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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과동키즈] “인류 지식에 기여하는 꿈, 물리학자를 움직입니다”

 

어린 시절 저는 막연하게 과학을 좋아하는 산만한 아이였습니다. 다방면에 지식 욕구가 많아 책 읽기를 좋아했고, 공구를 가지고 놀거나 전자 제품을 분해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런 제가 과학동아를 처음 접한 건 초등학생 때였습니다. 문체가 자연스러워 읽기가 편하고, 동시에 기사의 수준이 높았다고 기억합니다. 학창 시절 내내 과학동아를 애독했습니다. 과학동아에서 접한 핵융합에 매료돼 한동안은 한국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로 핵융합을 연구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연히 과학자를 꿈꾸던 제가 처음으로 구체적인 장래 희망을 생각하는 계기였습니다.

 

그랬던 어린아이가 2007년도에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진학했습니다. 제가 물리학 전공을 결심한 건 고등학교 시절 읽은 스티븐 호킹의 책 ‘시간의 역사’ 때문입니다. 아무리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물리학을 더 배우면 이해를 할 수 있을 거라 여겼습니다.

 

 
1997년 초등학교 5학년 때, 학생탐구발표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달팽이와 우렁이를 사육했다. 기르던 달팽이를 살펴 보는 당시 필자의 모습.

 

헤어 나올 수 없던 ‘물리 중독’ 실험물리의 길을 걷다

 

 

막연하게 시작한 물리학의 길이었지만, 참 재미있었습니다. 간단한 원리로 복잡한 세상을 모순 없이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물리학 전공자들은 누구나 이해하는 물리의 중독성이 있습니다. 저는 전자기학과 특수상대성이론을 배우면서 전기와 자기가 관찰자에 따라 달리 보이는 같은 현상임을 이해했을 때 강렬한 ‘물리 중독’을 느꼈습니다. 또 부분적으로 당연해 보이는 게이지 대칭성과 로렌츠 대칭성 위에서 작성된 표준모형이 얼마나 정확하게 우주를 기술하는지 배웠을 때, 헤어 나오기 힘든 중독성을 느꼈습니다. 특히 저는 실험 과목을 좋아했는데, 며칠 밤을 새우며 실험해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2011년에 대학원에 진학했고, 2012년부터 미국 에너지부 산하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의 ‘피닉스(PHENIX) 실험’에 참여해 양성자의 구조를 연구하며 가속기 기반 고에너지 실험물리학을 시작했습니다. 실험물리학은 실험을 통해 물리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특히 거의 광속에 가깝게 가속된 양성자나 무거운 핵을 충돌시켜 연구하는 분야가 고에너지 실험물리학입니다. 

 

실험과 이론은 서로 보완을 해주는 관계이고, 물리학 특히 고에너지물리학에서는 실험물리학과 이론물리학이 분업화돼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공구를 만지는 것과 큰 기계를 좋아한 저에게는 4~5층짜리 건물만 한 검출기를 다루는 고에너지 실험물리학이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2013년에는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의 장학생으로 선발되며 좋은 환경에서 훌륭한 선생님들의 지도하에 행복하게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1 2017년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 압축뮤온솔레노이드(CMS)의 기체전자증폭기(GEM) 검출기 업그레이드에 참여한 필자(가운데)와 동료들.

2 2018년 CMS 앞에서 촬영한 사진. 필자는 CMS 검출기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거대과학 연구의 효율성을 높이는 세 가지 비결

 

 

2016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까지 저는 현재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압축뮤온솔레노이드(CMS) 실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앞서 표준모형이 굉장히 정확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물리학 이론이 완벽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저와 같은 실험물리학자들은 새로운 측정을 하거나 기존 측정의 정밀도를 높여, 새로운 이론을 검증하거나 이론이 답을 줄 수 없는 문제를 풀고자 합니다. 저는 CMS 검출기를 통해 모은 고에너지 양성자 충돌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기체전자증폭기’라는 방사선 입자 검출기를 개발하며 다음 단계의 실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CMS 검출기를 통해 연간 수십 페타바이트의 거대한 데이터를 수집하므로, 이를 분석하기 위해서 다양한 통계학적 기법과 컴퓨팅 도구를 사용합니다. 최근 인공지능(AI)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분석의 민감도가 빠르게 좋아지는 추세입니다. 주로 사무실에 앉아서 코딩하거나 다양한 공부를 하며 동료와 의견을 나누는 것이 요즘 저의 주된 일과입니다.

