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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현장취재] ‘우리는 어디서 왔나 oh, ayy’ 새로운 금성 탐사 임무 ‘엔비젼’

▲NASA /JAXA /ISAS /DARTS /Damia Bouic /VR2Planets, Shutterstock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생명체 6대 원소인 탄소, 수소, 질소, 산소, 황, 그리고 인은 모두 별의 잔해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별이 지구에만 원소를 전달하지는 않았을 텐데, 생명체가 있는 행성을 찾는 일은 요원하다. 지구와 닮은 듯 다른 금성이 그 이유를 풀어줄 열쇠일까. 2024년 1월, 유럽우주국(ESA)은 생명 존재의 비밀을 풀 금성 탐사 임무를 확정 지었다. ‘엔비젼(EnVision)’ 프로젝트다.

 

1992년, 처녀자리에서 중성자별을 공전하는 두 개의 행성이 관측됐다. 최초의 외계행성 발견이었다. 외계행성은 태양이 아닌 다른 항성을 공전하는 행성을 뜻한다. 2024년 6월까지 확인된 외계행성은 무려 5678개에 달한다. 이처럼 외계행성의 발견이 끝없이 이어지자 사람들은 ‘지구와 같은 행성이 또 있을까?’ 기대하기 시작했다. 우주에 또 다른 생명체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기대는 어떻게 지구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다. 어떤 조건과 요소가 생명체를 존재하게 하는지 안다면, 해당 조건과 요소가 갖춰진 외계행성을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중심별과의 거리, 행성의 질량 그리고 크기라는 세 가지 요소를 답으로 제시했다. 중심별과의 거리는 행성의 표면 온도와, 질량과 크기는 행성의 중력 및 대기와 관계가 깊다. 중심별과의 거리가 적당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온도를 가진 행성이라면 생명체가 살 법하다. 중력이 너무 약해 대기가 없거나 희박한 행성은 낮과 밤의 기온 차가 너무 커 생명체가 살아남기 어렵다. 중력이 약하면 대기 중 수증기도 쉽게 흩어져 생명체를 기대할 수 없다. 또 질량이 큰 행성은 암석이나 금속이 아닌 가스형 행성인 경우가 많다. 목성이나 토성과 같이 고체의 표면이 없는 행성에는 생명체가 존재하기 어렵다. 

 

물론 지구와 크기, 질량, 중심별과의 거리가 비슷하다고 무조건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구 가까이에 있다. 바로 금성이다.

 

▲ESA / NASA / Paris Observatory / VR2Planets
엔비젼(EnVision)은 유럽우주국(ESA)의 두 번째 금성 탐사선이다. 2031년 발사돼 2034년에 금성 궤도에 안착할 예정이다. 엔비젼은 금성의 지표와 대기가 서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지를 탐색한다.

 

 

역대 금성 탐사선과 주요 관측
 
 
 

 

일란성 쌍둥이, 금성에 주목하는 이유

 

 

금성은 여러모로 지구와 닮았다. 우선 크기가 비슷하다. 금성의 평균 반지름은 6052km로 지구(평균 반지름 6371km)의 약 95%다. 지구의 적도 둘레는 4만 75km, 금성의 적도 둘레는 3만 8025km다. 질량도 비슷하다. 금성의 질량은 4.871024kg으로 지구의 질량(약 5.971024kg)의 81.6%에 해당한다. 금성(0.72AU)과 태양의 평균 거리는 지구(1AU)와 태양의 거리보다 더 가깝지만, 지구 다음에 있는 화성(약 1.52AU)과 비교하면 금성은 태양을 기준으로 지구와 가장 비슷한 위치의 행성이다.

 

과학자들은 초창기 금성에는 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구와 금성이 같은 원시 태양계 원반에서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금성은 두꺼운 이산화탄소와 황산 구름으로 덮여 있고, 이 기체의 강한 온실효과로 표면 온도가 약 467캜로 매우 높아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극한 환경이다.

