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혜 죽었다네.”
지난 학기 기후우울증으로 휴학한 동기 중 벌써 세 번째 소식이었어. ‘나라가 알려주지 않는 기후 통계’(나알통) 웹사이트에 따르면 2030 기후우울증 치사율이 50%를 넘어섰어.
30분 후 너는 PPT가 뜬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손은 멈춰있었어. 나는 과제는 안 하고 유튜브 영상을 봤지. 최근 바이럴을 탄 정원 교수의 영상이었어. 기후 변화 시대에 인간을 진짜 위협하는 것은 실제 환경 변화보다 기후우울증이란 얘기였어. 병명을 기후우울증이라고 붙인 탓에 우울증의 일종이라고 착각하고 가볍게 넘기는 경향이 있는데, 그냥 우울증과는 양상도 치명도도 근본적으로 다른, 훨씬 심각한 질병이라고 했어. “그런데 과연 기후 변화 이전의 기억이 없다 해도 기후우울증이 존재할까요?” 그는 물었어. 댓글란에선 “아무리 그래도 기억을 어떻게 지워.”란 의견과 “진짜 되는 거면 쓸모 있을 것 같은데요?”란 의견이 팽팽히 대립했어.
그해 여름만 해도 두 번의 웨이브가 있었어. 첫 번째는 20분밖에 지속되지 않았지만 열 질환과 각종 전자기기 오작동 및 폭발로 서울에서만 30여 명의 사상자를 냈지. 두 번째 웨이브는 3일간 계속됐고 사망자 수는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적었다지만, 그 트라우마로 기후우울증이 심해져서 자살한,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을 합치면 엄청날 것 같았어.
그해 여름이 얼마나 더웠는지는 그날 너희 집에서 비로소 실감했어. 너는 어쨌든 창문을 열면 조금은 좋아질 거라고 항상 믿는 사람이었잖아. 그런 네가 에어컨을 틀기 시작했으니까. 너조차 바깥 바람의 힘을, 그 궁극적 좋음을 믿지 않게 됐을 때, 모든 것이 변했다는 걸 알았어.
나는 영상 내용을 요약해서 네게 설명했어. “의외로 인간의 신체는 새로운 기후에 적응할 잠재력이 있대. 그런데 겨울은, 여름은 이래야 한다는 우리 기억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거야. 어린 시절의 감각적 기억은 대부분 쓸모가 없을 뿐더러, 당면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즐기는 걸 방해하고, 기후우울증을 유발한대. 마음도 피부처럼 ‘딥클렌징’이 필요하다는 거야.”
너는 눈살을 찌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눈살을 찌푸린 그대로 PPT를 수정할 뿐이었어. 두 시간쯤 지났을 때 나는 엎드려서 네 폰을 만지고 있었지. 우리는 재난 문자에서 하란 대로 커튼을 치고 불을 끈 상태였어. 지침을 완전히 따르면 냉방기기를 제외한, 폭발 가능성이 있는 모든 전자기기를 끄고 콘센트에서 분리해야했지만 너는 노트북을 계속 썼고 나도 그냥 폰을 썼어. 게다가 에어컨을 최대 세기로 틀어서인지 네 방 같지 않고 비현실적이었어.
그날 귀가는 어려울 것 같았고, 며칠 눌러앉아야 할지도 몰랐어. 원래의 나라면 대충 네 옷을 빌려 머리만 가리고 돌아갔겠지만, 지난 웨이브 때 그러고 편의점에 다녀와선 팔이 온통 빨갛게 부어올라 한참 고생했으니까. 연고를 발라도 진정이 안 돼서 병원에 가니 1도 화상이라더라.
이미 너는 그 주초에 우리가 알던 여름은 가버린 것 같다, 이게 앞으로 우리 여름일 것 같다고 했어. 나는 안 믿었지.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여름을 사랑했고, 이메일 주소도 웹사이트 아이디도 summer가 들어갔고, 포기하지 않고 가장 간절히 날씨 앱을 확인했으니. “이렇게 계속 더울 리도, 장마가 이걸로 끝일 리도 없어.”라면서. 하지만 끝을 선언할 때 너는 진심 같았어.
