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년 마약에 관한 모든 질문’. 책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금기된 언어로 성역을 건드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이 더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게 된 지금, 마약 문제 해결의 열쇠가 청소년에 있음을 알리기 위해 올해 초 책을 펴낸 김희준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대표변호사를 4월 1일 서울 서초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Q.20여 년간 검사로서 마약 수사의 최전선에서 활약해 왔다. 마약 범죄의 트렌드가 20년 전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마약 거래 방식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과거엔 마약 사범들끼리 직접 만나 마약을 거래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터넷이나 SNS를 통한 비대면 거래가 활발하다. 일반인들도 쉽게 마약을 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2023년 4월 있었던 중학생 필로폰 투약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피고인이 텔레그램을 통해 필로폰을 구매하고 수령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40분이었다. 당시 피고인은 소위 말하는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을 거래했다. 마약 유통자가 텔레그램을 통해 주문받은 다음, 마약을 숨겨둔 장소의 ‘좌표’를 알려주면 구매자가 해당 장소로 가서 마약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수사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거래 현장을 급습해 마약 유통자와 구매자를 한 번에 잡고, 이들을 통해 수사를 확대해 나가는 과거 수사 방식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약 범죄를 저지르는 연령층이 낮아지는 현상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마약 사범의 주요 연령층이 40대였다. 지금은 20대로 넘어온 상황이다. 또, 20년 전 과거에 비해 10대 마약사범의 수가 10배 이상 늘어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내게 변호사 상담을 받으러 오는 어린 마약사범도 많다. 이제 마약은 아주 특수한 계층에 한정된 범죄가 아니다. 누구라도 연루될 수 있다.
Q.2023년 마약사범의 수가 2만 2400명, 역대 최다였다는 이야길 들었다. 현재 한국의 마약 문제는 얼마나 심각한가.
미국 필라델피아 켄싱턴의 ‘좀비 거리’ 영상이 2023년 화제가 됐다. 불법 유통된 펜타닐에 중독된 사람들이 거리에 떠도는 상황이다. 현재 한국의 마약 문제 상황이 10년 전 미국과 같다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나도 공감한다. 한국은 그간 ‘마약 청정국’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 대체로 마약 중독자의 수가 인구 10만 명 당 20명 미만일 때 마약 청정국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한국은 이미 2015년에 이 수치를 돌파했다. 현재 한국은 골든 타임의 끝자락에 와 있다. 현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나중엔 수습이 불가능할 것이다.
Q.1월 발간한 첫 책 ‘청소년 마약에 관한 모든 질문’의 주요 대상 연령층은 청소년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마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따라야 할 3단계가 있다고 본다. 예방과 단속, 그리고 처벌이다. 가장 중요한 건 예방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마약에 손을 대지 않는 게 중요하다. 나도 처음엔 마약을 범죄로만 생각했었다. 엄하게 처벌해야 하는 나쁜 범죄. 그러나 재범, 삼범, 사범을 다시 만나며 ‘왜 다시 올까?’ 의문이 생겼다. 책도 읽고, 의학 전문가의 이야기도 들어보며 마약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약 문제가 처벌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마약은 범죄와 질병의 영역 모두에 속한다. 수사하는 과정에서도 질병으로서의 마약에 대한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마약은 뇌가 도파민을 분출하게 만든다. 도파민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며 쾌감을 느끼는 식이다. 하지만 마약에 중독될수록 마약을 복용했을 때 분출되는 도파민의 양이 줄어든다. 이렇게 ‘약효’가 떨어지면 마약중독자는 급격한 우울감을 느끼며 사는 게 고통스러워진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계속 마약에 손을 대는 식이다. 그래서 실제 마약 사범들은 “마약이 이렇게 무섭다는 걸 누군가 가르쳐줬다면 마약을 투약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한다.
현재 한국엔 마약 예방과 관련한 체계적인 대책이 미비하다. 특히나 청소년들에게 마약의 위험성을 알리는 마약 예방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청소년이 볼 수 있는 마약 예방 교과서를 만든 것이다. 책을 쓰며 중고등학교 교사들에게 마약과 관련해 궁금했던 점을 모았다. 마약범죄에 대한 형량이나 마약의 종류 등 예상치도 못했던 질문이 많았다.
Q.변호사로, 한편으로는 마약 전문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검사 재직 시절에는 ‘물뽕(GHB)’과 ‘프로포폴’을 마약류로 등재하고,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으로 알려진 조봉행 사건 등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이렇게 마약 관련 수사를 많이 하다 보니 마약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매스컴에서도 마약 문제와 관련해 나에게 물어오는 일이 잦았다. 그런 일이 마약 문제를 더욱 깊이 공부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거창한 목표는 없다. 기회가 닿는 대로 마약의 위험성을 알리려고 한다. 최근 신종 마약이 늘어나고 있어서 마약의 ‘메뉴’가 점차 다양해지는 상황이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한국의 마약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최근엔 마약 예방 교육의 중요성에 관해 홍보하면서 정부 차원에서도 지속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책이 출판되고 나서, 중고등학교 교사들에게서 내게 마약 문제에 대해 물어보는 연락이 많이 온다. 현장에서도 마약 교육의 필요성이 커짐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마약은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이웃의 이야기, 가족의 이야기일 수 있으니 독자들이 관련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