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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탐독] 모든 물질의 출발점에 다가서는 입자 생성 매커니즘

 

우리 인류는 무엇이고, 어디서 왔으며, 또한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프랑스의 탈인상주의 화가인 폴 고갱도 제목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인류의 기원과 본질을 묻는 이 질문 자체가 오래 전부터 그 답을 찾고 있는 우리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철학적이며 과학적인 이 고민의 궁극적인 답은 뭘까요?

 

우주와 인류의 출발점은 어떤 상태였을까

 

현재 우리는 우주배경복사나 천체에서 관측되는 적색편이 등을 근거로 우주가 여전히 팽창 중이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에서 우주가 하나의 점에서 시작했을 것이라는 빅뱅 이론이 나왔죠. 그러면 빅뱅 직후의 초기 우주는 어떤 상태였을까요?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를 한 점으로 응축시키면 그 점은 온도와 밀도가 매우 높은 상태일 것입니다. 이 고온 고밀도 상태에서 물질은 기본 단위로 분해되기 시작합니다. 물질은 분자에서 원자로,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양성자와 중성자는 다시 쿼크와 글루온으로 분해돼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되죠. 쿼크-글루온 플라스마란, 이 고온 고압 환경에서 쿼크와 글루온이 입자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상태입니다. 핵물리학자들은 빅뱅 직후의 초기 우주는 쿼크-글루온 플라스마였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죠.

 

현대 물리학의 근간인 표준모형은 쿼크와 글루온을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기본 입자로 간주합니다. 표준모형은 위(u), 아래(d) 등의 쿼크 6개에 전자, 뮤온 등 렙톤 6개와 광자, W보손, Z보손, 글루온 등 매개 입자 4개, 그리고 힉스 입자로 우주 내의 모든 물질과, 중력을 제외한 모든 상호작용을 설명합니다.

충돌기와 검출기 커플, LHC와 ALICE

 

입자 가속기로 납의 원자핵 같은 무거운 입자를 높은 에너지로 충돌시키면, 초기 우주의 상태로 예측되는 쿼크-글루온 플라스마를 실험실에서 직접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는 빅뱅의 축소 모형과 같습니다. 유럽입자핵물리연구소(CERN)가 거대강입자충돌기(LHC)로 진행하는 앨리스(ALICE) 실험의 목표는 이 작은 빅뱅에서 어떻게 다양한 입자가 생성되고 상호작용하는지 연구함으로써, 우주의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죠.

 

LHC는 지하 100m에 설치된 지름 27km의 원형 입자 가속기로, 수소 원자핵인 양성자를 빛의 99.999999% 속도까지 가속할 수 있습니다. 두 진공관에서 각각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으로 입자를 가속하고 특정된 5개 지점에서 충돌시키죠. 높은 에너지로 가속된 원자핵은 드브로이 관계에 의해 아주 짧은 파장의 파동적 성질을 가져서 원자핵 단위로 실험 환경을 볼 수 있고, 에너지-질량의 등가 원리에 의해 새 입자를 생성하기도 합니다.

 

입자 충돌에서 생성된 이 새로운 입자들을 보려면 입자 검출에 특화된 카메라가 필요합니다. 그중 하나가 앨리스 검출기죠. 너비 16m, 높이 16m, 길이 26m의 이 대형 검출기는 LHC의 5개 입자 충돌 지점 중 하나에 설치돼있습니다. 앨리스는 충돌에서 생성된 입자 수로 이벤트를 구분하는 검출기와 입자의 궤적, 종류, 운동량을 파악할 수 있는 세부 검출기 18개로 구성됩니다.

 

검출기의 입자 검출 원리는 눈이 물체를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체에서 반사된 빛이 망막에 들어오면, 망막은 이 빛을 전기신호로 변환해 뇌로 전달하고, 뇌가 이 신호를 처리해 눈앞의 물체를 보죠. 즉 빛과 망막의 상호작용 덕에 물체를 봅니다. 입자 검출기는 입자와 검출기의 상호작용을 이용해 입자들의 종류와 궤적을 구분합니다. 입자 충돌에서 새로 생성된 입자들이 검출기를 통과할 때 에너지를 남기고, 이 에너지가 전기 신호로 변환돼 데이터로 저장됩니다. 검출기가 새 입자를 ‘보는’ 것이죠.

