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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여덟 다리의 비밀 ⑤] 강하고 매력있는 자만이 사랑을 쟁취하는 거미 세계

거미들은 짝을 쟁취하기 위해 어떻게 경쟁하고, 어떻게 짝을 고르고 설득할까? 거미들이 짝을 찾으며 동성의 경쟁자를 만났을 때, 암수가 만났을 때 보이는 다양한 행동은 거미를 성선택 연구의 핵심 대상 중 하나로 만들었다. 그들의 치정문제(?)를 함께 파헤쳐 보자.

극락깡충거미 수컷이 화려한 발색을 뽐내고 있다. 어떤 종은 암컷이 수컷의 화려한 발색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특정 종의 극락깡충거미 암컷은 색맹이어서 수컷의 붉은색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성 선택 연구는 인간의 눈이 아니라 짝을 고르는 동물의 시각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수컷의 싸움

단계적인 ‘저울질’
 

성체가 된 거미는 생을 마감하기 전, 자신의 자손을 가급적 많이 그리고 건강하게 낳아줄 짝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보통 그런 짝은 한정돼 있고, 남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때문에 짝을 찾는 과정에서 나와 목표가 같은 동성의 경쟁자와 마주쳤을 때, 거미는 싸움을 불사한다. 하지만 모든 싸움이 격렬한 몸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북미멋쟁이깡충거미 수컷들의 싸움은 단계별로 나타나는 정형화된 행동이 특징이다. 우선 경쟁자를 마주하면 양 앞다리를 수평으로 넓게 벌려 몸을 크게 보이게 만들고 좌우로 스텝을 밟으며 대치한다. 동시에, 몸을 떨어 바닥에 기질진동신호를 낸다. 몸 크기와 진동신호의 강도는 상대방에게 내가 얼마나 강한지를 알리는 다중감각신호다. 선수들 사이의 몸 크기와 진동신호의 강도 차이가 현격할 경우, 열등한 개체는 먼저 싸움을 포기하고 도망간다. 아무리 짝짓기 상대라는 중요한 자원이 걸린 일일지라도, 내가 이길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상처만 남을 싸움에 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진동신호 차이가 크지 않다면 수컷 깡충거미의 싸움은 몸싸움으로 격화된다. 양팔을 벌린 개체들이 서로 점점 다가가다가, 이내 앞다리로 서로를 밀기 시작한다. 싸움이 더 격렬해지면 서로의 입을 바싹 붙이고 엄니 대 엄니로 서로를 문 채로 온 힘을 다해 상대방을 밀어낸다. 호의적이지 않은 입맞춤이다. 싸움은 보통 1분 내외로 부상 없이 결판난다. 힘의 균형이 깨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자신의 열등함을 느낀 개체가 도망치면서 싸움은 끝난다.

 
깡충거미 수컷(위)이 암컷(아래)에게 구애 행동을 하고 있다. 암컷이 취하는 동작은 승낙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암컷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다면 수컷은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재빨리 도망가야 한다.
 

암컷의 싸움

뒤가 없는 승부
 
번식기의 북미멋쟁이깡충거미 암컷 또한 찾아오는 수컷을 기다릴 영역이자 알을 낳아 새끼를 키울 영역을 두고 싸운다. 흥미롭게도 암컷끼리의 싸움은 수컷 간 싸움보다 덜 정형적이고 단순하지만, 훨씬 더 잔혹하다. 몸싸움이 격화되기 전, 암컷은 그저 가만히 서로 오랜 시간 노려볼 뿐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기질진동신호도 만들어내지만, 수컷의 신호보다 훨씬 단순하다. 하지만 몸싸움이 격화하면 암컷은 갑작스레 서로 격렬하게 물어뜯으며 장시간 싸운다.

대부분의 싸움이 부상 없이 결정되는 수컷끼리의 싸움과는 다르게, 암컷의 싸움은 출혈이 동반되거나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또한 놀랍게도 수컷과는 달리 이 몸싸움의 승패는 암컷의 몸 크기나 진동신호 강도 그 어느 것과도 연관성이 없다. 번식기가 임박한 암컷이 싸움에 더 격렬하게 임하고 이길 확률이 높았다. 왜 암컷들은 수컷처럼 패색이 드리울 때 미리 도망치지 않고 죽음까지 불사하며 싸울까? 연구자들은 짝짓기를 앞둔 암수의 속사정이 서로 다르다는 것에 주목했다. 수컷은 죽기 전, 여러 암컷과 교미를 할 수 있다. 맞닥뜨린 경쟁자 수컷을 이겨 점찍은 암컷과 짝짓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 수컷을 이길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면 포기하고 다른 암컷을 찾으러 가도 괜찮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컷끼리의 싸움에서는 죽음을 불사한 싸움보다는 서로의 싸움 능력을 세세히 ‘저울질’할 수 있는 정형화된 싸움이 진화했을 것이다. doi: 10.1016/j.anbehav.2008.01.032.

