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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SF소설] 소음의 깊이

 

이 콘텐츠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재원으로 운영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성과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저소득·소외계층의 복지 증진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곳엔 천억 개의 방으로 이뤄진 회색 집이 있다. 방이 많고 구조가 복잡해서 아무도 이 집의 모든 방을 가보지 못했다. 천억 개의 방은 이동도 쉽지 않다. 방과 방 사이를 이동하려면 전기버스가 움직일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 집은 사각형이 아니고 구형이며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집은 살기가 쉽진 않지만 여러 사람이 세 들어 있다. 이 집의 주인은 나다. 하지만 주인인 나는 살아본 적이 없다. 왜냐면 이 집이 내 머릿속에 있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엔 나도 모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머릿속 안쪽 소리가 잘 들리는 아늑한 방에 들어앉아 내 목소리를 라디오처럼 들으며 10년 넘게 살아가고 있다. 

 

아침부터 머릿속 사람들이 시끄럽다. 그들은 내 주위에 사람이 없을 때는 참새들처럼 시끄럽게 짹짹거리지만,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마치 불빛에 놀란 바퀴벌레들처럼 빠르게 사라지거나, 그 자리에 꼼짝 않고 내가 하는 말을 경청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이 가장 떠들 때는 내가 오롯이 혼자일 때다. 잠에서 깼을 때와 잠자리에 들 때. 

머릿속 사람들은 바미, 톰, 다니, 모모. 그들은 지금 토론 중이다. 토론 주제는 ‘패스트푸드점 알바 계속 나가야 하나?’다. 어제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손님이 두고 간 지갑이 없어졌다. 손님 주장으론 지갑 안에 현금 30만 원이 있었다. 지갑은 CCTV 사각지대에 있었다. 점장은 나를 의심하는 것 같았다. 그 시간대에는 다섯 명의 점원이 더 있었지만 나는 일한 지 한 달 밖에 안 됐으니까. 그의 거듭되는 추궁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 

벽 시계는 아침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보험 일을 하는 엄마와 자동차 판매원인 아빠는 보통 토요일에 격주로 출근한다. 오늘도 둘 중 한 명이 일찍 출근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아침부터 티격태격하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오늘은 조용하기만 하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나는 보통 9시 전에 일하러 나갔다. 그러니 아침 볕을 만끽하는 이 시간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낯설었다. 이불 속에서 발을 꼼지락거리며 모처럼 생긴 휴일에 갈 만한 곳을 생각했다. 쉬지 않고 일해왔으니 이렇게 하루 쉬게 된 게 차라리 잘된 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두 시간이 지났을 때에도 이불 속이었다. 계속 어제 일을 생각했다. ‘왜 나를 의심하냐고 항의를 했어야 했어.’ 그러다 돌연 화가 치밀었다. 기분 전환을 위해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었지만 아르바이트를 관두니 딱히 갈 곳도 없었다. 하필 토요일이라 놀이공원, 극장, 공원 어디나 사람이 많을 터였다. ‘차라리 그냥 일하러 갈 걸 그랬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이런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머릿속 사람들 때문에 더욱 엉망이다. 그들의 토론이 격화되고 있었다. “이렇게 말도 없이 관두면 점장은 쟤를 범인으로 확신할 거야.” 톰이 외쳤다. “열심히 일한 애를 도둑으로 몰잖아. 거길 왜 다시 가?” 바미가 맞받아친다. 

머릿속 그들이 한데 모인 공간이 금세 아고라광장처럼 시끄러워졌다. 이마를 짚어보니 미열이 났다. 나는 고개를 빠르게 좌우로 흔들며 열을 식히려 노력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휴대폰을 꺼내 카톡 창을 이리저리 살피며 연락할 친구를 찾았다. 금세 포기했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그만, 하고 소리쳐도 그들의 목소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머릿속 톰이 오늘따라 말이 많다. 그는 사람들에게 말할 때 자신을 톰이라고 말하곤 한다.

“톰은 이해할 수 없어. 무단결근은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이야!” 흥분한 그의 목소리가 종소리의 여운처럼 오랫동안 울렸다. 톰의 말에 바미가 대꾸했다. 

