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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빙산 A23a의 대모험

    ▲Getty Images
    비행기에서 촬영한 빙산 A23a. 빙산 오른쪽 아래 보이는 비행기 그림자를 통해 빙산이 얼마나 거대한지 추측할 수 있다.

     

    여기, 춥고 거칠고 광막한 남극해를 39년 동안 떠돈 빙산이 있다. ‘A23a’라는 이름의 세계에서 가장 큰 빙산이다. 무려 제주도 면적의 2배에 달한다. 최근 이 빙산이 오랜 여행을 마치고 좌초했단 소식이 전해졌다. 그 여정에는 변화하는 남극의 모습이 녹아있을지도 모른다. 빙산 A23a의 흐름을 따라가 봤다.

     

     

     

    빙산 A23a, 얼마나 거대할까
    빙산 A23a의 크기를 다른 지역의 크기와 비교해봤다. A23a는 서울시보다 약 6배, 제주도보다 약 2배 넓다.

     

    ▲MODIS Land Rapid Response Team, NASA GSFC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아쿠아 위성이 2월 20일 촬영한 A23a(노란 원). 오른쪽 위로 사우스조지아섬이 보인다.
    아래쪽 사진은 사우스조지아섬의 풍경. 아남극권의 다양한 생물들이 사는 서식처다.

     

     

    2025년 1월, 남극 연구자들 사이에서 불길한 소식이 떠돌았다. 남극 순환 해류를 빠져나온 빙산 ‘A23a’가 영국령 사우스조지아섬에 충돌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었다.


    사우스조지아섬은 남대서양 복판에 외따로 떨어진 영국령 섬이다. 혹독한 기후로 겨우 20여 명 내외의 사람들이 머물지만, 다양한 물범과 펭귄, 앨버트로스 같은 물새들이 사는 천혜의 자연을 갖추고 있다. 문제는 사우스조지아섬이 종종 남극에서 떠내려오는 빙산의 경로에 있다는 점이었다. 거대 빙산 A23a가 사우스조지아섬에 충돌할 경우, 막대한 양의 얼음이 해변에서 바다로 나가는 길을 막아버려 동물들이 굶어 죽을 우려가 있었다. 


    도대체 빙산이 얼마나 크길래 섬을 가로막는다는 것일까. 빙산 A23a는 그 넓이가 약 3500km2로 현재 존재하는 빙산 중에 가장 크다. 사우스조지아섬의 넓이가 3528km2이니 섬 전체만 한 넓이다. 한반도 지역과 비교하면 제주도의 2배, 서울시 면적의 약 6배에 달한다. 이렇게 거대한 빙산이 39년의 여정을 마치고, ‘거대한 빙산이 죽어가는 곳’ 사우스조지아섬에서 삶의 마감을 목전에 둔 것이다.

     

    좌초된 A23a, 주변에 어떤 영향 미칠까

     

    빙산은 호수나 바다를 떠다니는 얼음덩어리다. 남극해를 떠도는 빙산은 위가 테이블처럼 평평한 모습으로 잘 알려졌는데, 이는 남극의 빙산이 주로 빙붕이 쪼개져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남극 대륙은 두께가 평균 2km에 달하는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있다. 이를 빙상이라 하는데, 이 얼음들은 바다 위로 흘러내리면 중력에 의해 그대로 물 위에 떠서 퍼진다. 이것이 ‘빙붕’이다. 빙산은 이 빙붕이 여러 응력을 받아 쪼개지면서 만들어진다. 응력의 원인은 다양하다.


    “빙붕이 흐르는 속도의 변화 같은 내부적 요인은 물론, 해수나 대기 온도 같은 외부적 요인도 빙산 생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심지어는 조수간만의 차, 파도, 바람도 원인이 될 수 있어요.”


    4월 2일 서울에서 만난 진경 극지연구소 정책협력부 책임연구원은 설명했다. 진 책임연구원은 기후 모델링을 전공했다. 그가 극지연구원에서 주로 하는 연구도 극지에 특화된 모델링이다. “빙상, 빙하, 빙붕, 해빙(바닷물이 얼어서 생긴 얼음)을 포함한 빙권 전체를 모델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A23a은 1986년, 필히너-론네 빙붕에서 떨어져나왔다. 초기에는 한참 동안 빙붕 근처에 좌초돼 있다가, 2022년부터 해저에서 떨어져 빠른 속도로 떠내려가기 시작해 최근 사우스조지아섬 근처에까지 이르렀다. 다행히 심각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3월 4일(현지 시각), A23a를 꾸준히 관찰해 온 영국남극조사국(BAS)은 A23a가 사우스조지아섬에서 남쪽으로 약 73km 떨어진 얕은 바다에 충돌했다고 발표했다. BAS는 A23a가 이곳에서 급격하게 녹고 부서질 것으로 예측했다.