 
 
거미줄 위에 있는 암컷과 수컷 과부거미류 거미. 수컷(오른쪽)은 암컷보다 훨씬 작다. 짝짓기 준비가 된 암컷의 거미줄에 도달하는 수컷은 약 12%에 불과하며, 거미줄에 도달하더라도 그곳에는 경쟁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경쟁에서 성공한 수컷이 암컷과 가장 가까운 자리를 차지해, 높은 확률로 첫 교미로 이어진다.
 
암컷의 사정은 다르다. 북미멋쟁이깡충거미 암컷은 생애 한두 번 밖에 번식을 하지 못하고, 알집에서 새끼가 태어나고 독립할 때까지 몇 달 동안 한 장소에서 돌봐야 하므로 조건이 우수한 영역을 확보하 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영역은 희귀하기 때문에 싸움을 포기해 모처럼 찾은 좋은 영역을 경쟁자에게 넘겨주면 웬만해선 기회를 다시 잡기 어렵다. 한 마디로 뒤가 없는 셈이다. 그러므로 암컷은 세세하게 자신의 승리 확률을 따지기보다는, 죽기살기로 덤벼드는 형태의 싸움이 진화했으리라는 해석이다. doi: 10.1093/beheco/arq073

짝짓기 전투

진화적 이득
 
한편 동성 간의 싸움은 간접적으로 짝에게 큰 이득을 준다. 오직 싸움에서 이긴 강한 수컷만이 암컷에게 다가감으로써 암컷은 자동으로 미래의 짝짓기 경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은 강한 자손을 낳게된다. 때문에 암컷이 싸움을 잘하는 수컷을 짝짓기 상대로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들풀거미류 암컷은 공격성이 더 높고 싸움을 더 잘하는 수컷과 짝짓기 하는 것을 선호한다. 접시거미류의 한 종은 암컷이 성적으로 성숙하기 전 며칠 동안 경쟁자 수컷들이 암컷의 그물에 모이는데, 암컷이 성숙하는 시점에서 암컷과 가장 가까운 위치를 쟁취한 수컷이 교미할 수 있다. 그전까지 수컷들은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격렬한 ‘왕좌의 싸움’을 반복한다. 연구자들은 격한 싸움 끝에 성숙한 암컷과의 교미를 쟁취한 수컷이 크고 강하며 많은 자손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doi: 10.1007/BF00171577

암컷들은 수컷들이 자신을 두고 일정 기간 피 튀기는 싸움을 하도록 둠으로써, 싸움을 잘하고 정력이 좋은 수컷과 교미하게 되는 것이다. 동성 간 경쟁이 꼭 몸싸움을 동반해야만 치열한 건 아니다. 페로몬으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경우도 있다. 모임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있어 그 사람이 좋아하는 향수를 뿌리고 갔는데, 다른 사랑의 경쟁자가 비슷한 향수를 더 진하게 뿌리고 나타났다고 생각해 보자. 과부거미류 암컷들에서 일어나는 일이 이와 비슷하다. 과부거미 암컷은 근처에 암컷 경쟁자들이 많아져 수컷을 이끄는 암컷 성페로몬의 농도가 높아지면, 이에 맞춰 자기 페로몬 분비량을 늘린다. 하지만 이는 페로몬을 추적해 거미를 사냥하는 포식자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암컷은 거미줄을 더 넓게 보강해서 자신이 숨을 공간도 동시에 확장한다. doi: 10.1038/s42003-023-05392-y

 
 
검은색 털 다발로 덮인 앞다리의 장식이 보인다. 두 다리가 크기가 같고 장식이 대칭적인 것으로 보아 자라면서 다리를 잃어버린 적이 없는 북미붓다리늑대거미 성체다. 수컷은 암컷의 존재를 감지하면 앞다리를 수시로 들었다가 내리면서 바닥을 두드리는 구애 신호를 보낸다.
 

앞다리 장식, 대칭성

거미도 ‘눈 높은’ 이유
 
‘눈이 높다’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이성을 바라보는 기준이 까다롭다는 뜻이다. 거미들 또한 인간 못지않게 짝짓기 상대를 바라보는 눈이 높은 경우가 많다. 물론 꼭 ‘눈’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아니고, 저마다 매우 다양한 다른 기준을 지니고 짝을 선택한다. 북미붓다리늑대거미 암컷은 앞다리에 달린 검은색 장식이 큰 수컷을 선호한다. 심지어 연구자가 임의로 영상을 합성해 같은 종이 아닌 다른 늑대거미 수컷의 앞다리에 장식을 만들어 재생했을 때도,장식이 작은 같은 종의 수컷보다 영상 속의 수컷을 더 선호했다. 실제로 검정 장식이 크고 또렷한 수컷은 더 크고 건강 상태가 좋아 많은 자손을 낳을 수 있다. 이처럼 짝이 평가할 수 있는 형질이 실제로 개체의 퀄리티를 대변하는 경우를 ‘정직한 신호(honest signal)’라 고 한다. 심지어 북미붓다리늑대거미 암컷은 앞다리 한 쌍의 장식이 서로 대칭적인 수컷을 선호한다.

