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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세상에서 가장 큰 티라노, 스코티 조립 현장에 가다

2024년은 공룡 연구가 시작된 지 2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해 국립과천과학관은 4월 24일부터 티라노사우루스 ‘스코티(Scotty)’의 화석 골격 복제품을 중앙홀에 전시한다. 길이 12m에 무게 8.87t(톤). 캐나다에서 발견된 세계 최대 크기의 티라노사우루스 화석이 대한민국 땅에서 그 위용을 되찾기까지, 골격 조립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크레인으로 공룡 뼈를 조립하다

 

“천천히 올려, 올려! 세워!”

 

4월 5일 오전 11시, 국립과천과학관 중앙홀 2층. 티라노사우루스 ‘스코티(Scotty)’ 골격 레플리카(화석 복제품) 조립 작업이 한창이었다. 아직은 꼬리도, 앞다리도, 머리도 없이 서 있는 다리와 골반뼈의 모습이 굉장히 휑했다. 곧 박물관과 과학관의 전시물을 전문으로 설치하는 회사인 ‘에스시전시문화’의 직원들이 오더니, 꼬리뼈를 소형 크레인으로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꼬리뼈가 공중으로 올라가자, 다른 쪽에서 기다리던 직원들이 사다리에 올라가 꼬리뼈를 붙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여 골반뼈의 연결 부위와 결합시켰다.

 

주변에는 나무 상자와 사다리, 스티로폼을 문 채로 조립을 기다리는 머리뼈 등이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었다. 언제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티라노사우루스의 위용을 되찾을까. 김선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은 “조립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오후에는 조립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짜 공룡의 뼈로 만들어진 진품 화석 골격은 보통 뼈 모양으로 만든 금속 틀에 화석을 고정시키는 방식으로 전시된다. 철사로 전체적인 형태를 만든 후, 여기에 화석을 얹는 것이다. 뼈와 뼈 사이를 결합시키는 연골과 인대, 근육이 없는 상태에서 뼈만으로 온전한 자세를 갖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화석은 소실된 부분이나 부러진 부분이 있어, 이 부분을 연결해서 보여주려면 골격을 받쳐줄 금속 틀이 필요하다.

 

진품 화석은 전시되는 경우가 드물다. 매우 귀중한 데다 부서지기 쉬워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스코티 진품 화석을 가지고 있는 캐나다 서스캐처원의 ‘티렉스 디스커버리 센터’에도 전시는 정교한 복제품인 레플리카로 대체했을 정도다. 이러한 화석 레플리카는 화석 복제 전문 업체에서 화석을 소유한 박물관에 허락을 받고 로열티를 지불하는 식으로 만들어진다. 국립과천과학관에 들어온 스코티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스코티 레플리카는 뼈 내부에 철근으로 이뤄진 연결 부위를 가지고 있어 조립이 한결 간편하다. 먼저 다리와 골반부터 세워 자리를 잡은 다음 차례로 척추와 꼬리, 앞다리와 머리, 갈비뼈를 이어 붙여준다. 레플리카라고 해도 부위당 뼈의 무게가 무겁다. 두개골만 100kg 가량 나가기 때문에 소형 크레인을 사용해 들어올려야 한다. 크레인을 사용해 거대한 블록을 조립하는 과정 같달까.

“꼬리뼈 완성! 내려가!”

 

골반뼈에 척추, 꼬리뼈가 순서대로 붙으니 서서히 공룡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조각이 6800만 년 전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4월 5일 오후, 전시물 전문 설치 업체 에스시전시문화의 직원들이 스코티의 두개골을 부착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충격을 받아 파손되지 않도록 스코티의 입 사이에 스티로폼을 물려 놓았다.

 

가장 큰 티라노사우루스가 발견되기까지

 

1991년 8월 여름, 캐나다 서스캐처원주 남서부의 프렌치맨 강 계곡.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던 로버트 게르하르트는 왕립 서스캐처원 박물관 고생물학자팀과 프렌치맨 강 계곡을 탐사하다가 지층에서 튀어나온 범상치 않은 화석을 발견했다. 화석은 땅을 파면 팔수록 더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고, 결국은 티라노사우루스의 이빨과 꼬리뼈로 밝혀졌다. 탐사팀은 새로운 티라노사우루스 화석의 발견을 축하하며 스카치 위스키를 마셨다. 이 공룡 화석의 애칭이 ‘스코티(Scotty)’가 된 연유다.

