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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과동 키즈] 시간 속에서 영원을 말할 때,

     

    올해 여름이 오면 나는 시간이 시작되는 곳, 영국 런던으로 떠난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의 기준점인 그리니치 천문대가 있는 곳으로 곧 떠난다. 하지만 어쩌면 나에겐 정말로 런던, 그리니치 천문대가 ‘시간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속, 가득했던 별과 우주의 이야기를 다시 만나러 간다.

     

    아버지가 남긴 과학동아의 기억

     

    내가 ‘과학동아’에 이 글을 쓰는 날이 온다는 걸, 나의 아버지는 상상이나마 하셨을까. 30여 년 전, 천체사진가였던 아버지도 과학동아에 글을 기고하며 천문대에서 일하셨다. 그러다 한순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나는 겨우 세 살 무렵이었기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아버지가 남반구의 밤하늘을 촬영할 때 함께 갔던 호주에서, 아빠의 어깨 위에서 내려다봤던 캥거루 떼의 모습만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렇게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이 내 삶에서 아버지가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별이 되었다고 어른들은 말했다. 어느 날은 믿다가, 어느 날은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사랑한 이들의 연이은 죽음과 이별이 내 안에 남긴 텅 빈 구멍과 잡념들은 나를 계속 괴롭혔다. 이별은 단 한 번도 쉽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고통은 선명했고, 시간이 약이었지만, 이별은 불치병이다.

     

    환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와 아기였던 필자. 너무 일찍 헤어졌지만 기억이 오래 남았다.


    ‘어과동’ 키즈의 시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여느 어린이처럼 자랐다.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제일 처음엔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화가가 되고 싶었다가, 이야기를 지어내는 게 재밌어서 만화가를 하고 싶었다가, 동물이 좋아서 동물학자를 꿈꾼 날도 있었다. 제2의 제인 구달이 되겠다며 갈라파고스,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미래의 나를 진지하게 상상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어느 날은 집을 빼곡하게 채운, 주인을 잃은 천문학 관련 서적들을 보며 사진 속의 멋있는 아빠처럼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 ‘어린이과학동아’에 빠진 것도 이무렵이었다. 아빠가 과학동아 필자였기에 자연스럽게 보게 됐던 어린이과학동아는 호기심이 많았던 내게 아주 좋은 친구였다. 가까운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최신 기술부터, 지구의 크고 작은 동식물, 아주 먼 우주까지 온갖 이야기를 전해주는 이 잡지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그런 어린이과학동아에 꼭 참여하고 싶어서 그림을 열심히 그려 독자 코너에 당첨된 적도 있을 정도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이 되면서 나의 관심은 과학동아로 서서히 옮겨 갔다. 과학 교과서에선 볼 수 없는 이 낯설고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어린 시절의 미묘한 지적 허영심(스노비즘)을 자극했는지, 호기심이 그만큼 컸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때 과학동아에서 읽은 과학 상식들은 내 삶 전체의 밑거름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과학 교과의 시수가 거의 없는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과학과는 점차 멀어졌다. 그 시절 나와 별의 유일한 연결고리는 과학동아뿐이었다.

     

    1, 2 필자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난 천체사진가 아버지가 남긴 사진과 자신의 현재의 일상을 포착한 사진들을 결합한 작품들로 서울(1)과 파리(2)에서 연 전시회. 시간과 차원이 분리된 부녀의 기억이 만나서 탄생한, 새로운 형태의 이미지들을 보여준 이 시리즈는 필자가 사진가로 활동하는 계기가 됐다.

    3 작업 중인 필자의 옆모습. 올해부터 런던예술대(UAL) 센트럴 세인트 마틴(CSM)의 아트&사이언스 석사 과정에 진학해, 과학적 사실을 자신만의 예술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다시 만난 아빠의 필름 카메라

     

    자연과학 다큐멘터리 PD와 판타지 드라마 PD를 꿈꾸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과에 진학했다. 그 무렵 대외활동에서 만난 KBS의 PD님이 취미로 사진을 찍어보라는 조언을 주셨다. 많은 것을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할 수 있다면, 스토리와 영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집에 가자마자 대뜸 엄마에게 카메라가 있는지 물었다. 20년 가까이 장롱에 있던 아빠의 낡은 필름 카메라가 찾아온 순간이었다. 금이 간 고물 필름 카메라에 대일밴드까지 붙여가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빠의 카메라와 사진은 아빠보다 오래 남아 있었다. 초고화질의 디지털 천체사진이 주류인 시대이지만, 아빠가 필름에 담은 천체사진은 여전히 아름답고 특별했다. 이미 잊힌 과거의 천체사진들을 다시 이용해보고 싶었다. 내가 일상에서 담은 풍경, 정물의 사진을 아빠의 천체사진과 결합해, 새로운 형태의 아트워크로 만든 이유다. 서로 다른 시간과 차원에 존재한 두 존재(부녀)의 시선과 기억이,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로 창조돼 지속된다. 이 작업물 시리즈는 SNS에서 꽤 인기를 모았고, 자연스레 사진작가라는 직업이 생겼다. 한국과 파리에서 작은 전시를 했고, 여러 배우, 모델, 아티스트와도 협업하며 한국에서 커리어를 쌓아왔다.