“신뢰? 대뜸 직원 의심부터 하는 사장한테 그런 걸 왜 지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바미의 실제 이름은 모른다. 그저 목소리가 폭탄(BOMB) 같아서 내가 붙여준 별명이다. Bomb 더하기 Mommy, 바미(Bombmmy.) 바미는 좀 신경질적이고 거칠지만 대체로 내 편이다.

“맞아, 그런 곳에서 무슨 책임감을 가져야 해?” 모모의 목소리다. 그가 말할 때면 늘 껌 씹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톰과 바미, 그들의 딸인 다니는 가족이지만, 모모는 아니다. 모모는 옆방 주민이지만 거의 매일 이곳을 찾는다. 

셋의 대화가 격해지자 듣고 있던 다니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다니는 가족의 토론을 듣다가 한숨이나 신음을 뱉으며 기분을 표현하곤 한다. 다니도 내가 붙인 이름이다.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다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머릿속 사람들은 평소엔 다니에게 별 관심이 없지만 다니가 사라지면 주변 방을 찾아다니며 찾곤 한다. 

“딸! 딸은 또 어디를 쏘다니는 거야?” 톰이 말했다. 

“그맘땐 여기가 답답하게 느껴지니 방황하는 게 당연하지.” 바미가 항변했다. 

나는 다니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가만히 집중하면 머릿속 가족들이 내는 소음 속에서도 다니의 한숨소리나 머릿속 무수한 방으로 이뤄진 미로를 찾아 헤매다 지쳐 헐떡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방문 소리가 들리더니 현실 엄마가 들어왔다. 머릿속 사람들이 다시 조용해졌다. 

“너 아르바이트 안 가?” 엄마는 누워있는 나를 보며 입을 씰쭉거렸다. 

“아르바이트 관뒀어.” 내가 말했다. 

“관두면?” 

“당분간 쉴 거야.”

“너까지 관두면 어떡해? 엄마 이달 실적도 요즘 형편없는데.” 

나는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가 재차 말했다. “야, 너도 이제 스무 살이 넘었는데 엄마 용돈 챙겨줄 생각도 해야 하는 거 아니니?” “엄마는 나한테 용돈 챙겨줬어?” 나는 엄마에게 대꾸했다. 

우리의 대화는 사이 좋지 않은 모녀 관계를 드러내는 연극 대본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 봐라? 엄마는 너를 태어나게 해줬잖아.” 나는 나쁜 딸이 마땅히 해야 할 대사를 쳤다. 

“내가 엄마 딸이 되길 원했을 것 같아? 엄마 아빠는 늘 싸움만 해왔잖아.” 엄마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더 듣고 싶지 않아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장에게 가기로 했다.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소장을 못 만난 지 한 달이 넘었다. 매주 주말이면 만나러 가곤 했는데 말이다. 소장은 11년 전 내가 열 살일 때 처음 만났다. 그날 나는 영등포역 근처 어린이도서관에 있다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역사 안에서 사람들이 한곳에 몰려 있는 걸 보았다. 호기심에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걸어갔다. 군중들은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 사람은 고급스러운 남색 정장을 위아래로 입고, 검정 서류 가방을 들고, 은테 안경을 쓰고, 지적인 느낌이 나는 칼단발을 한 30대 여성이었다. 그녀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여성의 목소리는 연극 배우처럼 선명하고 우렁찼다. 영등포역의 난잡한 소음을 뚫을 정도였다.  

“거긴 어때요? 圪 아, 다행이네요. 걱정했거든요.” 

여성은 양손에 종이컵을 들고 있었다. 하나는 자신의 입술에, 다른 하나는 금귀걸이를 한 왼쪽 귀에 대고 있었다. 

“이곳에서 고생 많았지요? 이제는 편히 쉬세요.” 

종이컵 통화는 10분 넘게 이어졌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역 정문 쪽에서 찬바람이 들어와 종이컵이 흔들리자 여성은 ‘통화상태가 안 좋아요’ 하고 말했다. 잠시 무슨 퍼포먼스인가 싶어 멈추었던 사람들은 다시 가던 길을 갔다. 몇 명은 피식, 입꼬리 올라간 웃음을 지으며 지나갔다. 어떤 아저씨는 둘째 손가락을 귓가 근처에 대며 원을 그렸다. 비웃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 여성이 통화를 끝냈을 때 나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누구랑 통화했어요?” 여성은 열 살 어린이였던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았다. 