거미는 성장 과정에서 포식자에게서 공격당해 다리를 잃으면 탈피를 통해 재생할 수 있다. 다만 한 번의 탈피로 완전히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의 탈피에 걸쳐 점진적으로 재생한다. 자라면서 앞다리 한쪽을 한 번 이상 잃어버린 수컷은 그쪽의 검은색 장식이 다른 한쪽보다 작을 수 밖에 없다. 암컷은 수컷 앞다리 장식의 대칭성을 선호함으로써 ‘곱게 자란’ 수컷과 교미할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북미붓다리늑대거미 암컷은 한술 더 떠, 구애 신호가 ‘복잡한’ 수컷을 선호한다. 수컷이 구애할 때 내는 기질진동신호의 노래가 더 복잡할수록 그 수컷의 구애를 받아줄 확률이 높다. 수컷 또한 더 건강 상태가 좋은 암컷을 상대로 구애할 때 기질진동신 호의 복잡성을 더 높였다. doi: 10.1098/rsbl.2022.0052 에너지를 투자할 가치가 더 높은 암컷을 만났을 때 구애신호에 더 공을 들인 것이다. 암컷은 왜 더 복잡한 신호를 선호했을까? 현재 연구자들은 구사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드는 복잡한 신호를 잘 내는 수컷일수록 더 경쟁력 있는 수컷이라는 가설과, 복잡한 신호일수록 수컷의 건강 상태에 대한 더 다양한 종류의 정보를 많이 전달할 것이라는 가설 등을 시험 하고 있다.

 

Dialogue
‘거미가 무섭다, 징그럽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는 이야기
정화: 우리처럼 거미를 ‘좋아하는’ 게 희한한 거니까, 난 당연한 거라고 얘기해주는 편이야. 그리고 거미에 대한 두려움이 일정 부분 거미에 대한 호기심에서 온다고 생각해서 누가 거미를 무서워한다고 해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
이항: 무서워하기 때문에 더 호기심을 가질 수도 있다?
정화: 정화: 그럼. 보통 나한테 거미가 무섭다고 하는 사람들은 먼저 거미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물어봐. 그러면 사람한테 해를 가할 수 있는 독거미가 0.1%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그럼 엄청 신기해한다고!
이항: 좋은 전략이다. 나도 그렇게 해봐야겠어. 그런데 한국이랑 비교하면 미국은 독거미를 만날 일이 종종 있는 편이긴 해. 나도 학교에서 검은과부거미를 본 적이 있고, 너도 연구실 책상에서 집에서 잡은 괴사성 독을 가진 브라운 레클루즈 거미를 기르잖아. 심지어 집에 나타나는 경우도 은근히 많고!
정화: 그렇지만 진짜 물릴 확률은 정말 적지. 난 살면서 거미한테 한 번도 물려본 적이 없는걸! 한국에는 독거미가 더 없어?
이항: 그나마 독성이 조금 있다고 지목되는 종이 애어리염낭거미 등의 한두 종 정도일 거야. 실내에서 나오는 종들도 아니라서 거미 물림에 의한 진료기록은 한국에선 거의 전무해.
정화: 안전하게 거미 연구를 하려면 한국에 가야겠네! 너는 거미가 무섭다는 친구들에게 어떤 말을 하니?
이항: 난 너처럼 친절하지가 않아서 조금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편이야. 한반도에 있는 모든 왕거미랑 싸워도 네가 이길 텐데 도대체 왜 무서워하냐, 라던지….
정화: 너무한 거 아냐? 우리보다 작고 약한 동물이라도 무서울 수도 있지!
이항: 맞아. 하지만 거미들이 우리를 두려워하는 정도가 훨씬 크지 않겠어?
저자
박이항: 미국 네브라스카대 거미행동생태연구실 연구원. 한국에서 노린재류의 진화생태로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 깡충거미류의 의사결정을 주제로 박사학위 연구중에 있다. ypark15@huskers.unl.edu

서정화(Jillian Kurovski): 미국 네브라스카대 거미행동생태연구실 연구원. 미국에서 거미류의 계통분류와 군집생태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 닷거미류의 암컷 주도 짝선택을 주제로 박사학위 연구 중에 있다. 한국 태생으로, 생후 8개월에 미국으로 입양됐다. jkurovski2@huskers.unl.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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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과학동아 정보

  • 박이항·서정화 미국 네브라스카대 거미행동생태연구실 연구원
  • 에디터

    김태희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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