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술회사다.”
2017년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잺EO였던로이드 블랭크파인은 이렇게 선언했다. 세계 굴지의 투자은행 중 하나인 골드만삭스의 본질이 금융이 아닌 기술이라고 천명한 것이다. 은행업의 정체성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순간이다.
은행의 전통적인 역할은 자금이 필요한 개인이나 기업에 자금을 직접 공급하거나 공급을 중개하는 것이었다. 이런 자금 공급 업무는 오랫동안 축적된 체계적인 규정에 따라 숙련된 은행원이 수행해왔다. 은행들은 기업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해 더 많은 고객들에게 공급해야했다. 은행이 정기적으로 많은 은행원을 채용하고, 고객과의 접점이 되는 영업점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운영된 이유다.
편집자 주
은행, 사람에서 기술로 옮겨가다
은행의 규모가 커질수록 마케팅, 리스크 관리,회계 같은 운영 업무들이 늘고 이를 위한 인력들이 고용되면서, 은행 조직은 더 비대해졌다.은행이야말로 사람에 의존하는 회사의 전형이었다.
그런 은행이 스스로를 기술회사로 선언한 것이다.
사실 이 변화는 오래전에 시작됐다. IT 기술이 발전하면서 은행 업무와 여러 IT 기술의 결합도 급진전됐다. 한국의 시중 은행들도 예외가 아니다. 핵심 업무를 지원하는 코어뱅킹 시스템을 구축했으며,원격으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인터넷뱅킹 시스템과 모바일뱅킹 시스템도 이젠 보편적이다.오래전에 일상이 된 서비스들은 은행이 기술회사로 이행하는 걸음들이었던 셈이다.
은행의 내부 업무도 예외가 아니다. 마케팅이나 고객의 대출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등의 여신 심사,예금과 대출 등으로 구성되는 자본, 자금 흐름이 중심인 리스크 관리,회계와 같은 업무에도쟅T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은행원들이 단순 반복적으로 수행하던 업무들을 대신하는, 로봇 기술이 적용된 IT 시스템인 RPA(Robotics Process Automation)가 도입되기도 했다.

2023년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오픈AI와 손잡고 자사 직원의 업무를 지원하는 금융 비서 인공지능(Al)인 모건스탠리 어시스턴트(왼쪽)를 개발했다. 은행원의 내부 업무에 AI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 2018년 미국의 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가 출시한 AI 금융 비서 에리카는 5년간 3700만 명의 이용자를 유치해 은행 업계의 생성AI 도입에 불을 당겼다.
은행원 대신 대출 계약을 검토하는 AI
하지만 지금까지 은행에 적용된 IT 기술의 한계도 분명하다. 이 기술들은 인간 은행원의 효율적인 업무 수행을 지원하는 역할이었다.은행 업무와쟅T 기술의 접촉면은 확대돼왔지만, 고객 상담, 고객의 신용도에 대한 판단,은행이 노출된 리스크에 대한 분석이나 대응책 마련 같은 핵심 업무는 여전히 은행원만 담당했다.
이때 생성AI가 등장했다. 생성AI가 은행에 본격 적용되자 인간 은행원을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 대체하고 있다. 미국의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지난 2018년인공지능(AI) 기반의 가상 금융 비서‘에리카’를 출시해 2023년월까지만 명의 이용자를 유치했다. 에리카에선 채팅으로 잔고 조회나 계좌 이체 등의 은행 업무를 볼 수 있고,금융 거래, 자산 변동 등에 대한 알림을 주며,고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각종 금융 상담도 제공한다.
이 성공에 자극받은 다른 은행들도 생성AI기반의 금융 서비스를 출시 중이다.2023년미국의웰스파고는구글의 생성AI를 접목한 금융 비서‘파고’를,영국의 냇웨스트는 IBM의 생성AI와 데이터 플랫폼을 활용한 ‘코라’를 출시했다.세계 최대의 투자은행인 미국의 모건스탠리는 오픈AI의챗GPT-4에 기반해 은행 내부 직원을 위한 금융 비서잸I인 모건스탠리 어시스턴트를 개발했다.
은행의 생성AI 금융 비서 서비스는 아직 초기인만큼 금융 거래 조회, 금융 상품에 대한 상담이 중심이다. 생성AI의 발전 속도와 금융권의 활용 추세를 볼 때,은행원의 핵심 업무였던 고객 상담과 마케팅에서 생성AI의 역할은 계속 확대될 것이다.
