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불면 이상하게 한 해가 작아진 듯합니다. 요란반짝한 12월보다, 정작 한 해의 끝을 실감하는 건 11월입니다. 노벨상 기사를 내고, 수능을 기다리고, 내년 사업 계획을 세우며, 연초의 결심을 떠올립니다.
저희 올해 결심은 숏폼 끊기였습니다. 정확히는 ‘2분 미만의 영상은 보지 않겠다’는 소심하지만 과학적인 기준을 세웠습니다. 독자분들 중에도 ‘자기 전 휴대폰 멀리하기’ ‘소셜미디어 사용 시간 줄이기’ 같은 목표에 도전한 분이 계실 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실패했습니다. 한 달쯤은 버텼으나 쉽지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걸 귀신같이 알아보는 릴스와 숏츠를 클릭하지 않고는 도저히 못 배기겠더군요. 특히 기사 마감을 하고 지쳐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는 보상 심리로 더 많은 숏폼을 봤고, 1시간 거리가 10분으로 단축된 듯한 ‘몰입의 상대성 이론’을 체감했습니다. 물론 보고 난 뒤, 멍해지는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요.
전 세계인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지, 지난해 ‘브레인롯(brain rot)’이라는 용어가 영국에서 올해의 단어로까지 선정됐습니다. 의학적 질환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소셜미디어를 반복적으로 접한 결과 뇌에 부하가 가해지면서 생긴 인지적 피로 정도로 해석됩니다.
“뇌가 썩는 것 같다”는 공통의 호소를 과학동아는 진지하게 파봤습니다. 브레인롯의 원인으로 지목된 소셜미디어 추천 알고리즘을 분석하고, 실제로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더 나아가 4주간 숏폼을 끊고 뇌파 변화를 관찰하는 챌린지도 진행했습니다. 자세한 결과는 특집 기사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의지로 한 달을 버티자, 그래프가 달라졌습니다.
작은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독자분들 중 챌린지 참가자를 모집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일주일에 13시간 이상 숏폼을 소비하는 사람’이라는 기준을 충족할 만한 분이 독자층에서는 많지 않았습니다. 과학잡지를 꾸준히 읽는 습관이 이미 브레인롯의 완충 장치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특집 기사는 숏폼과는 또 다른 보는 맛이 있습니다. 강렬한 자극 대신 천천히 따라갈 수 있는 일러스트 스토리텔링을 더했고, 인터랙티브 홈페이지를 통해 숏폼 시대에 ‘난독증’을 호소하는 분들도 편히 읽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비록 저의 개인적인 올해 결심(숏폼 끊기)은 실패했지만, 연초부터 오랫동안 준비해 온 브레인롯 특집을 드디어 세상에 내놓을 수 있어 뿌듯합니다. 여러분도 휴대폰 화면을 덮고, 맑은 뇌로 남은 한 해를 기분 좋게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의 작은 시도가 성공하길 응원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