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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물리학자의 시네마픽] 또 다른 세계, 또 다른 나? 양자역학과 다중우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더쿱디스트리뷰션

    2022년 개봉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평범한 중년 여성이 다중우주의 존재를 알게 되며 수많은 차원 속 자신과 연결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독창적인 연출과 영상미로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

     

    분명 이해한 듯했는데 누군가 물어보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과학 개념, 바로 양자역학이다. 양자의 세계는 일상에서 겪는 자연 법칙과 완전히 다른 법칙이 적용되기에, 이를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양자역학의 특징을 이용하면 다중우주, 그러니까 여러 우주 속 다양한 내가 살고 있다는 가정도 가능해진다. 2022년 개봉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이 특징이 그대로 반영된 다중우주를 배경으로 한다. 수천, 수만의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 에블린이 다중우주를 여행하며 위기의 세상과 가족을 구한다.

     

      편집자 주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물리학자 김세정의 시네마 픽’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양자역학은 뉴턴이 발견한 고전역학과는 완전히 다르다. 고전역학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활하면서 느끼는 물체의 움직임이나 힘을 설명하지만, 양자역학은 아주 작은 입자 수준에서의 힘과 상호작용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전자가 여러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등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렇다 보니 대중들에게는 양자역학이 더욱 신기하고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진다.

     

    신비로운 소재는 창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기 마련이다. 최근 양자 현상들은 여러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양자역학 개념에서 출발한 다중우주, 멀티버스 배경의 영화가 많다. ‘어벤져스: 엔드 게임’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등의 히어로 영화가 대표적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기존에 많았던 히어로들의 다중우주 여행이 아닌, 평범한 가사노동자인 양자경이 주인공이 돼 다중우주를 경험한다는 것이 새롭다. 엄청난 상상력과 영상미 덕분에 영화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7개 부문에서 상을 거머쥐었다. 

     

    다중우주는 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에 기반해, 매 선택의 기로마다 우주가 나뉘고 독립적인 우주를 형성한다고 보는 이론이다. 이는 관찰자가 특정 상태를 관찰할 때, 중첩 상태에 있던 양자의 상태가 결정되는 개념에서 비롯됐다. 쉽게 말해, 우리가 결정을 내리거나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우주는 여러 개로 나뉘고, 각 우주에서는 서로 다른 선택의 결과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더쿱디스트리뷰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선 엉뚱한 행동을 하면 다른 차원의 자신에게 이동할 수 있다. 사진은 소시지 손가락을 가진 세계 속 주인공이다.

     

    다중우주가 정말 가능하려면

     

    양자역학의 어떤 특징이 다중우주를 뒷받침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양자역학의 기본 개념을 알아보자. ‘양자’는 불연속적인 최소 에너지 단위를 뜻한다. 수도꼭지를 천천히 잠갔을 때,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연속적으로 보였던 물줄기가 한 방울씩 나눌 수 있는 단위로 보인다. 빛에도 이 개념이 적용된다. 빛을 이루는 기본 단위는 광자(Photon)다. 광자가 하나씩 감지될 정도로 빛의 세기를 낮추면, 빛의 흐름도 연속적이 아니라 개별 단위로 감지된다. 이처럼 개별 단위의 광자와 같은 개념이 ‘양자’이며, 이러한 미시 세계의 법칙을 다루는 것이 바로 양자역학이다.

     

    다중우주 이론의 핵심은 양자역학의 독특한 특징인 ‘양자중첩’에 있다. 양자는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겹쳐진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데, 이를 양자중첩이라고 부른다. 회전하는 동전을 떠올려 보자. 빙글빙글 도는 동전이 앞면인지 뒷면인지 묻는다면, 하나의 결과만 선택할 수 없다. 회전 중인 동전은 앞면이면서 동시에 뒷면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양자중첩 상태에서는 여러 가능성이 공존하는데, 다중우주 이론에서는 이 중첩 상태에 있는 모든 가능성이 각각 독립된 우주로 펼쳐진다고 본다. 즉, 다중우주에선 오늘 저녁 짜장면을 먹는 나, 짬뽕을 먹는 나, 아무것도 먹지 않는 내가 각기 다른 세계에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중첩 상태의 입자는 관측하는 순간 특정한 하나의 상태로 결정되며, 다른 가능성들은 사라진다는 것이 양자의 비가역성, 전통적인 해석이다. 이때 결정된 상태는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다세계 해석에서는 관측 순간에 모든 가능성이 실제로 실현되며, 각 가능성은 각기 독립된 우주로 나뉜다고 해석한다.

     

    예를 들어 동전을 던질 때 앞면과 뒷면이 동시에 나올 가능성이 있다면, 관측 순간에 이 두 가능성은 각각 다른 우주에서 실현된다. 한 우주에서는 앞면이, 다른 우주에서는 뒷면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반복된다고 생각해보자. 

