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으, 셔!”
화성의 정조 과학기지에서 생활한 지 6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대원들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업무의 특성 때문에 나는 상추와 케일, 가지 외에도 다양한 작물을 길러왔다. 의외로 인기가 좋았던 것은 적소렐이었다. 소렐은 한국에서는 주로 수영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곤 하는데, 들이나 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다. 적소렐은 그중에서도 잎맥이 붉은 색으로 물드는 특이한 품종으로, 옥살산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레몬과 같은 신맛을 낸다.
신맛을 싫어하는 나는 적소렐이 인기가 좋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고기를 인쇄하는 3차원(3D) 프린터의 단백질 카트리지가 떨어져 고기에 지방 함량이 높아진 것이다. 느끼함을 견디지 못한 대원들의 불만이 속출했고, 뼛속부터 한국인인 대원들에게 적소렐은 진가를 발휘했다. 느끼한 고깃덩어리에 상큼한 신맛이 더해지자 대원들의 불만이 눈 녹듯 사그라졌다. 하지만 대원들은 계속해서 그런 고기를 먹을 수는 없다고 투덜대며 대원 교체와 함께 이뤄지는 보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화성살이 6개월 차, 보급선(과 새 대원)이 왔다!
전체 인원의 절반이 교체되자 정조 과학기지의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손재주가 좋았지만 지질학자와 트러블이 잦아 짜증이 가득했던 엔지니어 B는 금속공학을 전공한 열혈 청년과 교체됐다. 새 엔지니어 D는 화성의 토양에 풍부한 산화철을 자원으로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임무를 가지고 왔다. 그는 다른 대원들이 자신을 철을 다루는 대장장이라고 여기길 바랐다.
나처럼 임무 기간이 6개월 더 남아있는 대원들은 우락부락한 엔지니어보다는 그가 양손에 가득 들고 온 단백질 카트리지에 더 열광했다. 그 시점부터 인기가 폭락한 적소렐의 처리는 나에게 고문과도 같다. 시큼한 풀을 질겅질겅 씹으며 풀 한 포기도 없는 화성의 붉은 들판을 바라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저기에선 어떻게 풀을 키우나
내가 지구의 화성연구소에 요청한 종자 꾸러미는 새 엔지니어가 가져온 짐 더미 구석에서 겨우 발견됐다. 지구에서 새로 보급받은 종자는 먹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다. 나는 화성에 어울리는 보기 좋은 꽃을 피워 볼 계획이다. 유기물이 전혀 없는 화성의 토양에 유기물을 투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식물을 한 번 길러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논이나 밭에서 농사가 끝나면 그 흙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토양 속에는 자랐던 식물의 뿌리가 잔뜩 남아있다. 논에는 탈곡하고 남은 볏짚이, 밭에는 잘라낸 작물의 등걸 부분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도 많다. 이런 식물의 잔해와 토양을 함께 갈아엎으면 식물의 잔해가 토양 유기물로 변한다. 미생물이 열심히 뜯어 분해한 유기물은 다음에 재배하는 작물의 양분이 된다.
식물 잔해를 토양에 갈아 넣으면 토양의 물리적인 특성이 좋아지는 장점도 있다. 공극이 커지는 것이다. 공극은 토양 내부에 있는 기체나 액체가 들어있는 공간이다. 지렁이가 많이 사는 토양에서 농사가 잘된다는 이야기도 이 공극과 관련이 있다. 지렁이가 배설한 흙은 동글동글한 입자라, 토양 내부에 공극을 키우기 유리하다. 공극이 큰 토양은 물을 많이 함유할 수 있다. 물을 많이 함유할 수 있는 토양은 식물에 수분을 공급하기 좋은 환경이다. 또 공극을 통해 기체가 토양 내부로 공급되기도 한다. 식물 뿌리가 원활하게 호흡할 수 있는 이점이 생긴다.
척박한 땅을 개척하는 노란 희망의 꽃
지구에서 자연 상태의 척박한 토양이 활엽수로 가득한 비옥한 숲이 되기까지는 약 100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와이섬처럼 화산 활동으로 생긴 새 땅을 떠올려 보자. 이 땅은 유기물이 없어 척박하다. 유기물이 없는 토양에 가장 먼저 정착하는 생물은 지의류다. 지의류나 이끼는 미량의 양분만으로도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지의류나 이끼가 핀 땅은 풀과 관목이 우거진 초원이 된다. 그리고 침엽수가 자라는 숲이 된다. 최종 단계에서는 활엽수로 가득한 숲이 되는데,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생물 종이 안정적으로 변하는 현상을 생태적 천이라고 부른다.
