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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명령에 따랐을 뿐? 책임감과 죄책감이 사라질 때

“Befehl ist Befehl(명령은 명령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군사재판에 불려 온 나치 독일 전쟁 지도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명령을 따랐을 뿐이기에 전쟁범죄에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비겁한 변명 같지만,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람은 주체성을 잃고 책임감과 죄책감이 줄어든다. 이를 뇌과학으로 증명한 연구를 통해, 이성과 본성 간의 간극을 들여다봤다.

 

▲Israeli GPO photographe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을 주도한 핵심 인물 아돌프 아이히만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방탄유리 상자 내부에서 재판받았다.

 

2024년 12월 3일에 발생한 계엄 및 내란 사태 이후 명령 복종과 불복종은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계엄 선포 당일 명령에 따라 군인들은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앙선관위) 등에 투입됐다. 그중 중앙선관위에 투입된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 대원 일부가 작전을 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중앙선관위 서버 확보를 지시받았으나, 불법적 지시라고 판단해 인근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거나 주위를 배회하는 등 시간을 벌었고, 그 사이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됐다는 것이다. 또한 중앙선관위에 진입한 대원들도 서버를 비롯해 물품을 반출하지 않는 등 상부 지시를 사실상 거부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2025년 1월 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대통령경호처 직원 및 육군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소속 55경비단 군인 등 200여 명이 공수처와 경찰의 진입을 막았고, 공수처는 결국 6시간 대치 끝에 물러섰다. 하지만 경호처 내부에서는 영장 집행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경호처 직원 전용 게시판에는 ‘수사기관의 영장 집행은 경호 대상자의 생명, 신체에 대한 위해라고 보기 어렵다’며 ‘영장 집행을 막는 것은 정당한 행위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글이 올라왔다. 경호처 간부 중 하나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 체포영장 집행을 협력하고자 관저 내부 정보를 전달했다는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누군가는 복종하고 또 누군가는 불복했다. 인간을 이해하고자 했던 심리학자, 철학자 그리고 과학자들은 어떻게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지 알고자 했다.

 

▲동아DB
2025년 1월 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하고 관저에서 철수하고 있다. 당시 대통령 경호처 및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군인들이 공수처와 경찰의 진입을 막았다.

 

복종하는 인간, 공범인가 피해자인가

 

‘복종과 불복종’이라는 주제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활발히 연구됐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 개념과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실시한 복종 실험이 가장 대표적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1933년 나치 독일이라는 전체주의 독재 국가 정권을 수립했다. 나치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약 1100만 명의 민간인과 전쟁포로를 학살했다. 특히 사망자 중 절반이 넘는 600만 명은 유대인이었다. 나치 독일의 집단 학살(홀로코스트)은 체계적으로 시행됐다. 법을 제정해, 이들을 사회에서 분리하는 근거를 만들고 집단 수용소를 건설하고 수감자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하거나 화물 열차를 이용해 가스실로 이송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나치 독일 정부에 속한 관료 전체가 관여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나치 친위대(SS)에서 활동한 유대인 학살의 핵심 인물 중 하나였다. 특히 1942년 ‘최종 해결책(대량 학살)’ 계획의 책임자였으며 600만 명의 유대인을 식별, 집결해 가스실로 이동시키는 일을 맡았다. 아이히만은 나치의 항복 이후 남아메리카 대륙을 옮겨가며 도피하던 중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체포돼 예루살렘으로 옮겨졌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 소식을 듣고 ‘뉴요커’ 잡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으로 갔다. 아렌트는 1961년 4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재판에 참석하며 아이히만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성정이 잔혹하지도 않고, 유대인에 대한 증오감도 없다는 데 주목했다. 아이히만을 진찰한 6명의 정신과 의사 또한 “아이히만은 정상일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상태”라고 평가했다. 아이히만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그에게 없는 것이 드러났다. 아이히만에겐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는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상급자의 지시를 성실히 수행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통해 “사유(깊은 생각과 성찰)의 무능, 말하기의 무능, 판단하기의 무능을 가진 사람들이 비판적 사고 없이 주어진 상황에 따른다면 결과는 끔찍한 재앙일 수 있다”며 ‘악의 평범성’ 개념을 제시했다. 아이히만뿐만이 아녔다. 제2차 세계대전 전쟁범죄에 책임을 묻고자 제1차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 기소됐던 나치 독일 24인의 지도자 대부분도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예루살렘에서 아이히만의 재판이 진행되던 1961년 8월, 당시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였던 밀그램은 전기 자극 실험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양심과 충돌하는 행동을 지시받았을 때, 사람들이 어느 수준까지 복종하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밀그램은 참가자에게 ‘기억력에 관한 실험에 참여하고 있다’고 거짓으로 안내했다. 밀그램은 참가자에게 교사와 학생의 역할을 맡겼다. 교사들은 문제를 냈을 때 학생이 틀리면, 학생에게 전기 충격을 가할 것을 지시받았다. 15V부터 450V까지, 순서대로 전압을 높이며 스위치를 누르는 일이었다. 실제로 전기 충격기는 작동하지 않았고 전기 충격을 받은 학생들은 섭외된 배우로 모두 가짜였지만 참가자들은 알지 못했다. 

