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포는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경세포는 정교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생존하고, 암세포는 면역세포를 회피하는 전략을 펼칩니다. 하지만 기존의 연구 방식은 이런 복잡한 상호작용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이 한계를 극복하고자 다크호스처럼 등장한 학문이 바로 공간생물학입니다. 암 연구, 신경과학, 신약 개발의 혁신을 예고하는 강력한 노벨상 후보, 공간생물학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편집자 주
세포가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와 소통하는가
암이 발생하면 의과학자들은 암이 대체 왜 발생했는지, 어떤 상황에서 더 잘 퍼지는지, 어떤 방법을 통해 암 세포가 사라지는지 등을 알고 싶어합니다. 이를 알기 위해선, 암세포가 주변의 정상 세포, 면역세포, 혈관 등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연구 방식은 세포가 주변 공간과 맺고 있는 관계나 미세 종양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정확히 분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동안 조직에서 RNA나 단백질을 추출해 한 덩어리로 분석하는 방식을 대부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단일세포 분석 기술이 등장했지만, 이 역시 조직을 분해하기 때문에 공간적 정보가 소실된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2010년에 들어서면서 공간생물학이라는 분야가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각종 질병들을 치료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주고 있죠.” 2월 7일 만난 황병진 연세대 의대 의생명과학부 교수는 기존 생명과학 연구의 판도를 바꾸는 기술로 공간생물학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노벨위원회도 2024년 6월, 공간생물학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며 공간생물학이 열 미래에 대해 주목했죠.
공간생물학은 세포를 개별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주변 환경과 연결된 존재로 봅니다. 세포가 조직 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주변 환경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분석하죠. 공간생물학 관점에서 암 조직을 연구하면 암 조직 내에서 면역세포가 어디에 분포하는지, 신경세포 간의 연결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특정 약물이 조직 내 어떤 위치에서 활성을 띠는지 등을 살펴봅니다. 기존 연구 방식으로는 파악하지 못했던, 세포 간의 네트워크와 공간적 패턴을 해석하는 겁니다. 황 교수는 “최근 이 기술로 초파리 뇌 지도, 쥐의 뇌 지도 등이 그려지며 동물들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 자세히 알게 됐다”며 “실제 인간의 세포를 분석하는 데에도 사용되는 등 연구가 10년 사이 엄청난 진보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공간생물학 노벨상 수상자 예측


최근 10년새 급성장공간생물학을 이끈 혁신들
공간생물학 분야에서 노벨상 후보로 주목받는 인물로는 샤오웨이 좡 미국 하버드대 화학생물학과 교수와 요아킴 룬데베리 스웨덴 왕립공대 분자공학과 교수가 있습니다.
좡 교수는 한 번에 다양한 유전자의 발현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한 ‘에러수정형 다중 형광제자리혼성화(MERFISH)’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또한 ‘스톰(STORM)’이라 불리는 초해상도 형광 현미경 기술을 개발했는데, 이는 201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고해상도 형광 현미경 연구와도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룬데베리 교수는 조직 내에서 유전자 발현이 어떻게 조절되는지를 시각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공간전사체(ST)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그의 연구는 현재 공간생물학 실험에 널리 사용되는 장비 ‘10X Visium’ 기술의 토대가 됐으며, 공간 유전체학 연구를 선도하고 있죠.
두 연구자가 개발한 기술들은 공간생물학이 급격히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혁신적 기술들입니다. 과거 유전자의 공간적 특징을 분석했던 기술들과 함께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MERFISH가 ‘바코드’를 생성하는 방법

바코드만 찍으면 RNA 식별 가능! MERFISH 기술
2000년대, DNA를 잘게 조각내 한 번에 수백만 개의 염기서열을 동시에 분석하는 기술, 차세대 염기서열 시퀀싱(NGS) 기술이 개발되면서 공간생물학은 본격적인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이 기술의 등장으로 한 번에 많은 양의 염기서열을 분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죠.
NGS 기술의 발전으로 대량의 RNA 서열 분석이 가능해지면서, 과학자들은 다양한 유전자의 발현을 세포 내에서 더욱 정밀하게 관찰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요구를 해결한 기술이 바로 좡 교수가 2015년에 개발한 MERFISH입니다. MERFISH는 유전자를 한 번에 수십 개 까지만 분석할 수 있던 RNA 서열 시각화 기술의 한계를 극복했는데요. 바코딩 시스템을 도입해 수천 개의 유전자 발현을 동시에 분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쉽게 말해 탐지를 원하는 RNA들에 ‘바코드’를 부여해 바코드만 알면 어떤 RNA인지 빠르게 확인할 수 있게 만든 겁니다. 예를 들어, MERFISH로 쥐 세포의 RNA를 분석해 나온 바코드를, 사전에 구축된 바코드 라이브러리와 대조하면 내가 찾은 RNA의 종류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존 기술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대량의 유전자 발현을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됐습니다.
