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1. 생활 속의 디지털

필름없는 카메라 시대 열렸다

미래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던 디지털 사회는 이미 우리의 현실에 다가와 있다. 이제 디지털 기술과 함께 하지 않는 하루의 삶은 더 이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미국 월트디즈니사와 픽사 테크놀러지사가 지난 겨울에 선보인 영화 '토이스토리'. 6살 소년 앤디의 카우보이 장난감인 우디와 첨단 로봇인형 버즈의 애증을 통해 신-구세대간, 과거와 미래간, 디지털과 아날로그간의 갈등을 그린 이 영화는 영화탄생 1백년만에 등장한 세계 최초의 100% 디지털 영화다(과학동아 96년 3월호 참조).

토이스토리는 1백32분의 상영시간에 등장하는 장난감들의 익살스런 행동이나 안면의 표정변화 등 모든 영상이 실사촬영 없이 대용량 워크스테이션을 통해 제작됐다. 수천만장의 정지화면이 컴퓨터그래픽에 의해 만들어지고 색깔과 3차원 입체감 등은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표현했다. 또한 촬영장소세팅 - 필름촬영 - 편집 - 포스트프로덕션(후반작업) 등 전통적인 영화제작 기법이 철저히 무시된 대신 그래픽 디자이너가 카메라 기사 역할을, 컴퓨터 엔지니어들이 촬영감독을 맡았다.

영화사에 기록될 만한 최초의 장편 디지털 애니메이션인 토이스토리의 성공 덕택에 애플사 회장직을 그만둔 뒤 아웃사이더로 전전하던 픽사의 회장 스티브 좁스는 일약 억만장자가 됐고 정보통신업계의 기린아로 다시 떠올랐다.

먼 미래 아닌 현재의 얘기

흔히 디지털 시대는 '미래의 첨단정보시대' 라는 등식이 일반화돼 있다. 디지털이란 단어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머나먼 미래의 일로 치부됐고, 디지털 시대의 각종 청사진은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라는 냉소어린 대답을 듣기 일쑤였다.

그러나 194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ENIAC)이 웅장하게 돌아가면서 컴퓨터시대가 시작된 이래 50년 동안, 컴퓨터 혁명은 모든 정보를 0과 1의 조합으로 처리하는 디지털 시대를 조용히 실현해 왔다. 에니악 이전에도 수치를 자동으로 계산해주는 전자계산기가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1만8천개의 진공관으로 이루어져 펜실베이니아 모든 가정의 전등을 깜빡거리게 할 정도로 엄청난 전력을 사용했던 에니악은 모든 정보를 0과 1의 방식으로 처리한 '디지털시대의 메신저' 였다.

디지털은 불, 원자력의 발견에 이어 세번째로 인류의 삶을 바꾸는 동력이 되고 있다. 가정의 생활 필수품이던 TV 오디오 라디오 등 가전제품도 '정보가전' 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탄생하고 있고, '디지털의 화신' 컴퓨터는 통신 사무자동화 공장자동화 등의 형태로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인류에게 무형의 정보가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례로 보여준 것도 디지털의 공헌이다. 이전까지는 형태를 가진 물건만이 매매의 대상이었고, 이를 거래하기 위해서는 직접 물건이 오고가야만 했으나 디지털 시대는 이같은 절차와 형식을 파괴해가고 있다.

국내를 비롯, 미 일 유럽연합(EU)등의 국가는 현재 모든 가정과 관공서 기업을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MB의 정보를 전달하는 광섬유로 연결해 각종 첨단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대미문의 사업을 벌이고 있다. 머리카락 굵기의 광섬유를 타고 수십만개의 0과 1의 조합이 넘나들며 때로는 최신 뉴스를, 때로는 보고 싶은 영화를 각 가정에 배달하는 것이다. 디지털은 이제 머나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친숙한 삶의 영역으로 내려와 인류의 삶 형태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지역 전화 사업자인 사우스웨스턴사는 영사기 없이 영화를 상영하는 디지털 주문형 영화(Cinema on Demand)시스템의 개발을 끝냈다. 전통적인 영화상영 절차는 영화 제작을 끝내고 마스터필름을 기초로 수십개의 다양한 복제 필름을 만들면 이를 영사기에 걸어 대형 대형스크린에 투사하는 식이었다.