너는 어느새 타자를 멈추고 노트북을 쳐다봤지. “한마디로 하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지 못하게 하는 노스탤지어란 감정 자체가 질병이란 거지? 정원 교수 말은.” 질문이지만 질문이 아니었어. 너는 조금 화가 난 듯 했고, 과제가 아니라 여름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것 같았어.
“음. 그것까진 아니야. 병의 원인이 되는 ‘노스탤지어-노이즈’와 건강한 인간적 감정인 노스탤지어를 구분해야한대. 날씨 기억에 대한 과도한 정서적 몰입과 사회적인간적으로 의미 있는 대상에 대한 ‘진짜’ 그리움을 구분해야한다는 거지. 얼마나 의미 있는 구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원 교수의 주장은 딥클렌징 약물을 기후우울증 백신으로 보급해야한다는 것이었어. 우리는 그런 약이 백신처럼 정말 보급되면 사용해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얘기하기 시작해. 아직 보급은커녕 수입도 안 됐는데, 쓸데없이 진지했고 밤새 몇 번이나 벽에 부딪혔어. 정말 계속 더워지고, 네가 좋아하던 여름도 내가 좋아하던 겨울도 돌아오지 않고, 전쟁과 전염병 속에서 살아야한다면(우크라이나 전쟁은 8년째 계속되고 있었고, 코로나바이러스 오메가플러스 변형이 세상을 휩쓸고 있었어), 기억을 지워서라도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 게 유일한 방법처럼 보였어.
결국은 지쳐서 둘 다 가만히 있었어. 그런데 새벽 네 시 반쯤, 미뤄두고 눌러뒀던 진짜 중요한 이야기가 고개를 드는 그 시간에, 네가 갑자기 말했어. 일단 살아남는 게 우선이라고. 네게선 생각 못한 말이었어. 딥클렌징이고 뭐고 나는 안 받을 생각이었고, 너도 그럴 거라고 믿었거든. 기억까지 포기해야 기후우울증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다면 삶에 무슨 가치가 있나 싶었어.
너는 무슨 생각인지 갑자기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어. 미래가 아직 불확정적이니까 백신을 맞아야한다고. 나는 가끔 네게 겨울 냄새 얘길 했었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더운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누워있으면 가끔 너무 생생하게 떠올랐거든. 창문을 밀어 열자 온통 하얗고,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겨울 새벽만의 냄새가 가득 들어오던 날. 너는 나의 그 기억을 얘기했어. 그리고 말했어. 그렇게 강렬하게 존재한 것들이 영영 존재하지 않게 된다고 생각할 순 없다고, 그냥 도저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이를테면 종일 비가 내려서 기온이 내려간 끝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마루에 앉을 날이 언젠간 언젠간 다시 올 거라 생각한다고 했어.
다만 단시간 내에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어. 그러니까 기다리는 게 핵심인데, 현재 상황을 봐선 아주아주 오래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어. 그러니까 기후우울증 백신이든 뭐든 우리가 오래 기다리도록 도와준다면, 이용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어. “정원 교수의 약을 먹으면 뭘 기다리는지 기억하지도 못하게 되는데그 상황에서 기다림이 이어질까?” 나는 물었어. “생생하게 기억하지 못하면 그리워하지 않는 건가?” 너는 되물었어. 기억하지 못하든 기억하든, 사람이 진정 그리운 것을 그리워하지 않게 된다고는 믿지 않는다면서.
너와 맞은 새벽의 냄새나 온도는 기억나지 않지만빛이 들어오던 건 기억나.너는 내게도 빛이 있는 데 와서 앉으라고 했어.더 뜨거워지기 전에 얼른,잠깐만.너는 그런 빛이 좋다고 했어.깊이가 없는 것 같지만 가장 기억 깊이 스며드는 빛.봄과 여름 사이의 짧은 날씨가 연상되는 빛.