 

검출기를 개발하는 과정은 더 역동적입니다. 직접 검출기를 개발하거나 생산하기도 하고 때로는 많은 업체와 협력해 개발 연구를 수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예측할 수 없던 일들이 생기는데, 이를 적절히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다양한 기관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검출기를 개발할 때는 출장도 많고, 실험 일정에 쫓기기도 하고, 각종 리뷰와 제안서 작성에 정신이 없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자주 느끼는 건 동료들과의 의사소통과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제 분야의 가장 큰 특징은 거대과학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국제협력의 형태로 연구가 진행됩니다. 수천 명의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이 모여 거대한 가속기와 검출기를 건설하고 연구를 합니다. 

 

회사나 관료 조직에 비하면 느슨한 구조의 국제협력 연구는 자칫하면 비효율적으로 흐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물리학의 발전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모두가 납득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이 힘들어도 그 의미가 명확하고 방향에 공감한다면 사람은 놀라운 인내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요. 제가 속한 분야에서는 이런 부분이 잘 지켜지는 편입니다. 물론 이를 위해 연구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방법과 설득을 하는 방법을 필수적으로 익혀야 합니다.

 

 
2023년 12월, 아들(왼쪽)의 어린이집에서 일일교사로 나섰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아이들과 함께 화학 반응을 일으켜 인공 눈을 만드는 실험을 했다.

 

경쟁과 성과 스트레스, 호기심과 의무감으로 극복

 

 

연구하는 법을 안다고 해서 연구가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것이지만, 연구가 저의 생계 수단이므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선 다른 연구자들과 경쟁해야 하고 또 꾸준히 연구 성과를 내야 합니다. 미답지를 걸어야 하는 연구의 특성상 성과가 예상보다 늦어질 때도 있고 괴롭기도 합니다. 

 

이런 연구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가장 큰 동기는 의무감 그리고 호기심입니다. 아직 어려서 과학자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이들과 연구자로서의 의무감이 힘든 하루를 견디게 합니다. 또 가끔 호기심이 동할 때가 있습니다. ‘새로운 입자를 발견해서 혼란스러운 물리학을 정리하고 인류의 지식이 한 단계 나아가는 것을 또 볼 수 있을까? 혹시 내가 여기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이런 감상이 퇴근길에 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가슴이 뛰는 순간이 있다는 게 연구에 매진하는 큰 동기부여가 됩니다.

 

앞으로 저는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에 건설될 예정인 전자-이온 충돌기 실험(EIC)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제가 만든 검출기를 넣고, 그 검출기를 이용해 데이터를 수집해 양성자 구조 연구를 이어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고에너지 실험물리학은 호흡이 아주 긴 분야입니다. 가속기와 검출기를 설계하고 건설해 데이터를 수집한 뒤 분석해서 논문을 내기까지 대략 20~30년이 걸립니다. 그래서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하는 행운을 얻는 경우가 이 분야 학자들에게도 모두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운 좋게도 저는 박사학위 과정 동안 브룩헤이븐 연구소에서 EIC 계획이 세워지는 과정을 봤고, 개발 과정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EIC 실험에 사용되는 검출기 중 하나는 한국 CMS 연구단이 세계적인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검출기로서, 제가 개발에 상당 부분 기여했던 검출기입니다. 이 행운을 발판 삼아 EIC 실험에서 흥미로운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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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윤인석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IBS) 선임연구원
  • 에디터

    김태희
  • 디자인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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