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8년 9월 12일. 265년 전
프랑스 천문학자인 샤를 메시에의 별명은 평생 13개의 혜성을 발견한 ‘혜성 사냥꾼’이었다. 1758년 이날도 혜성을 찾던 메시에는 황소자리에서 혜성과 너무 닮은 성운을 발견했다. 순간 짜증이 나서였을까. 그는 그때 혜성과 닮은 천체의 목록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메시에 목록’이 탄생한 순간이다.
매년 3월 말, 세계 각지에서는 아마추어 천체관측가들의 축제, ‘메시에 마라톤’이 열린다. 메시에 마라톤은 프랑스 천문학자인 샤를 메시에가 정리한 ‘메시에 목록’ 천체 110개를 하룻밤에 찾는 행사다. 지난 2023년 3월 18일, 강원도 횡성 천문인마을에서 5년 만에 열린 메시에 마라톤에 이창욱, 김태희 기자가 직접 참가했다. 우리는 과동팀, 목표는 소박하게 ‘메시에 천체 5개 찾기!’
2023년 3월 18일 오후 5시 ⏐ 메시에 마라톤 시작 2시간 전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맑아요. 우리나라 봄은 기상 조건이 나쁜 편인데, 이 정도면 하늘이 도와준 겁니다.”
아마추어 천체 관측 동호회 ‘야간비행’의 이한솔 회장이 말했다. 그의 어깨 뒤로 천문인마을의 공터에 모인 동호인들이 각자의 망원경을 조립하는 데 여념이 없다.
‘메시에 마라톤’은 하룻밤 동안 최대한 많은 메시에 천체를 찾는 천문동호인들의 행사다. 메시에는 생전 103개의 천체를 찾아 기록으로 남겼고, 사후 후대의 천문학자들이 7개를 추가해 110개를 목록으로 만들었다.
이 천체들은 북반구 하늘 여기저기에 흩어져있어 평소에는 모두 볼 수 없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면서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별자리가 계절마다 달라지고, 그에 따라 태양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 천체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메시에 천체가 모든 밤하늘에 균일하게 분포한 건 아니라서, 1년 중 3월 말의 며칠 동안은 메시에 천체 전체를 하룻밤에 볼 수 있는 시기가 생긴다. 메시에 마라톤은 이때 열린다. 밤새도록 천체를 관측하기 때문에 마라톤이란 별명이 붙었다.
야간비행은 강원도 횡성의 천문인마을에서 매년 봄, 메시에 마라톤 행사를 주최해왔다. 악천후와 코로나19로 행사를 건너뛴 지 4년. 5년 만에 다시 이곳에서 20회 메시에 마라톤이 열렸다. 대회 참가자 17명을 비롯해 행사 분위기를 즐기기 위한 참관객까지 총 50명이 메시에 마라톤을 위해 모였다. 천체사진 촬영을 좋아하는 부녀, 같은 반 친구라는 초등학생 네 명 등 남녀노소 모두의 얼굴에 기대감이 스몄다.
저녁 7시 ⏐ 메시에 마라톤 시작! 쉬운 천체부터 찾자
“지금부터 제20회 메시에 마라톤을 시작하겠습니다!”
회장의 개회사와 동시에 참가자들이 어두워진 바깥으로 우르르 몰려나간다. 서쪽 하늘로 이미 지고 있는 늦가을 별자리의 메시에 천체를 먼저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물고기자리 나선은하인 M74는 고도가 낮아 서둘러야 한다.
메시에 마라톤 참가자들은 자신이 찾은 메시에 천체와 발견 시간을 종이에 기록한다. 축제에 가까운 행사라 기록은 참가자의 양심에 맡기지만, 기상 조건이나 대회장의 위치 상 보이지 않는 메시에 천체가 있기 때문에 거짓으로 천체를 보았다고 기록하면 쉽게 들통난다. 내가 찾은 게 메시에 천체가 맞는지 헷갈리는 경우에는 대회 도우미들이 도움을 준다.
메시에 천체의 종류는 성단부터 성운, 은하, 심지어 쌍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들의 공통점이라고는 저배율 망원경에서 흐릿하게 보여 혜성의 핵처럼 보인다는 점 하나 뿐. 이들 천체 110개를 하룻밤에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계산해도 밤 10시간 동안 쉬지 않고 5분에 하나의 천체를 찾아야 한다. 개중에는 찾기 쉬운 천체도 있지만, 난이도가 어려운 천체도 있다. 심지어 목록 자체도 정확하지 않아 후대의 천문학자들이 꾸준히 보완해왔다. 예를 들어 메시에가 기록한 M102는 지금까지도 찾지 못했다(그래서 대회에서는 다른 천체인 NGC5866을 대신 찾는다). 대회 참가자들은 언제 어떤 천체를 찾을지 계획을 치밀하게 짜야 한다.