그날 나는 네 논리에 설득되기로 했어. 설득되기로 한 그 순간의 결심만 기억나. 이상하지. 나도 남의 말은 죽어라 안 듣는 사람인데. 네 말이 끝내 틀리면 어쩌지, 네 논리에 엄청난 구멍이 있는데 지금 내겐 안 보이는 거면 어쩌지, 이런 생각은 전혀 안 들었어. 적어도 그 아침엔.
우리는 해가 다 뜰 때까지 정원 교수의 인터뷰와 공개 강연과 모든 걸 검색했어. 정원 교수의 신심리학은 ‘에센셜-기억’과 ‘노이즈-기억’을 나누는 데서 시작했어. 에센셜-기억은 사회적 정보값이 있는 기억으로, 크게 언어적 기억, 사회적 기억, 운동 기억으로 나뉘지. 노이즈-기억은 더는 쓰지 않게 된 공간 내지 작업의 기억으로, 기후 변화 시대에 들어선 날씨의 기억도 여기 들어갔어. 신심리학파 이론의 핵심은 흔히들 좋게 생각하는 노이즈-기억이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과거를 그리워하고 현재에 대한 적응을 어렵게 하는 노이즈를 생성한다는 거야. 정원 교수의 업적은 인간의 에센셜-기억은 주로 시각적, 청각적 기억이고, 노이즈-기억은 촉각, 후각 기억이란 데 주목한 거였어. 즉 촉각 기억과 후각 기억을 청소해 노이즈-기억을 클렌징할 수 있다는 뜻이었지.
다양한 환경에 잘 적응해 사는 장수 파충류와 어류의 뇌를 보면 촉각 기억과 후각 기억을 저장하지 않거나 정기적으로 삭제한다고 해. 인간의 신체도 생각보다 다양한 기후에 적응이 가능한데도, 어릴 때 형성된 촉각과 후각 기억들이 이 가능한 적응이 불가능하고, 환경의 변화를 단순한 재앙, 불행으로 인식하게 만든단 거지. “결국 마음의 문제란 얘기죠.” 정원 교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 노이즈-기억은 배출되지 않는 노폐물처럼 뇌에 축적돼 각종 정신적 신체적 질병을 일으킨다고(예를 들면 인류가 감기처럼 달고 사는 비(非)기후우울증도 노이즈-기억에 기인한 면이 있어서, 기억의 딥클렌징으로 어느 정도 예방 가능하리란 얘기였지) 했어.
덜 알려진 한 인터뷰에서 정원 교수는 딥클렌징 약이 신체 노화를 막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어. 너는 그 인터뷰를 몇 번이나 돌려봤지. “이게 희망일지 몰라.” 너는 21세기가 최악이리라 믿는다고 말했어. 그 다음이나 그 다음다음 세기쯤 혼란은 진정되고 인구수도 어떻게든 조절되고 과학 기술이 많은 문제의 답을 찾을 거라고도 했지. 네가 아주 가끔 그렇게 확신에 차서 말할 때가 좋았어. “정원 교수가 타겟팅하는 노이즈-기억도, 우리가 잃기 싫은 것도 날씨의 기억이야. 날씨만 돌아오면 기억을 되찾는 셈이지. 문제는, 그때까지 살아남는 거야.”
어쨌든 나는 네게 설득되기로 했으니, 우리는 계획을 세웠어. 정원 교수에게 무조건 우리 운명을 맡길 수는 없었으니까. 두 사람이라 가능한 계획이었어. 내기라고도, 비교대조군을 둔 아주 장기간의 실험이라고도 할 수 있었지. 우리 중 하나는 실험군이 돼 정원 교수의 약도 나오는 대로 먹고 노이즈-기억을 청소하기로 했어. 시키는 대로 해서 생존을 도모하잔 거였지. 대조군인 다른 한 사람의 역할은 저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억을 간직하며 살아남는 거지.