 

모든 참가자가 최소 300V까지 전기 충격의 강도를 높였다. 300V는 사람에게 가해졌을 때 큰 고통을 야기하는 수준이다. 전기 충격을 받은 이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대부분의 참가자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실험을 계속 진행하라고 지시를 들은 뒤에 계속해 전기 자극을 높였다. 실험 참가자 중 65%가 최대 전압인 450V의 스위치를 눌렀다.

 

밀그램은 이런 실험을 통해 당시 세계 각국에서 제기되던 질문인 ‘아이히만을 비롯해 홀로코스트에 가담한 사람들은 단순히 명령을 따랐던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을 모두 공범으로 간주할 수 있는가?’에 답을 찾고자 했다. 밀그램의 실험이 홀로코스트에 가담한 나치 독일 관료의 유무죄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지만, 권위에 복종하고 명령을 이행하는 상황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복종과 불복종’이라는 주제를 깊게 성찰하고자 했던 철학과 심리학 분야에서의 대표 실험들은 이후의 많은 연구에 자극을 줬다. 그중 하나가 뇌과학 도구를 활용해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를 분석하는 인지 및 신경 심리학이다.

 

▲Alexandra Milgram/Yale University Labrary
스탠리 밀그램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가 권위에 의한 복종 실험에서 사용한 전기 충격 발전기. 유대인인 밀그램은 1961년, 나치 독일 친위대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중계 방송을 보며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의 심리를 분석하고자 복종 실험을 설계했다.
▲prisonexp.org
필립 짐바르도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밀그램 실험을 바탕으로 1971년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을 실시해 큰 화제가 됐다. 실험 참가자를 임의로 수감자와 교도관으로 나눴더니 이후 권위와 복종의 행태가 나타났다. 실험 결과가 고도의 조작이었음이 밝혀졌지만 교도소 실험을 기반한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뇌과학이 밝힌 주체성 메커니즘

 

“인간은 행동할 때 자신이 외부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능력이 있으며, 어떤 행동을 수행할 때 ‘내’가 그 일을 했다는 생각, 즉 주체성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다.” 실험심리학자 에밀리 캐스퍼 벨기에 겐트대 교수가 쓴 책 ‘명령에 따랐을 뿐’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의 행동과 결과를 파악하는 능력은 인간 외 다른 동물종도 갖고 있지만 주체성은 아니다. 주체성은 인류 역사의 발전을 매개한 중요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우리가 모든 행동을 할 때 주체성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특히 습관이 된 행동은 대부분 자동적으로 이뤄진다. 아주 적은 양의 인지 자원만을 쓰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주체성을 경험하는 일은 많은 양의 인지 자원을 쓰는 일이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인지과학연구소에서 2003년과 2009년에 발표한 두 편의 논문은 주체성에 관여하는 뇌 부위가 전전두엽 피질과 두정엽이란 것을 알아냈다. doi: 10.1038/nn1160, 10.1126/science.1169896. 전전두엽 피질은 평소 이성적인 사고, 의사 결정, 감정 조절 등을, 두정엽은 공간 인식 및 감각 정보 처리, 신체 움직임 조절 등을 담당하는 부위다. 