주문형 영화서비스는 대형 서버(컴퓨터)와 수백GB 용량을 지닌 디스크볼트(vault)를 갖추고 대용량의 데이터 전송용 비동기식 전송모드(ATM) 교환기를 통해 광섬유로 연결된 극장에 영상 데이터를 전송해주는 것이다. 데이터를 전해받은 극장은 뒤편에 있는 영사기가 스크린에 화면을 투시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가 대형 스크린에 화면을 쏘아주게 된다.

이에 따라 관람객은 영사기로 여러번 영화를 상영했을 때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스크래치(화면이 긁혀 나타나는 것)현상이 없는 깨끗한 영화를 볼 수 있고, 무슨 소리인지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울리는 소리 대신 CD음질 수준의 깨끗한 음성 음향을 즐길 수 있다.

이는 미국의 미디어재벌 타임워너그룹이 실리콘그래픽스 AT&T 히타치 등 10여개의 하이테크 대기업과 공동으로 미 플로리다 올랜도시에서 제공하고 있는 '풀서비스 네트워크'(FSN) 서비스나 홍콩텔레컴이 홍콩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주문형비디오(VOD)를 극장의 영역으로 확대한 서비스다.

백색가전에서 정보가전으로
 

정보가전으로의 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모든 정보를 끊이지 않는 연속 선상에서 처리하는 아날로그 방식이 마모라는 기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 비해 디지털의 세계는 무궁(limitless)하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세계를 비교 설명할 때 가장 단골로 등장하는 비유는 LP와 CD. LP는 미세한 바늘이 LP의 골(LP는 수천개의 골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엄청나게 긴 골 하나로 돼 있다)을 따라 움직이며 발생시키는 소리를 증폭시킨다. 그러나 디지털 사운드 재생 방식을 취하는 CD는 수억개의 O과 1로 구성된 음성 정보를 광입력(일명 픽업)장치가 읽어들이고 이를 다시 재생하는 방식을 취한다. 골이 마모될수록 음질이 나빠지는 LP와 달리 CD는 수없이 재생해도 음질이 나빠지지 않는다.

순간과 영원, 비효율과 효율, 마모와 복제의 대결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에 숨어있고 이 대결은 최근 쏟아져 나오고 있는 디지털 생활용품들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최근 현대전자와 삼성전자는 필름없이 사진을 찍고 현상 인화 절차를 따로 거칠 필요없이 프린터로 출력할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를 선보였다. 디지털카메라는 렌즈로 들어오는 광신호를 고체촬영소자(CCD)를 통해 아날로그신호로 바꾸고 이를 다시 디지털영상신호 처리기를 이용해 0과 1의 조합인 디지털 정보로 변환시킨다. 이런 방식으로 디지털화된 데이터는 메모리카드에 임시 저장한다. 한마디로 메모리칩이 필름역할을 하는 셈이다.

디지털카메라의 장점은 촬영한 영상을 카메라에 부착된 액정화면(LCD)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디지털카메라를 노트북컴퓨터와 연결해 사진을 멀리 있는 컴퓨터로 전송한 후 이 컴퓨터에서 사진의 밝기 크기 등을 조정할 수 있다. 눈을 감은 채로 백일 사진을 찍었다면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눈을 뜨고 있는 사진으로 합성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사진을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 모아 편집을 해 CD롬으로 만들면 훌룡한 가족 사진첩이 된다.

물론 디지털카메라도 단점은 있다. 일반 사진보다 해상도가 떨어지고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가격이야 보편화가 되면 떨어질 것이 분명하니 별개로 치부해도 해상도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보통 사진이 4백만-6백만 정도의 픽셀(점, 하나의 점은 1개의 비트로 구성) 해상도를 나타내는데 비해 디지털카메라는 2백만 픽셀 정도의 해상도를 나타내고 있다. 현재 미국의 코닥이나 일본의 샤프, 캐논사 등이 1백만원대의 디지털카메라를 판매하고 있는데, 특히 코닥사는 디지털카메라에서 한발 더 나가 필름 주변에 사운드 트랙을 붙여 영상과 음성을 동시에 기록하는 첨단 카메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초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CDMA(코드분할 다중접속장치)휴대전화서비스도 디지털 시대의 개가중 하나다.

