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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노벨상] 롤러코스터와 아이스크림으로 질병을 치료한다?

웃기려고한연구아닙니다7화

결석을 빼기 위해 롤러코스터를 탄 의사

 

허리에 손을 얹어보자. 이때 손바닥이 감싸고 있는 부분에 강낭콩 모양의 장기인 신장(콩팥) 한 쌍이 들어있다. 신장은 피를 정화하는 몸속 필터로, 하루에 약 200L의 피를 걸러 노폐물을 제거한다. 걸러진 노폐물은 물에 녹은 상태로 신장 내부의 빈 곳에서 방광으로 모이고, 외부로 배출된다. 이 노란 액체가 바로 오줌이다.

 

그런데 오줌에 녹아있어야 할 칼슘이나 요산 같은 물질이 녹지 않고 침착돼 딱딱한 결정을 만들 때가 있다. 평소 물을 너무 적게 마시거나, 또는 유전적인 이유로 신장 내부에 생기는 이 돌을 ‘신장결석(사진)’이라 부른다. 신장결석 자체는 그리 괴롭지 않지만, 결석이 오줌이 흐르는 통로를 막는 ‘요로결석’을 일으키면 악몽이 시작된다. 요로결석은 의학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0.5cm 이하의 작은 신장결석은 대부분 오줌을 타고 저절로 빠져나오지만, 더 큰 결석은 충격파나 수술로 제거해야 한다. 혹시 신장결석을 더 쉽게 빼낼 방법은 없을까?

 

데이비드 워팅어 미국 미시간주립대 교수는 담당 환자와 이야기하다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한 환자가 휴가지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다 신장결석이 빠졌다는 것이다. 환자는 미국 플로리다주 월트 디즈니 월드 리조트의 롤러코스터인 ‘빅 썬더 마운틴 레일로드’를 타다 신장결석이 빠졌다고 고백했다. 놀란 환자는 롤러코스터를 두 번 더 탔고, 그때마다 결석이 하나씩 빠졌다고 말했다. 이 증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워팅어 교수는 롤러코스터를 타면 정말 신장결석이 빠질지 실험하기로 했다.

 

우선 그는 신장결석 환자의 신장을 스캔해 신장 내부를 모사한 모형을 만들었다. 다음으로 환자에게 받은 결석 3개를 모형 사이에 끼워둔 다음 (교수 본인의) 오줌으로 채웠다.

 

자, 결석이 생긴 신장 모형이 만들어졌으니 이제 롤러코스터를 타면 된다. 연구팀은 놀이공원 측의 허락도 받았다. 워팅어 교수와 동료 연구자인 마크 미첼 미국 워싱턴 폴스보 클리닉 의학박사는 결석이 빠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빅 썬더 마운틴 레일로드를 탔다. 20번이나.

 

어지럽기 그지 없었을 실험 결과, 롤러코스터를 타면 신장결석이 정말로 빠진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신장 위쪽에 결석을 가진 환자가 롤러코스터 뒷좌석에 탔을 때 신장결석이 배출될 확률이 가장 높았다. 특히 뒷좌석에 앉았을 경우 앞좌석보다 결석이 배출될 확률이 4배 정도 높았다. 발상부터 실험 방법론, 결과까지 어디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이 연구는 발표 2년 후인 2018년 이그노벨상 의학상을 수상했다.

 

이그노벨 의학상, 길고 이상한 치료법들

의학상은 32년 동안 진행된 이그노벨상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다. 거의 매년 수여돼 왔으며 다른 분야와 비교해서도 빼놓기 아까운 화려한 연구 성과를 자랑한다. 이 중에는 실제 환자의 사례를 토대로 치료법을 제시한 연구도 많다.