“여기서 죽은 노숙인 아저씨.”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은 사람 목소리가 들려요?” 

“응.” 

 

와,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땐 죽음이란 걸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을 때였다. 

“왜? 너도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거지? 난 그 사람이 죽은 걸 알아.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너, 달팽이관에서 소리를 뇌로 전달하는 건 알지?” 

얼마 전 어린이 백과사전에서 본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가 음파, 즉 소리파동이라는 건 알아?” 여성은 저학년 수준으로 설명하려 애썼다. 또 끄덕였다. 

“똑똑하네. 인간은 가청 음파 영역만 들을 수 있어. 들을 수 있는 소리파동 영역만 들을 수 있지. 죽은 사람은 산 사람에게 2만 Hz가 넘는 초고역대 비가청 음파로 말을 걸거든. 보통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음파 영역대지. 종이컵 전화기는 실과 종이컵이 매질이 되어서 인간이 평소 들을 수 없는 비가청 음파를 잡아줘. 자, 내가 미친 것 같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하지만 종이컵 전화기를 자기 입과 귀에 대고 통화했잖아요. 죽은 사람 입이 아니라.” 

내 의심하는 말투에 그녀가 태연히 답했다. 

“그건 말이야. 죽은 사람이 내 왼쪽 귀에다 대고 말을 걸기 때문이야.” 

나는 그녀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거짓말 같지 않았다. 정말로 이 사람이 죽은 사람의 말이 들리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내 비밀을 털어 놓아도 될 것 같았다. “저기.” 그녀가 나를 무심히 보았다. 

“나도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요.” 

“그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요.” 그러자 나를 흥미롭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음, 너도 나와 비슷하구나. 우리 같은 사람들을 초감각자라고 해.” 

그녀는 은은한 광이 도는 가죽 핸드백을 열어 내게 명함을 주었다. ‘새소음연구소 소장 조명화’라고 쓰여 있었다. 

“새를 연구하세요?” 

“아니, 새소음은 새로운 소음을 연구한다는 뜻이야. 나는 우리가 듣는 소음에서 깊이가 완전히 다른 소음을 찾거든. 가령 망자의 소리나, 너무 작은 존재의 소리나.” 

“그럼 소장도 머릿속 사람들 소리가 들려요?” 

그러자 소장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너, 머릿속 소리가 들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장의 입이 벌어졌다. 

“너는 나보다 감각이 더 깊구나.”

 

 

그들의 목소리를 감지한 건 소장을 만나기 1년 전이었다. 그날도 나의 현실 엄마, 아빠는 싸우고 있었다. 

“야, 지금 밥이나 처먹고 있을 때냐?” 

엄마가 아빠에게 소리친다. 곧 아빠가 이렇게 대답한다. “이게 어디서 반말이야?” 싸움이 시작될 징조였다. 나는 아빠의 대답을 듣자마자 식탁에서 나와 마당 뒤편을 서성대며 숨을 곳을 찾았다. 그들이 싸울 때는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곧 전화기나 그릇, 의자 등이 공중회전을 할 터였다. 한땐 부엌 김치냉장고 안에 숨어들기도 했고, 안방의 옷장 속에, 창고의 버려진 이불장 뒤에 숨기도 했다. 이번엔 더 완벽한 곳을 찾고 싶었다. 

그때 우리 집은 서울 외곽 시골의 주택이었다. 낡은 주택이지만 마당이 있었다. 마당에 엄마가 김장 때 쓰던 내 키만 한 고무대야가 뒤집어져 있는 게 보였다. 그 속으로 들어갔다. 몸을 숙이고 고무대야 속을 깊은 바닷속에 뛰어들듯 첨벙 빠져들면서 이번에는 한동안 엄마, 아빠가 나를 찾지 못하리라 확신했다. 다행히 고무대야 속에는 개미만 한 구멍이 있어 공기도 잘 통했다. 고무대야의 어둠 속에 있으니 그들의 싸움 소리도 아득한 기적소리처럼 편안하게 들렸다. 몸이 이완되고 눈이 스르르 감겼다. 이대로 잠이 들면 깊은 잠에 빠질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입을 크게 벌리며 하품을 했다. 그때 어딘가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저 연극놀이는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나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목소리는 내 귓가에다 대고 하는 말소리처럼 생생하게 들렸다. 고무대야 밖에 누군가가 하는 말이라면 이렇게 생생하게 들릴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무대야 속은 분명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내 몸이 들어가기에 알맞은 크기였다. 그 순간. 