모든 지역이 활엽수 숲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고 때에 따라 초원이나 침엽수 숲에서 멈추기도 한다. 만약 그 지역의 기후 조건과 식물의 구성이 맞아떨어져 장기간 안정된 상태가 된다면 이 상태를 극상이라고 부른다. 내 임무는 화성의 땅에서 식물을 키워내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1000년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화성의 땅이 ‘자연스럽게’ 극상을 이루길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다. 이 긴 기간을 급속도로 단축시켜야 했다.
2006년,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원과 네덜란드에 위치한 유럽우주국(ESA) 연구 및 과학지원부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국제학술지 ‘어드밴시스 인 스페이스 리서치’에 달 토양에서 키울 개척 식물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개척 식물은 식물이 없는 땅에 처음으로 뿌리를 내리는 식물이다. 달 표면처럼 척박한 땅을 농사하기에 적합한 땅으로 바꾸기 위한 개척 식물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개척 식물은 유기물이 없는 척박한 토양에서 최소한의 양분만으로 자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다 자란 개척 식물은 죽은 다음 토양으로 들어가 다음 세대의 작물이 자라는 데 유용한 유기물이 돼야 한다. doi: 10.1016/j.asr.2005.03.005
당시 연구팀이 개척 식물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식물은 관상용으로 많이 쓰이는 마리골드류였다. 과거의 연구를 따라 해 보기로 했다. 지구에서 보내온 종자 꾸러미엔 화성을 개척할 마리골드 씨앗이 들어 있었다. 화성 흙에 마리골드 씨앗을 뿌렸다. 그리고 연구팀이 했던 것처럼 나도 토양에 포함된 광물을 분해해 양분으로 만들 수 있는 미생물을 투입하기로 했다. 마리골드는 화려한 노란색과 붉은색 꽃을 피우기 때문에 황량한 화성의 풍경을 바꾸는 데에도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으리란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내 기대와 달랐다. 마리골드의 잎은 노랗게 변해 갔고 상태가 좋지 않았다. 꽃을 피울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마리골드야, 산성 흙 줄까 염기성 흙 줄까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나는 다시 과거 논문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잎맥을 제외한 잎 전체가 노랗게 변하는 증상은 아무리 봐도 철분 결핍 증상이었다. 그런데 화성 토양에는 철분이 많다. 토양에서 철을 추출해 자원으로 쓰려고 엔지니어가 파견됐을 정도다. 화성 토양에서 키운 마리골드가 철분 결핍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돌파구를 찾은 건 화성에 온 지 196일째 되던 날이었다. 여느 날처럼 시큼한 적소렐 잎을 질겅질겅 씹으며 고민에 빠져 있던 나는 갑자기 머리를 세게 맞은 듯한 충격을 받고는 소리를 질렀다.
“맞다! 화성 토양은 시큼하지 않지!”
토양 산성도에 관해 까맣게 잊고 있던 것이다. 달의 토양은 수소이온농도(pH)가 5.7 정도를 나타내 약한 산성이고, 화성의 토양은 반대로 8.3 정도의 약한 염기성이다. 식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의 식물은 pH 5.5에서 6.5 범위로 약한 산성을 띠는 토양에서 잘 자란다.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양분 대부분이 약한 산성 상태의 토양에서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식물이 흡수하는 철도 염기성 환경에서는 식물이 이용하기 어려운 형태로 변한다. 나는 부랴부랴 질산을 희석해 화성 토양에 뿌렸다. pH를 약산성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마리골드도 다른 식물들과 마찬가지로 pH 5.8에서 6.2 범위의 토양에서 잘 자란다.
다시 기르기 시작한 마리골드는 건강하게 화려한 노란 꽃을 피웠다. 나는 마리골드를 작은 화분에 옮겨 심은 다음, 정조 과학기지의 창가에 늘어놓았다. D는 내 속도 모르고 “이파리도 노란색인 마리골드가 더 멋지지 않았느냐”고 물어왔다. 좀 더 친했더라면 그 우람한 등짝을 때려줬을지도 모르겠다.
시큼한 풀을 씹고 있어도 황량한 화성 풍경에 꽃을 피웠다는 사실 덕분인지 기분이 좋다. 마리골드가 다 시들고 나면 잔해를 모아 화성 토양에 투입하려고 한다. 그러면 나의 계획은 다음 작물을 재배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다음 작물은 화성 테라포밍보다는 대원들의 식생활에 더 중요한 작물이다. 한국인은 역시 김치를 먹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화성에서의 한 해 중 가을을 맞이하는 중이었다.
❋필자소개
정대호. 연암대 스마트원예계열 교수로 서울대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식물 광합성 모델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jdhenv@yona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