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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기업이 관심을 갖는 미국의 과학교육

세계 최대의 과학교육 행사를 한눈에

지난 4월 1일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 있는 컨벤션센터의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부스 앞에 세계 각국에서 모인 과학교사들이 줄을 길게 늘어섰다. 지진해일(쓰나미)을 소재로 한 포스터와 교육용 CD를 받기 위해서다.
 

지난해 말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쓰나미는 세계적으로 지구과학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고, 특히 지구과학 담당교사에게 절호의(?) 교육기회를 제공했다. 학생들이 싫어하는 과학을 재미있게 설명하려면 항상 새로운 소재를 발굴해야 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 수 없다. 정부기관이 이런 지구과학적인 사건을 분석해서 학교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고 무료로 나눠 준다니,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줄을 서는 수고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만한 것이었다.
 

과학교육은 정부가 앞장선다

미국과학교사협회(NSTA)와 미국과학교육학회(NARST)의 연례행사가 지난 4월 댈러스에서 8일 동안 잇달아 열렸다. 올해로 53회를 맞는 NSTA 컨벤션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은 세계 최대 규모의 과학도서 및 교구 전시회다. 각국의 과학교육 전문가 1만7000명이 참가한 가운데 5000평 넓이의 전시장을 가득 메운 350개의 부스는 제각기 제품을 전시하고 홍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전시장 규모도 놀랍지만, 부스를 차지한 것이 일반 기업의 제품만은 아니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전시기간 동안 항공우주국(NASA), 국립보건원(NIH), 국립인간게놈연구소(NHGRI), 국립환경보건원(NIEHS) 같은 미국 정부 연구기관들은 시사적인 분야나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해 학생을 비롯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재, 포스터, 학습키트, 교육용 CD를 제작해 무료로 배포했다. 수업 현장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교재를 교사에게 무료로 나눠준다는 것은 그만큼 정부가 과학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NASA의 부스가 상당히 북적거렸다. 홈페이지(www.nasa.gov)에 먼저 공개돼 인기를 끌었던 세계 야경 지도를 담은 포스터가 날개돋친 듯 손에 손을 타고 참가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 뒷면에는 ‘어디서 살 것인가? 그 이유는?’이라는 주제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지도안이 적혀 있다. 지도에서 불이 켜진 곳은 사람이 사는 지역이다. 학생들은 지도를 자세히 관찰하면서 사람이 사는 지역의 특징에 대해 토론하고 그에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진을 보면서 그냥 아름답다고 느끼는데 그치지 않고, 생각하고 분석하고 토론하는 태도를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다.
 

참관객들의 발길을 붙잡은 것은 교재만이 아니다. NASA는 ‘우주 안의 장난감’이라는 제목의 재미있는 워크숍을 열어 교사들이 마치 학생처럼 탄성을 지르게 만들었다. ‘무중력 우주공간에서 줄넘기를 하면 어떻게 될까?’ 이 문제에 대해 100명이 넘는 교사들은 제각기 손을 들고 자신이 생각한 해답을 말했다.

사람이 줄을 돌리기 위해 줄에 힘을 가하면, 줄도 사람에 대해 똑같은 크기의 힘을 가한다. 중력이 작용하는 지구에서는 사람이 뛰어 오르자마자 바닥으로 떨어지지만, 무중력 공간에서는 사람을 바닥으로 끌어 내리는 힘이 작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주선 안에서 줄넘기를 하면 사람이 줄을 돌리는 힘에 대한 반작용으로 사람의 몸이 공중에서 거꾸로 돌아간다. 줄넘기를 하면서 거꾸로 돌아가는 우주비행사를 실제로 촬영한 영상이 화면에 나타나자 대부분의 교사들은 탄성을 지르며 웃음을 터뜨렸다. NASA는 이밖에도 우주에서 요요나 부메랑을 갖고 놀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지에 대한 재미있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NASA가 제작한 세계 야경 지도 포스터


과학수업과 일상생활을 연결한다

정부기관이 아닌 코너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곳은 ‘월마트 사이언스’(Walmart Science)다. 미국 그리니치 고등학교의 데릴 테일러 교사는 학교의 과학 수업과 일상생활을 연결할 수 있는 다양한 시연을 선보였다. 시연에는 비싸고 복잡한 과학 실험 기구 대신 동네 슈퍼마켓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식료품들이 등장했다. 캔에 담긴 다이어트 콜라와 일반 콜라를 물에 띄우면, 하나는 뜨고 하나는 가라앉는다. 밀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똑같아 보이는 두 오이에 전류를 흘렸더니, 하나는 빛을 내지만 다른 하나는 빛을 내지 않는다. 빛을 내는 오이는 오이 피클이었다. 오이 피클에는 염분이 많아 전류가 잘 통한다. 테일러 교사는 헐리우드 영화를 과학 수업과 연결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상당한 사례를 발표했다.

