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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11월 들어 백신 접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감염자와 사망자가 계속 줄고 있는 추세라고 발표했다.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는 지난 8월 15일 처음 발생한 뒤 지난 10월 25일~31일 24명으로 정점을 찍었고 11월 1일~7일에는 19명, 11월 8일~14일에는 16명으로 점차 줄었다. 동시에 타미플루나 릴렌자 같은 항바이러스제를 투약하는 인원도 크게 줄었다. 11월 12일 전까지는 매일 10만 명 이상씩 항바이러스제를 투약했으나 13일에는 8만 3000명, 14일에는 4만 6000명, 15일에는 1만 1000명으로 투약 인원이 크게 줄고 있다.

보건당국은 영·유아 232만 명과 임산부 28만 명(12월 중), 65세 이상 노인(내년 1월)을 포함한 고위험군에 대한 백신 접종을 완료하면 신종플루 감염자와 사망자 수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의심환자에게까지 타미플루를 처방하면서 타미플루에 내성을 가진 바이러스가 등장할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임상시험을 하지 않은 임산부에 대한 접종에 대해 위험성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신종플루와 예방백신, 치료제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봤다.

1. 신종플루 안 걸리는 사람 따로 있다?

지난 10월 고려대 구로병원과 안산병원 등에서 시행된 신종플루 백신 임상시험에 따르면 임상시험 참가자의 평균 6~8%가 신종플루에 대한 항체를 이미 갖고 있었다. 이미 항체를 보유한 사람은 고령자일수록 더 많았다. 19세~64세의 성인 참가자 230명 중에는 6.5%, 65세 이상의 참가자 224명에는 8.3%가 항체를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어떻게 항체를 갖게 됐을까. 특정 항원과 항체는 자물쇠와 열쇠처럼 서로에게 맞는 짝이 있다. 그래서 바이러스(항원)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백신(항체)이 듣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 열쇠(항체)는 자물쇠(항원) 모양이 일부 변하더라도 열 수 있다. 항원과 항체가 정확히 일대일로만 반응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김창오 교수는 “이들이 항체를 갖게 된 이유는 과거에 신종플루 바이러스와 비슷한 바이러스에 감염됐기 때문”이라며 “나이가 많은 노인들의 경우 위생상황이 좋지 못했던 1950년대 이전에 항체를 갖게 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2. 백신 접종받아도 신종플루 감염될 수 있다?

지난 10월 말 신종플루 치료 거점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가 백신을 접종받은 뒤 이틀 만에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의료진들도 백신 접종을 꺼린다는 소문과 함께 신종플루 백신을 맞은 뒤 감염된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퍼졌다. 하지만 신종플루 백신은 바이러스를 불활성화시킨 ‘사(死)백신’이어서 감염 위험성이 없다(자세한 내용은 과학동아 2009년 11월호 ‘신종플루 예방 백신 안전할까’ 참조).

신종플루 백신을 예방접종받더라도 바로 면역력이 생기지 않는다. 보통 10~14일의 유예기간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간호사가 백신을 접종받기 바로 전이나 접종받은 직후 신종플루에 감염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마찬가지로 일반인들도 백신을 접종받은 뒤 2주 정도가 지나야 면역력이 생기기 때문에 그 사이에 신종플루에감염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백신을 맞더라도 개인에 따라 항체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백신을 접종받더라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외출 뒤 손을 꼭 씻으며 개인위생에 신경을 써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생물제제과 강석연 과장은 “임상시험에서 백신의 유효성을 평가하는 기준은 항체 생성률이 60~70% 이상인지 여부”라고 말했다. 이 기준을 넘고 안전상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백신은 허가된다는 뜻이다. 녹십자가 제조한 신종플루 백신 ‘그린플루 에스’의 경우 임상시험 결과 19세~64세 사이의 성인은 94%, 65세 이상의 노인은 75% 가량 항체가 생겼다. 항체 생성률이 100%가 아닌 만큼 경우에 따라 백신을 맞고도 신종플루에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개인차가 있지만 백신의 면역 효과는 보통 6개월 정도만 유지되기 때문에 올해 12월 접종받은 사람은 내년 하반기 이후 다시 백신을 접종받아야 할 수도 있다.