“아직 멀었어. 이제 겨우 부인이 1막의 마지막 대사를 할 차례야. 이 년은 또 어디로 사라진 거야? 하고. 그리고 난 뒤에 2막이 시작되잖아.” 이번엔 여자 목소리였다.

“이제 2막이 시작되겠네. 윤아 없어진 것을 주제로 내용이 전개 되겠지 뭐. 저 놀이도 이제 지겨워!” 

윤아는 내 이름이다. 중년 여자의 말처럼 이어서 엄마, 아빠는 내가 사라진 것을 핑계로 싸움 2막을 시작했다. 다투는 소리 사이사이에 여자의 하품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늘 같은 연극을 보던 관객처럼 지루한 목소리였다. 이번엔 남자가 말했다. 

“그런데 윤아는 왜 항상 숨으려 드는 거야?”

여자가 두 번째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말을 받았다. 

“이제 아홉 살이잖아. 저게 어른들 놀이인지 알기나 하겠어? 우리 딸도 우리가 떠들면 어디론가 사라지잖아.”

그러자 남자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아, 우리 딸은 또 어디에서 헤매고 있는 거야?”

혹시 누군가가 근처에 있는 것일까 싶어 구멍을 통해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마루에서 싸우고 있는 엄마, 아빠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귀를 막아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생생하게 들렸다. 더 강하게 귀를 틀어막았다. 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귓전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들이 대화하는 공간은 머릿속이었다. 

그 뒤로 그들은 나가지 않았다. 바미, 톰, 다니, 그리고 옆방 모모까지. 그들은 내 머릿속에서 살아간다.

 

 

내 이야기를 들은 소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벤치 쪽으로 걸어갔다. 나도 따라 걸었다. 고급 실크 소재 자켓 단추 하나를 풀더니 벤치에 앉았다. 나도 옆에 앉았다.

“그건 고무대야 때문이야. 고무는 소음방지매트처럼 소리를 흡수하고 진동을 차단하지. 그래서 외부 목소리를 줄이고, 머릿속에 원래 살던 사람들 목소리에 집중하게 만든 거야.”

“하지만 그 이후엔 고무대야에 들어가지 않았는데요?”

“감각이란 게 그래. 한 번 새로운 감각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여. 그때부터 안 보이던 게 보이고, 안 들리던 게 들려. 너 맛있는 크림빵을 한 번 먹고 나면 다음부턴 맛없는 빵은 못 먹게 되는 식의 경험이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장이 이어 말했다. 

“새로운 감각이 열렸기 때문이야. 감각을 다섯 가지로만 생각하는 평범한 인간들의 사고는 버려.”

“그런데 왜 나한테만 들리는 거예요?” “얘기했잖아. 우리는 초감각자라고. 남들보다 감각이 발달한 거야.” 

내가 남들보다 감각이 발달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고등학교 자율학습 시간에 다른 아이들이 떠들 때, 나는 복도 끝에서 선생님의 발걸음을 느끼고 “선생님 오신다!” 하고 소리치곤 했다. 그러면 30초 뒤에 선생님이 나타났다. 아이들은 놀랐다. 요즘도 동네에서 우연히 동창들을 만나면 그들은 나를 “어벤져스!” 하고 부른다. 내 성은 어씨다.

 

영등포역에 도착해 소장을 찾았다. 주위를 계속 돌아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역을 빠져나와 뒤편 공장지대와 카페가 뒤섞인 골목을 걸었다. 그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 점장이었다. 잠시 고민하다 전화를 받았다. 점장은 내가 무단결근한 이유를 물었다. 그냥 나가기 싫어서 가지 않았다고 답했다. 내 목소리가 죄인처럼 작아지는 게 불만스러웠다.

“내가 너를 얼마나 딸처럼 아꼈는데.” 점장의 말에 마음이 약간 흔들렸다. 그는 첫날부터 “딸처럼”, “가족같이”란 말을 자주 했다. 내일도 안 나올 거냐고 묻는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개학 시기라 아르바이트생 구하기 힘들다는 말에 잠깐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다. 그때 점장이 달라진 말투로 말했다. 