 

곁에 누군가가 함께 있을 때 주체성은 줄어든다. 2017년,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인지뇌과학연구소 연구팀은 ‘피드백 관련 부정성(FRN)’이란 뇌의 특정 신호를 분석해 이와 같은 결론을 발표했다. doi: 10.1093/scan/nsw160 실험 참가자들은 구슬이 굴러가는 화면 속 모니터를 보고, 구슬이 비탈길의 끝에 다다르는 정확한 시점에 컴퓨터 마우스를 클릭해야 했다. 정확한 위치에서 많이 벗어날수록 감점이 된다. FRN은 인간이 부정적인 결과나 피드백을 마주할 때 뇌에서 발생하는 신호다. 기대했던 결과와 실제 결과가 다를 때 강하게 나타난다. 신호의 진폭이 클수록 오류나 부정 피드백에 대한 신경 처리 수준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험은 참가자가 혼자서 혹은 다른 참가자와 함께 행동했을 때의 뇌파를 측정했다. 그 결과 참가자 곁에 다른 사람이 있을 때 참가자의 FRN의 진폭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즉 다른 사람이 있을 때의 행동 결과를 뇌가 덜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동아DB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뒤, 4일 새벽 군인들이 여의도 국회 본청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모습.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은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복종하는 뇌에선 대체 무슨 일이

 

캐스퍼 교수는 강압과 인간의 뇌에 대해 탐구하고자 캄보디아와 르완다로 향했다. 두 곳 모두 20세기 중후반 대량 학살이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당시 학살의 공범자이자 가해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뇌를 스캔해 분석했다. 20세기 철학, 심리학에서 밝힌 대로 학살에 가담한 이들에게서 죄책감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캐스퍼 교수는 이후 사회 심리학 실험을 통해 인간의 주체성과 책임감 그리고 죄책감이 흐려지는 순간과 이때의 뇌 작동을 포착했다.

 

그는 명령에 따르는 것이 개인이 느끼는 주체성과 책임감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시간 인식과 주체성 간의 상관관계를 활용했다. 바쁘고 정신없이 무언가를 할 때와, 무료하게 시간이 가기를 기다릴 때 우리가 의식하는 시간의 속도가 다르다. 같은 시간 동안에도 전자의 상황에서는 ‘시간이 빠르게 갔다’고 생각하고 후자의 상황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고 느낀다. 이런 시간 인식은 뇌의 선조체로부터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방출되는 정도에 의해 만들어진다. 방출된 도파민은 주체성을 관장하는 기저핵에서 전두엽 운동 영역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따라서 시간을 인식하는 부위가 비활성화되면 주체성을 관장하는 뇌의 부위도 활성화되지 않는다. 캐스퍼 교수는 이러한 상관관계를 활용해 실험을 설계했다. 실험 결과, 명령에 따르는 경우 실험 참가자들은 시간이 천천히 가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 드러났다. 지시를 받았을 때, 인간의 주체성이 약해지는 것이다.

 

캐스퍼 교수는 자기공명영상(MRI)을 활용해 주체성이 감소할 때의 뇌 회로를 살폈다. 전두엽에서 자발적 행동 선택과 관련된 영역으로 알려진 내측 전전두 피질의 활성이 감소했다. 명령을 따를 때 주체성이 많이 감소한 사람일수록 내측 전전두 피질의 활동이 크게 줄어들었다. 또한 자기 행동에 책임감을 느낀다고 보고한 사람일수록 내측 전전두 피질의 활동이 비교적 많은 것으로 관찰됐다.