 

금성이 지구와 왜 다른지 이해하는 것. 유럽우주국(ESA) 두 번째 금성 탐사선의 발사 목표가 지구와 금성간 차이를 밝혀내는 것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일란성 쌍둥이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례를 살펴보며 사람의 성장 과정에 유전자와 환경의 영향력을 비교하는 연구처럼 말이다.  

 

“과거에는 금성이 단순히 지구보다 태양과 가깝기 때문에 태양열을 많이 받아 물이 증발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었어요. 하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는 그런 두 특성과 금성의 현재 환경과는 무관하다고 말하죠.” 

 

7월 8일 대전에서 만난 이연주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 및 지구과학 연구단 행성대기 그룹 CI(수석연구원)는 금성이 지구와 다른 길을 걷게 된 데에는 더 복잡하고 확실한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금성의 긴 낮은 오히려 금성을 태양열로부터 보호한다. 금성의 하루는 지구의 117일이다. 이 때문에 금성의 낮은 지구 시간으로 ‘두 달’ 가량 지속된다. 오랜 시간 태양에 달궈지면 금성의 표면은 따뜻해지고 수증기가 증발해 비가 내린다. 비는 두꺼운 구름층을 만든다. 구름층은 태양열로부터 금성 지표면을 보호하는 우산 역할을 한다. 

 

2016년 발표된 시뮬레이션 연구도 태양과 금성의 거리와 자전 속도는 큰 문제가 아니란 주장에 힘을 실었다. 지구와 똑같은 행성을 만들어, 금성의 위치에 갖다 두고 금성처럼 천천히 자전을 시켜보니 오히려 오늘날 지구보다 더 시원한 평균 기온을 가진 행성이 됐던 것이다. doi: 10.1002/2016GL069790 과학자들은 금성의 환경이 변화한 복잡하고 확실한 이유를 찾고자 금성에 다시 시선을 고정했다.

 

핵부터 대기까지, 전수조사에 도전

 

 

엔비젼은 금성의 중심핵에서 대기 상층부까지 전체적인 고해상도 지도를 만드는 프로젝트다. 이를 위해 자외선, 적외선, 마이크로파, 고주파 등 다양한 전자기파 영역에서의 관측이 이뤄질 예정이다. ESA는 엔비젼을 통해 금성의 역사와 활동 그리고 기후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엔비젼이 여느 행성 탐사선과 다르게 금성의 지표나 대기 등 특정 주제에 집중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엔비젼 프로젝트의 공동연구자로 참여한 이 CI 는 “ESA가 이미 ‘비너스 익스프레스’를 통해 금성이 변화하는 행성임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비너스 익스프레스는 2005년 발사돼 2014년까지 금성을 탐사한 ESA의 첫 금성 탐사선이었다. 당시 비너스 익스프레스는 금성에 방점을 찍고 진행한 프로젝트가 아녔다. ESA는 러시아와 공동 개발한 유럽 최초의 화성 탐사선 ‘마스 익스프레스’를 2003년에 발사한 뒤, 예비로 만들어 둔 마스 익스프레스 탐사선의 운용을 두고 과학자들에게 연구 주제 제안을 요청했다. 당시 금성 연구자들이 금성 대기 연구를 주제로 한 연구를 제안했고 이를 ESA가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게 지구를 떠난 비너스 익스프레스는 금성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변화는 대기와 지표면에서 모두 발견됐다. 금성의 극궤도를 돌았던 비너스 익스프레스는 금성 남극에 이중 대기 소용돌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금성의 대기가 시속 360km로 행성 자체의 자전보다 훨씬 빠르게 도는 ‘초회전’ 현상을 자세히 관측하기도 했다. 탐사선은 금성의 대기뿐만 아니라 지표에서도 큰 발견을 해냈다. 화산과 같은 지질학적 활동 흔적을 9개나 찾아낸 것이다. doi: 10.1126/science.1186785 ‘핫스팟’은 금성이 지금도 활발히 지각 활동을 겪는 ‘젊은 행성’임을 알려줬다. 금성엔 기후 변동도 일어났다. 이 CI가 비너스 익스프레스 프로젝트의 금성 대기 연구에 참여할 당시 제1 저자로 국제학술지 ‘천문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금성 대기에 있는 두꺼운 황산 구름층이 태양 에너지를 얼마나 흡수하냐에 따라 금성의 태양빛 반사도가 달라지는데 이 변화가 대기의 온도를 변화시켜 대기의 대순환에 영향을 미쳤다. doi: 10.3847/1538-3881/ab3120