“양쪽의 미래에 모두 베팅하는 거야. 딥클렌징이 실제로 효과가 있을 가능성과 그렇지 않을 가능성. 이러면 정원 교수가 사기꾼이어도 우리 중 한 명은 기억을 지킨 셈이니 완전 손해는 아니고, 정원 교수가 옳아도 한 명은 확실히 살아남을 수 있어.” 너는 말했어. 다만 한 가지가 문제였어. 누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가. 이번만큼은 우리 둘 다 같은 것을 원해서 문제였어.
나는 네가 실험군이 돼야한다고 생각했지. 네가 이 계획을 짰고, 나보다 좀 더 날씨에 예민했고, 날씨에 예민하다는 건 잠재적으로 기후우울증에 취약하단 의미니까. 너는 내가 실험군이 돼야한다고 생각했어. 나보다 훨씬 철저한 근거도 있었지. 일단 내가 심리학과란 이유였어. 아무리 자칭 날라리 심리학과생이라도 철학과인 너보단 나을 거라고 했어. 또 너는 원래 판타지 소설에서도 계획자와 실행자는 별개이고, 네가 원래 이론보다 실전에 약하다고 주장했어.
너는 미래를 내게 떠넘기려는 것 같기도 했고, 선물하려는 것 같기도 했어. 우리는 둘 다 아주 이기적이거나 아주 이타적인 것 같았지. 희망을 만드는 것과 희망을 갖고 사는 것 중 무엇이 더 어려울까. 한 사람이 전부 할 수 없는 건 확실했어. 도저히 풀리지 않을 듯한 교착이 아침 11시경까지 이어졌지. “조사부터 하자.”, 나는 제안했어. 정원 교수의 수업을 듣고, 워크샵 같은 것도 참여하고, 그 약의 효과와 부작용을 정확히 알아보자고 했지. 딥클렌징 약은 미국에선 이미 시판 중이었는데, 한 병당 1000만 원대였어. 경제 신문의 기사들을 찾아보니 한국엔 의료보험이 적용돼 들어올 가능성, 아닐 가능성이 모두 있다고 했고. 미국에선 딥클렌징 덕에 정신의 활력을 찾고 생활성취도를 높인 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의 이분화가 일어나는 중이라고 했어.
즉 우리는 약이 말도 안 되게 비쌀 가능성도 대비해야했어. 역시 정원 교수가 최근 홍보 중인 ‘청년 마음 건강 챙기기’ 사업에 어떻게든 참여해야한다고 생각했고 너도 동의했어. 이 사업 홈페이지엔 밝게 웃는 대학생들의 포토샵된 사진과 뜬금없는 펜실베이니아주 소도시 마음건강센터 해외연수 날짜만 올라왔고, 프로그램의 참여 방법은 없었어. 하지만 아무래도 그 프로그램에 어떤 열쇠가 있을 듯했어. 정원 교수가 XX대에서 여는 ‘기억과 사회’ 수업계획서 하단에 작게 “신심리학 연구 프로젝트 및 청년 앰배서더 사업과 연계된 수업입니다.”라고 적혀있었지.
“이거다.” 지난 여름 예고에 없던 비가 이틀 내리 퍼붓고 두 시간쯤 시원했던 후로 그렇게 들뜬 네 목소리는 처음이었어. 일단 정원 교수의 수업을 들어야했어. xx대 학점교환을 신청하고, 초인기 수업의 빡빡한 수강신청까지 뚫어 어떻게든 자리를 확보하고, 교수의 눈에 들어 청년 어쩌구 프로그램으로 이어질 길을 찾아야했지. 조사는 일단 내가 맡았어. 네 말대로 내가 심리학과생이고, 학기 중에 갑자기 기분 문제로 수업을 드랍한 전적도 아직 없었잖아.