 

명령을 받을 땐 공감과 관련된 뇌 영역의 활성도 떨어졌다. 전측 대상피질과 전측 섬엽이다. 공감 관련 뇌 부위의 활동이 적어지는 명령 이행 상황에서는, 실험 참가자들이 전기 충격을 가할 때 이를 덜 고통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기도 했다. 또한 두정-측두 영역(두정엽과 측두엽이 만나는 부위), 배외측 전전두엽 피질, 쐐기앞소엽, 전측 대상피질 등 우리가 죄책감을 경험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도 명령에 복종하는 순간 활성도가 감소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Ausstellung unter dem Holocaust Denkmal mit Stelenfeld
독일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총 2711개의 콘크리트 비석은 베를린 도시 중심지에 위치해 있다. 역사를 잊지 않고 계속해 마주하기 위함이다.

 

명령 체계 안에서 책임감은 사라진다

 

캐스퍼 교수와 2월 5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뉴스를 봤기 때문에, 인터뷰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고 ‘한국에서 책이 발행됐구나’ 생각했어요.” 캐스퍼 교수는 인터뷰를 시작하며 말했다. 캐스퍼 교수가 복종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를 종합해 쓴 책 ‘명령에 따랐을 뿐’은 2024년 7월 영문판이 발행됐고, 2025년 1월 한국어 번역본이 출간됐다.

 

“명령을 하고, 명령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책임감이 이전된다는 내용이 특히 인상 깊었어요.” 기자의 말에 캐스퍼 교수는 “‘책임 전이(Transference of Responsibility)’와 ‘책임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책임 분산은 방관자 효과가 대표적이다. 길에서 사고를 목격했을 때,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나 말고 누군가가 신고했겠지’라고 생각하는 경우다. 책임 전이는 자신의 행동이 미치는 결과를 인지하면서도 그 결과를 명령을 내린 사람에게 돌리는 것이다. 전자는 모두가 동일한 권력 수준을 갖고 있을 때의 인간 행태이고, 후자는 권력 수준의 차이가 만드는 행태다. “다만 이렇게 전이된 책임감이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확실한 건 가장 상급의 명령권자가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즉 책임은 전이되지만, 쌓이진 않는다. 그 결과 명령과 행동 그리고 결과만 남고 책임감은 어디론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포착하고, 스탠리 밀그램이 권위에 의한 복종 실험을 한 지 64년이 지났다. 역사에 대한 반성과 이로부터 만들어진 통찰과 실험의 결과는 지식으로 축적돼 21세기로 넘어왔다. 두 거인의 어깨 위에서 연구하고 있는 캐스퍼 교수에게 “21세기는 20세기보다 발전한 사회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캐스퍼 교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럴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지난 몇 년 동안은 미칠 지경입니다. 갈등과 전쟁, 대량 학살이 전 세계에서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솔직히 21세기가 20세기보다 더 나은 사회라고 말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대개 축적된 지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오늘날이 과거보다 발전했다고 믿게 한다. 하지만 안다는 것이 우월감을 줄 순 있지만 실천과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명령을 받으면 줄어드는 주체성과 공감・죄책감
▲GIB
명령을 받아 주체성이 감소할 때는 내측 전전두 피질 활동이 감소한다. 공감과 죄책감도 감소하는데 이때 두정-측두 영역, 배외측 전전두엽 피질, 쐐기앞소엽, 전측 대상피질, 전측 섬엽 등의 활성도가 감소한다.

 

▲Social Cognitive and Affective Neuroscience

 

2017년,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같은 상황에서 혼자일 때, 함께일 때 주체성을 발휘하는 수준이 다르다는 사실을 밝혔다. 피드백 관련 부정성(FRN)을 분석하는 구간(250~330ms)에서 혼자(실선) 행동할 때보다 함께(점선) 행동할 때 FRN 진폭이 더 작게 나타났다(선 그래프). 자신의 행동을 얼마나 주체적으로 인식하는지를 나타내는 점수도 실험 참가자가가 혼자(빨강)일 때 높았고, 함께(초록)일 때 낮아졌다(막대 그래프).