유전자의 서열을 알지 못해도 빠르게 분석! ST 기술
한편 시퀀싱 기술을 활용해 공간 정보를 훼손하지 않은 채 조직 내부에 있는 유전자들의 발현을 직접적으로 관찰하려는 기술도 발전했습니다. 맷츠 닐슨 스웨덴 스톡홀름대 교수가 2013년 개발한 제자리 시퀀싱 기술(ISS)이 그 시작이었죠. 그러나 ISS 기술은 관찰하려는 유전자의 서열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 단점을 보완한 것이 바로 2016년 룬데베리 교수가 개발한 ST 기술입니다. ST는 기존 NGS 기술에 RNA의 위치 정보를 읽는 기능을 추가해, 유전자 발현이 조직 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를 지도처럼 분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기술의 가장 큰 장점은 관찰하려는 유전자 서열을 사전에 알지 못해도 모든 유전자 발현을 분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모든 mRNA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polyA 서열(mRNA 끝부분에 길게 붙어 있는 ‘A(아데닌)’ 서열)을 활용한 건데요. polyA와 상보적인 polyT 서열로 모든 mRNA를 포획하는 방식으로, 서열에 관계없이 조직 내 유전자 발현을 전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죠. 이러한 혁신 덕분에 ST 기술은 공간생물학 분야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 기술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ST 기술은 최신 공간생물학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장비, ‘Visium’에 적용돼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황 교수는 “Visium에 적용된 ST 기술은 모든 RNA마다 위치 좌표 데이터를 넣어 분석 후 재조합하는 방식”이라며 “때문에 특정 유전자의 발현 패턴을 미리 알지 못하는 경우에도 광범위하게 탐색이 가능해 새로운 생물학적 가설을 수립하는 연구에 적합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황 교수는 좡 교수와 룬데베리 교수의 기술에 대해 “2010년 이후 두 연구자들은 하나의 기술을 점차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다른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했다”며 “최근 10년간 시퀀싱과 이미징 기술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이런 요소 기술들의 융합이 가속화 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결과 공간생물학은 2020년에 이어 2024년에도 세계적인 과학 저널 ‘네이처 메소드’가 선정한 ‘올해의 기술’에 들어갔습니다.

정밀의학부터 인공 장기까지, 공간생물학이 바꾸는 미래
“공간생물학이 의료 분야에서 가져올 혁신은 무궁무진합니다. 인류가 정복하지 못하는 질병이라는 게 아예 사라질지도 모르죠.”
황 교수는 공간생물학이 가져올 미래에 큰 기대감을 내비쳤습니다. 실제로 공간생물학은 정밀 의료의 핵심 도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존의 암 치료는 ‘One-size-fits-all’ 방식으로,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치료법을 적용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간생물학이 도입되면, 환자의 조직 내 세포 유형과 공간적 배열을 분석해 맞춤형 치료 전략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는 개별 환자에 최적화된 치료법을 제공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암뿐만 아니라 다양한 난치성 질환 치료에도 기여할 수 있죠.
공간생물학과 인공지능(AI)이 결합한다면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할 것으로 보입니다. AI 기반 분석 기술이 공간생물학 데이터를 학습하면, 특정 질병의 발병 가능성을 미리 예측할 수 있습니다. 가령, 치매 발생 전 뇌 조직의 특정 세포 네트워크 변화를 공간생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AI가 학습하면 10~20년 후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을 조기에 예측할 수도 있습니다. 이로써 현재의 진단 및 치료 방식과는 차원이 다른, 선제적인 의료의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약 개발 과정에서도 공간생물학은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신약 후보 물질이 실제 조직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약물과 그렇지 않은 약물을 초기 단계에서 선별할 수 있으며, 임상 실패율을 줄이고 개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는 신약 개발이 평균적으로 10~15년, 2조 원 이상이 소요되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공간생물학 기술을 활용하면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공간생물학은 단순한 연구 기술을 넘어, 의료, 신약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핵심 기술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의 연구 기관과 바이오 기업들이 공간생물학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일부는 실제 임상 현장에 적용돼 환자의 치료 결과를 개선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미국 뉴욕대 연구팀은 삼중음성유방암에서 면역세포 분포와 유전자 발현을 분석해 면역 치료 반응성을 예측하는 바이오마커를 발굴하기도 했고, 미국 다나-파버 암연구소(Dana-Farber Cancer Institute)는 ISS 기반 공간 유전자 분석을 통해 대장암 조직에서 면역세포와 암세포 간의 상호작용을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과연 공간생물학은 인류의 질병 정복을 앞당길 수 있을까요? 답은 ‘그렇다’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노벨위원회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이 분야가 생명공학의 판도를 어떻게 바꿔나갈지, 함께 기대해 봅시다.