“만일 내일도 안 나오면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다. 네가 안 나오는 것이 더 의심스럽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가족이라며, 딸이라며. 

전방에 공영주차장 주변에서 통화하는 소장 모습이 보였다. 소장은 나를 보고 눈빛으로 인사를 한 후 계속 통화에 열중했다. 그의 종이컵은 11년 전처럼 평범했지만 종이컵을 잇는 실은 금빛으로 반짝거렸다. 금이 죽은 사람의 소리 전도율을 더 높인다는 게 소장의 주장이었다. ‘영등포역 종이컵 통화녀’는 이제 꽤 유명한 존재가 되었다. 주말마다 영등포역에 오는 소장을 촬영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유튜버도 있었다. 그래서 요즘 소장은 영등포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통화하곤 했다. 소장은 쌀쌀한 날씨에도 30분 간이나 통화에 열중했다. 통화가 끝날 때 다가갔다.

“오늘은 누구와 통화했어요?”

“응, 영등포역에서 지난해 죽은 노숙인 언니.” 소장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10년 넘게 길거리 생활을 했어. 그러다 지난 겨울에 잠을 자다 얼어 죽었대. 언니가 고생했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통화가 길어졌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소장은 언제부터 죽은 사람들 목소리가 들렸어요?”

“네가 머릿속 사람들 소리가 들렸던 때랑 비슷해. 그런데 난 저절로 들린 게 아니라 노력해서 들리는 거야. 세상엔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존재가 있어. 보통 사람들이 발생시키는 소음과는 파동의 깊이가 달라서 잘 들리지 않지. 그러니 그들은 친구도 없어. 나 같은 소리 연구자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줘야 해.”

“소장도 원래 친구 없잖아요.” 소장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있잖아. 너.” 소장의 말에 난 슬며시 미소지었다.

 

소장을 만난 후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내가 앉은 지하철 좌석 양쪽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종일 조용하던 머릿속 사람들이 다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도 그 토론 중이다. 톰은 내가 내일은 패스트푸드점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내리치면서 흥분했다. 뇌가 망치질을 당하는 것처럼 꽝꽝 울렸다. 나는 뇌출혈이 올까 걱정스러웠다. 혹시 톰이 뇌혈관을 터트릴까 싶어 조마조마했다. 이번에는 바미 목소리가 들렸다.

“거길 왜 가? 신고하면 신고하라지! 딸 같다고 이야기할 때는 언제고?”

그녀가 펄쩍 뛰는 것인지 시신경이 따끔거렸다. 목소리가 점점 머리를 울렸다. 성량 좋은 성악가 같다. 나는 두 손을 관자놀이 쪽에 가져가며 마사지를 했다. 갑자기 모모가 소리쳤다.

“당신들 딸이 사라졌어!”

동시에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잠시 후 톰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딸 사라진 게 하루 이틀이야?”

바미가 말했다. “걱정 마. 걔가 한창 가출하고 싶을 때라 그래!” 

나는 다니 숨소리가 최근 24시간 동안은 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새벽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고요한 밤이 되자 머릿속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져서 더욱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우리 딸 정말 안 오네.”

바미의 목소리다. 좀 있으니 톰이 쿵쾅대며 뛰는 소리가 들렸다. 모모가 껌을 씹으며 돌아다니는 소리도 들렸다. 가족들이 혈관 사이를 넘나들며 부산하게 움직이는 듯 순식간에 머리가 지끈지끈거렸다. 톰이 난데없이 말했다. 

“도대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왜 이리 복잡해!”

내 머릿속 구조를 원망하는 걸까. 얼마 뒤에는 딸이 어디로 갔는지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동안 나에게만 관심이 많았다. 그들이 내가 아닌 딸을 주제로 의견을 모으는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잠깐 잠이 들었을까. 눈을 떠보니 새벽이다. 여전히 머릿속 사람들이 뛰어다녔다. 다니를 아직 찾지 못했나 보다. 이 시간까지 딸이 어디로 사라졌을까 싶어 나도 걱정이 들었다. 누군가 지쳤는지 어딘가에 푹 주저앉았다. 어딘가에서 출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혈액들이 마구 춤을 추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가슴이 옥죄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모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이 미로를 벗어나 바깥으로 나가는 데 성공한 거 아닐까?”

