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유전자 다이어트’라는 걸 해봤습니다. 세상에 그런 다이어트도 있느냐고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잠깐 설명하자면, 개인의 유전체를 분석해서 유전적 특성을 반영한 최적의 체중 관리 방법을 실행하는 다이어트입니다. 우리 몸이 기계라면 유전체는 기계가 어떻게 작동할지 결정하는 설명서니까, 설명서 어딘가엔 몸을 날씬하게 만들 방법이 적혀 있을 거라 기대하는 거죠. 당시 ‘제노플랜’이라는 벤처기업이 출시한 분석 키트로 제 침 속 DNA를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비만위험도-높음’ ‘요요 확률-높음’ ‘식탐 경향-높음’저는 그냥 태어날 때부터 다이어트에 불리한 몸이었습니다. 제 유전자를 다른 사람들의 유전자와 비교해보니, 특히 비만이 된 사람들의 유전자와 유사했습니다. 저와 같은 유전자 조건에서는 ‘고단백질 식이(!)와 지구력 운동(?!)’이 효과적이라는 처방이 내려졌습니다.
두 달 뒤, 체중은 단 100g도 줄지 않았습니다. 교과서적인 처방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은 제 탓도 있지만, 애초에 유전자 분석은 확률적이라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저의 경우 지구력 운동을 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다이어트 효과가 크지만, 반드시 효과가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확률을 높이는 근본적인 방법은 나의 유전체와 비교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유전체 데이터베이스를 최대한 많이, 정확하게 확보하는 겁니다.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로 예산을 3조 원이나 들여 20년 전 인간 유전체 전체를 해독하고도 아직까지 유전체 분석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잊을 만 하면 들려오는 ‘인간 유전체 분석 성공’ 소식에, 오늘날의 인간 유전체 지도는 완성_진짜완성_최종_찐최종 버전이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옵니다.
인간 유전체 지도가 언제쯤 100%가 될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건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 이후 20년, 지금까지 쌓은 연구로 이미 생물학과 의학의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는 점입니다. 건강과 질병, 생활습관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를 식별하고, 이것이 환경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알아내 병을 일찍 진단하고 예방하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인간 유전체 연구는 사회도 변화시킬 겁니다. 집단이 어떤 정체성을 띠는지, 개인의 특성이 얼마나 일반적인지 유전체로 가늠하는 사회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땐 MBTI를 묻듯이 서로 유전체를 묻게 될 지 모르죠. 그 전에 유전체 연구와 활용에 대한 윤리적, 법적 고민이 이뤄져야 합니다.
놀랍게도 과학자들은 이미 20년 전에 유전체 연구의 막강한 영향력을 예상했습니다.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를 이끈 연구진이 2003년 4월 네이처에 발표한 ‘유전체 연구의 미래에 대한 비전’은 오늘날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953년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이후부터 쭉, 유전체 연구는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흘러온 거죠.
올해의 마지막 과학동아 특집은 이런 과학의 큰 흐름을 보여드리고자 했습니다. 미래는 본디 불확실하지만 과학의 큰 흐름이 내년을 준비하고, 10년 뒤를 대비하는 여러분에게 영감을 드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