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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전의 ‘초(超)재료] 질긴 세라믹, 질긴 금속 일상의 혁명을 가져오다

세라믹 칼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주방용품의 혁명이라 불렀다. 플라스틱처럼 가볍지만 아무리 사용해도 날이 무뎌지지 않고, 심지어 자른 음식이 달라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만큼 단단해 결코 깨지지 않는 고인성 세라믹 ‘지르코니아(ZrO2)’를 사용한 결과였다. 이 같은 특수 세라믹은 오늘날 금속이 독점해온 구조재료 분야까지도 넘보고 있다.

 

 

잡아 당기는 힘에 견디는 ‘질김’

 

도자기, 유리, 시멘트, 석고, 벽돌, 타일보통의 세라믹은 작은 충격에도 잘게 조각나며 깨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조금 어려운 표현으로 ‘인성(toughness)’이 낮다고 말한다. 인성의 사전적 정의는 ‘재료 속에 균열이 잘 생기지 않고, 잘 전파되지 않는 성질’이다. 우리말로 순화하면 잡아 당기는 힘에 견디는 ‘질김’ 정도 될까.

 

그런데 재료공학 분야에서는 인성을 ‘재료가 파괴될 때까지 흡수한 에너지의 양’이라고 정의한다. 재료의 파괴란 멀쩡한 재료에 균열이 가고, 균일이 커지며 여러 덩이로 깨지는 것을 말한다. 즉 파괴는 균열로 인해 원래 없었던 표면이 새로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인성은 새로운 표면이 생길 때까지 재료가 흡수한 에너지의 양이다.

 

액체가 파괴되는 양상은 고체의 그것과 차이가 크다. 한 예로 상온의 물 분자들은 수소결합에 의해 액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열에너지를 가하면(온도를 올리면), 분자들이 열에너지를 흡수해 매우 크게 진동하게 된다. 그러다 주입된 에너지가 수소결합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물 분자들은 같이 붙어 다니던 분자들과 결별해 자유롭게 이동하는 수증기가 된다.

 

이와 같이 액체나 기체의 분자는 지정된 위치에 가만히 있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거나 진동하기 때문에, 물을 분리시켜 새로운 표면을 만들면 새로운 표면의 원자구조는 내부의 원자구조와 별 차이가 없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표면이 생길 때까지 재료가 흡수한 에너지의 양, 인성도 작다.

 

하지만 고체는 다르다. 원자 간에 결합된 힘 이상으로 기계적인 힘을 가하면 원자들 간 간격은 점점 멀어지고, 외부 힘이 원자결합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결합은 끊어져 버린다. 새로운 표면엔 물질 내부와 달리 결합이 끊어진 수많은 원자가 집합해 있다. 수많은 원자결합을 끊고 새로운 표면을 만들어낸 에너지의 양, 즉 인성이 크다. 인성은 단위 부피당 에너지로 표현하는 것이 이해하기 쉽다.

 

세라믹의 균열을 막는 방법

 

‘새로운 표면을 만들어내는 에너지의 양=인성’이라고 정의한다면, 강도가 세고 잘 늘어나는 재료일수록 인성이 크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세라믹은 누가 봐도 인성이 굉장히 작은 소재다. 강도는 매우 크지만 도무지 늘어나지 않고 잘 깨지기 때문이다. 플라스틱과 고무는 잘 늘어나지만 강도가 약하기 때문에 인성이 작다. 반면 철과 같은 금속은 단단하고 잘 늘어나므로 인성이 크다. 자동차, 비행기, 배 등을 만들 때 금속을 재료로 사용하는 이유다. 만약 도자기로 차를 만들면 색다르긴 하겠지만 타고 다닐 자신이 있는 사람은 극히 적을 것이다.