 

입자 충돌 과정에 맵시를 더하는 쿼크

 

양성자나 납 원자핵의 충돌로, 양성자나 중성자에 있는 위나 아래 쿼크가 아닌 기묘 쿼크(s)나 더 무거운 맵시(c), 바닥(b) 쿼크가 생성되기도 합니다. 위, 아래, 기묘 쿼크처럼 가벼운 쿼크는 입자 충돌 후에도 쿼크나 글루온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생성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거운 쿼크들은 고에너지 입자 충돌로만 생성되죠. 따라서 생성 단계가 명확한 맵시나 바닥 쿼크를 포함한 입자는 입자의 충돌과 생성, 진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겪는 까닭에 전체 실험 과정과 상호작용을 파악하는 데 유용합니다.

 

이번 논문은 맵시 쿼크를 포함한 중입자 중 하나인 크사이씨(Ξ,+)의 생성 과정과 수량, 붕괴 채널들 간 비율을 설명합니다. 크사이씨는 맵시와 기묘 쿼크, 그리고 위(Ξ) 또는 아래(Ξ) 쿼크로 이뤄지며, 수명이 매우 짧아 약 10-13초 만에 다른 입자들로 붕괴합니다. 앨리스 검출기는 이 중입자의 붕괴에서 생성된 양성자, 파이온, 전자처럼 수명이 길고 안정한 입자들을 포착합니다.

 

크사이씨의 붕괴 채널은 여러 개인데, 이번 논문은 크사이(Ξ-)와 파이온으로 붕괴하는 채널과, 크사이와 전자, 그리고 중성미자로 붕괴하는 채널에 집중합니다. 이 중 앞의 채널은 크사이와 파이온을 결합해 크사이씨로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후자는 중성미자가 검출기와 상호작용을 하지 않아서 검출되지 않기 때문에, 슈퍼컴퓨팅으로 구성한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에 기반한 중성미자의 운동량을 기술해서 크사이씨를 재구성합니다.

그 모든 시작의 단서, 입자 생성 매커니즘

 

양성자-양성자 충돌은 납-납 충돌 같은 고온 고밀도 환경을 만들지 못합니다. 그래서 쿼크-글루온 플라스마가 생성되지 않죠. 이 플라스마 내에선 맵시 쿼크가 매우 복잡한 상호작용을 겪습니다. 그래서 입자 생성 과정은 양성자-양성자 충돌처럼 상호작용이 단순해지는 더 가벼운 충돌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양성자-양성자의 강입자 충돌에서 맵시 쿼크를 포함한 입자의 생성량은 양성자의 내부 구조, 이 충돌에서 생성된 맵시 쿼크의 양, 그리고 입자의 생성 과정에 의존합니다. 강입자 충돌에서 생성된 입자들 간의 비율은 그 입자 생성 과정을 파악하는 데 유용한 측정값인데요. 이 입자 생성 과정만 입자들의 생성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생성비로 생성 과정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 논문은 위와 맵시 두 쿼크로 이뤄진 D0 입자와 크사이씨 중입자의 생성 비율을 기존의 여러 이론 계산과 비교했고, 이번 실험이 기존 이론들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기존엔 맵시 쿼크가 붕괴하며 발생한 쿼크들이 조합돼 맵시 쿼크를 포함한 중입자가 생성된다고 가정했던 까닭입니다.

 

하지만 이번 논문의 실험 결과를 가장 잘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은 양성자-양성자 충돌에서 맵시 쿼크가 주변의 다른 쿼크들과 결합해 입자가 생성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실험은 이처럼 입자 생성 메커니즘에 대한 새로운 제약 조건을 제시해, 입자 생성 매커니즘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이번 논문의 실험 결과를 설명하는 이론이 정립되면, 물질의 기원과 우주의 진화 과정에 대한 오랜 질문을 해결할 단서가 될 것입니다.

*필자소개

서진주. 인하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물리학과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 중이다. 앨리스 실험에서 검출기 시뮬레이션과 맵시 쿼크를 포함한 입자들을 연구하고 있다. seo@physi.uni-heidelberg.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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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서진주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물리학과 박사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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