커튼을 한 뼘쯤 열고 내다본 세상은 너무 하얗고 눈부셔서 외계 행성 같기도, 우리가 알던 보통의 한여름날 같기도 했어. 너는 꽁꽁 언 생수병과 물수건을 꺼내왔어. 에어컨 이외의 개인 냉방기나 체온조절기 없이 그런 걸로 버티는 것 같았지. 그때 내게 어떤 생각이 떠올랐어. “우리 실험의 최종 목적이 뭐지? 관찰해서 얻으려는 결과 말이야. 우리 둘 다 실험 참가자이지만 관찰자이기도 한데실험군과 대조군에서 얻은 결과는 누가 어떻게 취합, 비교하지?”
“더 오래 사는 쪽, 그러니까 아마 실험군? 적은 확률로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정기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면 좋겠지.” 너는 말했어.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이 블로그는 그런 이유로 만들었지. 당장은 아니고, 실험군이 딥클렌징을 받는 시점부터 기후와 기억과 우울에 관한 모든 걸 기록하기로 했지. 블로그 제목을 내가 고민하자 너는 ‘기록’이라고 썼어. “바꾸고 싶으면 바꿔.”
기억과 사회 첫 수업은 나쁘지 않았어. 온라인 수강신청은 실패했지만, 경증 기후우울증 경험을 구구절절 담은 이메일을 보내고, 수업 30분 전에 도착해 맨 앞줄에 앉았어. 수업 시작은 딥클렌징에 대한 흔한 오해들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이었어. 딥클렌징을 감정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이 많은데, 딥클렌징은 기억을 통째로 들어내는 수술이 아니고 촉각적후각적 ‘에스펙트’를 깎아내 기억을 덜 생생하게 만들어서 인간 신체를 온난화된 지구에 최적화시키는 시술이라고 했어. 또 다른 큰 오해는 딥클렌징이 인간을 무감각하게 만든다는 건데, 이것도 최근의 실험으로 충분히 반박됐다고 말했지. 그 실험에 따르면 불필요한 감각 기억을 정리해서 피실험자의 정서 기억력과 일화 기억력뿐 아니라 전반적 감정 인지 기능과 사회적 반응성도 향상됐단 거야.
“딥클렌징이 계절 감각을 재조정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눈 내리는 날의 기억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눈이 왜 안 오는지 기다리는 기분을 줄여준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나는 우리 계획대로 손을 들고, 질문 아닌 질문을 했어. 정원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 세대 특유의 문제일 거라고 했어.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날씨는 이래야 한다.”란 고정관념이 없어서 우리 같은 문제를 겪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딥클렌징 약물도 딱 우리 세대, 특히 경증 기후우울증에 시달리는 청년에게 필요하다고. 그는 나를 기억한 것 같았어. 끝나고 찾아가 이메일 얘기를 다시 꺼내며 꼭 수업을 듣고 싶다고 하니 학과에 연락해서 특별히 편의를 봐주겠다고 했어.
아, 참. 청년 대상 사업 얘기도 흘렸어. 딥클렌징 개발사에서 사람들의 심정적 거부감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국가 출신의 일반인 청년 앰배서더를 모집할 예정이라더라. 네게 바로 문자를 했어. 너는 며칠째 내 문자에 답하지 않았지만. 그런 일은 전혀 없었으니 폰이 고장 났나 했어.
중간에 들른 백화점 지하 대형마트에서 동기의 문자를 받았어. 엄마 퇴원 선물을 사야했거든. 한 번은 입원할 줄 알았지. 엄마는 그 세대답게 기후우울증엔 기묘한 면역이 있어서 더위 무서운 줄 모르고 쏘다녔거든. 선물을 고민하는데 휴대폰이 울렸지. “OO!, 이거 네 친구 아냐”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의 게시글 링크였어. 익숙한 건물 앞에 경찰차가 서있는 사진, 실명, 그리고 쓸데없이 자세한 디테일. 냉장고 문은 다 열려있었고 바닥엔 얼음이 나뒹굴었다고. 자가면역성 온열질환에 걸린 줄 모르고 지내다 사망했을 거란 추정. “자살 아니야??”란 댓글에 “ㄴㄴ, 자기 아픈 거 모르고 다니다 죽기도 해. 꼭 날씨 좀 멀쩡해졌을 때.”란 댓글이 보였어.
