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업무부터 소통까지 모든 걸 해결하는 시대, 손을 쓰지 못한다면 사소한 일조차 제약으로 다가온다. 양팔이 마비된 전신마비 환자들의 일상이다. 그리고 태평양 건너편, 이들을 위한 ‘핸즈 프리(hands free)’ 마우스가 그들의 일상을 돕고 있다. 입에 넣고 혀로 굴리는 터치패드 ‘마우스패드^’ 이야기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마우스패드^를 만든 오그멘탈의 CEO 토마스 베가와 e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편집자 주
“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제 중요하지 않아요. 손가락은 굳었지만 혀는 잘만 굴러다니니까요.” 오그멘탈의 창업자 토마스 베가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에 사는 전신마비 환자 마이크 헤이스팅스의 생생한 후기를 들려줬다. 헤이스팅스는 지난해 마우스패드^(MouthPad^)를 처음 접하고선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헤이스팅스는 20살이 되던 1999년, 수영장에 뛰어들다가 목을 다치며 척수에도 부상을 입었다. 그날 이후 26년간 그의 목 아래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던 그에게 2024년은 제2의 삶이 시작되는 전환점이었다. 오그멘탈의 마우스패드^가 본격적으로 시판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우스패드^의 첫 사용자가 된 헤이스팅스는 “25년이 넘도록 마우스 스틱, 음성 인식 등 온갖 첨단 장비를 써왔지만 모두 문제가 있었는데 이제야 한계가 해소됐다”고 만족감을 전했다.
마우스패드^는 언뜻 보면 교정기같다. 마우스패드^를 사용자가 윗니와 입천장에 맞춰 끼우기만 하면, 그 순간 그의 입속 공간은 노트북의 터치패드처럼 변한다. 혀를 입천장에 대고 움직이면 블루투스로 연결된 컴퓨터 화면 속 마우스 커서가 따라 움직이고, 혀로 입천장을 누르면 클릭된다. 마우스패드^는 이렇게 입속 작은 공간에서 전신마비 환자들을 드넓은 세상과 연결해 주고 있다. 2024년 소비자 가전전시회(CES)를 통해 데뷔한 마우스패드^는 같은 해 6월 미국에서 정식으로 출시됐다. 이듬해 열린 CES 2025에서는 접근성 및 고령화기술(Accessibility&Agetech) 부분 혁신상을 거머쥐었다.