 

발견과 별개로 스코티의 발굴 작업은 한참이 걸렸다. 철분이 함유된 단단한 사암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위치도 외진 곳이라, 뼈가 포함된 돌덩어리들은 가까운 목장에서 빌려온 말을 이용해 꺼내야 했다. 발굴 작업에만 5년이 걸렸고 발굴한 암석에서 화석이 드러나도록 돌덩어리를 깎아내는 데 또 한 세월이 흘렀다. 총 20년에 걸친 지난한 작업 끝에, 스코티는 2011년에야 온몸을 드러냈다. 화석 보존율이 약 65%로, 여러 티라노사우루스 화석 표본 중에서도 보존이 잘된 축에 속한다. 

 

2023년 국립과천과학관에서 근무하면서 스코티 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박진영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스코티는 지금까지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 중 가장 크다”고 강조했다. 2020년 4월 국제학술지 ‘더 아나토미컬 레코드’에 실린 스코티의 신상명세를 보면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전체 길이가 12m로 추정된다. 이는 시내버스보다 조금 더 큰 크기다. 무게는 약 8.87t(톤)이다. 코끼리 두 마리를 합쳐놓은 무게다. doi: 10.1002/ar.24118 

 

발견된 스코티 화석에는 생전에 부상을 입었던 흔적이 네 곳이나 발견됐다. 꼬리뼈가 훼손돼 있었고, 아랫턱에는 치아 감염으로 추정되는 부위가 발견됐다. 갈비뼈에는 부러졌다 다시 붙은 흔적이 있었다. 연구자들은 스코티가 갈비뼈 골절이 치유되는 중에 죽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스코티는 과연 어떤 마지막을 겪었을까. 백악기 생태계의 정점에서 군림하던 포식자에게도 삶은 순탄치 않았던 것이다.

 

▲Aimé Rutot(W)
1882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이구아노돈 골격을 조립하는 인부들. 머리를 들고 꼬리를 바닥에 끄는 ‘캥거루’ 자세로 복원했다.

 

공룡의 자세에 문제가 생기다

 

오후 2시. 조립 과정 중에 문제가 생겼다. 스코티의 두개골을 조립하자, 두개골의 무게로 티라노사우루스의 상체가 처지면서 머리가 너무 낮은 위치까지 내려온 것이다. 성인이 손을 뻗으면 두개골에 닿을 만큼 낮았다. 이런 경우 관람에 방해가 될뿐만 아니라, 관람객이 만지거나 매달리면서 안전사고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에스시전시문화 직원들과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들 사이에 치열한 논의가 오고갔다. “화석 밑에 단을 만들어 받치면 어떨까요?” 그러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공룡 조립 작업을 진행하는 크레인이 천장에 부딪칠 우려가 있다. “사람들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두개골에 펜스를 치면요?” 그러면 관람객들의 동선이 펜스에 가로막혀 불편해진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렇게 연구관들의 머리를 아프게 만든 스코티의 자세 또한 200년이 넘는 연구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200년 전인 1824년, 영국의 목사였던 윌리엄 버클랜드는 채석장에서 발견한 거대한 파충류의 화석에 처음으로 ‘메갈로사우루스’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이후 공룡 연구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초기 공룡학자들은 허리를 곧추 세우고 꼬리를 질질 끄는 방식으로 뼈를 복원했다. 공룡은 몸집만 크고 둔한 도마뱀이라는 당대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벨기에 왕립자연사박물관에는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된 공룡 이구아노돈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 같은 자세는 후대 연구를 통해 극적으로 바뀌었다. 국립과천과학관에 전시될 스코티의 자세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지면에 평행하게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다. 공룡이 머리를 들고 있는 게 아니라, 꼬리를 균형추처럼 사용해서 움직였다는 연구의 결과물이다. 그 덕에 훨씬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공룡의 자세를 볼 수 있게 됐다. 스코티의 머리가 낮아진 것도 그 때문이지만.