 

아는 것이 저항할 용기를 담보하진 않지만

 

책 ‘명령에 따랐을 뿐’에서 캐스퍼 교수는 명령과 공감 능력 간 상관관계를 밝히는 실험 후 참가자와 나눈 대화를 언급했다. 참가자는 밀그램의 복종 실험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실험에 참여하기 전에는 ‘피해자’ 역할을 하는 참가자에게 어떤 충격도 가하지 않고, 명령에 불복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실험에서 그는 모든 명령에 복종했다. 실험이 끝난 후 그는 캐스퍼 교수에게 “내가 타인에게 충격을 가하는 명령을 따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정말 심란하다”며 “명령을 따르는 것은 쉬웠고, 불복종을 선택하는 것은 커다란 부담이었다”고 털어놨다.

 

밀그램과 캐스퍼 교수의 실험은 거부할 수 있는 단순한 명령에도, 심지어 그 명령이 잘못된 것임을 아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쉽게 복종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미국의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브라우닝도 자신의 저서 ‘아주 평범한 사람들’에 같은 맥락의 주장을 담았다. 브라우닝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101 예비경찰대대에 소속됐던 125명에 관해 분석했다. 당시 지휘관이었던 빌헬름 트랩 소령은 101 예비경찰대대에 “유대인 중 남자는 수용소로 끌고 가고 여성 및 어린아이들은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며 “총살에 가담하기를 원하지 않는 자는 집행에서 면제될 수 있다”고 말했다. 125명 중 단 한 명이 거부했다. 트랩은 이후 거부한 이를 보호했고, 이것을 본 12명만이 추가로 총살 집행을 하지 않겠다고 손들었다. 즉 명령을 이행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90%에 가까운 사람이 명령 이행을 택했다. 당시 101 예비경찰대대가 직간접적으로 학살한 이는 8만 3000여 명에 달한다.

 

우리는 어떻게 복종이라는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권력이 비인도적인 명령을 내릴 때, 비록 소수지만 명령에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오늘날 뇌과학은 이들을 설명하지 못한다. 때문에 캐스퍼 교수는 ‘저항하는 사람’들에 주목한다. 그는 영국 최대 공영방송사 BBC가 2024년 12월 21일(현지시간), ‘올해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 중 하나로 꼽은 안귀령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의 사진을 기억했다. 2024년 12월 3일, 국회 본청에 투입된 계엄군의 총을 손으로 막는 장면이었다. 캐스퍼 교수는 “사진이 벨기에 미디어에서도 보도됐다”며 “저항을 보여주는 강력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저항하는 사람들의 뇌 작동과 그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그동안은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주로 연구했지만, 앞으로는 저항하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에요. 같은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통해, 부당한 명령에 저항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2025년 2월 5일, 에밀리 캐스퍼 벨기에 겐트대 심리학과 교수(사진)와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캐스퍼 교수의 저서 ‘명령에 따랐을 뿐’은 2025년 1월 한국에서 출간됐다.

 

책임의 전이가 나타나는 계급 구도. 상관으로부터 내려온 명령은 아래로 내려가 실행되는데, 이때 행동에 나서는 하관은 자신의 행동이 미치는 결과를 인지하면서도 그 결과의 책임은 상관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캐스퍼 교수는 “그렇다고 상관이 전이된 책임감을 모두 느끼는게 아니”라고 설명한다.

 

▲JTBC 유튜브 캡처
영국 최대 공영방송사 BBC는 2024년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 중 하나로 안귀령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 2024년 12월 3일, 국회 본청에 투입된 계엄군의 총을 손으로 막는 장면을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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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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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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