 

재료공학자들은 기존 재료의 인성을 높여 초인성 재료를 개발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인성의 과학적 정의에 착안해 가설을 세웠다. 재료에 파괴가 일어나기 어렵게 만들면 인성이 커지지 않을까? 균열이 잘 발생하지 않게 하거나 균열이 빠르게 전파되지 않게 막으면 인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첫 번째, 균열이 잘 발생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균열은 재료의 원자결합이 견디는 힘보다 더 큰 외부 힘이 주어질 때 생긴다. 일단 원자결합이 끊어지면 다시 연결하기 위해선 엄청난 열 또는 압력이 필요하다. 이에 재료공학자들은 애초에 원자들이 멀어지지 않게끔, 외부의 힘이 집중돼 균열이 예상되는 자리에 힘을 받으면 부피가 커지는 재료를 넣었다. 비유하면, 두 사람이 낑낑대며 줄다리기를 하는데, 줄의 가운데 부분이 어느 순간 늘어나게 만든 것이다. 이를 조금 어렵게 표현하면 물체가 응력(재료에 가해지는 단위 면적당 힘)에 의해 원자구조가 다른 물질로 변하는 ‘응력 유기 상전이(Stress-induced phase transformation)’라고 한다.

 

세라믹 칼은 응력 유기 상전이를 이용해 만든 대표적인 제품이다. 세라믹 칼의 재료인 지르코니아는 응력 유기 상전이가 쉽게 일어나도록 성분을 변화시킨 세라믹 물질이다. 지르코니아에 과다한 힘을 가하면 내부에 균열이 생기기보단, 상전이가 일어나 응력을 흡수한다. 재료공학자들은 이 원리를 이용해 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지르코니아의 인성을 증가시켰다. 고인성 지르코니아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 누군지는 정확히 알려져있지 않다. 1960년대 중반에 파괴에 대한 과학적인 이론이 확립됐는데, 그것을 세라믹에 응용시키는 과정 중에 지르코니아의 상전이 특성이 우연히 발견됐다.

 

두 번째, 균열이 빠르게 전파하지 않도록 막는 방법은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재료 두 개를 섞어 복합재료를 만드는 것이다.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복합재료가 바로 철근콘크리트다. 잘 늘어나는 철근과 딱딱한 콘크리트를 더하면 콘크리트에 균열이 생기더라도 균열이 철근을 만나서 멈춘다. 오늘날 철근콘크리트는 고층 건물을 건설하기 위한 필수 재료다.

 

상전이 조절해 초인성 금속 만든다

 

금속은 원자결합 특성상 인성이 대체로 크다. 상온에 있는 웬만한 금속은 원자결합이 끊어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원자끼리 서로 결합한 상태가 안정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약육강식의 세계이고, 물질과 재료는 원자결합이 센 쪽이 이기는 세계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원자 간 결합이 세면서 외부 환경에 따라 결합 방법이 달라지는 재료를 탐구한다. 원자결합이 끊어지지 않는 범위에서, 재료 내부의 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원리와 방법을 찾는 것이다.

 

실제로 금속은 계속 힘을 가하면 ‘쌍정’이라는 현상이 발생한다. 쌍정은 상은 같은데, 원자배열 방향만 다르다. 즉 응력이 가해졌을 때 원자결합은 끊어지지 않고 응력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원자 배치가 바뀌는 것이다. 이런 쌍정 현상 때문에 금속, 특히 철은 같은 성분임에도 다양한 원자결합 구조를 가질 수 있다. 원자결합력의 한계를 넘어선 외부 힘을 견디기 위해 원래 원자구조가 아닌 다른 상을 만들거나 원자배열 방향을 바꾸기 때문이다.

 

초인성 금속을 만들 때는 바로 이런 특성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철의 인성을 한껏 향상시킨 ‘TRIP강(TRansformation Induced Plasticity steel)’은 외부에서 응력이 가해졌을 때, 강철 내부의 일부분이 응력을 흡수하는 상(원자구조 또는 성분이 다른 물질)으로 변하게 만든 재료다. 또 다른 고인성 강철인 ‘TWIP강(TWinning Induced Plasticity steel)’은 응력을 받으면 해당 부분의 원자결합 방향이 달라지며 응력을 흡수한다. 이 같은 고인성 강철 역시 철강에서 발생하는 균열을 연구하다 우연히 발견돼 정확히 누가 먼저 발견했는지는 잘 알려져있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재료의 특성이나 주어진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물질의 변화를, 우리가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만큼 일어나게 하는 것이 재료 개발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지금도 많은 과학자가 강도가 높고(초강도), 균열이 잘 발생하지 않으면서(초인성) 잘 늘어나는(초탄성) 합금을 연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자동차, 선박, 비행기 심지어는 가정용 식칼에까지 깊숙이 들어와있다.

2023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한승전 한국재료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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