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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우·염민규의 ‘실험실에서 온 생명체’] 줄기세포로 장기를 조립하다, 오가노이드

 

 

2019년이 배경인 영화 ‘아일랜드’ 에서는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들이 격리된 시설에 모여 살아갑니다. 그들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지상 최대의 낙원 ‘아일랜드’에 가는 것을 엄청난 행운으로 여기죠. 하지만 진실은 달랐습니다. 생존자들이 생활하는 격리 시설은 사실 복제인간들을 수용하는 장소였고, 이 복제인간들은 몸의 주인이 병들고 아플 때 장기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환상의 섬 ‘아일랜드’로 간다는 것은 곧 주인을 위한 복제인간들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재료  |  설계도 따라 스스로 조립되는 줄기세포

 

 

영화 속 시점인 2019년을 넘긴 현재, 우리는 질병 치료를 위해 복제인간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윤리적인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줄기세포 배양기술을 활용한 더 나은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2009년 대장 줄기세포를 연구하던 네덜란드 후브레흐트연구소의 한스 클레버스 교수는 줄기세포를 이용해 실제 우리 몸속의 대장 조직과 똑같은 세포들로 구성된 ‘미니 장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미니 장기는 몸 속 대장 세포들의 성격을 그대로 모방할 뿐만 아니라, 체내 조직의 구조까지도 비슷하게 재현했습니다. 클레버스 교수팀은 이 최초의 미니 장기에 기관(organ)을 닮았다(-oid)는 뜻의 ‘오가노이드(organoid)’ 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로 만듭니다. 줄기세포 안에는 우리 몸속 조직들에 대한 설계도가 내재돼있고, 세포는 이를 활용해 다양한 작은 기관을 스스로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이를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라고 합니다.  

 

자기조직화 특성을 이용하면 우리 몸 밖에서도 장기의 기능과 구조적 특성 등을 유사하게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오가노이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로 ‘유도만능줄기세포(IPSC·Induced Pluripotent Stem Cell)’나 ‘성체줄기세포(ASC·Adult Stem Cell)’라 불리는 줄기세포를 사용하는데요. 이들은 분화되지 않은 세포들로서 지속적인 자기 재생과 분열, 분화 능력을 통해 여러 세포들을 만들어냅니다. 

 

인체가 갖는 줄기세포는 크게 배아줄기세포와 성숙한 개체(성체)가 가진 성체줄기세포로 나눌 수 있습니다. 홀로 큰 그림을 그려 모든 장기를 새롭게 만들어내야만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진 배아와 달리, 성체는 이미 만들어진 장기를 성숙시키고 손상되지 않게 유지하는 임무를 주로 맡습니다. 때문에 배아줄기세포와 성체줄기세포의 기능도 조금 다릅니다. 성체줄기세포는 장기에 따라 고유의 모양과 기능을 갖죠. 그림을 그릴 때, 큰 틀을 잡는 스케치는 빠르게 연필로 하고(배아줄기세포) 세심한 표현은 다양한 물감으로 하는 것(다양한 성체줄기세포)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유도만능줄기세포는 뭘까요? 2006년 일본 교토대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완전히 분화된 체세포에 단 네 가지 물질을 주입해 배아줄기세포와 유사한 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정상적인 분화과정을 거스르는 ‘역분화’를 거쳐 만들어진 이 세포는 배아줄기세포처럼 다양한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유도만능줄기세포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유도만능줄기세포의 활용은 환자의 피부세포나 혈액세포 등을 역분화시켜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만드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 유도만능줄기세포들을 특정 장기의 발생 단계를 모사하는 배양 조건에서 키우면 각 장기의 세포들로 구성된 미니 장기들을 만들 수 있죠. 이 방법은 환자의 세포를 직접 이용하기 때문에 윤리적인 문제에서 자유롭고, 면역거부 반응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역분화의 효율이 높지 않고 특정 미니 장기로 분화시키는 과정이 매우 길고 복잡하기 때문에, 제대로 분화가 잘 이뤄졌는지에 대한 명확한 검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편 대부분의 신체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유도만능줄기세포와 달리, 성체줄기세포는 소수의 특정 조직으로만 분화할 수 있습니다. 이 세포들은 발생 단계 이후 우리가 죽을 때까지 우리 몸속에서 함께 살면서 몸의 기능을 유지하고, 조직을 재생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대장에 존재하는 성체줄기세포들은 미생물 감염 등으로 장염이 발생했을 때 손상된 조직을 빠르게 재생시켜줍니다. 