3. 우선접종자 어떻게 결정할까

정부는 지난 11월 말 학생, 노인 등 우선 접종자를 대상으로 백신접종을 시작했다. 우선 접종자는 어떤 기준으로 정할까. 미국 예일대 의대 잔 매들록 박사는 미국에서 신종플루의 확산을 막기 위해 백신 630만 도즈(1회 주사분)이면 충분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지난 9월 25일 과학저널‘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는 미국이 계절성 인플루엔자에 대비해 확보하는 백신 분량 850만 도즈보다도 적은 양이다. 연구팀은 수학 모델링 기법으로 예측한 결과 계절독감 백신 분량의 80% 정도만 사용해도 신종플루 유행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정부는 10월 중순까지 이미 총 1140만 명분의 백신을 각급 의료기관에 공급했다.

매들록 박사팀은 나이와 백신을 투여하는 데 드는 비용, 연령별 인구 수, 감염자 수, 사망률 등에 따라 인플루엔자가 확산되는 추이를 예측하는 수학모델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최소화시킬 수 있도록 백신을 가장 효과적으로 투여하려면 면역력이 약하고 사람을 많이 접촉하는 5세에서 19세의 미성년자와 이들로부터 감염될 가능성이 높은 부모를 포함한 30세~39세의 성인에게 맨처음 백신을 투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에서도 가장 전파력이 높고 면역력이 약한 고위험군을 중심으로 예방접종을 먼저 시행하고 있다.

4. 임산부 안정성은?

지난 11월 25일 임산부에 대한 신종플루 예방백신 접종 예약이 시작됐다. 실제 접종은 12월 21일부터 시작된다. 일부에서는 국내에서 임산부에게 백신 임상시험을 한 적이 없다는 점을 들어 태아와 산모에게 미칠 위험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지난 9월 임산부에 대한 신종플루 백신 임상시험 결과 계절독감 백신과 마찬가지로 신종플루 백신도 모든 임산부가 임신 기간에 관계없이 접종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모유를 통해 아기에게 항체가 일부 전달되기 때문에 수유부가 신종플루 백신을 접종받으면 아기에서도 면역이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식약청 강석연 과장은 “임산부가 신종플루 백신을 맞아야 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라며 “임산부가 신종플루에 걸려 고열을 겪으면 태아의 뇌가 손상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6개월 이하의 유아는 면역력 자체가 거의 없어 태어나기 전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항체에 의존한다”며 “임산부가 신종플루 백신을 접종받으면 유아도 항체를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일반인의 경우에는 계란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있거나, 계절독감 백신을 접종받은 뒤 알레르기 반응을 경험했다면 접종을 피해야 한다. 또 계절독감 백신 접종 이후 6주 이내에 환자의 면역체계가 신경 세포를 손상시켜 근력약화와 마비를 일으키는‘길랑-바레 증후군’이나 신경계 이상이 나타난 경우에도 접종받아선 안 된다.

하지만 계절독감 백신과 신종플루 백신을 동시에 맞는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연세대 김창오 교수는 “폐렴 백신과 독감 백신을 동시에 맞는 경우도 많다”며“항체가 잘 생길 수 있도록 몸의 다른 부위에 맞는다면 동시에 맞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9일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는 신종플루 백신과 계절독감 백신을 동시에 접종하는 임상시험을 한 뒤 두 백신이 서로의 면역 반응을 저하시키지 않는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5. 타미플루 정신이상 일으키나

지난 10월 30일 타미플루를 복용한 중학생이 아파트 6층에서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이에 타미플루의 부작용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타미플루를 복용한 사람들에게서 가장 빈번히 나타난 이상반응은 투여한 지 이틀째에 많이 발생하는 구역질과 구토 증상이다. 하지만 타미플루 임상시험에서 드물게 의식장애나 이상행동, 환각, 망상, 경련과 같은 정신신경계 이상이 보고됐다.