    사실 빙산이 해양 생태계에 나쁜 영향만 미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빙산이 녹으면서 생기는 물의 흐름은 깊은 바다와 표층을 휘저어놓는다. 그래서 깊은 바다에 가라앉아있던 영양분이 표층으로 올라오고, 플랑크톤의 생장이 촉진된다. 동시에 빙산은 녹으면서 담수와 함께 흙, 모래 등 상당한 양의 육상 물질을 바다로 공급한다. 이 또한 해양 생태계에 필요한 원소를 공급한다. 빙산이 탄소, 질소, 인 같은 물질을 순환시키는 택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빙산은 건강한 생태계를 지탱하는 데 필요한 퍼즐의 한 조각인 셈이다. doi: 10.1146/annurev-fluid-032522-100734, 10.1146/annurev-marine-121211-172317


    물론, 빙산 감시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도 중요하다. 1912년 북대서양에 가라앉은 타이타닉호가 보여줬듯, 빙산은 해양을 지나는 선박들에는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특히나 거대 빙산보다도 거대 빙산이 녹아서 만들어진, 경로를 추적하기 힘든 수많은 작은 빙산들이 그러하다. 사우스조지아섬 주변을 돌아다니는 원양 어선들에는 신경 쓸 거리가 하나 추가됐다.

     

    ▲Shutterstock


    A23a, 남극의 미래를 은유하다

     

     

    A23a와 같은 거대 빙산은 기후변화로 만들어진 결과물일까. “그렇진 않습니다.” 진 책임연구원의 대답은 단호했다. “아시다시피 A23a가 떨어져나온 건 기후변화가 남극에 영향을 미치기 전인 1986년입니다. 거대 빙산은 자연적인 응력으로도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기후변화가 남극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안심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빙붕 붕괴가 기후변화로 가속화될 수 있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진 책임연구원을 포함한 극지연구원 연구팀은 2023년 ‘지오피지컬 리서치 레터스’에 남극의 ‘라르센 C’ 빙붕 밑을 통과하는 빙붕수를 수치 모델로 시뮬레이션한 연구를 발표했다. doi: 10.1029/2023GL104088 


    빙붕 아래는 두꺼운 얼음을 뚫어야 해 실제로 관찰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연구팀은 빙붕수의 온도와 염도를 달리 했을 때 빙붕이 어떤 변화를 겪는지 시뮬레이션했다. “빙붕수가 따뜻해지면 빙붕이 훨씬 빠르게 녹아 빙산도 빠르게 만들어진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그린란드의 빙하는 대기 온도에 큰 영향을 받는데, 남극 빙붕은 해수 온도에 더 영향을 받는다는 게 드러난 겁니다.”


    당연하게 들리지만 실은 굉장히 중요한 발견이다. 빙붕이 남극 대륙에 쌓여있는 얼음이 흘러내리지 않게 막는 마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빙붕이 불안정해지면 대륙에 쌓여있던 얼음이 급속도로 흘러내려 남극이 급격하게 녹을 수 있다. 이를 ‘해양 빙상 불안정성’이라고 한다. “연구자들은 해양 빙상 불안정성을 기후변화의 측면에서 돌이킬 수 없는 ‘티핑 포인트’라 얘기합니다.” 순식간에 남극 얼음이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는 ‘얼음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


    빙산과 바다, 민물과 바닷물이 어떤 방식으로 남극의 환경과 생태계를 다양하게 엮어내는지 인간은 아직도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진 책임연구원은 “남극과 그 주변의 빙권에 관해 쌓인 데이터가 부족해, 수치 모델의 정확도도 떨어지는 상황”이라 설명했다. 때문에 연구자들에게 A23a는 ‘축소한 남극’과도 같은 존재다. “남극이 녹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떤 걱정을 해야 하는지 A23a가 미리 보여준 거예요. 빙산이 녹아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건 남극이 녹아버린 미래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거든요.” 39년의 여행 끝에 녹아 사라지는 중인 빙산 A23a의 상실은, 어쩌면 근미래에 함께 녹아 사라질 우리의 미래를 은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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