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이나 손, 손가락을 잃은 상지 절단 장애인 중 전자의수를 사용 중인 사람은 단 1%에 불과하다. 수천만 원대에 이르는 높은 가격 때문이다. 한국 기업 ‘만드로’는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춘 전자의수를 개발해 1월 7일부터 열린 2025년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그 기술을 미리 만나보기 위해 1월 2일, 경기 부천에 위치한 만드로 본사를 방문했다.
편집자 주
보조공학은 신체의 한계를 넘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기술입니다. 보조공학의 발전은 장애의 경계를 다시 그리고 있습니다. 현재 주목받는 기술들과 이들이 이끌어낼 변화를 살펴봅니다.
김진화
3차원(3D) 프린팅으로 전자의수를 제작하는 기업 ‘만드로’는 모든 부품을 자체 개발함으로써 가격을 기존의 20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 2024년 손가락 전자의수 ‘마크7D’로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장애인 접근성 분야 최고 혁신상을 수상했다. 이상호 만드로 대표가 상패를 들어 보이고 있다.
“불편한 건 없으시죠? 제가 잠깐 확인해 볼게요.”
1월 2일 만드로에서 만난 이상호 만드로 대표가 싱어송라이터 고우현 씨에게 말을 꺼내자 고 씨는 오른팔에 차고 있던 전자의수를 벗어 이 대표에게 건넸다. 과학동아와의 인터뷰가 아니더라도 종종 회사에 방문한다는 고 씨는 “올 때마다 대표님이 직접 유지보수를 해준다”고 전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밴드음악을 좋아하던 고 씨는 중학교 3학년 때 밴드부에 들어갔다. 기타 연주를 하고 싶었지만, 선천적으로 오른손이 없었던 그에게 주어진 건 보컬 자리였다. 기타 연주를 포기할 수 없던 그는 중학교 졸업 후 직접 페트병으로 의수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페트병 의수’는 내구성이 약해 오래 사용할 수 없었다.
“마침 아버지께서 TV에서 이상호 대표님이 3차원(3D) 프린팅으로 의수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보고 한번 연락해 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만드로 다음 카페에 사연과 사진을 올렸죠. 그랬더니 곧바로 연락이 와서 부랴부랴 전북에서 경기도 부천까지 올라갔어요.”
첫 만남에서 이 대표는 고 씨에게 필요한 의수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이 대표는 기타 연주에 적합한 형태를 고안하기 위해 재질과 디자인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결국 의수 끝에 피크를 달아 기타를 칠 수 있는 특별한 형태를 만들었다. 프로토타입은 2주 만에 완성했으나 최종 버전은 지속적인 개선 끝에 2020년에 나왔다.
“처음에는 의수가 너무 어색했어요. 평생 손 없이 지내다 보니 젓가락질 처음 배울 때처럼 익숙해지는 데 오래 걸렸죠. 피크가 자주 부러져서 수정할 점도 많았고요.”
고 씨는 꾸준히 의수를 사용하는 연습을 하며 기타 연주 실력을 쌓았고, 2024년 6월에는 오디션을 통해 서울시를 대표하는 ‘그레이트한강 앰버서더’로 위촉됐다. “맨손으로 기타를 치면 아프기도 하고 피가 나서 한계를 자주 느꼈어요. 그런데 의수를 이용하니까 표현할 수 있는 것도 다양해지고, 기타 연주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는 희망도 생겼어요.”
손가락 전자의수로 물체를 잡는 방법
마크5와 마크7 같은 손 단위 전자의수는 근전도 센서로 근육의 미세한 전기신호를 인식해 의수에 달린 손가락을 제어한다. 반면 손가락 단위 전자의수인 마크7D(사진)는 컨트롤러를 이용해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삼성 엔지니어에서 전자의수 개발자로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던 이 대표는 퇴사 후 2014년, 3D 프린팅 제작 회사인 ‘만드로’를 차렸다. 당시에는 3D 프린터를 활용해 시제품을 제작해 주고, 3D 프린터 사용을 편리하게 해주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전념했다. 그러다 창업 이듬해 우연히 3D 프린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양손을 잃은 청년이 3D 프린터로 의수를 만들 수 있는지 묻는 글을 봤다.
“의수 하나가 몇천만 원이나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재능기부 차원에서 직접 제작을 시도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전자회로 설계와 3D 프린팅 같은, 기존에 아는 지식을 조합하면 쉽게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의수는 모든 디테일을 직접 만들어야 해서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어요.”
