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의 다리와 1개의 팔을 가진 로봇이 무거운 식기세척기의 문을 연다. 로봇은 우선 식기세척기 손잡이를 쥐고 잡아끌어 문을 조금 연다. 그 다음 식기세척기 문 안으로 팔을 집어넣어 팔꿈치로 문을 마저 민다. 복잡한 동작을 가르치지 않았는데 스스로 판단하고 또 이어서 한다.
8월 16일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로봇 시스템 연구소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발표한 논문 속 로봇의 이야기다. doi: 10.1126/scirobotics.adg5014 보통 로봇은 동작과 움직임 하나하나를 명령해줘야 움직인다. ‘식기세척기 앞으로 가라’ ‘식기세척기 손잡이를 잡아라’ ‘팔꿈치 관절을 넣어 식기세척기 문을 마저 열어라’ 하는 명령을 하나씩 내리는 식이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팀은 각각의 명령을 내리지 않고도 로봇을 동작하게 만드는 프레임워크를 개발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프레임워크의 핵심은 인공지능(AI)의 대표적인 학습방식인 강화학습이다. 강화학습은 로봇 공학에서 여러 동작을 수행할 수 있는 ‘만능’ 로봇을 만드는 데 활용되고 있다. 연구팀은 시뮬레이션으로 훈련 데이터를 생성해 로봇의 성능을 향상하는 시간을 줄였다.
로봇의 움직임과 동작도 통합했다. 로봇공학에서 ‘움직임’과 ‘동작’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다. 움직임은 특정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가는 이동이다. 동작은 특정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과거 로봇 공학은 이 움직임과 동작을 각각 개발해 왔다. 움직임에 특화된 로봇을 만들거나, 작업 수행을 잘하는 로봇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팀은 로봇의 움직임과 동작을 통합하는 데 주로 사용되는 위치기반통신(Loco) 조작법을 활용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프레임워크를 장착한 로봇은 스프링이 달린 문을 열어 문밖으로 나가기도 하고, 커다란 원형 핸들을 2번 360도 돌리기도 한다. 이 모든 동작 궤적은 모두 1분 이내에 생성됐다. 연구팀을 이끈 쟝-피에르 슬레이만 교수는 “새로 개발한 프레임워크는 로봇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힘을 행사해야 하는지, 어떤 관절을 이용해야 하는지, 언제 어디서 물체와 상호작용해야 하는지를 총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