마우스패드^의 작동 원리

콤플렉스가 만든 창의성
이토록 비범한 기기를 만든 베가는 자신을 말더듬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말을 더듬는 습관이 있어 키보드와 마우스가 주된 표현 수단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고등학교 때 다발성 경화증 환자들과 일했는데 제 콤플렉스는 손을 이용해 감출 수 있었으나 그들은 그런 자유조차 없었다”고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UC버클리 컴퓨터과학과에 진학한 그는 보조 기술 개발에 전념했다. 학부 동기이자 오그멘탈 공동창업자인 코튼 싱어와 함께 눈동자 움직임만으로 굴러가는 휠체어 등 다양한 ‘핸즈 프리’ 기술을 고안했다. 당시 핸즈 프리 장비를 가능하게 한 배경은 ‘BCI(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이었다. BCI는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상호작용이 가능하게 하는 장치를 말한다. 그러나 BCI 기반의 갖은 기술에 호기롭게 도전하던 그들에게도 한 가지 장벽이 있었다. BCI 기술을 실현시키기 위해 필요한 거추장스러운 장비들이었다.
베가는 “마비 환자들을 위한 기존 BCI 보조 기술은 크고 불편하거나 외부 하드웨어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는 일상에 큰 제약을 가한다. 또한 “안구 추적, 머리 추적 시스템은 야외에서 사용하면 정확도가 떨어지는 등의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거대한 장비를 사용하며 장애인이 느끼는 주변의 시선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다 그는 마비 환자와 비장애인이 공통으로 자유롭게 활용하는 부위를 떠올렸다. 입속과 혀였다.
“혀는 사지가 마비된 환자들도 대부분 움직일 수 있는 데다, 매우 많은 뉴런이 연결된 민감한 기관이에요. 피로에 강한 8개의 근육으로 이뤄져 있죠. 혀를 활용하면 수술이 필요 없고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BCI 기술을 만들 수 있겠단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이유입니다. 뉴럴링크처럼 뇌 수술을 통해 뇌 속에 칩을 넣는 침투식 BCI는 아직 위험성이 크니 이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 랩의 유체인터페이스그룹(Fluid Interfaces Group)에 석사 진학한 뒤, 베가는 혀를 이용한 보조 장비 개발에 푹 빠졌다. 석사 과정 내도록 프로토타입 개발에 몰두한 그는 시제품 제작에 성공했다. 졸업 이후 2019년 오그멘탈을 설립한 뒤 2024년에는 마침내 마우스패드^를 세상에 내놓았다.
한 사람만을 위한 A to Z 마우스패드
“기술은 사용자를 중심으로 설계돼야 해요. 사용자가 기술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가는 오그멘탈 설립 당시 내세웠던 회사의 슬로건을 언급하며 지금도 잊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첨단 기술들은 사용자를 배려하지 않는 경우가 잦아요. 비장애인들은 어떻게든 적응할 수 있겠지만 전신마비 환자들은 웬만해선 불가능하죠. 사용자를 따라가는 기술을 실현하기 위해 비용이 들더라도 일일이 맞춤 제작을 채택했어요.” 베가의 이러한 철학은 마우스패드^에도 담겼다. 마우스패드^의 제작 첫 단계는 다름 아닌 사용자의 구강 모양 분석이다. 3D스캐닝을 통해 파악한 구강 구조에 따라 실리콘 소재를 사용해 3D 프린터로 본뜬다. 완성된 구강 모형에 회로 기판과 센서, 블루투스 모듈까지 부착하면 준비가 끝난다.
이렇게 개별 맞춤이 완성되면 사용자는 입에 끼우는 것만으로 마우스패드^를 작동시킬 수 있다. 노트북에 블루투스로 키보드와 마우스 등 각종 주변 기기를 연결해 이용하듯, 마우스패드^를 원하는 기기와 연결하면 즉시 혀로 마우스 커서를 움직일 수 있다.
혀 트랙 패드로는 마우스 커서 이동뿐만 아니라 클릭, 드래그, 스크롤, 스와이프 등 다양한 동작도 가능하다. 누르는 세기나 횟수 등으로 각 동작을 구분한다. 이로써 말을 못해 음성 인식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인도 간단한 기기를 입에 끼우는 행동만으로 디지털 기기를 작동할 수 있다. 또한 혀 움직임을 보조하는 머리 감지 센서가 함께 탑재돼 사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섬세한 조작을 돕는다.
마우스패드^가 CES 2025에서 혁신상을 받을 수 있던 이유 또한 이러한 사용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섬세함에 있다. 젤리 하나의 무게와 비슷한 7.5g의 마우스패드^는 입안에 문 채 8시간까지 사용해도 통증 등의 무리가 없다고 오그멘탈은 설명한다.
베가는 장애인을 돕는 기술일수록 맞춤 제작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장애인은 기성 완제품을 쓰려고 할 때 비장애인과 달리 작은 불편조차 막대한 어려움으로 다가와요.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준비된 제품이 그들에게는 절실합니다.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마우스패드^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이유죠.”

스마트폰으로 마우스패드^ 전용 앱을 켜면 혀의 미세한 움직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볼 수 있다.
“장애를 넘어 모두를 위한 기술로”
틀을 깬 맞춤형 개별 보조 기기에 척수 손상 환자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그간 혼자선 할 수 없던 게임과 작업, 공부 등을 얼마든지 스스로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사지마비 환자인 미국 대학생 키일리 호르크는 오그멘탈 홈페이지에 “마우스패드^ 덕에 음성 제어가 불가능한 강의실에서 필기를 하고 수업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됐다”면서 “혼자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게임도 하는 평범한 삶을 되찾아준 기술”이라고 소감을 남겼다.
마우스패드^는 현재 1500달러(한화 약 217만 원)의 가격으로 미국에서만 판매되고 있다. 베가는 “2025년부터 해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2026년까지 한국에도 진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한 장애인을 넘어 일상 곳곳에서 통용되는 마우스패드^를 향한 포부를 전하며 그는 인터뷰를 마쳤다.
“처음에는 사지 마비 장애인들을 위해 개발했어요. 그러나 현대인들은 잦은 컴퓨터 사용으로 반복성 긴장 부상(RSI)을 많이 앓습니다. 우리 기술이 장애인뿐만 아니라 외과의사, 엔지니어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도 주목받는 이유죠. 지금은 손 사용이 어려운 사용자들을 우선하고 있지만 목표는 모두를 위한 기술입니다. 가장 제약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디자인하면, 모든 사람에게 유용한 기술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