“이래서 개인 냉방기 꼭 사야 하는 거다.”란 마지막 댓글까지 전부 읽었지만, 이상한 백열등으로 환한 마트에서 모든 건 괜찮을 것만 같았어. 내가 어떻게 되고, 네가 어떻게 되든 영원할 세상이었어. 그 와중에도 손을 움직여 ‘기록’에 접속했지만 아무것도 없었어. 혹시 몰라 네 아이디 summerwalker로도 로그인했지만 비밀글도 없고, 내용 없는 임시저장글만 하나 있었어.
‘우리 실험은 안 하기로 하는 건가.’ 기묘한 무감각 상태로 생각했어. 그러다 갑자기 깨달았지. 실험은 중단되지도, 취소되지도 않았단 걸. 실험군인 내가 있으니까. 기록은 백지였지만 너는 대조군의 역할을 했어. 백지를 제출했지. 그것도 정보였어. 정보여야만 했어. 그렇다면 너는 이미 대조군의 역할을 수행했으니 내가 실험군이 돼야했어. 이 길뿐이야.
펜실베이니아주 소도시의 작은 호텔에서 이 글을 써. 여기도 평소보다 아주 덥지만, 서울의 7월말과 비교하면 서늘할 정도야. 아무리 걸어도 3층짜리 집들과 주유소만 보이는 하얀 거리들 사이로 오랜만에 산책이란 것도 했어. 가로수는 하나같이 색이 이상하거나 잎이 바랬지. 나무들은 오지 않는 겨울을 기다리고 있었어. 내일은 딥클렌징에 앞서 전자기파 컨디셔닝을 받을 예정이라, 자기 전에 이 블로그에 잊기 싫은 기억을 적을 생각이었어. 근데 딱히 기억나는 게 없네.
내 뇌는 이미 몇 번의 전자기파 컨디셔닝을 한 상태라 딥클렌징 샴푸로 머리를 감고 잠만 자면 됐어. 그렇게 했지. 중간에 몇 번 정신을 차리고 네게 문자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꿈이었어. 결국 70시간 정도 아팠어. 네 방이 나오는 꿈도 꿨어. 너는 불을 안 끄려 했지만 불을 꺼야 한다고 내가 강하게 말했어. 불을 켜면 에어컨을 켜도 너무 더워서 아무 기억도 안 난다고. 어떤 다른 날씨가 있었다는 걸 믿을 수 없고 죽은 후에도 다음 생에도 계속 더울 것 같다고 했지.
결국 불을 끄고 무슨 오컬트 의식을 거행하듯 책상에 마주 앉아 네게 여러 가지 겨울 얘기를 했어. 너도 뭔가를 맡아야 했으니까. 우리 실험의 80%는 내가 맡은 일인데, 그래선 좀 많이 불공평하잖아. 너는 계속 고개를 끄덕였어. 이해한 것 같았지. 혹은 그냥 내게 그런 인상을 심어주려는 것도 같았어. 내가 미래로 계속 나아가도록. 너 자신도 믿지 않는 가짜 희망을 심어서.
깨 보니 새벽이야. 노트북을 들고 텅 빈 호텔 로비로 내려왔어. 아직 변화는 안 느껴져. 마음은 똑같이 쑤시고 멍해. 우리가 여태 실험 목표를 안 정했단 걸 깨달았어. 나 혼자 목표를 정할지, 어차피 설계 오류 투성이인 실험인데 이대로 갈지 고민이야.
블로그에 글을 다 썼는데도 6시 반이네. 심심해서 잠시 호텔 주차장으로 내려갔다가 벽에 비친 먼지 쌓인 자전거를 봤어. 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자전거 타고 나무 그늘 사이 내리막길을 최고 속도로 내려가고 싶었어. 또 쓸게
짐리원
‘올림픽공원 산책지침’으로 2023년 제3회 문윤성 SF 문학상 중단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고, 과학동아 2024년 3월호에 ‘엔딩의 발견’을 기고했다.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 서울에 대해 계속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