 

과학자들은 지표와 대기 간의 상호작용이 금성에서 관측되는 다양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 추측한다. 이 CI는 “행성 외부의 영향에 의해 변화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금성이 이런 변화를 보이는 동안 다른 태양계 행성에서 변화가 관찰된 것이 없었다”며 “이를 통해 금성 지표와 대기를 통합적으로 관측할 필요가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엔비젼으로 금성의 활화산이 어디에서 얼마나, 어떤 빈도로 화산 가스를 분출하는지를 알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활화산의 움직임과 함께 대기의 변화를 동시에 관측한다면, 금성의 지표와 대기가 서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지 알 수 있게 되겠죠.”

 

▲김태희
이연주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 및 지구과학 연구단 행성대기 그룹 CI는 엔비젼 프로젝트에 공동연구자로 참여한다.

 

ESA 금성 미션, 한국 연구자 참여 늘까

 

 

엔비젼은 2031년 발사돼 2034년 궤도에 안착할 예정이다. 지구에서 발사돼 금성으로 가는 데에 15개월이 걸리고, 도착한 뒤에는 궤도에 안착하기까지 또 15개월이 소요된다. 우주 탐사선이 행성의 대기를 이용해 속도를 줄이고 궤도에 안착하는 기술을 ‘에어로브레이킹’이라고 하는데, 엔비젼도 금성 대기와의 마찰을 이용해 운동 에너지를 줄인 뒤 원하는 궤도로 들어가게 된다.

 

에어로브레이킹은 탐사선에 연료를 넣을 공간과 무게를 아낄 수 있어 제한된 예산에서 더 많은 과학 장비를 탑재할 방법이다. 또한 탐사선이 대기의 밀도를 고도별로 실측할 기회이기도 하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마젤란이 최초로 에어로브레이킹을 활용해 금성궤도에 진입한 바 있다. 엔비젼은 비너스 익스프레스가 남긴 마지막 유산을 활용한 계획이다. 이 CI는 “ESA는 2014년 비너스 익스프레스가 마지막 임무를 끝낸 뒤, 일부러 우주선을 궤도에서 이탈시켜 금성 대기에서의 에어로브레이킹에 관한 자료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엔비젼은 10년 뒤 지구로 금성 대기 데이터를 보내올 것이다. 곧동연구자인 이 CI는 엔비젼이 관측한 데이터에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이 CI는 “엔비젼 탑재체 중 하나인 VenSpec-U의 책임 연구자인, 에마뉘엘 마크 프랑스 베르사유대 대기 우주 관측 연구소 교수와 10년 넘게 공동 연구를 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공동연구자는 함께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원과 학생을 협력자로 초대할 수 있다. 즉 엔비젼 데이터는 다른 국내 연구팀에도 거대 우주 임무에 참여할 기회가 될 수 있다. 

 

한편 이 CI는 2023년 6월부터 한국의 첫 금성 탐사 프로젝트 ‘클로브(CLOVE)’를 추진하고 있다. 2026년 중순, 지구 저궤도를 돌며 금성을 관찰할 큐브위성을 쏘아 보낼 예정이다. 엔비젼이 금성 가까이 다가가 대기 및 지표와 행성 내부의 고해상도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 목표라면, 클로브는 15년이란 긴 시간 동안 금성에 관한 시계열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 목표다. 

 

“엔비젼과 클로브를 이용해 금성의 서로 다른 영역을 비교할 수 있을 겁니다. 또 서로 보완할 수 있는 데이터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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