이 대표가 전자의수를 만들며 세운 목표는 ‘낮은 비용’과 ‘높은 사용성’이었다. 하지만 시중의 부품들은 가격이 너무 높아 단가를 낮추려면 그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결국 비용 절감을 위해 맨땅에 헤딩하듯 모든 부품을 자체적으로 개발해야 했다.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많았어요. 소음, 속도, 센서 알레르기해결할 과제가 끊임없이 나왔죠.”
이 대표는 개선 사항을 꼼꼼히 작성한 뒤, 버전마다 업그레이드를 거듭했다. 또한 다양한 사용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며 개발을 이어갔다. 그는 “손 크기와 절단 부위의 길이 차이에 따라 제품의 형태가 달라지는 등 요구 사항이 매우 다양했다”며 “개발비가 많이 들어가고 번거롭긴 했지만, 양산형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것들을 시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3년 동안 쌓아 온 기술을 바탕으로 2016년 7월 전자의수의 기본 모델인 ‘마크5’를 출시했다. 마크5는 근전도 센서를 이용해 절단 부위의 근전도 신호를 인식해서 움직인다. 근전도 신호는 근육의 미세한 전기 신호로, 근육 위의 피부 표면을 통해 인식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전자의수가 팔에 닿는 안쪽 부분에 근전도 센서를 장착한 뒤, 팔을 안쪽으로 움직이면 물체를 잡고, 팔을 바깥쪽으로 움직이면 물체를 놓도록 개발했다. 팔을 안팎으로 움직이는 패턴을 몇 가지 저장해 여러 동작을 수행할 수 있다.
만드로
싱어송라이터 고우현 씨는 선천적으로 오른손이 없는 절단 장애인이지만, 만드로에서 개발한 기타 전용 전자의수를 이용해 연주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
손가락 전자의수, 세계를 놀라게 하다
이 대표가 초기부터 풀고자 했던 과제는 손이 부분적으로 절단된 장애인을 위한 제품이었다. 그는 “한국에 상지 절단 장애인은 약 14만 명인데, 이 중 84%가 손 절단 장애를 겪고 있다”며 “이들을 위한 손가락 부분 전자의수는 특허를 보유한 기업이 전 세계적으로 두 곳밖에 없었고, 손가락 하나에 1000만 원이나 했다”고 설명했다.
손가락 단위 전자의수 개발은 공간 제약과 힘, 속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기술적으로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2017년부터 개발을 시작했지만, 기존 제품과 달리 장시간 사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20년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단에서 실시한 의수용 모터 개발 과제에 참여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기존 제품을 참고하고 싶었지만, 하나에 몇천만 원이라 구매가 어려웠어요. 대신 특허를 분석하고 기존과 다른 방식을 시도했죠. 보통 모터를 손가락과 손이 연결되는 가장 아래쪽 마디에 넣는데, 저희는 맨 위쪽 마디에 넣었어요. 반대로 감속기를 가장 아래쪽 마디에 넣었죠.”
이 제품이 바로 마크7의 손가락 전자의수인 ‘마크7D’이다. D는 digit, 즉 손가락을 의미한다. 마크7D는 2024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장애인 접근성 분야 최고 혁신상을 받으며 큰 주목을 받았다. 이 대표는 “최고 혁신상은 분야 당 딱 한 군데밖에 주지 않는다”며 “우리가 하는 일을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드니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만드로는 이를 기반으로 15억 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하고, 중동 시장에도 진출했다. 또한 휴머노이드 로봇 제작 회사에서 로봇용 손 개발을 의뢰받아 전자의수의 새로운 가능성도 엿보고 있다. 이 대표는 “현재는 절단 장애인용 제품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휴머노이드 로봇용 제품을 만드는 것을 방향으로 잡고 있다”고 전했다.
“모두를 위한 로봇 손 만들고 싶어”
이 대표는 오늘날 보조공학 기기 개발이 첨단 기술과 고도화에만 집중돼 있다며 실제 수요자들이 지불할 수 있는 가격대의 제품을 만들어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가 이 일을 시작한 지 딱 10년이 됐어요. 지난 10년간 개발을 열심히 해서 절단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사례에 대응할 수 있었죠. 앞으로는 이 제품들이 전 세계에서 쓰이도록 보급하는 역할을 할 겁니다. 또한 ‘모두를 위한 로봇 손’을 개발하며, 전자의수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실제 사용자인 고 씨도 이 대표의 뜻에 크게 공감했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물론 장애인 스스로의 인식 개선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죠. 저는 의수를 사용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요. 앞으로 의수와 같은 보조공학 기기가 더 널리 보급되고 통용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