 

일반적으로 성체줄기세포들은 특정 장기로 분화하는 데 특화돼 있기 때문에, 유도만능줄기세포처럼 복잡한 분화 과정 없이도 짧은 시간 안에 미니 장기들을 만들고 손쉽게 키워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해진 장기만 만들 수 있어 범용성이 떨어지고, 현재까지의 기술로는 장기의 모든 세포를 완벽히 재현해낼 수 없습니다. 때문에 다양한 세포들의 상호작용을 구현해내기에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조립  |  실제 장기처럼 3차원 구조 재현

 

장기를 몸 밖에서 키워낼 수 있는 오가노이드의 등장과 발전은 수많은 과학자에게 영감을 줬습니다. 오가노이드를 잘 연구하면, 우리 몸속 장기들이 만들어지는 발달 과정을 밝힐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노화나 다른 질병들을 연구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연구에 사용되는 실험동물의 수를 줄일 수 있고, 실험동물과 달리 실험대에서 쉽게 조작이 가능하다는 장점까지 있어서 오가노이드 기술은 의과학 분야에서 그 영역을 점차 넓히고 있습니다. 

 

오가노이드가 실제 조직과 크게 다른 부분 중 하나는, 오가노이드가 실제 장기의 모양을 똑같이 모방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우리 몸의 세포와 조직은 상호작용을 통해 매우 다양한 구조를 만들어내지만, 오가노이드는 공 모양의 덩어리를 만들 뿐이죠. 

 

스위스 로잔연방공대의 마티아스 뤼톨프 교수팀은 오가노이드 모양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성체줄기세포를 바이오 잉크로 사용해, 실제 조직에 더욱 가까운 형태의 오가노이드 미세구조를 인쇄(바이오 프린팅)하는 기술을 고안했습니다. 줄기세포를 형태적으로 지지하고 생장을 도울 다양한 물질을 사용함은 물론, 혈관까지 동시에 배양함으로써 실제 조직에 더 유사한 형태로 오가노이드를 발전시켰습니다. 

 

이처럼 오가노이드와 조직공학(조직 구성에 필요한 세포들이 부착돼 자랄 수 있는 지지체를 만들고, 각종 성장 인자를 적절히 배합해 여러 조직을 재생, 재건하는 학문)의 만남은 다양한 조직에서 유래된 오가노이드 연구에도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과제  |  다른 기관과의 상호작용 

 

오가노이드라는 용어가 알려지기 시작한 지 십수 년 만에 우리는 오가노이드 기술로 몸속 대부분의 장기를 모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임상시험 대신 오가노이드를 활용해 유효성 평가를 하는 것이 정착되고 있을 정도로 오가노이드에 대한 관심은 매우 뜨겁습니다. 

 

하지만 오가노이드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하나의 조직을 배양하는 오가노이드의 특성상, 다른 조직이나 기관과의 상호작용을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만약 우리가 사회를 떠나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남아야만 한다면, 나라는 사람은 변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생존을 위해 해야하는 일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홀로 배양된 오가노이드의 모습은, 많은 조직과 복합적으로 연계된 실제 몸속 장기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오가노이드의 크기를 충분히 키우기 어렵다는 점, 배양한 오가노이드가 기능적으로 완전하지 않다는 점도 치명적인 단점으로 꼽힙니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SF영화에서나 가능할 것 같았던 인공 장기를 체외에서 배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만으로도 오가노이드는 아주 큰 의미를 가지니까요. 실제로 연구 현장에서는 오가노이드를 혈관과 함께 키우기도 하고 여러 개의 오가노이드를 하나로 합치는 등 오가노이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멋진 노력을 다음 호에서 자세히 알려 드립니다.  

 

2019년이 배경인 영화 ‘아일랜드’ 에서는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들이 격리된 시설에 모여 살아갑니다. 그들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지상 최대의 낙원 ‘아일랜드’에 가는 것을 엄청난 행운으로 여기죠. 하지만 진실은 달랐습니다. 생존자들이 생활하는 격리 시설은 사실 복제인간들을 수용하는 장소였고, 이 복제인간들은 몸의 주인이 병들고 아플 때 장기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환상의 섬 ‘아일랜드’로 간다는 것은 곧 주인을 위한 복제인간들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성진우

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 포유류 임신 시 유선줄기세포 발달과 유방암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오스트리아 분자생명공학연구소(IMBA)에서 줄기세포를 이용한 포유류 배아의 인공 제작 및 합성을 연구하고 있다. jinwoo.seong@imba.oeaw.ac.at / sjw11071@gmail.com

 

  염민규

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 성체줄기세포와 대장암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고, 영국 케임브리지대 줄기세포연구소에서 유전학적 생쥐 모델과 수학적 모델링을 접목해 줄기세포 간의 경쟁 과정을 연구했다. 현재는 KAIST 의과학대학원에서 줄기세포 조절 이상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minkyu.yum@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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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성진우
  • 염민규
  • 에디터

    이영혜 기자 기자
  • 일러스트

    남지우
  • 디자인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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