 

2006년 이그노벨 의학상은 프랜시스 페스미어 미국 테네시대 의대 교수가 수상했다. 그의 업적은 항문에 손가락을 넣어 신경을 자극해 끊임없이 계속되는 난치성 딸꾹질을 치료한 것이었다. doi: 10.1016/s0196-0644(88)80594-8 2014년에는 혈소판 기능의 장애로 끊임없이 코피를 흘리던 4살 아이의 코를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로 막아 코피를 멈추게 만든 디트로이트 의학센터 연구팀이 의학상을 받기도 했다. doi: 10.1177/000348941112001107 다만, 이 치료법들이 너무 괴상하게 느껴져 절대 받고 싶지 않은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페스미어 교수는 이그노벨상 시상식에 고무장갑을 끼고 참석해, 딸꾹질로 괴로운 청중이 있으면 자신의 치료법을 즉시 실시해 주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실제로 받은 청중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디트로이트 의학센터 연구팀도 수상식에서 자신들의 코에 직접 돼지고기를 집어넣어 지혈 시범을 보였다.

 

하지만 다른 분야의 이그노벨상이 그렇듯, 이그노벨상 의학상을 받은 모든 치료법이 실용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22년에는 롤러코스터만큼 엉뚱하지만 실용성 있는 치료법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마르신 야신스키 폴란드 바르샤바 의대 연구원팀이 가지고 온 ‘아이스크림’ 치료법이 그 주인공이다.

 

암 환자를 위한 달콤한 처방, 아이스크림

암은 견디기도 힘들고 치료도 힘든 병이다. 암 환자들의 악몽 중 하나는 ‘화학요법’이다. 화학요법은 항암제 약물을 투여해 빠르게 분열하며 증식하는 암세포의 성장을 막거나 죽이는 방법이다. 그런데 혈구 세포, 점막 세포처럼 정상 세포 중에서도 암세포처럼 빠르게 분열하는 세포들이 있다. 항암제는 이런 세포들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탈모를 비롯한 여러 부작용을 앓는다.

 

부작용 중 하나는 구강점막염이다. 항암 치료로 점막 세포가 공격당해 입안이 붓고 헐어 상처가 나는 것이다. 구강점막염이 생기면 식사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구강점막염은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큰 요인 중 하나다. 구강점막염을 치료하는 대표적인 물건 중 하나는 얼음이다. 얼음을 물면 염증 반응이 줄어들고, 입안 혈관이 수축해 항암제가 염증 부위에 덜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차갑고 맛있는 무언가를 입에 물고 있어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아이스크림은 이전부터 구내염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종종 (특히 소아과에서 많이) 쓰였지만, 실제 치료 효능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서 야신스키 연구원팀은 아이스크림의 효능을 실험하기로 했다.

 

연구팀은 환자 74명을 대상으로 52명의 환자에게 아이스크림을 주고, 아이스크림을 제공받지 않은 환자 22명과 입안을 비교했다.

 

그 결과, 아이스크림을 처방받은 환자 중 28.8%인 15명에게서 구강점막염이 발생했다. 반면 아이스크림을 처방받지 못한 환자 중 절반 이상인 59.1%에서 구강점막염이 발생했다. 아이스크림을 먹은 경우 구강점막염 발생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전해져오던 아이스크림의 효능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야신스키 연구원팀은 논문에서 아이스크림 처방의 장점으로 “간단하고 구현하기 쉽고 가격도 저렴하며, 무엇보다 환자에게 부담이 적다”고 밝혔다. 나아가 더 큰 무작위 연구를 진행해야겠지만, 소아암 환자를 포함해 이 치료법이 많은 환자에게 도움이 되리라 전망했다.

 

이와 같은 치료법들이 노벨상을 받은 치료법들만큼 혁신적으로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극단에 항생제나 자기공명영상(MRI) 장치의 발명처럼 거대하고 혁신적인 치료법이 있다면, 반대쪽에는 소소하고 귀엽게 사람을 돕는 치료법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가끔은 엉뚱한 치료법에 관심을 기울여 보자. 엉뚱해 보여도 아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어린이든 노인이든, 아이스크림은 누구나 좋아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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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이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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