CDMA 휴대전화는 사람의 아날로그 음성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꾸고 이 신호를 일정하게 분할해서 교환기와 중계기를 통해 상대방에게 전송하는 디지털방식의 휴대전화 시스템. 사람의 음성을 수십만개의 조각으로 미분해 이를 무선주파수에 실어 전송하고 조각으로 나눠진 신호를 다시 순서대로 조립해 재생하는 식이다. 원래 군 부대에서 비밀통화를 위해 개발된 방식인 이 기술은 기지국에서 단말기까지 보내고자 하는 데이터에 의도적인 노이즈성 신호를 곱해 보내고 받는 쪽에서도 같은 방식을 이용해 수신한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아날로그 방식의 이동통신시스템은 30kHz의 주파수 폭에서 한사람만이 통화할 수 있어 주파수 부족에 따른 혼신과 잡음이 많다. 이에 비해 CDMA는 한 채널의 점유주파수폭을 1.25MHz로 넓히고 통화자에게 개별적 코드를 부여, 같은 코드끼리만 연결되도록 한다. 따라서 주파수를 5-10배 정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음성을 연속적인 아날로그 신호로 전달하는 기존 휴대전화시스템의 치명적인 약점인 중간 끊어지기, 통화잡음, 혼선 등의 현상을 없앨 수 있다. 이는 또 휴대전화와 노트북컴퓨터를 서로 연결해 각종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무선데이터통신으로 응용할 수 있다.

한국이동통신이 LG정보통신으로부터 CDMA시스템을 납품받아 최근 수도권을 대상으로 디지털 휴대전화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신세기통신도 4월1일부터 017이라는 망식별번호를 이용해 CDMA방식의 디지털 휴대전화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밖에 최근 각광받는 디지털 통신수단으로는 하나의 주파수를 수많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쓸 수 있게 해주는 디지털 주파수공용통신(TRS)등이 있다.
 

유통업계가 골치 아파하는 재고 관리도 사진과 같은 '몸에 입는 컴퓨터'를 이용해 간단히 해치울 수 있다.
 

디지털의 바다로 흘러간다

디지털혁명의 또 다른 특징은 융합(convergence)이다. 음성과 문자, 2차원과 3차원이 만나 멀티미디어를 이루고 TV와 컴퓨터 VCR 오디오가 뭉쳐 전혀 새로운 기기를 만들어낸다. 끊임없이 합쳐지는 가운데 어제의 신기술이 오늘은 무용지물이 되고 개별적인 영역은 디지털이라는 망망대해로 통합된다.

낡은 디지털 기술은 새롭게 등장한, 더욱 진보된 디지털 기술에 자리를 내주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더 잘게 잘라내고 이를 압축 전송할 수 있는 기술이 나타나면 이전의 것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CD와 DVD의 관계는 그 단적인 예다.

디지털 세계를 장악하려는 세계 하이테크 기업들의 관심은 온통 디지털 비디오 디스크(DVD)에 쏠려 있다. DVD는 영화와 음악뿐만 아니라 컴퓨터 자료까지 기록할 수 있는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 기존의 비디오 CD가 일반 VTR수준의 화질을 구현하는 영상을 74분정도 기록 재생하는 것에 비해 DVD는 레이저디스크 수준의 1백33분짜리 영화를 담을 수 있다.

DVD의 외모는 일반 음악CD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 조그마한 원반에 음악CD와 보통 VTR 테이프 8장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을 뿐더러 음질 화질도 크게 개선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한때 6백50MB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어 차세대 매체로 각광받았던 CD롬과 10년 넘게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VTR은 이제 DVD에 그 자리를 내어줄 운명에 처했다. 도시바 마쓰시타 타임워너비디오 파이오니어 JVC 히타치제작소 미쓰비시전기 등 세계의 선진기업과 삼성전자 현대전자 LG전자 등 국내 기업들이 DVD 플레이어의 개발을 끝내고 올 하반기부터 본격 양산 체제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디지털혁명은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서비스가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다. 교수 과학자 컴퓨터 엔지니어의 전유물이었던 인터넷이 이제 전세계 1백여국가의 5천만명을 연결한 네트워크중의 네트워크가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미국의 삐삐 가입자에게 삐삐를 치고 다시 전자우편 답장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등장했는가 하면, 위성중계시스템을 이용하지 않고 전세계로 동화상을 생중계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바야흐로 0과 1의 조합 디지털 세상이 전세계 인류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디지털 연구개발 센터인 미국 MIT 미디어연구소장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의 정의는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컴퓨터는 더 이상 컴퓨터가 아니라 인간의 삶이다. 만물의 가장 최소단위는 원자(atom)가 아니라 비트(bit)이고, 이는 디지털 세계의 DNA다."
 

(그림)CDMA 시스템 구성도
 

1996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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