“설마.” 톰이 대꾸했다. 

나는 다니의 소리를 듣기 위해 집중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들어보니 뇌의 대뇌피질(겉질) 부위에서 신음이 들렸다. 소리 울림이 달라져서 그곳이 뇌 안쪽 깊은 곳이 아니라 대뇌피질 부위란 걸 알 수 있었다. 더 집중해서 뇌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다니 숨소리가 맞았다! 저기까지 어떻게 간 걸까 궁금했다. 대뇌피질까지 닿으려면 미로처럼 펼쳐진 수많은 방들 사이에서 길을 찾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듭했을 것이다. 또한 방 이동을 시켜줄 전기버스를 타기 위해 오래 기다렸을 것이다. 딸은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대뇌피질에서 숨 고르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때 골목에서부터 누군가가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실 아빠였다. 아빠의 목소리가 잠잠해질 무렵 거실에서 현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을 열어준 엄마가 아빠에게 소리쳤다.

“조용히 해, 지금이 몇 신줄 알아?” 아빠가 양복을 벗어던지며 괴성을 질렀다. “야, 남편한테 하는 첫 마디가 ‘조용히 해’냐?” 다시 그들은 연극놀이를 했다. 내 인생에 반복되었던 장면이 이어진다. 나는 이 연극의 장기관객으로 살아오다 어느덧 스무살이 넘어 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거실에서 엄마 아빠의 싸움이 절정에 치달았을 때 조용히 침대에서 나와 여행용 가방을 꺼냈다. 그 속에 내 옷을 주섬주섬 담았다. 그리고 거실이 조용해질 때를 기다려 집에서 나왔다. 

첫차를 기다리며 버스정류소 대기 공간에 들어갔다. 유리로 둘러싸인 공간엔 아무도 없었다. 어디로 갈지 막막했다. 머릿속 사람들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나 때문에 한숨을 쉬는 게 아니었다. 다니 때문이었다. 그들이 무언가를 후회하고 있었지만 이미 늦은 듯했다. 나는 대뇌피질에 있던 딸의 숨소리를 한 번 더 들으려고 숨죽였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차들이 오갔지만 차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멀리서 막 떠오른 해가 보였다. 햇살을 보니 아이가 막 태어났을 때 몸을 휘감고 있는 붉은 빛이 떠올랐다. 태양의 햇귀가 세상에 퍼져나갔다. 내가 있는 정류소 대기공간에도 서서히 환한 빛이 들어찼다. 문득 매일 다시 뜨는 태양처럼 살겠다 결심했다. 그때 무슨 소리를 들었다.

“아!” 

처음엔 비명처럼 들렸다. 누가 외치는 소리인지 이내 알 수 있었다. 다니였다. 다니는 어딘가를 향해 점프하고 있었다. 비명 소리의 깊이가 조금씩 달라져서 위치 이동 중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주 먼 곳을 향해 멀리뛰기를 하는 것 같았다. 다음에 “아!”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들어본 다니 소리 중에 가장 큰 소리였다. 그 순간. 

내 머리를 탈출해 내달리는 다니의 모습을 본 듯했다. 작디 작은 무언가가 내게서 빠져나와 내달렸다. 그 존재는 단발머리였고 연두색 여름 운동복을 위아래로 입고 있었다. 그것은 환하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며 힘껏 소리쳤다.

“아아아아아아아!”

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다니가 내게서 멀어지는 것은 분명했다. 함성이 작아져갔다. 그때 다가오는 버스가 보였다. 소음 가득한 거리로 나오면서 다니처럼 소리를 내보았다.

“아!” 

그리고 조금 더 큰 소리를 냈다. 

“아아.”  

더 큰 소리로. 

“아아아아아아아!”  

다니는 내게서 멀어져갔다. 더 이상 내 머릿속에 살지 않았다. 다니의 앞날을 기원했다. 걸어 걸어 그렇게 찾아헤매던 너의 길을 찾기를, 수많은 전기버스를 타고 흘러 흘러 마침내 너만의 집에 가닿기를. 

나는 집에서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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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김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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