한편미국의 대형 은행인쟆P모건체이스는잸I 기반의 여신 거래 플랫폼인잺OiN을 출시했다. 대출을 거래할 때, 그 계약서 조항의 적정성을 AI가 자동 검토하는 서비스다. COiN은 기존에 체결된 은행 대출 계약서들의 항목, 문구 등을 학습한 AI가 탑재됐다. JP모건체이스는잺OiN의 도입으로 그동안 숙련된 은행원만 수행하던 작업을잸I가 대체함으로써,연간약 36만시간의 노동력이 절감됐다고 평가했다.고객 상담이나 마케팅 같은 업무뿐만 아니라 리스크 관리나 회계와 같은 은행 내부의 관리 업무에서도 생성AI가 본격적으로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한국 은행의 미래 경쟁력, 생성AI
이런 세계 금융계의 추세와 비교할 때 다소 늦은 감은 있으나, 현재 한국의 시중 은행들도 생성AI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생성AI 기반으로 고객과의 금융 상품 상담이 가능한잸I 금융 비서 서비스를 개발 중인 은행이 있으며,음성봇이나 챗봇처럼 고객과 직접 질문과 답변이 오갈 수 있는, 생성AI를 이용한 지능형 콜센터를 추진 중인 은행도 있다.
이 은행들은 그동안 은행원이 수행한 단순 업무를 효율화하는 생성AI나, 생성AI를 적용한 은행 리스크 관리, 대출 심사를 적극적으로 시도 중이다. 또한 다수의 한국 시중 은행은 생성AI 금융 서비스의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데이터 정비와 인프라 확충, 조직과 운영 방식의 재편을 서두르는 중이다. 금융 분야에 특화된, 자체적인 거대 언어 모델(LLM)*을 개발 중인 은행도 있다.
현재까지는 은행에서 제공하는 생성AI금융 서비스에 적지 않은 한계가 있다.은행 업무는 그 특성상단 0.1%의 오류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른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현상은 다른 분야보다 생성AI의 은행 서비스에서 가장 크고 민감한 장애물이다. 생성AI가 신용도가 양호한 기업을 부실한 기업으로 잘못 판정하거나, 지급 결제 정보를 고객에게 잘못 제공할 경우에 은행의 평판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고객들의 중요한 개인 정보가 포함된 은행 데이터는 철저한 법적 규제하에서 보호와 통제를 받는다. 그런 까닭에 생성AI 금융 서비스를 개발할 때 기계학습에 활용하는 데도 원천적 제약이 있다. 은행업의 공공적 특성상,잸I가 생성한 결과에 대한 윤리적 책임이 다른 업종보다 클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2019년 미국의 애플사가 AI를 적용해 애플카드를 발급하면서 동일한 신용도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신용카드 한도를 여성보다 10배 이상 높게 설정해, AI의 금융 차별 이슈가 부상하기도 했다.
사람보다 AI가 익숙할 세대의 은행은?
이런 한계는 있지만은행에서 생성AI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다.기본적으로 은행업이란 숫자로 표현된 돈을 다루는 산업이다. 따라서 숫자, 계산이 근간인 AI 기술 적용이 특히 용이한 산업이다.또한 AI에 멀티모달(Multi Modal)기술까지 더해지면서 음성과 이미지,텍스트 데이터를 결합시켜 고객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며 긴밀히 소통할 수 있게 됐다.
AI와 IT에 익숙한쟋Z 세대의 등장도 은행 업무에서 생성AI의 확산에 긍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인쟅DC에 따르면, 세계 생성AI시장의 규모는 2023년에 약 19조 원에서 2027년엔약조 원으로년간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생성AI 기술 향상에 필요한 막대한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면 현재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한 새로운잸I기술들이 개발되고, AI 기반의 혁신적 은행 서비스도 더 많이 출시될 것이다. 생성AI의 할루시네이션 문제도 AI 모델이 사전에 학습한 데이터 외에 현재 추가된 자료까지 검색해 답변을 보강하는 검색 증강 생성(RAG톀etrieval-Augmented Generation) 등의 기술로 대응하고 있으며, 생성AI의 윤리성 문제도 은행마다 AI 윤리강령을 제정해 예방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은행원의 역할은 은행의잸I가 최적의 성능을 유지하도록 운영하는 방향으로 조정될 것이다.생성AI시대은행의 핵심 경쟁력은 AI다.은행은 골드만삭스의 선언처럼 기술회사로 변모할 수밖에 없다. 은행이 기술회사로 바뀌면 경쟁 상대도 바뀔 것이다. 새로운 경쟁 상대는 막강한잸I기술력을 가진 기술회사다. AI기술 대응에 소홀한 은행은 경쟁력을 잃고 도태되며,생성AI와 금융을 융합한쟅T회사들이 은행업을 주도할 수도 있다.
기술회사가 된 은행은 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더 큰 혜택을 제공할 것이다.은행 소비자의 금융 수요를 정확히 파악해 초개인화된 금융 서비스가 가능해진다.은행원의 여러 역할을 생성AI가 대신하면서 은행 서비스의 원가가 낮아지고 고객의 금융 비용도 절감될 것이다.이런 금융은 24시간일 시공간 제한 없는 상담과 서비스도 가능하다.그 변화의 중심, 미래의 은행에 생성AI가 있다.
김문수
용어 설명
*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 정확하지 않거나 사실이 아닌 조작된 정보를 생성하는, 생성AI특유의 오류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