도시 사람은 노출된지 10분 안에 홍반을 일으키겠지만 농부나 어부라면 1시간 정도 지나야 피부에 홍반이 나타날 것이다. 이처럼 햇빛에 대한 반응은 개인마다 큰 차이를 보이는데 여기서 홍반은 자외선의 과다노출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햇빛에 민감한 사람이 해변이나 골프장 수영장 등을 찾을 때에는 자외선 차단제가 든 화장품을 미리 바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외선차단제와 선탠로션의 차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외선차단제와 선탠로션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멜라닌(자연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선탠로션은 햇빛에 피부가 보기좋게 그을리도록 돕는 것이 주목적이다. 반면 자외선차단제는 피부에 보이지 않는 얇은 막을 형성시켜 햇빛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고 경희대 의대 허충림교수(피부과)는 말한다.
자외선차단제가 함유된 여름화장품을 보면 자외선차단지수(SPF, sun protection factor)가 명기돼 있다. 간혹 숫자만 적혀 있는 경우도 있는데 대개 그 수가 SPF다.
SPF란 맨 살로 햇빛아래 15분간 노출됐을 때 그을리는 정도를 기준(1)삼아 제품별로 그을리는 시간을 반비례로 계산해 지수를 만들어낸 것. 예컨대 SPF 10이라고 하면 맨살이 15분만에 그을리는 정도로 까맣게 되는데 15×10=2시간 30분이 걸린다는 뜻이다.
SPF를 더 쉽게 이해하려면 SPF 15인 화장품은 전체 자외선의 1/15을 통과시키고, SPF 25이면 총자외선의 1/25을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차단하는 화장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즉 숫자가 클수록 자외선을 더 많이 차단한다.
따라서 SPF가 5 이하로 낮은 것은 선탠용으로 적합하고 보통 15~25이면 여름철에 효과적으로 자외선을 막아준다.
"피부가 흰 편이면 SPF 15보다 약간 높은 제품을, 검은 편이면 15보다 조금 낮은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광알레르기를 억제할 목적이라면 25~30되는 것도 무방하다"고 허충림교수는 권한다.
공명구조를 이루고 있는 자외선차단제는 피부에 상당한 자극을 주게 되므로 되도록 적게 쓰는 것이 상책이다. 구태여 SPF 15이상인 것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알코올성분이 많이 함유된 여름화장품과는 달리 겨울화장품은 유분함량이 높다. 4계절화장품은 겨울용과 여름용의 중간정도의 성분비율을 나타낸다.
요즈음 거의 생산이 중단된 상태이지만 불과 2년 전만 해도 순금화장품의 잠재시장이 연 2백억원 규모는 족히 될 것으로 여겨졌다. 과소비 비난여론에 밀려 이제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으나 한때는 이온효과 세포재생효과 혈액순환촉진효과 심지어 항염항균효과까지 있다고 선전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일부 화장품업계에서조차도 "금이 피부내에 흡수될 가능성은 거의 없고, 피부를 곱게 하리라는 근거도 희박하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상처난 부위에 금박을 입히면 상처가 잘 치유된다는 불확실한 민간요법 정도를 내세울 뿐이다. 30분도 채 지나기 전에 떨어지고 말 금박을 얼굴에 붙인 뒤 일반화장품의 최고 9배까지 지불했으니, 한마디로 0점짜리 구매행위를 한 셈이다. 피부과 전문의 신창식씨는 "만약 금이 100% 흡수됐다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일으켰을 것이다. 피부발진 신장장애 위장장애 알레르기 반응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어이없어 했다.
2년 전에는 순금화장품 논쟁과 더불어 리포좀화장품의 효능공방도 치열하게 전개 됐다. 여기서 리포좀이란 이중의 지질층으로 형성된 공모양의 미세한 물질을 말한다. 이 작은 리포좀의 성분인 인지질이 인체의 피부세포막과 비슷하다는데 근거, 리포좀을 피부 깊숙이 통과시키면 영양분의 전달이 가능해지고 피부재생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당시 업계측의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은 "리포좀이 각질층을 통과하지 못하므로 피부재생 운운은 과장"이라고 반박했다.
다량의 화장품 성분이 진피층까지 도달하지는 못할 것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화장품은 화장품의 영역을, 의약품은 의약품의 영역을 고수해야 한다는데도 이론이 없다. 다시 말해 화장품이 노화방지 등 치료효과를 구체적으로 내세워서는 안된다.
그런데 의약품과 화장품은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피부과 전문의 최국주씨는 "팔의 안쪽에 일정부위를 정해 하루 두번씩 일주일 정도 화장품을 계속 발라본 뒤 사용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부작용의 자체진단법을 일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