어린이가 즐겨 읽는 동화도 등장했다. 카라벨아카데미가 진행하는 블라스트(BLAST, Bringing Literacy And Science Together) 프로젝트는 누구나 알고 있는 동화를 통해 과학의 기본 원리를 설명한다. 학교와 가정을 연결한다는 취지다. 리니 오리어리 교사는 간단한 도구를 이용해 동화 속의 과학을 보여줬다.
 

예를 들어 ‘아기돼지 삼형제’라는 동화에서 늑대는 돼지가 짚이나 나무로 만든 집을 입으로 불어서 날려 버린다. 공기가 가한 힘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풍선을 불었다가 놓았을 때 풍선이 앞으로 나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공기도 물체에 힘을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단순한 현상도 동화와 연결해 설명하면 과학에 대한 흥미를 심어줄 수 있다.
 

컨벤션 내내 과학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워크숍이 펼쳐졌다.


학교밖으로 확산되는 과학

컨벤션이 끝난 뒤에도 참관객들은 댈러스를 떠나지 않았다. 올해로 78회를 맞는 NARST 컨퍼런스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 컨퍼런스는 명실공히 세계 과학교육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연구자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학술대회다. 사전 심사를 통과한 논문만 발표되므로 세계 과학교육 연구의 주요 흐름을 파악하려는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크게 부각된 분과는 ‘학교밖 과학교육’이었다. 학교가 아닌 과학관, 자연사박물관, 동물원, 수족관,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인터넷 등을 이용해 이루어지는 과학학습이다.
 

‘학교밖 과학교육’ 분과에서 발표된 논문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학생의 과학 성적이 높게 나오는 대만에서 과학적 소양이 낮게 나타나는 현상을 분석한 ‘대만에서 대중의 과학이해’, 빈민 지역의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스포츠 활동을 하게 한 후 과학적 원리를 설명해 그 효과를 분석한 ‘공동체 과학의 자매들’, 전시물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분석해 그 속에 담겨 있는 이념을 밝혀낸 ‘학교밖 교육에서의 이야기와 이념’과 같은 논문이 눈길을 끌었다.

교사들이 과학관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문을 발표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익스플로러토리엄의 도린 핀켈스타인 연구원은 “미국은 대부분의 과학관이 상당수의 연구원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체 연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학회에서 발표하는 일이 자연스럽다”며 미국 과학관의 과학교육 지원방안에 대해 설명했다.
 

컨퍼런스에 참석한 서울대 물리교육과 송진웅 교수는 “이제 과학교육 연구의 영역이 학교에 국한되지 않고 과학관, 연구소, 일상생활 등으로 확장되고 있어, 우리나라도 학교밖 과학교육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국과학교사 협회 현종오 회장(맨오른쪽)이 존 피닉 전 NSTA 회장(왼쪽에서 두번째)에게 한국의 전시물을 설명하고 있다.


위상 높아지는 한국 과학교육

이번 컨벤션과 컨퍼런스에는 미국을 비롯해 한국, 캐나다, 호주, 영국, 독일, 중국, 일본, 대만, 이스라엘, 케냐, 홍콩, 필리핀, 핀란드, 나이지리아 등 세계 각국의 과학교육 관련자들이 참가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전국과학교사협회는 회원 6명과 함께 NSTA 컨벤션에 참가해 교실에서 활용할 수 있는 과학학습 키트 6종을 전시했다. 이 가운데 센서에 적외선을 쏘면 소리가 나는 ‘빛을 소리로’ 키트와 빛의 3원색을 차례로 섞어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빛의 합성’ 키트가 호평을 받았다.

전국과학교사협회의 현종오 회장(성동기계공고)은 우리나라의 과학교육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가늠하고 “이런 행사에 참석해 선진국과 정보를 교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행사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컨퍼런스에도 20~30명의 한국 과학교육 연구자들이 참가해 논문을 발표했다.송진웅 교수는 “개최국인 미국을 빼면 한국인이 가장 많을 것”이라면서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과학교육을 연구하는 한국인 교수나 연구원, 유학생이 많이 참석하기 때문에 한국 과학교육의 위상이 많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2005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홍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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