     

    이러한 양자중첩과 다세계 해석 덕분에 다중우주가 가능해진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 같은 SF 세계관에서는 주인공이 다른 선택을 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우주는 물론 주인공의 손가락이 소시지인 우주, 주인공이 돌인 우주까지 다양한 가능성이 펼쳐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다중우주 사이를 여행하는 것이 가능할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각 우주는 독립된 시공간을 가지며, 물리적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또한 우주 간 이동에는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고, 다중우주 자체가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어서 실험적 증명이 불가능하다. 설령 다른 우주로 이동하더라도 물리 법칙이 달라 인간이 생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양자의 다양한 특징들

     

    양자는 여러 특징을 지닌다. 먼저 불확정성 원리를 살펴보자. 일상에서 공이 구르기 시작하면 우리는 공이 어디로 흐를지 예측할 수 있다. 경사진 곳에서는 낮은 곳으로 굴러갈 것이고, 평평한 곳에서는 외부의 충격이 없다면 가만히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고전역학이 적용되는 세계란 충분한 정보만 있으면 물체의 상태를 완벽히 예측할 수 있는 결정론적 세계다. 하지만 양자는 그 상태를 관측하기 전까지는 예측할 수 없다. 아주 작은 입자는 위치를 측정하려고 하면 입자의 속도가 불확실해지고, 속도를 정확히 알려고 하면 위치가 불명확해진다. 때문에 양자역학에서는 입자의 속도와 위치를 확률로만 예측할 수 있다. 

     

    또한 중첩 상태의 양자는 관찰하는 순간 그 상태가 결정된다. 이렇게 한번 상태가 결정되면 원래의 중첩 상태로 되돌릴 수 없고 이를 ‘비가역성’이라고 한다. ‘양자얽힘’은 두 양자가 서로 강하게 연결돼 한 입자의 상태가 결정되면 다른 입자의 상태도 즉시 결정되는 성질이다. 얽힘 상태의 양자 중 하나가 지구에 있고 다른 양자가 화성에 있다고 가정하면, 지구에 있는 양자의 값이 1로 결정되는 순간, 화성에 있는 양자는 값이 0으로 확정된다. 

     

    양자의 4가지 특징

    양자역학 세계의 법칙은 우리 눈에 보이는 고전역학의 세계와 다르다. 양자의 성질 네 가지를 동전 던지기에 비유해 설명했다. 

    동아사이언스

     

    더쿱디스트리뷰션

    주인공 에블린이 돌이 된 세계도 있다. 생명체가 전혀 존재하지 않아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고요한 세계다. 이 곳에서 에블린과 딸 조이는 각각 돌로 존재하며, 서로 말 없이 글자로 소통한다.

     

    양자중첩에서 출발한 양자 컴퓨터

     

    양자역학은 실험적 증거와 이론적 발전을 통해 20세기 초 사실로 받아들여졌고, 현재는 양자 현상을 이용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다. 대표적으로 양자 컴퓨터와 양자 전송 분야가 있다. 

     

    현재의 컴퓨터는 정보를 1과 0, 이진법 상태로 표현해 연산한다. 전압 또는 전류의 높고 낮음을 1과 0의 정보로 처리하는데, 이 때문에 두 가지 정보인 1과 0을 동시에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양자에서는 이것이 가능하다. 양자중첩 상태를 사용해 1과 0의 정보를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정보의 기본 단위를 큐비트라고 부른다. 양자 컴퓨터가 가능해지면 슈퍼 컴퓨터로는 푸는 데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이 걸리는 쇼어 알고리즘 계산을 몇 분 내에 해결할 수 있다. 쇼어 알고리즘은 매우 큰 수의 소인수분해를 해결할 수 있는 알고리즘으로, 컴퓨터로도 계산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 컴퓨터의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사용되곤 한다. 

     

    양자 전송 분야에서는 ‘양자얽힘’을 활용한다. 얽힘 상태에 있는 두 개의 큐비트 중 하나의 정보를 관찰해 1이라는 결과를 얻었다면, 다른 큐비트는 반드시 0의 정보를 가지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얽힘 상태가 거리에 관계없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만약 얽혀있는 두 큐비트 중 하나를 우주 멀리 보낸 후 남아 있는 큐비트의 정보를 읽는다면, 우주에 나간 큐비트의 정보도 동시에 알 수 있다. 

