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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체를 뒤덮는 망원경이 있다. 지름이 478km인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이다. 이 거대한 관측망은 연세대, 울산대, 탐라대에 각각 하나씩 있는 지름 21m짜리 전파망원경 3대로 이뤄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KVN은 한반도를 넘어 중국과 일본까지 아우르는 지름 8000km짜리 동아시아 VLBI(초장거리간섭계) 관측망의 중심이다. 대한민국을 천문강국으로 이끄는 대들보이기도 하다.







“KVN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우리나라 최초의 천문장비입니다.” 김봉규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연구본부장은 KVN의 의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KVN 이전의 소백산, 보현산 망원경이나 대덕전파망원경은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를 하기에 부족한 게 사실이다. 장비의 한계 때문에 큰 성과를 내기보다는 선진국의 대형망원경이 소홀히 하는 틈새를 공략하는 데 주로 쓰였다. KVN이 생기면서 비로소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셈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은 2001년부터 KVN사업을 추진해 2008년 말에 완성했다. 서울 연세대와 울산대, 제주 탐라대에 각각 똑같은 전파망원경을 설치해 지름이 478km인 전파망원경과 같은 효과를 내는 관측망을 만든 것이다. 478km는 연세대에서 탐라대까지의 거리다. 전파망원경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관측망의 지름이 커지는 효과가 있다. 망원경의 성능과 직결되는 분해능(두 천체를 분리해 볼 수 있는 능력)은 관측망의 지름이 클수록 크기 때문에 가능한 전파망원경을 서로 멀리 떨어뜨리는 게 좋다. 관측망을 구성하는 전파망원경의 수는 많을수록 신호를 또렷하게 잡을 수 있다.









[약 120억 광년 떨어진 퀘이사 NRAO150을 KVN과 일본의 관측망 VERA로 관측한 모습. 중심에는 질량이 태양의 50억 배 정도인 거대 블랙홀이 있으며, 지구 방향으로 플라즈마 제트를 분출한다. 이를 고분해능으로 관측함으로써 제트의 물리적인 특성을 연구할 수 있다.]



KVN은 전파망원경 세 대와 전파 각각의 신호를 기록하고 처리해 하나의 상을 만드는 장치로 이뤄진다. 전파망원경에서 관측한 신호는 1초당 1기가비트의 속도로 하드디스크에 기록된 뒤 연세대에 있는 상관기(전파망원경 신호 처리 장치)에 모인다. 세 전파망원경에는 모두 정밀도가 1000조 분의 1초인 원자시계가 있어 신호가 도착한 시각을 기록한다. 이 시각을 바탕으로 각 전파망원경이 받은 신호를 한 군데 모아서 동시에 재생하면 선명하고 해상도가 좋은 영상을 얻을 수 있다.



세계 최초 네 주파수 동시 관측

지름이 500km가 채 안 되는 KVN은 8000km가 넘는 미국이나 2200km인 일본의 초장거리간섭계에 비해 아직 부족하다. 그러나 KVN은 세계 최초로 네 주파수를 동시에 관측하는 기술로 경쟁력을 갖췄다. 네 주파수는 22, 43, 86, 129GHz다. KVN 이전의 전파관측망은 43GHz가 넘는 주파수를 관측하지 못했다.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대기를 통과할 때 신호에 변형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김 본부장은 “세계 최초로 네 주파수를 동시에 관측함으로써 주파수가 높은 전파를 관측하는 초장거리간섭계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원리는 이렇다. 저주파 역시 대기를 통과할 때 변형된다. 전파의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신호가 많이 변형되지만, 저주파나 고주파가 변형되는 패턴은 같다. 따라서 저주파와 고주파를 동시에 관측한다면 저주파가 변형되는 패턴을 이용해 고주파의 변형을 보정할 수 있다. KVN은 이 기술을 최초로 도입했다. 김 본부장은 “병원에서 엑스레이와 MRI를 따로따로 찍다가 한꺼번에 찍을 수 있게 된 것과 마찬가지”라며 “천체를 더욱 자세히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활동성 은하핵이 있는 M87 은하를 허블 망원경으로 관측한 모습. KVN은 이와 같은 활동성 은하핵을 관측해 성질을 알아낸다.]