 

화석 설치 현장에서는 격론 끝에 화석 받침대의 앞부분에 추가 받침대를 괴어 공룡의 머리가 있는 부분의 위치를 살짝 높이기로 결정했다. 조립한 두개골을 빼서 무게를 덜어내고, 받침대를 괸 다음 다시 두개골을 조립해 안정성과 바뀐 높이를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다. 그렇게 스코티는 머리를 자연스럽게 들어올릴 수 있었다. 머리 문제를 해결하느라 미처 조립을 마치지 못한 갈비뼈와 앞다리는 다음날 오전에 마무리하기로 했다. 완성된 모습은 어떨까. 조립이 끝난 뒤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

 

갈수록 비싸지는 공룡 화석들

 

티라노사우루스는 공룡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슈퍼스타다.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육식공룡이라는 점, 영화를 비롯한 많은 매체에서 다뤄졌다는 점 등 여러 인기 비결이 있지만, 지금까지 가장 많은 화석이 발견된 공룡이라는 이유도 있다.

 

2023년 4월, 에바 그리에벨러 독일 마인츠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대 연구원은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았던 티라노사우루스가 약 17억 마리라고 추산한 연구를 발표했다. doi: 10.1111/pala.12648 티라노사우루스가 서식한 지리적 범위, 평균 수명, 생존율, 개체 밀도 등을 추측해 계산한 결과다.

 

그중 실제로 화석으로 발굴된 티라노사우루스는 약 40마리다(무척 적어 보이지만, 실제로 절반 분량의 화석도 제대로 발견되지 않는 공룡이 대부분이다). 이중에는 스코티만큼 유명한 화석도 많다. 미국 시카고 필드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수(Sue)’, 아름다운 검은 색깔과 자세로 유명한 캐나다 로열티렐박물관의 ‘블랙 뷰티(Black Beauty)’ 등.

 

박 연구원은 화석이 많을수록 더 깊은 연구가 가능하다고 했다. “화석 표본이 하나만 있으면 겨우 공룡의 형태 정도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티라노사우루스처럼 꽤 많은 표본이 모이면, 생존률이나 생장 곡선도 알 수 있어요. 생장 곡선을 현생 동물들과 비교하면 공룡이 파충류와 비슷한지, 조류와 비슷한지도 추측할 수 있죠.” 티라노사우루스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물론, 공룡의 진화적 위치까지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연구 자원인 공룡 화석의 가격이 최근 치솟고 있다. 2020년, 티라노사우루스 ‘스탠(Stan)’의 골격이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3180만 달러, 한국 돈 약 430억 원에 낙찰됐다. 화석 판매 사상 최고의 판매액이었다. 비슷한 시기, 다른 종의 공룡 화석도 가격이 폭등했다. 애호와 수집의 대상으로, 잠재적 투자 상품으로 공룡 화석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박 연구원은 화석 가격의 폭등이 공룡 연구에 부정적 영향을 크게 미칠 것이라고 걱정했다. “화석이 비싸지고 사유재산이 되면 연구자들이 화석에 접근하기 힘들어집니다. 더 심각한 일은 화석이 비싸지면서 왜곡이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 다른 개체의 화석을 섞어서 하나로 만들어버리거나, 불법 도굴한 화석을 판매하는 거죠. 불법 도굴의 경우 어느 지층에서 발굴했는지 명확한 자료가 남지 않는 경우가 많아,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도 떨어집니다.” 화석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이다.

 
조립이 완료된 스코티의 모습. 국립과천과학관에서 8월 25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스코티, 마침내 위용을 드러내다

 

4월 9일 저녁 9시. 모든 관람객이 빠져나간 국립과천과학관을 다시 찾았다. 적막한 어둠 속에서 티라노사우루스가 위용을 드러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모든 뼈가 제자리를 찾은 모습이다. 홀로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공룡을 지켜본다.

 

과학관에 전시된 스코티는 6800만 년 전에 죽은 공룡이지만, 인간이 되살린 존재다. 20년에 걸쳐 화석을 파내고 연구한 학자들, 화석을 복제하고 설치한 인부들, 화석을 보고 감동하는 관람객들이 없었다면 스코티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원되지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딱딱한 사암 지층에 묻혀있을 수도, 혹은 허리를 캥거루처럼 부자연스럽게 꼿꼿이 세운 자세로 복원됐을 수도 있다.

 

모두의 노력과 관심으로 완성된 스코티는 공룡이란 존재 자체에 경외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팔뚝만한 이빨, 거대한 머리, 우람하고 튼튼한 다리. 뼈대만 남아있음에도 그 무시무시함은 피부에 와닿을만큼 가까이 느껴졌다. 스코티와 동시대를 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라진 존재에 관한 두려움과 경외로,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게 느껴졌다.

 

6800만 년의 시간을 뚫고, 공룡은 여전히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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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창욱 기자
  • 사진

    남윤중
  • 디자인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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