     

    이별의 물리학, 상대성 이론

     

    ‘꿈꾸는 아인슈타인’은 어린이과학동아에서 가장 좋아한 연재 만화다. 이 만화에서 처음 상대성 이론을 접했을 때, 며칠 동안 붙들고 있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결국 아주 일부만 이해할 수 있었다. 과학을 좋아하면서도, 천재도 아닌 내가 활동할 분야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천체물리학에서 가장 큰 매력은 우리가 보는 밤하늘이 사실 과거의 밤하늘이란 점이다. 빛이 우주를 여행해 지구에 있는 우리 눈에 닿기까지 걸리는 시간 차 덕분에, 이미 사라진 별들을 관측할 수 있다. 이미 죽고 사라진 존재가, 지금 우리 눈앞에는 실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빠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하늘의 별처럼 이미 사라졌어도 사라지지 않은 것. 어딘가에는 영영 살아 있는 것. 내 고통과 이별들이 과학을 만나, 내면의 단단함과 고요함을 심어줬고, 결국 글과 그림, 조형물이 됐다.


    시간이 중력과 속도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는 상대성 이론의 개념은, 시간이 관찰자마다 다르게 경험된다고 해석될 수도 있다. 이 해석은 거리나 죽음으로 분리된 관계도 다른 방식으로 지속될 수 있다는 내 생각과 맞닿았다. 분리된 시간의 지속이 주제인 지구시계, 천체사진 콜라주는 영국의 대학원에 지원할 때, 포트폴리오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거리나 죽음으로 분리된, 관계와 시간의 지속을 주제로 제작한 필자의 지구시계 콜라주. 

     

    우주로 나아갈 지구의 예술

     

    아버지의 유산과 함께 돌고 돌아, 나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SF 영화 시나리오로 규모가 있는 공모전에서 당선돼 영화가 제작 중이고, 여러 과학적 사실을 예술적 관점으로 해석한 작업도 이어가고 있다. 


    나는 이제 과학실험과 설치미술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시점이 도래했다고 본다. 최근 여러 현대미술가의 설치미술을 보면, 최신 과학기술의 구현과 맞닿은 작품들이 많다. 이런 흐름을 접하며 내 철학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갈망이 더욱 커져서 유학을 준비했다. 현재 영국의 왕립예술대(RCA)와 런던예술대(UAL)에 합격해, UAL 센트럴 세인트 마틴(CSM)의 아트&사이언스 석사 과정에 진학할 예정이다.


    과학을 사랑하는 길은 다양했다. 어린 시절의 꿈이었던 천문학자나 생물학 연구원이 되진 않았지만, 지금 과학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시공간을 초월한 인연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별의 물리·화학적 고통을 신경학적으로 분석해 작품으로 구현하거나, 개인적인 경험들에 과학적 이론과 인문학적 사유를 결합해 보편성을 지닌 작품으로 제작하고 싶다.


    현재까지는 외계생명체의 유무도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먼 훗날 외계의 생명체가 우연히 지구를 알게 될지도 모른다. 혹 그런 날이 온다면, 그들에게 이 행성에 살았던 생명체들이 얼마나 유기적이고 복합적이며, 또 분명히 아름다웠는지를 전해줄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나만의  과학동아 활용법

    과학동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가 있나요?  
    2012년 1월호, 2021년 2월호의 화성탐사 특집 기사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우주인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던 시대의 어린이여서, 지구를 벗어나 우주에 살게 된다면 어떨까 무한한 상상을 하곤 했는데요. 기사 속 화성탐사의 과정과 향후 화성 이주 시 펼쳐질 구체적인 상황과 사례들이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과학동아를 실제로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요?
    예술 창작 활동을 할 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SF 시나리오를 쓸 때는 어떤 최신 기술이 개발 중이며, 어떤 논쟁거리가 있는지 전문적이고 다양한 시각에서 소개돼서 참고하기 정말 좋았구요. 미술 작품을 창작할 때도, 과학을 대중에게 어떻게 전달하는지에 대한 시각과 미래를 향한 트렌드를 읽어내는 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과학동아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어린 시절 가볍게 읽은 과학동아의 기사, 만화 하나가 나도 모르게 내 안의 씨앗이 되고 자라서, 하나의 열매가 되어 찾아왔습니다. 여러분의 열매는 무엇이 될까요?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25년 6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박예담 작가
    • 에디터

      라헌
    • 디자인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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