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단기간에 수많은 희생자를 내 전세계를 긴장케 한 에볼라(Ebola)병은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해서 높은 열과 출혈을 특징으로 하는 출혈열의 일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에볼라병과 비슷한 종류의 병으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유행성출혈열이 있지만, 전염 경로나 증상에서는 차이점이 많다.
흔히 에볼라라고 줄여 부르는 이 질병은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의 명칭을 그대로 부르는 말이고, 에이즈는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의 머릿글자를 따온 줄임말이다. 에볼라병에 대해서는 아직 전문가들조차 모르는 점이 많고 치료에 대해서도 특효약이 나타나지 않은 실정이다. 위험하고 보기 드문 괴질 정도로 인식돼 있는 에볼라병과 지나친 공포의 대상으로 이에 대한 공포증 환자까지 발생하는 에이즈는 과연 같은 병인가? 다르다면 차이점은 무엇인가?
두 바이러스는 별개의 질환 유발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에이즈와 에볼라는 발생이 아프리카에서 많고 발병원인에 일부 종류의 원숭이가 관련돼 있는 것으로 추측되며, 별다른 치료제가 없어 사망률이 높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원인 바이러스나 증상 면에서 판이한 양상을 보이는 별개의 질환이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필로(Filo=Filament, 전자 현미경상 구조가 실타래 모양 같다는 것에서 유래) 바이러스에 속해 있는데, 비슷한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로는 마버그(Marburg) 바이러스가 있다. 그러나 에볼라와 마버그에 의한 질환은 임상적으로 서로 구별이 쉽지 않아 두 질환 모두를 통틀어 '아프리카형 출혈열'로 부르기도 한다.
에이즈는 1981년 미국에서 전혀 새로운 질병의 양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처음 보고된 이후로 연구가 진행돼 원인이 역전사효소를 가지고 있는 RNA형 바이러스의 일종인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로 밝혀졌다. 당초 이러한 HIV 바이러스의 조상은 염소 소 원숭이 등의 동물에서만 감염돼 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 중 하나가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사람에게도 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이 어떻게 사람 몸 속에 들어오게 돼 질병을 유발하게 되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에볼라병과 같은 출혈열의 유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과거에도 몇번 있었다. 최초의 발병보고는 마버그병으로, 1967년 우간다산 녹색 원숭이를 백신 제조와 실험을 위해 수입한 독일과 유고슬라비아에서였다. 당시 수입된 원숭이들이 질병으로 사망하면서 마버그 바이러스라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처음으로 밝혀졌으며, 동물실험에 관계한 사람들 중 총 31명이 발병해 7명이 사망했던 것이다. 이후 1975년 남아프리카에서 3명이 동물 실험실이 아닌 일상생활 중에 감염으로 사망했고, 80년과 87년 케냐에서 각각 1명이 마버그 바이러스에 의해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익히 알려진 대로 이번 자이레 중서부 키크위크 지역에서 발생해 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질병은 에볼라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다. 1976년 자이레 북부지역에서 처음 발생한 연유로 이 질병은 그곳의 지명을 따서 이름 붙여졌다. 발생 당시 3백18명의 환자가 발생해 그중 2백80명이라는 많은 인명을 앗아간 이 바이러스는 역학 조사 결과 가장 최초의 감염자는 찾을 수 있었지만, 그사람이 어디에서 어떻게 감염됐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같은 해 수단 남쪽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2백84명이 발병해 53%가 사망했고, 79년에는 수단의 같은 지역에서 34명이 발병해 65%가 사망했다. 최초 감염이 발생한 후로 모든 감염자들을 자세히 관찰한 결과, 마버그병에서는 원숭이의 피나 조직 , 세포배양 등에 관계했던 사람들과 그들을 치료했던 의료진, 부부 등의 가족인 사람들이 감염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에볼라병에서는 소독되지 않은 주사기를 사용한 사람들과 환자를 치료하던 의료진 가족들이 감염돼, 환자의 혈액 체액 배설물과 접촉하는 것이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귀중한 정보를 얻기에 이른다.
1979년 이후에는 이러한 질병의 보고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198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미국으로 수입 된 원숭이로 인해 같은 실험실의 짧은 꼬리 원숭이들이 매우 심한 질병을 앓게 되면서 다시 나타났다. 이 질병에는 4명이 감염됐지만, 다행히도 특별한 증상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원인을 밝혀내기 위한 검사 결과 에볼라 바이러스의 새로운 변종이 분리됐고, 같은 예가 1992년 이탈리아와 1993년 미국에서 보고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바이러스가 어디에서 발생한 것인지 조사했지만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고, 다만 원숭이가 잡힌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오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다. 이번 자이레에서 에볼라병의 발생을 보고 전문가들은 거의 20년동안 발생이 없던 이 질병이 어째서 갑자기 발생했는지,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환자의 재채기 등을 통해 공기로 전염되는지 여부는 아직 확실히 증명되지 않았다. 만약 감기처럼 전염이된다면 우리는 주변에서 감기환자들 만큼이나 흔하게 에볼라환자를 볼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증상이 심한 환자가 방역망을 피해 비행기에 탑승하고 그 환자에게서 많은 체액이 분비된다면 옆좌석의 승객에게 전염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감염경로면에서는 유사
에이즈의 감염경로는 에볼라병과 비슷한 점이 있다. 비록 치료목적과 일시적 쾌락을 위한다는 목적의 차이는 있었지만 주사기를 같이 사용하는 등의 비위생적인 방법이 감염을 일으키는 공통요인이다. 그밖에 성관계나 수혈, 혈액제재의 투여 등을 통해서도 감염된다. 모기나 공기를 통한 전염은 없으며 가정이나 학교에서의 일상적인 접촉으로는 전염될 가능성이 낮다.