     

    이러한 양자얽힘 상태에 대한 설명은 이 연재의 첫 화로 과학동아 7월호에서 소개하기도 한 SF 드라마 ‘삼체’에 꽤 정확하게 서술돼 있다. 잠깐 복습을 하자면, 삼체에 등장하는 외계 행성은 세 개의 태양이 존재해 안정적인 궤도 운동을 할 수 없는 행성이다. 외계인들은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나고 결국 지구로 향하게 된다. 문제는 지구와 외계 행성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 외계인들이 지구에 도달할 때쯤이면 지구의 과학기술이 외계인의 기술을 앞서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함대보다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입자(작중에서 ‘지자’라 부름)를 보낸다. 지자는 소립자 컴퓨터로, 슈퍼 컴퓨터와 같은 역할을 한다. 외계인들이 가진 또 다른 지자와 양자얽힘 상태에 있다고 설명되며, 이를 통해 지구에서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외계인들도 동시에 보고 들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양자얽힘을 이처럼 자세히 소개하는 TV 시리즈는 드물다.

     

    Shutterstock

    양자 컴퓨터는 큐비트를 활용해 비트를 활용하는 기존 컴퓨터보다 훨씬 복잡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 기존 컴퓨터로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를 단시간에 풀 수 있어, 신약 개발이나 기후 모델링과 같은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고 있다.

     

    양자 전송의 원리

     

     

    양자 상태를 전달하려면 A와 B가 서로 얽혀 있는 양자 상태를 나눠 가진 뒤, C가 가진 양자와 A가 가진 양자에 벨 측정이라는 아주 특별한 양자 측정을 수행한다. 양자 측정을 통해 C가 가진 양자의 상태가 B가 가진 양자에게 전송되는 매우 특별한 현상이 발생한다. 이 과정을 통해 C가 가진 양자 상태가 멀리 떨어진 B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한국의 양자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

     

    양자 연구는 대학이나 연구소에서도 매우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다양한 연구들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번 호에서는 특별히 큐비트를 생성해내는 연구를 살펴보자. 큐비트는 앞서 설명한 것 처럼 최소 에너지 단위를 가지는 입자로, 가장 잘 알려진 큐비트는 전자(electron)다. 그 외에 광자를 큐비트로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광자는 빛을 이루는 작은 입자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명이나 태양빛은 수많은 광자들의 집합을 뿜어내고 있다. 

     

    광자를 큐비트로 이용하는 것의 장점은 중첩 상태를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광자가 하나 있을때, 이 광자의 특성을 나타내는 변수가 광자의 파장, 광자의 편광 등 여러 가지라는 의미다. 

     

    큐비트를 만들기 위해 중요한 한 가지 방법은 단일 광자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단일 광자원은 한 번에 하나의 광자만 방출하고, 이후에 또 다른 광자를 방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단일 광자원을 만들기 위해 레이저의 빛 세기를 점점 줄여서 하나씩 광자를 내보내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사용되는 방법이긴 하나, 밝고 안정적인 단일 광자원을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많은 연구자들은 다이아몬드에 주목하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단순히 아름다운 보석으로서의 가치를 넘어, 과학자들에게는 중요한 연구 소재가 된다. 다이아몬드는 탄소 원자로 이뤄진 격자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 구조 안에 특정 결함이 생기면(예를 들어 탄소 원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거나 다른 원자로 대체된 경우) 매우 안정적인 단일 광자원이 될 수 있다.

     

    다이아몬드 큐비트는 기존의 구글이나 IBM에서 개발한 양자 컴퓨터와 달리 상온과 대기압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반적인 양자 컴퓨터는 매우 낮은 온도나 특수한 환경에서만 작동하지만, 다이아몬드 큐비트는 이러한 제약을 받지 않는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는 2022년 이러한 다이아몬드 기반의 상온 양자 컴퓨터를 중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개발했다. 이를 통해 한국의 양자 기술이 세계적으로 앞서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doi: 10.1021/acs.nanolett.1c04699

     

    양자 영역을 인간이 이해하기 시작한 지는 불과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양자 컴퓨터가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앞으로 몇십 년 뒤에는 어떤 새로운 양자 기술이 우리 삶에 스며들지 상상하기 어렵다. 양자 통신과 양자 센싱은 이미 혁신적인 발전을 이뤘고, 미래에는 양자 컴퓨터와 양자 암호화가 산업을 근본적으로 바꿀지 모른다. 이제 막 시작된 양자 기술의 여정에서 앞으로 펼쳐질 가능성이 기대된다. 

     

    더쿱디스트리뷰션

    주인공의 딸 조이의 또 다른 자아 조부 투바키는 세상 모든 것들이 블랙홀을 통해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이를 통해 모든 것이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직접 베이글 모양의 블랙홀을 만든다. 

     

     

      김세정

    호주 멜버른대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 서강대 물리학과를 졸업했고 KAIST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20년 호주 멜버른대에 임용돼 바쁘게 실험실을 꾸려나가고 있다. 세계 광학 단체 OPTICA의 앰배서더로 활동 중이고, 2022년에는 책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2(공저)’를 출간했다. 학계에서 접하는 최신 과학을 한국의 미래 과학자들과 나누고자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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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세정 호주 멜버른대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
    • 에디터

      김미래
    • 디자인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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