공간생물학의 혁신을 일으킨 결정적 논문 2

논문 제목 : Spatially resolved, highly multiplexed RNA profiling in single cells (단일 세포 내 공간적으로 해상된 고도화된 다중 RNA 프로파일링)
게재 저널 : 사이언스(2015년)
피인용 수 : 2431번
연구 의의 : FISH 기술을 기반으로 관찰할 수 있는 유전자의 수를 극대화한 최초의 연구
_ 황병진(연세대 의대 의생명과학부 교수)
2015년, 샤오웨이 좡 미국 하버드대 교수팀은 형광제자리혼성화(FISH・Fluorescence In Situ Hybridization) 기술을 발전시켜 더 많은 유전자를 동시에 관찰할 수 있고, 형광 신호 사용의 한계를 극복한 MERFISH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 기술은 이미 알려진 유전자 서열을 기반으로 조직 내에서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MERFISH 기술의 핵심은 ‘디지털 바코딩’ 방식에 있습니다. 유전자마다 1차 탐침의 끝부분에 서로 다른 염기서열을 추가하고, 이 서열에 반응하는 2차 탐침이 특정 형광 신호를 내도록 설계했습니다. 이를 통해 형광 신호의 조합을 0과 1로 변환해 디지털화할 수 있으며, 유전자마다 고유한 바코드를 부여할 수 있죠. 이러한 방식은 기존 FISH 기술이 형광 색상의 제한으로 인해 분석할 수 있는 유전자의 개수가 적었던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MERFISH 기술은 유전자 발현을 시각적으로 분석하는 데 특화돼 있어 다양한 연구 분야에서 활용됩니다. 대표적으로 감염된 세포 내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mRNA가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추적해 감염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데 사용됩니다.
또, 생물체의 배아 발달 과정에서 유전자 발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분석하는 연구에도 적용되죠. 이 외에도, 쥐의 뇌를 대상으로 유전자 발현을 지도처럼 정리해 각 세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연구하는 ‘세포 아틀라스’ 구축에도 쓰입니다.
황 교수는 “MERFISH는 더 많은 유전자 발현을 동시에 분석할 수 있도록 만든 혁신적인 기술”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논문 제목 : Visualization and analysis of gene expression in tissue sections by spatial transcriptomics (공간 전사체학을 활용한 조직 절편 내 유전자 발현 시각화 및 분석)
게재 저널 : 사이언스(2016년)
피인용 수 : 2884번
특정 유전자에 제한된 ISS 기술을 모든 RNA, 전사체 수준의 공간 발현 패턴에서 분석할 수 있게 한 최초의 연구
_ 황병진(연세대 의대 의생명과학부 교수 교수)
2016년, 요아킴 룬데베리 스웨덴 왕립공대 교수팀은 기존 RNA 분석 방식보다 훨씬 정밀하고 혁신적인 공간전사체학(ST톁patial Transcriptomics)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기존 RNA 시퀀싱은 조직을 균질화한 후 RNA를 추출해 분석하기 때문에, 조직 내 특정 위치에서 유전자가 어떻게 발현되는지에 대한 공간 정보를 얻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ST 기술은 개별 세포의 위치를 고려해 유전자 발현 패턴을 시각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활용해 마우스 뇌와 인간 유방암 조직에서 유전자 발현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유방암 조직에서는 같은 조직 내에서도 암세포 간 유전자 발현이 상당히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요. 이는 암의 진행 과정과 치료 반응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또 이전에 개발된 ISS 기술과 비교해 더 광범위한 유전자 발현 분석이 가능하며 조직 전체에서 동시에 다량의 전사체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때문에 어떤 기술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RNA를 분석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평가되죠.
황 교수는 “ST 기술은 공간생물학 연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며, “조직 내 유전자 발현이 어떤 패턴으로 이뤄지는지 지도처럼 분석할 수 있어 암 연구, 신경과학, 면역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포 간 상호작용과 조직 내 유전자 발현 패턴을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공간생물학이 의료 분야에서 가져올 혁신은 무궁무진합니다. 인류가 정복하지 못하는 질병이 아예 사라질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