그러나 피부의 상처가 있거나 잔물이 흐르는 피부병이 있으면 조심해야 하고 지나친 체액에의 노출은 피해야 한다. 에이즈 감염자와 한번의 성관계에서 감염될 확률은 0.1-1%, 주사바늘에 찔렸을 경우는 0.2% 정도의 감염 확률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특히 주사바늘에 의한 경우는 B형 간염 환자보다도 낮은 전염 확률을 보이고 있다.
에볼라는 일단 감염된 후 5-10일간 잠복기를 거친 후 갑작스런 고열과 두통 근육통 등의 증상을 보인다. 발병 2-3일이 지나면 복통과 구토 설사등으로 고생하게 되며, 목 안이 붓고 아픈 증세가 같이 온다. 또한 림프절이 붓고 결막이 충혈되며 황달이나 췌장염이 생기기도 한다. 뇌를 침범하는 경우 환자는 의식이 흐려지며 심하면 혼수에 빠지기도 한다. 병이 진행되면 환자는 수척해지며 이 병의 특징인 출혈열 경향이 생기게 돼 좁쌀같은 붉은 반점이 생기고 입술 등의 점막이나 주사 부위 등에 출혈이 생긴다. 발병 5일째부터는 대부분의 환자는 간이나 신장, 비장 등의 여러 장기에 손상이 생기면서 쇼크 상태에 빠지게 돼 여기서 사망하거나 열이 떨어지면서 회복되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회복은 시간이 오래 걸리며 고환염이나 간염 등의 합병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에볼라병이 대략 2주정도에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것에 비해 에이즈는 오랜 시간과 다양한 증상을 나타내 증상이 전혀 없는 감염자로부터 여러가지 동반된 질병으로 사망할 수밖에 없는 중증의 환자에 이르기까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처음 감염되면 발열 인후통 무력감 기침 근육통 등의 감기 증상이나 발진 배탈과 같은 애매한 증상이 나타나며 1-6주가 지난 후에 치료 없이도 저절로 좋아진다.
6개월 정도는 검사를 하더라도 이상이 나타나지 않는 잠복기에 접어들게 되고 이 시기가 지나면 감염자의 95%가 검사에서 항체 양성반응을 나타낸다. 이러한 항체가 나타나기 전이라도 특수한 검사를 통해서는 P24 항원이 나타나기도 하며 소수에서는 HIV의 유전물질이 혈액 내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이러한 잠복기에도 전염이 가능한지는 아직까지 확실치 않다.
급성감염의 시기가 지난 후에 아무런 증상도 없는 '무증상 시기'가 수년간 계속된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병은 계속 진행돼 면역기능이 계속 감소하고 타인에게 병을 전염시킬 수 있다. 결국 감염 말기에는 면역기능이 파괴됨에 따라 정상인에서는 충분히 방어가 되던 각종 바이러스, 진균, 기생충 및 원충, 세균 등이 감염을 일으키게 된다. 악성종양이 발생하기도 하며 말기에는 30%의 환자들이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치매상태로 된다.
대부분의 감염자는 HIV 감염 후 여러 가지 발병 양상을 보이는 에이즈환자(이 이전에는 HIV감염자로 부른다)로 이행돼 사망한다.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앞서 말한대로 대단히 다양하지만 성관계로 인한 감염자인 경우 평균 10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반된 임상 양상
두가지 질병 모두 증상만으로는 진단이 어렵고 혈청면역학적 방법으로 진단한다. 물론 에이즈의 경우 몇가지 약제들이 지난 수년간 개발됨으로서 감염을 억제시키고 병의 진행속도를 늦추어 생존기간을 다소 연장시키는 효과를 얻게 됐으나, 아직까지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예방을 위한 효과있는 백신도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소독된 주사기를 사용한다든가 환자의 체액과의 접촉을 피하는 것이 좋다는 정도가 고작이다. 물론 여기에 에이즈는 건전한 생활태도가 추가돼야 할 것이다.
에이즈가 처음 보고된 이후로 원인규명과 치료 백신개발에 전 인류가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감염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1994년 말 공식적으로 보고된 환자수는 약 1백만명, 보고 안된 환자까지 포함하면 4백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는 85년 처음 보고된 이래 10년이 지난 95년 2월 현재 4백21명의 HIV감염자가 확인됐다.
에볼라병과 에이즈는 서로 상반된 임상 양상을 보인다. 에볼라병은 급성 경과를 취해 많은 수의 환자가 짧은 시일 내에 사망했고, 짧은 잠복기를 가짐으로써 전세계적인 유행을 방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에이즈는 미국에서 처음 보고됐지만 최근에는 아프리카와 태국을 위시한 서남아시아에서 폭발적인 증가추세를 보이며 전세계적인 질병이 되고 있고, 대부분 수년간의 오랜 질병기간을 갖는다.
에볼라병이 에이즈처럼 세계적인 유행을 일으킬지, 예전처럼 자취를 감췄다가 갑자기 우리 곁에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 또한 에이즈가 과거의 천연두처럼 지구상에서 사라질지, 아니면 계속 창궐하여 더 많은 희생자를 낼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질병들에 대해 충분한 지식이 있다면 예방이 가능하므로, 지나친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