과동팀은 오늘 몇 개의 메시에 천체를 찾을 수 있을까? 대회 전날, 36배율 천체 망원경을 빌려주고 사용법을 가르쳐준 이재형 과학동아천문대장은 말했다.
“천체망원경이 처음이니까저는 세 개 예측합니다.”
그래서 이창욱 기자와 김태희 기자는 다짐했다. 질 수 없다! 우리의 목표는 다섯 개다!
과동팀은 우선 맨눈으로도 보이는 가장 밝은 메시에 천체부터 찾기로 했다. 바로 M42 오리온 대성운과 M45, 플레이아데스 성단이다. 겨울의 대표 별자리인 오리온자리와 황소자리에서 볼 수 있다. 오리온 대성운은 오리온자리의 허리띠 아래, 가랑이 사이에 있다. 맨눈으로 보면 희미하게 번진 자국처럼 보인다. 플레이아데스 성단은 작고 푸른 별들이 모여있는 산개 성단이다. 10분 만에 두 천체를 발견한 과동팀은 생각했다. ‘어, 생각 외로 찾기 쉽잖아? 예감이 좋은데?’
밤 9시 ⏐ 메시에 천체, 찾기 쉽지 않네+2 hour
예감은 틀렸다. 두 개의 메시에 천체인 M41 큰개자리 산개성단과 M47 고물자리 산개성단까지 추가로 찾은 이후, 과동팀의 기세가 꺾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천체를 망원경으로 찾기는 쉽지 않았다. 과동팀의 눈물겨운 노력을 웃으며 지켜보던 도우미들이 망원경 사용 노하우를 가르쳐주었다.
천체 망원경에는 망원경이 두 개 달려있다. 주 망원경과, 주 망원경에 달린 작고 배율이 낮은 ‘파인더’ 망원경이다. 우선 천체가 보이는 방향을 주 망원경으로 겨냥한다. 그후 파인더를 보며 천체를 찾는다. 망원경을 조금씩 움직이며, 주변의 밝은 별을 길잡이 삼아 따라가면 찾는다. 잠깐! 망원경이 움직이는 방향과 보이는 천체가 움직이는 방향은 정반대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빛이 렌즈를 통과하면서 굴절되기 때문이다.
파인더로 메시에 천체처럼 보이는 녀석을 찾았다면, 파인더 중심에 천체를 맞추고 주 망원경을 확인하자. 제대로 찾았다면 파인더로 찾은 천체가 고배율로 보인다. 이 꿀팁을 따라해봤더니찾았다! 쌍둥이자리 M35 산개 성단이다. 곱고 푸른 모래알이 한 꼬집 뿌려진 듯한 모습이 아름답다.
밤 11시 ⏐ 추위와 피곤이 몰려오다. +4 hour
봄철의 대표 별자리인 처녀자리가 떠오를 시간이다. 머리털자리와 처녀자리 사이의 은하단에는 거대 타원은하인 M87을 비롯해 16개에 달하는 메시에 천체들이 몰려있다. 마라톤 참가자들에게는 중요한 순간이다. 하지만 지쳐버린 과동팀에겐 고민의 시간이었다. 다음날 아침, 서울로 돌아가는 차의 운전을 맡은 김태희 기자는 먼저 자기로 했다. 이창욱 기자는 조금만 더 있어보기로 했다.
행사장의 분위기도 한결 차분해졌다. 여기저기 참관인들의 망원경이 휑뎅그레 놓여있다. 파인더로 밤하늘을 뒤지다 보니 부릅 뜬 오른쪽 눈이 아려왔다. 이제, 왜 메시에 ‘마라톤’이라 부르는지 알 것 같다. 영하의 추위에서 밤새도록 하늘을 보는 일은 체력과 정신력 모두를 필요로 했다.
새벽 1시 ⏐ 가장 아름다운 은하를 찾다. +6 hour
두 시간 후, 하늘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동쪽 지평선 너머로 여름철 별자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대회장에도 다시 활기가 돈다. 여름철 밝은 구상성단이 떠오를 시간이다. 이창욱 기자는 헤라클레스자리 M13 구상성단을 찾는다. 북반구 하늘에서 밝고 찾기 쉬운 구상성단으로 유명하다. 가뿐하게 관측 완료!
“가로줄이 보이시죠? 제대로 찾으셨습니다. M104입니다.”
새벽 2시 20분, 첫 은하를 찾아냈다. 까마귀자리의 왼쪽 위에 있는 M104다. M104는 ‘솜브레로 은하’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데, 멕시코 전통 모자인 솜브레로처럼 선명한 가로줄이 보이기 때문이다.