KVN은 마치 거대한 전파망원경처럼 분해능이 좋지만 실제로 안테나의 면적이 넓지는 않기 때문에 감도는 떨어진다. 그래서 주로 크기가 작고 강한 전파를 내는 천체를 관측한다. 우리 은하에서 가장 유명한 게 물 분자에서 나오는 22GHz와 일산화규소 분자에서 나오는 43, 86, 129GHz의 전파 신호다. 김기태 KVN그룹장은 “물 분자에서 나오는 전파는 별이 태어나는 영역과 말년의 별에서, 일산화규소 분자에서 나오는 전파는 말년의 별에서 주로 나온다”며 “이 전파를 관측하면 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별이 어떻게 종말을 맞이하는지 연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활동성 은하핵도 주요 관측대상이다. 활동성 은하핵은 중심에 초대형 블랙홀이 있어 대량의 물질을 빨아들이면서 보통 은하핵보다 수백만 배 이상 강한 전파를 낸다. KVN은 높은 주파수의 전파를 관측할 수 있어 활동성 은하핵의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기존의 전파관측망보다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김 본부장은 “KVN을 이용한 관측은 2009년부터 시작됐으며 작년부터 논문 수가 늘어나고 있다”며 “앞으로 2~4년 뒤에는 고급 연구 성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기대할 만한 성과로 암흑물질에 관한 연구를 꼽았다. 우주에 관한 대표적인 비밀인 암흑물질이 은하에 얼마나 있으며 어떻게 분포돼 있는지는 천문학자들의 큰 관심거리다. 은하에 속한 별이 은하 중심 주위를 도는 속도를 정확히 알면 암흑물질의 질량을 계산할 수 있다. 별의 속도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 필요한 장치가 KVN처럼 해상도가 뛰어난 초장거리간섭계다.  



동아시아 전파관측망의 중심

다른 선진국의 초장거리간섭계보다 지름이 작은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천문연은 중국, 일본과 함께 동아시아 VLBI관측망을 구축하고 있다. 총 19개의 전파망원경을 동원해 8000km가 넘는 관측망을 구성하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초정밀 관측도 가능해진다. 그러면 우리 은하의 구조를 상세하게 알아낼 수 있다. 우주에서 오는 수많은 전파 신호를 관측해 어디서 전파가 나오며, 위치가 어떻게 변하는지,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를 이전보다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보를 이용해 은하 중심에 있는 거대 블랙홀의 특징도 알 수 있다.



별까지의 거리를 정확히 측정하는 연구도 한다. 김 본부장은 “별까지의 거리를 잘못 측정하면 크기나 질량을 비롯한 여러 물리량이 잘못 결정돼 천체의 성질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별까지의 거리를 알면 자연스럽게 은하의 3차원 지도를 작성할 수 있다. 기존 3차원 은하 지도의 정확도를 개선할 수 있다.

19개의 전파망원경이 수신하는 신호를 통합 처리하는 센터는 대전에 들어선다. 김 그룹장은 “한반도가 지리적으로 중심에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성능의 상관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19개 전파망원경이 수신하는 신호를 처리할 수 있는 상관기는 일본과 공동으로 제작했지만 우리나라가 지분을 80% 이상 갖고 있다. 지난해 완성돼 현재 연세대에 있는 한일상관센터에 있으며, KVN과 일본의 초장거리간섭계인 VERA의 공동관측 자료를 처리하는 데 쓰고 있다. 내년 대전에 동아시아 VLBI센터가 완성되면 그곳으로 옮길 예정이다.



천문연은 2012년 일본이 미국, 유럽과 함께 준비하고 있는 VSOP계획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구 궤도에 지름 9m짜리 우주 전파망원경 ‘아스트로-G’를 띄워 지상의 전파관측망과 연결하려는 계획이다. 아스트로-G는 지구에서 최대 3만 6000km까지 멀어지므로 지름이 지구보다도 훨씬 커지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우리가 보유한 상관기는 여기서 얻는 신호를 처리하는 데도 활용할 계획이다. 대한민국 천문학이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망원경을 구축하는 데 참여하도록 KVN이 디딤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전파망원경이 수신한 신호를 전문적으로 처리하도록 만들어진 장치를 ‘상관기’라고 부른다. 발달한 IT기술 덕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용량을 처리하는 상관기를 보유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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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고호관 기자, 이미지출처│한국천문연구원, N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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