일본에서도 타미플루를 복용한 10대 청소년이 잇달아 투신하는 사건이 있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00년 12월에서 2009년 3월까지 타미플루를 복용한 뒤 환청이나 환각을 경험하거나 ‘이상행동’을 한 것으로 보고된 353명을 조사한 결과 총 29명이 건물에서 투신했으며 그중 10대가 23명이나 됐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타미플루와 이상행동의 연관성을 증명하기 어렵지만 부인할 수도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따라 지난 11월 17일 보건당국은 미성년자에게 타미플루를 투여할 때 주의를 당부하는 내용의 의약품 안전성 서한을 의·약 단체에 배포했다. 타미플루를 처방받은 미성년자에게서 이상행동이 발현될 위험이 있으며 환자가 집에서 요양할 경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적어도 2일 동안은 혼자 있지 않도록 보호자가 주의를 기울이라는 내용이다. 김창오 교수는 “아직까지 타미플루가 정신계통에 이상을 일으킨다는 연구결과나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며 “미성년자에게 투약할 때 주의해야 하지만 필연성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게다가 타미플루를 예방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신종플루 예방 백신은 몸에 항체를 형성시켜 앞으로 6개월간 체내에 침입하는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킨다. 하지만 타미플루는 예방제가 아니라 치료제다. 물론 타미플루를 복용하는 동안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효과가 있지만 약을 사용하는 동안에만 예방효과가 지속된다. 전문가들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해당 지역에서 대유행할 만한 징후가 있을 경우에 한해 타미플루를 예방에 사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6. 변종플루 생겼나?

지난 11월 15일 신종플루보다 확산 속도가 더 빠르고 치명적인 변종플루가 발견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전 세계가 일순간 긴장에 빠졌다.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익스프레스’는 우크라이나에서 신종플루 바이러스와 계절독감 바이러스 2종이 조합돼 생긴 변종 바이러스에 100만 명 이상이 감염되고 200명 가까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빅토르 유센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TV 인터뷰에서 변종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공포는 더 빠르게 번져 나갔다.

하지만 이틀 뒤 세계보건기구(WHO)는 홈페이지에 “우크라이나 환자들에게서 채취한 바이러스 샘플을 분석한 결과 변종 바이러스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WHO는 “스페인 독감처럼 전염력이 강하고 치사율도 높은 변종이 출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아직까지 그런 징후는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11월 20일 영국과 노르웨이 보건당국도 호흡기에 더 깊이 침입하는 변종플루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또한 영국 보건당국은 타미플루에 내성이 생겼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WHO는 “타미플루를 쓰면 변종 바이러스도 수그러들어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변종 바이러스가 확산되면 지금의 백신은 전혀 듣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최후의 보루와 같은 타미플루에 내성을 가진 바이러스가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우리 정부는 신종플루 대유행(팬데믹)을 억제하기 위해 확진환자가 아니더라도 의심증상만으로 타미플루를 처방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변종 바이러스가 생길 위험성은 더 커지고 있다.

정부가 이런 방침을 세운 이유는 뭘까. 신종플루 환자는 가능한 한 증상 초기에 타미플루를 복용해야 하는데, 의심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사이에 많은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 초기증상에서 사망에 이르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 신종플루를 비롯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인체를 감염시킨 뒤 초기 72시간 이내에 급격히 증식하기 때문에 증상이 나타난 지 40시간 이상 지나면 타미플루를 투여해도 잘 듣지 않는다.

김창오 교수는 “현재 상황에서 정부의 이런 방침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는 없지만 오남용으로 이어질 경우 언제든지 타미플루에 내성을 갖는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생길 수 있다”며 “이미 계절독감 바이러스 중에는 타미플루에 내성이 생긴 사례가 다수 있다”고 경고했다.

200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준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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