2800만 광년 떨어진 은하를 사진이 아니라 내 눈으로 보다니. 솜브레로 은하는 지금까지 본 천체 중에 가장 아름다웠다. 은하와 나 사이의 깊은 공허가 내 일부분이 되는 기분. 바다를 보는 사람이 바다를 꿈꾸듯, 나의 꿈에도 별과 공허가 나올까? 이 아름다움을 목격하지 못하고 잠들다니 김태희 기자는 후회할 것이다. (김 기자: “제가 안 잤으면, 서울로 무사히 돌아오지 못했을 것”)
새벽 3시 ⏐ 밤이 더욱 더 어두워지다. +8 hour
근처 가로등이 꺼지고 지나가는 차도 줄어들어 훨씬 어두워지며, 분위기는 더 뜨거워졌다. 이제야 천문 관측에 적당한 밝기가 됐기 때문이다. 홍대기 참가자는 “최근 들어 빛공해가 엄청 심해져 천체 관측이 쉽지 않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빛공해는 인공조명이 사람과 자연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일컫는다. 크리스토퍼 키바 독일 지구과학연구센터 박사팀은 지난 1월, 2011년~2022년 사이 5만 1351명의 시민 과학자가 맨눈으로 본 별 관측 자료를 분석해, 매년 밤하늘이 평균 9.6%씩 밝아졌다는 연구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doi: 10.1126/science.abq7781 이 수치는 8년마다 밤하늘이 두배씩 밝아지는 것과 같은데, 연구팀은 이 속도라면 2040년에는 지금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별 10개 중 6개가 사라지리라 예측했다.
2016년 파비오 팔치 이탈리아 빛공해 연구센터 박사팀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은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빛공해가 심한 국가다. doi: 10.1126/sciadv.1600377 지금도 밤하늘은 여전히 공공재인가? 어두운 밤을 원하는 사람들은 어디까지 가야 하는 걸까?
“예전에는 수원에서도 솜브레로 은하가 눈으로 보였어.”
지난 관측을 추억하는 이야기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온다. 여기 더 어두운 밤하늘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새벽 5시 ⏐ 은하 중심부로 막판 스퍼트! +10 hour
메시에 마라톤 완주가 머지 않았다. 돌아온 김태희 기자와 함께 메시에 마라톤의 마지막 보석인 궁수자리 주변을 탐색하기로 했다. 궁수자리는 여름철, 남쪽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별자리이다. 궁수자리가 메시에 마라톤의 보석이 된 이유는 궁수자리가 우리은하의 중심 방향에 있어 수많은 메시에 천체가 모여있기 때문이다. 이 근처에만 20여 개의 메시에 천체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막판 스퍼트를 낼 시간이다.
“마지막오메가 성운 발견! 5시 20분.”
과동팀은 20분 동안 궁수자리 주변에서만 9개에 달하는 메시에 천체를 관측했다. 두 기자가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보니 주변이 사뭇 밝아져 있었다. 5시 반, 10시간 반의 밤샘 끝에 메시에 마라톤이 막을 내릴 시간이다. 과동팀은 총 19개의 메시에 천체를 찾았다. 목표의 무려 4배! 대성공이다.
새벽 6시 30분 ⏐메시에 마라톤 종료! 결과는?
“영광의 1등은, 108개를 찾아주신 김건희님입니다!”
놀라운 결과다. 총 108개의 메시에 천체를 관측한 사람이 두 명이나 나온 것이다. 동수가 나오는 경우, 규정에 따라 구경이 작은 망원경을 사용한 사람을 1등으로 정한다. 이에 따라 1등은 대학생 김건희씨가, 2등은 초등학교 6학년 구동건군에게 돌아갔다. 두 참가자는 공통적으로 일찍 지는 천체(M74, M77)와 늦게 뜨는 천체(M30)를 놓치면서 총 108개를 관측했다. 이 회장은 “행사 이래 처음으로 밤새도록 하늘이 맑아서 다들 많은 천체를 찾을 수 있었다”며 기뻐했다.
1등의 영예를 안은 김씨는 “하룻밤 동안 100개가 넘는 천체를 본 것은 처음이었고, 다양한 천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며 대회 참여 소감을 밝혔다. 이번에 본 천체 중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아령 성운’이라 불리는 M27이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메시에 목록은 철지난 연구의 산물이다. 학자들에게는 이제 7만 3197개 은하를 담은 ‘주요 은하 목록(PGC)’, 11만 8218개 항성을 분류한 ‘히파르코스 목록’ 등이 훨씬 정확하고 자세한 우주의 길잡이다. 하지만 밝고 잘 보이는 천체들이 모여있다는 점에서, 메시에 목록은 여전히 낭만적인 목표다. 하룻밤을 꼬박 새게 만드는 천체 관측의 매력이 궁금하다면 고개를 들어 M42와 M45를 찾아보라. 메시에를 짜증나게 만든 110개의 흐릿한 자국이 여러분을 유혹할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