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좀 더 높았으면 좋겠는데.”
“쓸쓸한 감정을 좀 더 살려주세요!”
10월 8일, 서울 이문동의 한 주택형 스튜디오. 연출을 맡은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김민주 학생의 디렉션에 따라 제작진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2022년 SF스토리 공모전 수상작 ‘나의 채티에게’가 소설에서 영화로 재탄생하는 현장이었습니다.
이번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스토리의 원작이 동아사이언스가 주최한 2022년 SF스토리 공모전 수상작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부문 최우수상을 차지한 이무강 작가의 소설 ‘나의 채티에게’가 5분짜리 숏필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영화 ‘나의 채티에게’를 비롯해 작년 수상작 7개를 각색한 숏필름 7편은 오는 11월 4일 열리는 2023년 SF스토리 공모전 시상식에서 최초로 상영될 예정입니다.
5분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A라는 떡밥을 풀었으면 5분 안에 내용이 정리가 돼야해요. 이것 저것 다 이야기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기 2주 전, 기자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서 영화 제작 계획과 스토리 라인에 관해 발표하는 수업을 참관했습니다. SF스토리 공모전 수상작 가운데 어떤 작품을 골라 어떻게 연출할지 이야기하는 자리였죠. 학생들은 각자 제작, 연출, 미술, 사운드, 촬영을 맡아 7개 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첫 조의 발표가 끝나고 ‘영화가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감동한 기자는 박수를 쳤습니다. 사실 한국 최고의 예체능 인재들이 모인 한예종의 영화 제작 수업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감개무량했습니다.
하지만 박광춘 한예종 영상원 교수는 “너무 길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다”며 “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빈틈없는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느냐가 제작의 핵심”이라고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13개 작품 각색, 연말 유튜브 통해 공개
각 팀은 수업 시간에 받은 조언에 따라 제작 방향과 시놉시스 등을 수정했습니다. ‘작당모의’ 팀이 고른 작품은 이무강 청소년 작가의 ‘나의 채티에게’였습니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안락사 서비스인 드림 서비스가 가능해진 2036년, 한국에 안락사를 기다리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안락사 서비스를 기다리며 방을 청소하다 배터리가 나간 노트북을 발견합니다. 그 안에서 과거 자신의 유일한 친구라고 여겼던 인공지능(AI) 채팅 서비스인 채티를 다시 발견합니다(소설의 내용이 궁금하신 독자는 과학동아 2023년 2월호를 참고하세요!).
연출을 맡은 김민주 학생은 “저예산 영화인 ‘서치’를 매우 인상 깊게 봤다”며 “공간의 다채로움 없이도 흥미진진함을 끌어내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어떤 점을 집중적으로 표현했느냐는 질문엔 “원작의 내용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며 “‘나를 아끼고 더 사랑하자’라는 메시지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시놉시스를 여러 번 수정해 고생을 좀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촬영 장소는 극 중 주인공이 살고 있는 가정집을 묘사한 주택형 스튜디오였습니다. 촬영장의 분위기는 예상보다는 조용했습니다. 빠듯한 시간 안에 모든 촬영을 마쳐야 했기 때문에 1분이라도 허투루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방 한 켠에서는 더 또렷한 소리 녹음을 위해 후시 녹음(촬영 후 화면에 맞춰 필요한 소리를 따로 녹음하는 일)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사운드를 맡은 전인석 학생은 “감정선을 표현하는 게 중요해서 출연진의 숨소리까지 최대한 담으려 노력했다”고 말했습니다.
후시 녹음이 끝나자 다음 컷을 위해 학생들은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제작을 맡은 김수현 학생은 출연진의 일정과 계획된 시간에 맞게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했고, 미술을 맡은 이혜주 학생은 촬영에 어울리도록 방을 빠르게 정리했습니다.
방 한 켠에는 기하학적인 모양의 조명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 조명이 바로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채티’였죠. 혜주 학생은 “기존의 작품에서 채티는 채팅앱이라 실물로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한참을 고민하고 찾은 후에 미래적이면서 따뜻한 느낌을 내는 소품을 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촬영 담당은 콘티를 확인하며 그에 맞는 장면을 담기 위해 어디에 카메라를 설치해야 할지, 적당한 위치를 바쁘게 찾아 다녔습니다. 촬영을 담당한 박채원 학생은 “과거의 주인공은 밝고 희망이 있다면 현재의 주인공은 안락사를 원하는 쓸쓸한 사람이라는 점을 조명을 통해 소개하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과거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장면엔 붉은 빛이 감돌게 해 따뜻한 느낌을, 현재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장면엔 푸른 빛을 많이 사용해 차가운 느낌을 냈다”고 덧붙였죠.
그동안 연출 담당은 출연진과 시놉시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다음 장면에서 필요한 감정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학생들이 프로답게 영화를 만드는 현장을 보며 소설이 아닌 영화 ‘나의 채티에게’는 어떻게 완성될지 기대가 커졌습니다.
한예종 영화과 학생들과 멀티미디어 영상과 학생들은 ‘나의 채티에게’ 외에도 ‘사후세계를 결정하는 약’ ‘로테이션 라이프’ 등 총 13개 작품을 제작합니다. 주말 밤낮 없이 열정을 불살라 만든 작품들은 가장 먼저 11월 4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2023년 SF스토리 공모전 시상식에서 공개될 예정입니다. 시상식 초대권은 과학동아 공식 네이버 카페에서 추첨을 통해 배부되고요.
하지만 시간과 공간상의 이유로 오지 못하신다고 해도 너무 아쉬워는 마세요! 12월 중엔 유튜브를 통해 모든 작품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SF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떤 시너지를 만들지,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